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0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00화
#플로제와 아르말리아
“그건…….”
“됐다. 어차피 말해봤자지. 보잘것없는 가문에 보잘것없는 기사일 텐데. 더 이상 말해봤자 뭐하겠어?”
사인스가 계속해서 빈정대며 말했다.
플로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버지에 관한 것은 함부로 말하면 참을 수 없었다.
분노한 플로제를 보며 사인스가 남몰래 미소를 보였다.
흥분한 자만큼 쉬운 상대는 없다.
“아니면 네 스스로 증명해 보여라. 네가 날 이긴다면 지금까지 네가 몰래 수련해온 그 검술이 진짜라고 인정해주마.”
사인스가 살짝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역시나 이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플로제는 사인스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었다.
그는 특이한 자세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땅을 박차며 사인스를 향해 먼저 돌진했다.
“으하하하!!! 플로제 좀 봐라!! 저 자식 자세 엉성한 것 보이냐?”
“뭐야. 우리 아카데미에서 가르쳐 준 검술이 아니잖아?”
“맨날 혼자 연습하는 그 검술인가보지.”
“그거면 사인스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어림없지… 사인스는 부젠데르크 백작님의 아들이야. 검술로 유명한 가문의 아들이라고.”
기사수련생들뿐만 아니라 마법수련생들도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았다.
여기저기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사수련생들은 더욱 상기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저기 봐. 저분이 바로 사인스님인가봐.”
“어쩜… 얼굴도 잘생기셨는데… 검술도 훌륭하셔…….”
“몸은 또 어떻고? 저 다부진 근육 좀 봐…….”
여자수련생들이 사인스만 바라보고 있을 때 아르말리아는 플로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플로제를 처음 본 것은 3년 전이었다.
모든 것들에 지쳐 있던 그 날.
그녀는 홀로 바람을 쐬기 위해 아카데미의 외곽진 곳에 있는 커다란 호수에 갔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호수 앞에서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플로제였다.
홀로 울음을 삼키던 그를 보자 아르말리아는 어째서인지 걸음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숨죽여 그 사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홀로 흐느껴 우는 사내의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있었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 아르말리아였건만 그날은 어째서인지 함부로 그 사람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쓸쓸한 모습으로 호수를 바라보던 사내가 별안간 목검을 집어 들었다.
“그래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어. 하지만 난 안 돼. 누구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러면 안 돼……!”
그 사내가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그리곤 처음 보는 검술을 계속해서 펼쳤다.
검을 몇 차례 휘두르던 사내가 곧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다른 목검이 들렸다.
“어느새…….”
그제야 아르말리아는 지면에 여러 형태의 목검이 박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달빛 아래서 사내는 어설픈 움직임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검술에 문외한인 그녀가 보기에도 어딘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계속해서 아르말리아의 두 눈에 선명히 남았다.
단순히 검술만을 펼치는 모습이라면 가문의 기사들이나 아카데미의 다른 기사수련생들이 훨씬 더 뛰어났다.
그런데도 아르말리아는 어째서인지 사내의 검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따각.
그러자 그녀의 발에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졌다.
“어……!?”
목검으로 검술을 펼치던 사내가 놀란 얼굴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플로제와 아르말리아의 첫만남이었다.
나이가 같았던 두 사람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플로제는 아르말리아가 주위에서 봐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티 없이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플로제도 아르말리아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귀족 가문의 영애들과 아르말리아는 달랐다.
그는 그녀의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 아르말리아는 재능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사내에게 놀라움을 표현했다.
자신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렇게 놀리지 마.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데… 어째서 검술 실력이 늘지 않은 거지?”
“글쎄… 나는 역시 아버지와 다르게 재능이 없는 건가…….”
플로제가 어두운 얼굴을 보이자 아르말리아가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났다.
“너는 이 작은 불씨에 불과해.”
“그렇네… 나는 작은 불씨…….”
“하지만.”
아르말리아가 손바닥의 불씨를 옆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불씨가 나뭇가지로 옮겨갔다.
나뭇가지를 집어삼킨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몸을 불렸다.
“봤지? 네게도 이런 순간이 올 거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그 작은 불씨를 절대 꺼트리지 마.”
“와아…….”
감동받은 플로제가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그에게 이토록 따뜻한 말을 해준 사람도 아르말리아가 처음이었다.
아르말리아도 눈앞의 플로제를 보며 마음을 달리하고 있었다.
“재능뿐인 나와 노력이 전부인 너.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난 것도 웃기는 일이네.”
“흐흐 그러게…….”
“어머? 너 그렇게 웃을 줄도 아는 구나.”
플로제가 처음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몰랐다.
아르말리아의 머릿속에 플로제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시작한 것이.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가끔씩 호숫가에서 몰래 만났다.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대부분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냥 마음속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말리아가 물었다.
“그런데 그 검술. 아버지가 남겨주신 검술이라고 했지?”
“응.”
“너희 아버지도 기사라고 했잖아. 지금은 어디 계셔?”
“아버지는… 어머니와 날 남겨두고 먼저 떠나셨어.”
“아…….”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돼.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늘 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셨다고 말씀하셨어. 누구보다 훌륭한 기사셨다고…….”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플로제가 말끝을 흐렸다.
아르말리아의 하얀 손이 그런 플로제의 손을 잡았다.
“혹시 너의 아버지에 관해 묻는 것은…….”
아르말리아도 알고 있었다.
플로제는 늘 가족이나 가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렇지만 아르말리아는 플로제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플로제가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지.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이 묻고서도 아르말리아가 괜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플로제가 입을 꾹 다물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플로제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에 관한 얘기를 꺼내주었다.
가문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날이 새도록 아르말리아에게 털어놓았다.
얘기를 모두 듣고 아르말리아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녀는 말없이 플로제를 안아주었다.
“열심히 버텨주었구나…….”
플로제도 잠자코 그녀의 품에 안겼다.
따뜻한 아르말리아의 품에서 플로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감히 나 같은 놈에게… 과분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 조금만 욕심을 부린다면… 나는 네가 너무 좋아 아르말리아. 알고 있어. 내게는 과분한 일이라는 거.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 수도 없이 했어.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플로제는 아르말리아를 살며시 밀어내었다.
좋다고 말해놓고 자신을 밀어내는 플로제를 보며 아르말리아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미안… 역시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줘…….”
“어림없어.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 몰라?”
“하지만 너에게 나 같은 남자는…….”
“네가 어때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들어보니 아주 훌륭한 가문이고.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면 더없이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뭐 능력이야. 네가 날 지켜주지 못한다면 내가 널 지켜주면 되잖아? 그러려고 이런 재능을 타고났나 보지.”
그녀가 보란 듯이 마법을 펼쳐보였다.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아르말리아는 어느새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널 만나고 나서부터 나도 달라졌어. 기대만 가득한 시선 속에서 살아오는 바람에 늘 어깨가 무거웠거든. 중압감 속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너는 하나의 탈출구였고. 널 만나고 나도 노력이란 걸 하기 시작해서 벌써 이렇게나 바뀌었어. 그래서 네겐 늘 고맙게 생각해. 너란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게도 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스스로를 낮추지 마.”
“진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다른 것 다 떠나서. 네 솔직한 마음이 그렇다며? 그러면 된 것 아니야? 다른 것들이 무슨 상관이야.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지.”
“그래서 네 마음은?”
“후후 우선 훌륭한 사람이 돼! 그러면 그 때 내 대답을 들려줄게.”
“그래. 알겠어.”
아르말리아는 그때 당시 플로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 보기 좋은 얼굴이었다.
그 이후로 플로제는 마법 수련관에 있는 자신조차 눈치챌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러니 이제는 결과를 보여줄 차례였다.
“힘내 플로제.”
아르말리아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그녀가 지켜보고 있자 두 남자가 더욱 불꽃을 튀었다.
플로제의 검술은 어색했지만 은근히 사인스를 괴롭히고 있었다.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지 못했다.
지켜보던 교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당연히 사인스가 낙승을 거둘 줄 알았다.
그런데 결투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쳇. 이제 봐주는 것은 없다.”
사인스가 검을 고쳐 잡았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플로제를 아주 얕잡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른 이제부터는 달랐다.
그는 아카데미 교관들이 몰래 가르쳐준 중상급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플로제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왜 그러냐!? 그 잘난 검술로 막아보아라!!”
사인스가 상단과 중단을 번갈아 노리며 플로제의 팔을 어지럽혔다.
플로제가 이를 악물며 버텼으나 거기까지였다.
애초에 검술의 정교함은 사인스가 우위였다.
실력 차가 확연한 결투였기에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마침내 파상공세를 버텨내지 못한 플로제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을 뒹구는 플로제를 보며 기사수련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이들에게 그랬다면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플로제에겐 예외였다.
그들은 물론 교관들까지도 고소하다는 얼굴로 비웃고 있었다.
플로제가 아카데미의 검술을 익히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자신 가문의 검술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교관들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부젠데르크처럼 이름 있는 가문의 검술이라면 모를까, 보나마나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했을 가문의 검술을 아카데미의 검술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저 녀석도 잘 알았겠지.”
“알긴 뭘 알아. 이런 일이 한 두 번이어야지.”
“하긴… 저 녀석의 고집을 어떻게 꺾겠나. 쯧. 저런 쓸데없는 검술을 익히지 말고 아카데미의 검술에 치중하면 더 좋았을 것을…….”
교관들이 한마디씩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쓰러진 플로제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닮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