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0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03화
#플로제의 성장
어쨌거나 그는 현재 역체변용술로 모습도 바뀌어 있는데다 굳이 눈에 띌 필요가 없기 때문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로제리아도 마찬가지.
덕분에 플로제는 그들을 방랑자쯤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곳으로 음식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빌리러 온 행색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동료들이… 이런 모습이라니…….”
실망 가득한 모습의 플로제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르말리아가 말없이 플로제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네 아버지와 함께 싸우셨던 분들 아냐?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아는 분들이잖아.”
“그렇지… 제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플로제가 칼라반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칼라반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
“동료를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력의 천재였다.”
“노력의 천재…….”
“레클레이의 노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면 뭐합니까…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는 약한… 아니… 아니에요.”
“약해서 죽었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냐?”
“…….”
입술을 질끈 깨문 플로제가 말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엔리아가 그런 플로제를 붙잡으려 했지만 칼라반이 이를 말렸다.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냥 두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겁니다.”
“아…….”
눈치보고 있던 아르말리아가 조용히 플로제를 따라나섰다.
엔리아는 그녀라도 플로제를 따라가 주길 바랐기에 애써 움직여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많이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가져가요. 아… 혹시 아가씨의 입맛에는 맞지 않으려나…….”
엔리아가 쥐어준 음식을 내려다본 아르말리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그녀로선 처음 보는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엔리아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 그녀는 엔리아의 모습에 주목했다.
많이 야윈 모습을 하고 헤진 옷을 입고 있지만 그녀에게선 이상하게 기품이 느껴졌다.
이를 보아 아마도 플로제의 어머니 또한 남다른 귀족 가문의 자제가 아닐까 싶었다.
레클레이 같은 칼라반 군단에 관한 것들은 질문도 금기시 되고 자료도 얼마 없어 아르말리아는 잘 알지 못했다.
오로지 플로제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엔리아의 말에 온전히 의존한 정보들이었다.
처음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칼라반 군단에 속해 있었던 기사였다니.
어쨌거나 플로제에게는 환상 속에나 존재하던 아버지와 그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동료들의 모습이 저러니 플로제가 많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가 잘 전해줄게요.”
아무래도 플로제가 신경 쓰였기에 그녀는 서둘러 플로제가 간 방향으로 따라나섰다.
두 사람을 본 로제리아가 칼라반 쪽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나요?”
“무엇을?”
“당신의 정체요.”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말 그대로 나는 레클레이의 옛 동료이자 지금의 동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레클레이는 누구보다 노력하는 노력의 천재였어.”
“칼라반. 그것 말고…….”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도 알고 있다 로제리아.”
칼라반은 말없이 엔리아가 준비해준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입안에 들어가자 달콤하면서도 끝에 약간의 씁쓰름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신기하군. 마치 지금의 내 기분 같아.”
그는 계속해서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로제리아도 하는 수 없이 식사부터 시작했다.
엔리아는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연신 플로제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네…….”
“가끔은 이렇게 스스로와 마주보는 시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엔.”
칼라반이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원체 생각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기에 로제리아도 이만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폰투스 알폰이 배를 끌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남아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 모두 최대한 서둘렀기 때문에 다음 일정까지 시간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것이다.
다른 것들은 운량과 쥬피로스에게 맡겨두었다.
두 사람은 어나니머스와 마법 등을 이용해 칼라반에게 꾸준히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니 크게 급할 것도 없었다.
한편 집을 뛰쳐나오다시피 한 플로제는 근처 호수가로 달렸다.
넓게 펼쳐진 호수를 보자마자 그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하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릴 것만 같았다.
뒤이어 아르말리아가 도착했다.
그녀는 플로제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릴 때까지 말없이 지켜봐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껏 소리친 플로제가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무리해서 뜀박질을 했으니 이제야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다.
“그럴 줄 알았어.”
아르말리아는 엔리아가 챙겨준 음식을 플로제에게 건넸다.
그래도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음식이라 그런지 플로에는 군소리 없이 음식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음식에 입을 가져가며 밤하늘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뭐가 그렇게 답답했던 거야?”
“그냥.”
“설마 저분들의 행색이 초라해서?”
“그런 것도 있고… 나는 우리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못난 생각인 것 아는데. 정말 사인스의 말처럼 이름 없는 귀족 가문의 기사. 그 정도일 것 같다는 생각이… 평생을 제국을 위해 싸워왔는데 결국 저런 모습으로 남았잖아. 레클레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도 적더라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 아버지가 꼭 유명해야 되는 거야?”
“그동안 나는 우리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그럼 되었네. 너한테만이라도 훌륭한 아버지로 남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네가 인정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겠지. 네가 훌륭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라는 것을. 그게 아니면 훌륭한 아들을 둔 아버지로!”
“하하 못 당하겠네. 맞아 그러면 되겠어. 생각해보니 우리 어머니께선 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셨어. 남들 눈에 어떻든! 물론 늘 물어보면 일평생 제국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셨다 말씀하시며 다른 것들은 말씀해주지 않았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어. 우리 아버지가 제국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플로제…….”
“그래서 문득 잘못된 생각이 든 거야. 왜 아버지는 저들처럼 살아남지 못하셨을까… 비겁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며 아버지도 저렇듯 살아 돌아오셨더라면…….”
“동료를 워낙 끔찍이도 아끼신 분이라고 했잖아… 적어도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에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
“그래… 그렇겠지. 미안해 오늘 일 때문인지 괜히 나약한 마음만 들어선… 부족한 것은 나인데… 괜히 핑계대고 싶은 곳을 찾았나봐. 못나게도 말이야.”
플로제가 우울함에 잠겨있는 동안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기 있었나.”
“아…….”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칼라반이 서 있었다.
아르말리아와 플로제가 몸을 일으켰다.
“네가 많이 다쳐서 어머니가 걱정하셨다.”
“아… 이 정도는…….”
“잘 관리하지 않으면 상처가 덧난다. 몸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니 이걸 받아라.”
칼라반이 품속에서 붉은 물병을 꺼내주었다.
인벤토리에서 미리 꺼내놓은 회복 포션이었다.
마시면 몸의 상처가 금방 나을 터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그래도 받아라. 나는 네 아버지한테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정도는 하게 해줬으면 좋겠군.”
“제 아버지가 아저씨의 목숨을 살리기라도 했나요.”
“그래. 네 아버지가 날 살렸다. 내 생명의 은인이지.”
“…….”
칼라반의 말에 플로제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쳤다.
잠시나마 아버지를 의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에 의해 목숨이 구해진 동료.
그 동료가 잊지 않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와주었던 것이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아버지는 누군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플로제가 자책하는 동안 아르말리아가 대신 칼라반이 건네준 포션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색깔의 포션에 눈을 빛냈다.
“오늘 우연히 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밤하늘의 달빛을 보며 칼라반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플로제는 짐짓 놀랐으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금 전 자신의 태도에 실망했을 칼라반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려워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항복을 외치지 않더군. 이유가 있었나?”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어째서지?”
“녀석은 아카데미의 검술로 싸웠고… 저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검술책을 읽으며 연구한 검술을 펼쳤습니다. 아버지의 검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더더욱 지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런가. 자존심이었나.”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패했으니 네 아버지인 레클레이의 검술이 약하다고 생각하나? 부젠데르크라고 하는 그 가문의 검술보다 말이야.”
칼라반의 말에 플로제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뿐 아버지가 남겨주신 검술은 분명 훌륭하다고 믿고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유일하게 남겨주신 이 검술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검술을 펼치는 모습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검술로 일어설 것입니다. 결국 약한 것은 저였습니다. 아버지의 검술은 결코 뒤처지지 않아요. 그러니 꼭 증명해낼 것입니다!”
플로제는 어느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칼라반에게 그 어떤 말을 듣더라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 같은 눈치였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칼라반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보였다.
“과연 레클레이의 아들답군. 그렇다면 그걸 마셔라. 그래야 몸을 회복하고 더욱 정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네…….”
플로제는 아르말리아가 건네주는 회복 포션을 마셨다.
칼라반은 그런 플로제와 아르말리아를 바라보았다.
“부디 오늘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 넘어지고 멈춰서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라. 그것이 너의 아버지인 레클레이가 일평생 걸어온 길이었다. 그리고…….”
칼라반의 시선이 플로제의 곁에 있는 아르말리아에게 옮겨갔다.
“네게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네……?”
“여러 방면으로 두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더구나.”
“아…….”
아르말리아는 칼라반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플로제조차 모르게 한 일인데 저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르말리아는 그저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칼라반은 본인의 할 말만 남겨두고 자리를 떠나주었다.
“크라무슈.”
칼라반의 호명에 어나니머스의 조장인 크라무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칼라반의 앞에 부복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지금부터 너희 조는 이곳에 남아 로카르트 가문을 지켜라.”
“지키는 것은 저희 전문이 아닙니다만…….”
“저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크라무슈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칼라반은 엔리아와 플로제가 머무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낡고 허름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건물이었다.
레클레이의 가문이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은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체르피히에게 연락을 취해라.”
“무어라 전하면 되겠습니까.”
“체르피히가 로카르트 가문을 도와주었으면 좋겠군.”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마스터. 그런데 이곳에는 얼마나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플로제에게 전할 선물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것만 전해주고 떠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