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0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04화
#칼라반의 선물 (1)
꿈을 꿨다.
누군가 따스한 손길로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꿈이었다.
손길이 이끄는 곳으로 무언가가 움직였다.
맑으면서도 깨끗한.
그런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한 번씩 무언가가 그것을 막으려 들면 잠깐의 고통이면 되었다.
맑고 깨끗한 기운은 자신을 막으려는 것들을 힘차게 뚫고 지나갔다.
그리곤 다시 따뜻한 손길을 따라 이동했다.
포근함이 몸을 감싸 안았고 따뜻함이 전신을 부드럽게 펼쳐주는 듯했다.
처음 접해보는 느낌인데도 어쩐지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플로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따스함이 있다면 이러한 것이 아닐까.
그는 한때나마 자신이 아버지를 원망했기에 아버지가 직접 찾아온 것이라 느꼈다.
꿈에서 깬 플로제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아…….”
플로제는 곧바로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리곤 어느새 온몸에 느껴지던 고통이 사라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도 한 결 개운하게 잔 느낌이었다.
“말도 안 돼…….”
플로제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상처들이 아물어 있었고 안에서부터 욱신거리던 통증도 이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컨디션만 조금 안 좋을 뿐이지 이 정도면 평소 검술 수련한 후의 몸이라 생각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 맞다 아르말리아!”
어제 시간이 너무 늦어버린 바람에 아르말리아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어차피 그 시간에 아카데미로 돌아가 봤자 숙소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플로제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이미 일어나 있는 아르말리아가 어머니인 엔리아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로제리아와 칼라반도 함께였다.
“일어났나?”
칼라반이 먼저 플로제를 반겨주었다.
그는 곧바로 플로제의 몸상태부터 살폈다.
확실히 포션의 효과 덕분인지 몸은 괜찮아보였다.
플로제를 본 아르말리아는 그저 입만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플로제는 마치 새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어딘가 새삼 달라 보이기도 했다.
“좀 더 남자다워졌다고 해야 하나? 뭐지… 왜 갑자기 그렇게 보이는 거지? 내가 잠을 잘못 잤나…….”
아르말리아는 자신의 눈을 다시 한 번 비볐다.
그러나 이번에도 플로제가 사뭇 달라보였다.
앳된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하루아침에 건장한 성인이 된 것 같았다.
그를 본 로제리아도 무언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미약하기만 했던 플로제의 기운이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마나홀의 마나가 갑자기 활성화된 느낌이었다.
“잠시만요.”
로제리아가 플로제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아르말리아가 움찔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로제리아의 손이 더 빨랐다.
그녀는 플로제의 마나홀이 있는 곳에 손을 가져갔다.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이 느낌은 무엇일까.
로제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레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선물을 주겠다며 플로제가 있는 곳으로 몰래 나가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칼라반은 짐짓 모른 체하며 시선을 돌렸다.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절 바라보시는지…….”
정작 플로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 그래. 배고플 텐데 식사부터 하자.”
아르말리아가 플로제를 잡아끌었다.
칼라반과 로제리아도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아저씨. 이곳엔 얼마나 머무실 건가요?”
“글쎄. 오래는 있지 못할 것 같다.”
“그렇군요…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아카데미를 방문해주시겠어요?”
“이유는?”
“아저씨한테 제 검술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지금이라면 검술 시험에 나가서 멋지게 검술을 펼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어제 아저씨가 주신 포션 덕분이겠죠.”
“알겠다.”
칼라반은 다른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가 시원하게 답하자 오히려 플로제가 눈을 껌뻑거렸다.
사실 그가 부탁하면서도 조금은 무리한 부탁인 것 같아 아차 싶었다.
아버지인 레클레이의 동료들이라면 제국의 눈에 피해 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검술 제전에 초대하다니.
들뜬 마음에 자신이 말해놓고도 경솔했다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칼라반은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칼라반의 말에 플로제가 배시시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딱딱한 말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정이 묻어나 있는 것 같아 정겹게 들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플로제와 아르말리아는 일찍부터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아르말리아는 플로제의 곁에 있으며 쉼 없이 재잘거렸다.
저렇게 보면 평범한 귀족 가문의 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저 아이의 재능도 놀라워요.”
“아르말리아 말인가?”
“네. 저 나이에 3써클 초입에 들어선 것 같던데요?”
“그걸 어떻게 알지?”
“잊었어요?”
로제리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칼라반도 곧바로 이해했다.
로제리아는 마검사였다.
그녀 또한 마법을 익혔으니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짝을 만난 셈이로군.”
“플로제의 곁에 저런 친구가 있어 다행이에요. 다만…….”
엔리아가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 플로제는 언제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이별의 때가 다가왔을 때 상처받을 플로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다.
“걱정 마세요. 이곳이 엔리아 당신과 플로제의 마음에 든다면 이제는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네?”
“따뜻한 식사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칼라반과 로제리아가 이만 떠날 채비를 했다.
어젯밤 보고 받은 것에 따르면 폰투스 알폰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다고 했다.
그러니 더 머무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떠나시려고요?”
“네.”
“이제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하지 못한 일들을 마저 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엔리아가 칼라반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칼라반도 그녀를 향해 예를 차렸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것이 끝나면 돌아와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리고 이것은 꼭 챙겨 드시길.”
칼라반은 품안에 있던 환약과 포션을 건네주었다.
혹시 몰라 운량이 칼라반을 위해 준비해준 것들이었지만 자신보다는 엔리아에게 더 쓸모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칼라반은 로제리아와 함께 플로제가 있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한편 아카데미는 검술 제전으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검술들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자리였다.
마법 수련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플로제가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의 명단은 지워지고 없었다.
“이게 어떻게…….”
“음? 뭐야. 그 몸으로 다시 나온 거냐?”
지나가던 교관이 놀라 말했다.
어제 플로제와 사인스의 결투를 지켜봤었기 때문에 그는 더더욱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플로제의 몸은 어제보다 훨씬 멀쩡한 상태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제 반 시체가 되어 나간 것 같은데… 벌써 몸이 다 나은 것 같잖아?”
교관이 의심의 눈초리로 플로제를 바라보았다.
가난해서 돈도 없는 플로제가 귀한 포션을 사거나 갖고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저… 저는 그럼 검술 제전에 나가지 못하는 겁니까?”
“아쉽지만 그렇게 되었다. 선임 교관님께서 너는 부상 때문에 나오지 못할 테니 명단에서 지우라고 했거든. 이미 명단은 올라갔으니… 이제와 바꿔줄 수도 없다.”
교관이 혹시나 싶어 딱 잘라 말해두었다.
다행이 플로제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교관의 말에 순순히 순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아카데미 측의 잘못이 아니었다.
씁쓸함이 맴돌았지만 이만 몸을 돌렸다.
“그보다 너. 어떻게 몸을 다 치료한 거지? 그 정도면.”
“운이 좋았습니다.”
플로제는 이 말만 남기고 제전이 열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교관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다른 교관이 찾아와 그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었다.
“뭐? 아르말리아가?”
“정말이라니까! 밤새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플로제와 함께 왔다더군. 그것도 어제와 같은 옷차림으로!”
“설마 플로제 녀석…….”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야지…….”
“어쩐지 온몸의 상처가 다 나았더라니…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군. 아무리 검술 제전에 욕심이 나도 그렇지 이것은 선을 넘어버린 거다. 감히 동기수련생을 협박을 하다니……!”
교관은 마치 자신의 상상이 사실인 양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러자 다른 교관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교관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 검술, 마법 제전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플로제는 무료한 얼굴로 동기수련생들의 검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저곳에 있어야 했는데…….”
그때 저 먼발치서 칼라반과 로제리아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 제전은 외부인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동안 수련생들이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루어냈는지 보여주는 목적이 있기도 했다.
때문에 여러 귀족들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칼라반을 본 플로제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기껏 그를 불렀는데 자신은 참가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를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 본 칼라반도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녀석. 뜻대로 되지 않았나보군.”
“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로제리아의 시선이 사인스에게로 향했다.
사인스는 척 보기에도 화려한 검술을 한껏 펼쳐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검술을 펼치는 동기수련생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어제 플로제와의 검투에서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의 검엔 마나 소드가 서려 있었다.
“제법이네요 저 아이도.”
부젠데르크 백작을 포함한 여러 귀족들이 감탄을 토해내었다.
확실히 사인스의 성장은 여타 귀족 가문의 자제들과 비교하면 빠른 수준이었다.
단연 돋보이는 그의 모습에 귀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때 검술을 멈춘 사인스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르말리아가 마법 제전을 마치고 서 있었다.
그녀는 이미 눈을 뗄 수 없는 마법 실력으로 좌중의 감탄을 자아낸 후였다.
“아르말리아!!!”
사인스가 대뜸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덕분에 이곳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절로 집중되었다.
“나는 미래 제국의 대기사장이 될 사내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그의 공개고백에 지켜보던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몇몇 이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몇몇은 시샘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부젠데르크 백작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저 녀석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대책 없는 것이 날 꼭 닮았구나!!”
그의 시선이 다른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레드앙레아 가문이 있었다.
바로 아르말리아의 가문.
레드앙레아 가문이라면 부젠데르크 가문과 비교했을 때 전혀 손색없는 가문이었다.
“보는 눈도 있고. 아주 만족스럽구만. 나는 내 아들을 응원하겠다!”
그러나 정작 아르말리아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요.”
“뭐……?”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대답에 순간 정적이 흐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