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2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23화
#목적
필버트가 곧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아는, 아니 제국에 알려진 칼라반의 커다란 약점.
그것은 바로 칼라반의 신체능력은 일반인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지금껏 많은 이들이 칼라반을 상대할 때면 그를 직접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둠의 정령들이 지켜주지 않으면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칼라반의 죽음은 곧 어둠 정령 군단의 전멸.
대부분의 정령들이 술사가 죽으면 정령계로 돌아가듯, 어둠의 정령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왔다.
물론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적군도 그것을 실현시키진 못했었다.
하지만 그날.
칼라반이 죽음을 맞이한 그날 이 추측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칼라반 곁에 항상 머물던 어둠의 정령들이 그가 죽자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폭주를 우려했던 카이사르조차 칼라반이 죽자 어둠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약점조차 사라졌다 이 말인가? 하… 이거 완전 큰일이로군…….”
필버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죽었다고 알려진 10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필버트로서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 칼라반의 시선이 뒤편으로 향했다.
여러 기척이 한데 뒤엉키고 있었다.
아마도 어나니머스가 적들과 부딪힌 모양이었다.
“하긴. 저런 여유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필버트가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의 두 눈동자가 칼라반에게로 꽂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을 만난다면 꼭 한 번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칼라반이라면! 이 물음에 대답해주었으면 하는데.”
난데없는 말에 칼라반이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있는 필버트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말해라.”
“나는 한 명의 기사로서. 그리고 제국인으로서!! 당신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흠모해왔다. 칼라반이라는 대기사장은 제국을 위해 늘 앞장서 싸워왔으며, 제국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온 사내였다. 그것이 적국이든, 몬스터든 우리 제국민들을 위협하는 자들이라면 그 누구도 자비 없는 모습으로 무찔러왔었지! 수많은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일컫는 일들도!! 칼라반과 솔 기사단이라면 어김없이 해내고야 말았어.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칼라반이라는 사내는 그랬다. 그래서 언젠가 당신을 앞에 두고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이 내 꿈이었다.”
필버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만큼이나 필버트는 칼라반을 진심으로 존경해 왔었다.
같은 제국의 기사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의 진심에 칼라반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말이 들려오더군. 대기사장 칼라반의 배반. 그가 황제 아크로이어님을 상대로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말들이!”
“…….”
“어째서인가!? 제국을 위해 일평생 목숨을 바쳐온 당신이! 어째서 제국을 배신하려 한 거지!?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필버트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도 감정이 격앙된 것이다.
“난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뭐!?”
“제국을 배신하려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얘기다.”
“거짓말마라!! 그렇다면 제국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당신을 죽였다는 얘긴가!? 그럴 리 없다! 당신은 우리 제국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칼라반과 솔 기사단이 있는 한 제국은 안전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연전무패를 기록하는 당신의 군단도 이미 제국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째서 제국이 죄 없는 당신을 죽인단 말인가!?”
“정확히는 제국이 아니다. 제국의 황실이지.”
“제국 황실이 곧 제국이다……!”
필버트가 불같은 시선으로 칼라반을 노려보았다.
어디 한 번 대답해보라는 살기등등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칼라반의 시선은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피가 싸늘하게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어이없는 말을 하는군. 제국 황실은…! 제국이 아니다.”
“오호… 그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대는 정말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내가 왜 제국을 배신했는지 그 이유만을 알고 싶은 건가?”
“그게 그것 아닌가? 당신이 왜 제국을 배신하려 했는지 알면…….”
“아니. 너는 처음 접근부터 잘못되었다.”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군! 나는 그동안 이곳으로 보내진 모든 칼라반 군단병들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째서 칼라반 군단은 제국에 반기를 들려 했는가.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대부분 모른다는 말과 제국 황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말만 하더군.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어째서 대기사장인 당신이 제국을 배.신.했.는.가!!!”
파앙!!!
필버트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섬전과도 같이 파고들었다.
칼라반의 검이 그의 주먹을 흘렸다.
이어 사선으로 파고들어 필버트의 목을 노렸다.
쾅!!
휘카앙―!!
필버트가 주먹으로 검끝을 때렸다.
검강이 맺혀 있었음에도 필버트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나는 그 대답을 꼭 듣고 말겠다!!”
“막무가내로군.”
필버트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칼라반은 그의 공격을 피해내며 연신 스킬을 펼쳤다.
검끝이 유려한 곡선을 그릴 때마다 필버트의 투기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으랴아아―!!”
기합성을 터트린 필버트가 칼라반에게 주먹을 꽂았다.
기이이잉―!!
포르티나가 거센 공명음을 터트리며 필버트의 주먹을 얼려버리려 했다.
“귀찮은 무기!”
필버트가 냉기를 걷어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의 발이 칼라반의 상단부를 노리고 들었다.
칼라반은 피하지 않고 포르티나를 움직였다.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포르티나의 검면을 때렸다.
“흠!?”
콰앙!!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필버트가 포르티나를 걷어차 버렸다.
이에 칼라반의 신형이 흔들리자 필버트가 두 눈을 빛냈다.
“이거나 먹어라!!”
칼라반의 지척까지 파고든 필버트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권이 칼라반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파아앙!!!
거센 기운이 쏘아져나가며 칼라반을 덮쳤다.
필버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칼라반이 들고 있던 포르티나를 거세게 때렸다.
휘리링―!!
푸슉!
허공으로 날아간 포르티나가 땅에 박혔다.
“이제 무기가 없으니 어떡하나?”
필버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칼라반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재미없는 얼굴이로군. 무서울 정도로 침착해. 하지만 그게 얼마나 이어질지…….”
필버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눈앞에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펼쳐지고만 것이다.
칼라반이 손을 뻗자 포르티나가 공명음을 울리며 다시 손아귀로 흘러들어왔다.
“젠장… 심상치 않은 검이라 생각은 했지만…….”
“문제 될 것 없다.”
“흥! 그 검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쯤 내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필버트가 주먹을 부딪치며 도발해왔다.
그런 필버트의 도발이 은연하게 먹혀든 모양이었다.
칼라반이 포르티나를 인벤토리창에 집어넣었다.
“과연 그럴까.”
“호오, 투사인 나를 상대로 지금 검도 없이 싸워보겠다는 건가?”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군.”
“크흐… 미친 자신감이로구만. 그래. 그래야 내가 존경한 사내답지!”
필버트는 사양 않고 칼라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칼라반도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어디 한 번 그것이 자만인지 자신감인지 확인해 보겠다!!”
후우웅―!!
거친 투기를 머금은 필버트가 칼라반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투기가 파도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후우.”
칼라반이 한 차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두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전신에 내기가 폭사되는 순간 그것은 곧 질풍이 되어 흘러나갔다.
[스킬 질풍수라권을 시전합니다.]칼라반의 권에서 뻗어나간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투기를 꿰뚫어버렸다.
이에 필버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건 투기!?”
아니.
그가 사용하는 투기와는 사뭇 달랐다.
거칠고 투박한 투기와는 다르게 정제된 느낌의 기운이었다.
“마력인 건가!?”
알 수 없는 기운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칼라반이 검까지 버린 이상 자신이 칼라반에게 뒤처질 이유는 단 하나도 없어보였다.
물론 이것은 필버트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칼라반의 신형이 필버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그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필버트가 재빠르게 몸을 젖혔다.
휘리링―!!!
섬광처럼 뻗어나간 기운이 허공에 솟구쳤다.
[스킬 수라회천각(修羅回天脚)을 펼칩니다.]칼라반의 발이 회전하자 내공의 기류가 소용돌이쳤다.
“물러설 줄 아는가!”
필버트가 두 팔을 뻗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는 칼라반의 발을 붙잡았다.
소용돌이친 내기가 그대로 필버트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필버트도 지지 않았다.
그는 굳건히 칼라반의 힘을 견뎌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크아아――!!!”
기합성을 터트린 필버트가 강하게 주먹을 뻗었다.
투기에 부딪힌 칼라반의 몸이 균열을 일으키는 듯 보였다.
“흡……!”
칼라반이 처음으로 소리를 흘렸다.
필버트 또한 얼굴을 구기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런 정신 나간……!”
자신의 주먹에 맞으면서도 칼라반은 다른 쪽의 다리를 뻗어 올렸다.
그 사이에 한 번 더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필버트는 미처 피할 수 없어 이번엔 온전히 칼라반의 공격을 받아내고 말았다.
그 결과 엄청난 충격이 몸에 전해져 왔다.
수준 높은 투사들은 투기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투기들을 뚫고 이런 충격을 전해온 것이다.
“크흐흐…….”
필버트가 웃음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재밌는 싸움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칼라반 또한 필버트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역시도 강한 상대를 만나 피가 들끓고 있는 중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필버트가 진심으로 감탄해 말했다.
그는 입가에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내었다.
이렇게 피를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싸움은 길게 가지 못할 터였다.
“이제 얼추 마무리 되어가나 보군.”
조금 전까지 전장에서 날뛰던 어둠 정령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네르말린이 풀어놓은 죄수들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신들린 것처럼 어둠의 정령들을 마구 학살하고 있었다.
어둠의 정령들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네르말린이 풀어놓은 죄수들은 하나같이 길리고르 감옥에서도 높은 위험도를 자랑하는 죄수들이었다.
죄질이 나쁜 만큼 실력도 높은 이들이었다.
과연 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어둠의 정령들을 어둠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신의 패배인가보군. 당신은 우리 길리고르 감옥을 너무 얕보았다.”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그대가 이끌고 있는 이 길리고르 감옥은 강하다. 마음먹고 붕괴시킬 작정이었는데 이 정도 피해에서 그쳐버렸으니까…….”
칼라반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죄수복을 한 인간들이 마음껏 날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렇게 죄수들을 이용할 줄도 예상치 못했어.”
“천하의 칼라반에게 칭찬을 듣다니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아.”
필버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의 금발이 더욱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는군. 당신이 이곳으로 온 목적. 그것은 당연히 수하들을 구하기 위해서겠지?”
“그렇다.”
“대체 그들을 구해서 어쩔 생각이지? 설마…….”
“나는 제국 황실과 전쟁을 치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