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2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26화
#실수
부활한 칼라반 군단 앞에서 필버트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아직 그와 함께 하는 수하들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마저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칼라반도 필버트의 그런 마음을 벌써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무엇을……?”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곳엔 나의 수하들도 있지만 잡혀왔던 다른 귀족들도 있어. 그들 모두 너희들에게 감정이 좋진 않을 것 같다만.”
그의 말에 필버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라반 군단병들에 솔 기사단 이에 더해 귀족들까지.
비록 저들이 온전한 상태는 아니라곤 하나 한 명 한 명이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더군다나 칼라반과 로제리아는 아직까지도 멀쩡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최상급 정령들까지 하면… 최악이로군.”
생각으로만 맴돌던 말이 절로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본래대로라면 죄수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천하의 필버트조차 이번에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조용한 다른 죄수동을 바라보았다.
다행이 칼라반은 자신의 수하들과 병사들만 잡혀 있는 S동만 건드린 모양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제국 황실에 검을 겨눌 생각인건가? 그러기 위해 수하들을 구출해 낸 것이고…….”
“같은 말을 반복케 하지 마라.”
“내가 끝까지 당신을 막아선다면?”
“당연히 너를 물리치고 나아갈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한 가지 확인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해라.”
담담한 칼라반의 태도에 필버트가 인상을 굳혔다.
그때 네르말린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뭐하는 거지 감옥장?”
“적과 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대체 왜 대화를 시도하는 거냐고 묻는 거잖아.”
“우리 힘으로 저들을 온전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하의 필버트답지 않은 말을 하는군. 우리들도 얼마든지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몸을 사리려 하는 것 같지?”
“그래. 정말 운이 좋아서 저들을 전멸시켰다고 하자. 우리 쪽의 피해는 없을 것 같나? 아마 어마어마할 테지. 최악의 경우 너나 나나 죽음을 면치 못할 수 있다.”
“하! 그래서!? 지금 죽음이 두렵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전쟁터의 군인들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죄수들을 관리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 그러려고 하는 거잖아?”
“네르말린. 죄수는 저들만이 아니다. 아직 이곳엔 수많은 흉악범들이 붙잡혀 있어. 우리가 이곳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거지? 우리가 약해진 틈을 타 죄수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또다시 탈출을 감행한다면?”
필버트의 말에 네르말린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른 감옥이었다면 아마 필버트의 말에 코웃음을 쳤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길리고르 감옥.
제국 최악의 범죄자들을 가둬두는 곳이었다.
당장 옆에 보이는 죄수들만 해도 상당한 실력들을 자랑하는 놈들이었다.
저들이 지금처럼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것도 사실은 필버트를 포함한 간수장들의 힘이 온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간수장들이 힘을 잃는다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자들이었다.
“저 죄수들을 믿지 마라. 그동안 너의 말에 따라, 우리들의 제안에 따라 움직여주었지만. 놈들은 결정적으로 흉악한 범죄를 짓고 이곳에 들어온 죄수들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 따라서 언제든지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저들과 우리는 전우가 아니란 말이다.”
“쳇.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요.”
“이곳에서 전쟁을 벌이면 죄수들은 아마 뒤로 물러나 있을 거다. 저들에게는 우리처럼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어. 오히려 적들의 제안에 얼마든지 동요할 수 있는 자들이다. 당장 칼라반이 저들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면? 과연 죄수들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할 것 같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네르말린의 얼굴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곁에 있는 죄수들도 현재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하기사 당장 눈앞에 함께 갇혀 있던 죄수들이 풀려났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터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만약 정말로 이 길리고르 감옥을 붕괴시킬 작정이었다면 우리가 이곳에 전력을 쏟고 있는 틈을 타 수하들을 이용해 모든 죄수들을 풀었을 거다.”
“정말 그렇겠군…….”
“풀려난 죄수들도… 보면서 놀랍더군. 정확히 자신의 수하들과 내가 의문을 가졌던 귀족들이야. 마치 이곳으로 보내진 모든 범죄자들을 조사하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설마 저들을 이대로 곱게 보내주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필버트의 말에 네르말린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설마 필버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쉽게 포기할 네르말린도 아니었다.
“물론 당신의 명령이라면 따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반대야.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잖아.”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필버트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다행이도 칼라반은 그와 네르말린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상관없다. 그래서 내게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복수가 끝난 뒤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그대가 황제가 되려는 것인가?”
필버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려는 듯 그에게서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은근한 살기가 칼라반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이를 느끼면서도 칼라반은 잠시간의 침묵을 지켰다.
“정말인가. 정말로 그대는…….”
“미안하지만 나는 황제의 자리에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가족을, 수하들을 건드린 자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
“그러면 우리는 황제를 잃는다.”
“아니. 제국의 달이 지고 마침내 해가 떠오르는 거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거지.”
“흠… 그게 무슨 말이지?”
“아크로이어 황제가 죽고 나면, 레이블 황자님께서 황제에 오르실 거다.”
“레이블 황자님? 그 분은 현재 갇혀 지내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소식이 느리군. 이미 레이블 황자님은 아크로이어의 우리에서 빠져나오셨다.”
“허… 그런 일이 있었나… 아마 그 일에는 당신이 관여되어 있겠지.”
칼라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에 필버트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결국 칼라반은 제국의 변혁을 꿈꾸고 있었다.
황실의 주인이 달라진다는 것.
그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
“황좌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었군… 그보다 자신 있는 것인가?”
“자신 있어 하셨다. 레이블 황자님께선.”
“흐음…….”
“강한 분이시다. 누구와 다르게 그릇의 크기도 엄청나시지.”
“후후 그런가.”
“나는 솔직히 말해 그분이 이끌어갈 제국이 어떨지 궁금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도 다른 자로 황실의 주인을 갈아치울 셈인가?”
필버트가 눈매를 좁히며 물어보았다.
그러나 칼라반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레이블 황자님께서 말씀하셨다. 항상 제국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봐달라고.”
“…….”
“참 재밌지 않나. 같은 핏줄이지만 한 명은 내가 지켜보는 것이 두려워 나를 제거하려 했는데. 다른 한 명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그것이 그릇의 차이라 말하고 싶은 거냐.”
“뿐만이 아니겠지. 게다가 앞으로 그것을 증명해 내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
“그렇군. 어쨌거나 그대의 말뜻은 잘 알았다…….”
필버트의 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칼라반이 명령을 내렸다.
그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감옥의 병사들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하나같이 필버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필버트는 물끄러미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답답해진 네르말린과 간수장들이 그를 다그쳤다.
“필버트님!! 정말로 저들을 이대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필버트 감옥장!!! 지금이라도……!”
필버트는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칼라반에게로 꽂혀 있었다.
보다 못한 네르말린이 크게 소리쳤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젠!! 저자를 죽이면 50년 감형을 해주겠다!! 뿐만 아니라 사례금도 두둑이 챙겨주겠어!”
네르말린이 죄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죄수들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 찼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칼라반을 향해 튀어나갔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뒤에 시립해 있던 테레사카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앙상한 몸을 이끌고 단숨에 죄수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슈슉!!
슈콰아앙!!!
검이 번쩍이자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테레사카의 검에서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흘러나왔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아지랑이 속에서 핏물이 튀었다.
“오천인장 테레사카다!! 조심해!!”
“저놈 죽이면 30년은 감형해주겠지!”
죄수들이 신나서 날뛰려는 참이었다.
푸른 섬광과 함께 뇌전이 몰아쳤다.
파지지직!!!
쩌정!!!
뇌전을 몰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로제리아였다.
그녀의 전신을 감싼 푸른 아지랑이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이어 칠흑의 기사, 카이사르가 놈들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검붉은 안광이 폭사됨과 동시에 켈리움이 커다란 도끼를 내리쳤다.
지면에 균열이 일고 대지가 솟구쳤다.
[최상급 어둠의 정령 ― 범람의 사신 인페르누스를 소환합니다.]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인페르누스가 커다란 낫을 휘둘렀다.
어둠이 퍼지며 죄수들의 목이 떨어져나갔다.
압도적인 전력에 네르말린도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모두 정지이이!!!!”
마저 뛰어들려던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필버트가 크게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멈췄다.
이어 필버트가 네르말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까지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만 멈춰라.”
“감옥장…….”
“저들을 그냥 보내주어라.”
필버트의 명령에 모두가 참담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끝내 그의 입에서 저 말이 나와 버린 것이다.
필버트 또한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칼라반 군단과 최상급 어둠의 정령들 거기다 발키리 대장까지.
특히나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어둠의 정령을 보며 필버트도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정령 또한 최상급 정령인건가…….”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정령을 보며 필버트도 실소하고 말았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군…….”
감옥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
칼라반과 로제리아가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칼라반의 시선이 한쪽의 필버트에게로 향했다.
“물러나주어서 고맙군.”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 내게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이것은 한번쯤 있게 마련인 실수고… 다시없을 실수라 생각한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
“그런가.”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나는 내 수하들을 위해서 행동했을 뿐이다. 나는 당신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아.”
“그렇다면 나도 말해두겠다.”
슈와아아――!!!
칼라반의 전신에서 엄청난 살기가 흘러나왔다.
진득한 내기가 주변의 모두를 압박했다.
엄청난 기운에 필버트는 물론 네르말린과 간수장들까지 긴장했다.
그때 칼라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블 황자님의 당부가 없었더라면 너희는 모두 내 손에 죽었을 거다. 그러니 레이블 황자님께 감사해라. 너희들의 존재를 누구보다 들여다보시고 인정해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