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3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33화
#승전
“이래도 아직 더 할 마음이 남아 있는 건가?”
“크윽…….”
비스트로겐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상대는 정령술사로 유명한 전 대기사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검술로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후우… 조금 전 나를 봐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비스트로겐은 다시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검이 향하는 곳은 칼라반의 목이었다.
단숨에 베어버릴 생각이었건만 칼라반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흡!”
아니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비스트로겐의 눈에는 똑똑히 들어왔다.
옆으로 빠져나간 칼라반의 몸이 말이다.
“어딜!!”
비스트로겐이 검로를 바꾸었다.
검술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 여러 병사들과 기사들이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비스트로겐은 칼라반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가 끊임없이 검술을 펼치자 칼라반이 계속해서 피하는 형국이었다.
병사들은 비스트로겐이 칼라반과 맞붙는다면 분명히 비스트로겐이 이길 것이라 자신하고 있었다.
반면 칼라반 군단도 조용히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마법 군단은 로제리아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다른 곳의 전투도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기사장과 부관 모두 테레사카의 손에 쓰러지면서 비스트로겐 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폰투스 알폰과 해적들도 생각보다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밀린 제국군이 점점 후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니만큼 비스트로겐과 칼라반의 대결은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의 싸움이 이번 전쟁의 승패를 확실하게 결정지을지 몰랐다.
긴장 가득한 눈빛을 한 비스트로겐 군단과 다르게 칼라반 군단병들은 여유로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테레사카 역시 두 사람의 대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뭐냐. 긴장조차 하지 않는 거냐? 만약 저기서 칼라반님이 쓰러지면 이번 전쟁은 알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우리 대장이 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크하하하!!! 그것은 칼라반님에 대한 자신감인가? 아니면 그동안 함께 싸워온 동료로서의 믿음인가?”
폰투스 알폰이 크게 웃어젖히며 말했다.
그러자 테레사카도 마주 웃어보였다.
“칼라반님과 함께 있으면 가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 말은 나도 동감한다. 조금 전만해도 웃기는 일 아닌가? 제국의 철벽요새라 불리는 길리고르 감옥을 털고 나왔잖아. 솔직히 칼라반님이 너희들을 데리고 나왔을 땐 엄청나게 통쾌하더군. 제국에게 커다란 한 방을 먹인 기분이었어.”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맹목적인 믿음이 생기더군요. 게다가 칼라반님은 항상 우리들의 앞에 섰습니다.”
“음? 그야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해보십시오. 지금이야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어둠의 정령들이 곁에 없다면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어둠의 정령들이 칼라반님의 몸속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적들의 암습에 대처하기 어려웠단 말입니다. 게다가 선두에 나서면 당연히 적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공격도 쏠리게 되는데… 칼라반님은 단 한 번도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늘 칼라반님의 등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그 넓은 등을 보면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크흐흐 멋있군. 멋있는 사내야. 과연 라그나로크를 과감히 짊어질 만해.”
폰투스 알폰이 다시 한 번 크게 감탄했다.
칼라반에 관한 얘기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났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 바다에 나가 해적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칼라반의 군단에 몸을 담아 함께 전투를 벌여보고 싶었다.
그만큼 칼라반이라는 사내에게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콰라랑―!!
콰강!!
칼라반과 비스트로겐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비스트로겐과 다르게 칼라반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괴물이잖아 이거……!!”
콰아앙!!!
있는 힘껏 검격을 내리친 비스트로겐이 이를 악물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도 많은 마나를 소모했지만 지금처럼 강한 일격들을 이어가는 것은 더욱 극심했다.
그의 마나홀이 점점 바닥을 보이는데 상대는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말도 안 된다!! 인간의 마나는 한정되어 있어!!”
비스트로겐이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칼라반의 검은 단단한 철벽처럼 모든 공격들을 방어해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윽……!”
온몸을 엄습해오는 서늘한 한기에 비스트로겐이 절로 신음성을 내뱉고 말았다.
손가락 끝이 점점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계속해서 노출된 결과였다.
“성가신 검이로군…….”
오러와 검강이 부딪힐 때마다 포르티나는 매서운 한기를 쏟아내었다.
칼라반은 전혀 영향을 안 받는 것처럼 보였는데 문제는 비스트로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움직임에 방해를 받을 터였다.
그러니 더 이상 접전을 이어가는 것은 오히려 손해였다.
마음을 굳힌 비스트로겐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꺼번에 몰아친다!!”
비스트로겐의 검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나 칼라반은 오히려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비스트로겐이 드디어 승부처를 내걸었다.
이에 응하지 않을 칼라반이 아니었다.
그는 몸속의 내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후우우웅――!!
칼라반의 전신에서 내기가 폭사되자 비스트로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으하하하!!! 좋다!! 와라!!!!”
크게 웃음을 터트린 비스트로겐이 빠른 검격을 이어갔다.
매섭게 몰아치는 공격 속에서 칼라반은 귀신같은 보법을 펼쳐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검이 빈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비스트로겐은 칼라반의 공격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 같이 쓰러져도 좋지!!”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스트로겐의 검이 칼라반을 꿰뚫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옆구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비스트로겐은 본능적으로 검을 틀었다.
마나홀의 마나를 대폭 끌어올렸다.
검 끝에 맺혀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순식간에 몸을 불렸다.
커다란 오러 블레이드가 비스트로겐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슈와아아――!!
콰라랑!!!
오러 블레이드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대지에 커다란 상흔이 남았다.
비스트로겐이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분명 오러 블레이드를 한 바퀴 회전시켰건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애꿎은 허공만 가른 것이다.
“비스트로겐님 위입니다!!”
“위를 보십시오!!”
수하들의 외침이 들렸다.
비스트로겐이 곧바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허공에선 칼라반의 몸이 이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반월과 함께 말이다.
“이런 미친…….”
비스트로겐의 입에서 나지막이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칼라반의 검이 대기를 갈랐다.
비스트로겐의 앞으로 일자로 된 커다란 상처가 대지에 남았다.
깊숙이 페인 정도로 보아 조금 전 일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비스트로겐은 그저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최선을 다했다.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웠다.
전력을 다해 부딪쳤는데 이토록 허무한 적은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끝이 보인다면 이를 악물고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길 위에 홀로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닿을 수가 없어…….”
완벽한 패배였다.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비스트로겐은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갑옷이 소용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자신의 몸이 두 동강날 뻔했다.
“이미 이때부터 승부는 갈렸었나…….”
비스트로겐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을 놓고 말았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비스트로겐마저 검을 놓아버리자 다른 제국군 모두가 검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끝났군요 첫 전투가.”
테레사카가 미소와 함께 검을 거두어들였다.
다른 군단병들도 이만 병장기를 회수했다.
로제리아도 검을 거두어 들였다.
“정말… 정말 발키리 대장 로제리아가 맞습니까?”
“네. 발키리 대장은 그만두었지만 제 이름이 로제리아인 것은 맞아요.”
“후회할 행동입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제 행동과 라카이 왕국은 전혀 관련 없어요.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아무리 그렇게 말한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발키리 대장을 관두셨다고 해도 당신은 라카이 왕국의 공주가 아닙니까?”
“그것도 그만두었어요.”
“네? 공주를 그만 두었다고요?! 하하하하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공주라는 신분이 관두고 싶을 때 관둘 수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까?”
“저는 지금 라카이 왕국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이곳에 있는 거예요. 라카이 왕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요.”
클라우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거짓으로 치부하기엔 로제리아의 말에서 너무도 진심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이 판국에 로제리아가 자신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이렇게 단시간 내에 클라우스와 비스트로겐이 이끄는 군단을 격파해버렸으니 나머지는 수도로 향하면 될 일이었다.
더 이상 이들을 막을 병력은 수도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황실 근위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크로이어 황제를 모시고 바깥으로 빠져나갈 터였다.
“정말…입니까? 정말로 라카이 왕국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왔단 말입니까? 제국 황실에서는 라카이 왕국이 지금껏 칼라반을 숨겨주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틀렸어요. 라카이 왕국은 칼라반님이 살아 있었던 것조차 모르고 있으니까요. 저 또한 칼라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
“그리고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것도 맞아요. 저는 더 이상 라카이 왕국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겁니까?”
“그동안 평생을 바쳐 라카이 왕국을 위해 싸워왔어요. 그 자리에 제 인생이 있었을 것 같나요?”
“아뇨… 전투병기처럼 모든 전쟁에 불려 다녔다고 듣긴 했습니다.”
“맞아요. 그런 삶을 살아왔어요. 영혼 없이 끌려 다니던 저에게 처음으로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 바로 칼라반님이에요.”
“그랬군요… 후회는 없으신 겁니까? 잘못하면 당신은 제국의 ㅂ…….”
“당연하죠. 칼라반님과 함께하는 이상 후회는 없어요.”
그녀를 보며 클라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보였다.
클라우스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굳이 칼라반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요. 저는 저 사람과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즐거워요.”
그녀의 말에 클라우스도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보았던 그녀의 웃음은 너무도 행복해보였다.
때문에 말문이 막혀버리고만 것이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의 아량이 아니었다면 저와 마법사들의 목숨은…….”
“칼라반의 부탁이었어요. 최대한 당신들을 죽이지 않고 전쟁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그녀의 말에 클라우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예? 하지만 어째서… 저희들을 제거하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제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세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