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3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37화
#유수(流水)
메칸스 공작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포르티나의 냉기 덕분인지 핏물이 튀진 않았다.
싸늘하게 얼어버린 몸뚱이가 흘러내렸다.
이 모습에 귀족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칼라반을 위시한 그의 군단병들.
만인대장들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다른 이들도 심상치 않은 기운들을 풍겨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과연 누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무려 제국의 공작이 허무한 죽음을 당했건만 그들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순식간에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느낀 것은 귀족들만이 아니었다.
레이블 황자 또한 그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는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칼라반.”
“예.”
“그쯤 했으면 되었어.”
“알겠습니다.”
레이블 황자의 말뜻을 알아차린 칼라반이 이만 포르티나를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눈치 보던 기사들이 메칸스 공작의 시체를 수습해갔다.
“메칸스 공작님이… 이렇게 허무하게…….”
그레시만 후작은 아직까지도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리를 벗어나는 메칸스 공작의 시체를 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칼라반의 시선이 그런 그레이시만 후작에게로 향했다.
“히이익……!”
움찔한 그레시만 후작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메칸스 공작도 그러했지만 그레시만 후작도 검을 익힌 귀족이 아니었다.
평범하게 정치를 공부하며 삶의 길을 걸어온 귀족이었다.
그런 그레시만 후작이 칼라반의 살기를 정면에서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칼라반은 그런 그레시만 후작을 두고 레이블 황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레이블 황자는 이 날 서린 검을 앞에 두고 수심에 잠겼다.
메칸스 공작을 단칼에 죽인 것은 정말 그로서도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메칸스의 말대로 그는 이 제국의 공작이었다.
그런 그를 이렇게 죽여버렸으니 다른 귀족들의 반발이 심해질지도 몰랐다.
“하아… 이거야 원… 골치 아프게 되었군.”
그러건 말건 칼라반은 레이블 황자의 앞에 섰다.
“옥좌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칼라반이 레이블 황자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그를 따라온 군단의 간부들이 모두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척!! 척!!!
만인대장들과 레기온까지 예를 갖추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귀족들도 새로운 황제 앞에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에네르시아 왕이 몸을 돌려 예를 갖추었다.
포메아니아 왕국의 귀족들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레이블 황자의 곁에 있던 유운량도 허리를 숙여보였다.
칼라반 이외에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던 블레이드들도 고개를 숙였다.
이 장엄한 광경 앞에서 레이블이 몸을 일으켰다.
“모두 고개를 들라.”
그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레이블의 시선이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나는 아직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이 옥좌를 두고 형님인 아크로이어 황제와 마지막 전쟁을 치르려 한다.”
“레이블님을 위해 기꺼이 검을 휘두르겠습니다.”
칼라반이 한쪽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 * *
칼라반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의자에 앉아 그를 맞이했다.
“부르셨습니까.”
“바쁠 텐데 이렇게 보자고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당신의 부름이라면 언제든 오겠습니다.”
“후후 말이라도 고맙군. 일단 여기 앉아.”
레이블 황자의 손짓에 칼라반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자리에 앉자 레이블 황자가 손수 차를 내주었다.
“오늘 그대의 행동 말이야.”
“예.”
“그건 내가 추구하는 길과는 조금 다른 길이야.”
“알고 있습니다.”
“역시 알고 있었나? 그럼에도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레이블 황자가 눈을 빛내며 물어보았다.
그는 지금 칼라반을 나무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행동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함이 깃들어 있었다.
“레이블 황자님.”
“그래. 말해봐.”
“당신은 굉장히 부드러운 힘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가?”
“이것은 당신의 타고난 힘입니다. 놀랍게도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불편함보다 편안함을 느끼지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후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당신의 신분을 고려했을 때 이는 굉장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
레이블 황자가 그때서야 무릎을 탁 쳤다.
칼라반은 이 행동이 과장된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신의 그 힘이 진정으로 영향력을 미치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아니지요. 오랫동안 조용히, 은밀하게 침식하는 힘이니까요.”
“흐음… 그래서?”
“조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당신의 부드러움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제국의 황제가 소리 소문 없이 수도를 빠져나가고 죽은 줄 알았던 대기사장은 돌아와 제국 수도를 기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국을 향해 검을 들이밀던 라그나로크의 간부들까지 보이는 상태. 그러한 상태에서 하나씩 차근히 설명하려 하다간 끝없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
레이블 황자는 괜히 뜨끔했다.
그 역시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모든 상황들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칼라반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때로는 과감한 행동 한 번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법입니다.”
“음……!!”
레이블 황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도 칼라반의 말에서 충분히 느끼는 것이 있었다.
이를 보며 칼라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로이어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인물이었다.
만약 아크로이어 황제 앞에서 이러한 말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보나마나였다.
그에 반해 레이블 황자는 칼라반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크로이어 황제는 분명 리카누스 왕국으로 향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리카누스 왕국은 아크로이어 황제가 직접 점령한 곳이니까.”
“그러니 저희는 리카누스 왕국으로 향하겠습니다.”
“적진에서 싸울 생각인가?”
“제국 내에서 내전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
“레이블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도 그곳으로 따라가 함께 전쟁에 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제국 수도를 지키려 한다.”
레이블 황자의 말에 칼라반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레이블 황자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나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렇겠지요.”
“나는 검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것은 자신 없지만… 다른 것들에는 자신이 있어. 검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것은 나의 주된 분야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저희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고맙군.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 진정한 황제는 모든 것들을 잘하려는 황제가 아니고, 뛰어난 인재들을 알맞게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레이블 황자의 시선이 칼라반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뜨거운 시선에 칼라반도 레이블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그대가 나의 첫 대기사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군.”
“예……?”
“내가 임명하는 첫 대기사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야.”
레이블 황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칼라반이 미소를 흘렸다.
“원하신다면 기꺼이.”
“화아…! 정말 다행이로군!”
칼라반의 답이 끝나자마자 레이블 황자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내심 칼라반이 거절할까 싶어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칼라반은 거절하지 않았다.
“나의 할 말은 이게 다야. 이곳에서의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그대는 신경 쓰지 말고 나대신 아크로이어 황제를…….”
레이블 황자가 말끝을 흐렸다.
칼라반도 레이블 황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책임지고 아크로이어 황제와 그를 따르는 세력까지 완전히 부숴놓고 오겠습니다.”
“후후 그대가 하는 말만큼 믿음직한 말은 없는 것 같아.”
“저 또한 레이블님의 말씀이 믿음직스럽습니다. 부디 더 나은 제국을 만들어주십시오.”
“맡겨둬. 그리고 기대하라고. 내가, 아니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제국을.”
“알겠습니다.”
이만 몸을 일으키는 칼라반을 보며 레이블 황자가 한 번 더 그를 불러 세웠다.
“칼라반.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는 나와 술 한잔 기울여주겠나?”
“얼마든지요.”
“이건 명령이 아니야.”
“명령으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대랑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신분을 떠나서 말입니까?”
“웃기게도 그대랑 있으면 잠시나마 내가 어떠한 신분에 놓여 있는지 잊게 돼. 그대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불편하해지 않는다 말하지만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야. 그들은 분명 내 뒤에 있는 신분을 신경 쓴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어렴풋이 느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들에게 부드럽게, 온화하게 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군요.”
“그런데 오직 너만은 그 모든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단 말이지. 마치 온전한 내 모습을 바라봐주는 것 것처럼.”
“…그래야… 이 제국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칼라반은 이 말과 함께 자리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레이블 황자는 웃고 있었다.
“칼라반!! 듣고 있지!? 여기서 하는 말도 분명 그대에게는 들리잖아!? 다 알고 있다고!! 유운량이 내게 말해주었거든 당신은 귀가 밝아 멀리서도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며!! 그러니 이번 일이 끝나면 꼭 내 친구가 되어달라고!! 나이나 신분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레이블 황자의 들뜬 목소리에 천하의 칼라반마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말이지 아크로이어 황제와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었다.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면 레이블님께 술 한 잔 올리러 오겠습니다.”
칼라반은 자신만 들릴 정도로 작게 답해주었다.
다음 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크로이어 황제가 제국 수도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하면서 제국민들 사이에서도 불안함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크로이어 황제를 몰아내고 제국 수도를 점령한 것이 칼라반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레이블 황자였다.
그는 수많은 제국민들 앞에서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강조했다.
“변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처럼 생활하면 됩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여러분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나와 내 신하들이 할 일입니다.”
레이블 황자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크로이어 황제처럼 수많은 군사들을 대동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몇몇 귀족들과 함께 말을 전했을 뿐이다.
이어 레이블 황자는 수족과도 같은 귀족들과 함께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큰 도움이 되어준 것은 유운량과 어나니머스였다.
에네르시아 왕과 제국 황실에 숨어 있던 레이블의 측근들이 조사한 정보들과 그들이 조사한 정보들을 맞춰보며 아크로이어 황제 측근 귀족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레이블 황자는 일주일 동안 죄를 고백하는 귀족들에게는 그만한 선처를 해주었다.
이 소식이 급속도로 전해지면서 중소귀족들은 너도나도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다.
반면 끝까지 입을 다물었던 몇몇 고위 귀족들은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끝나자마자 제국 황실로 붙잡혀가고 말았다.
이 같은 모습들을 보며 레이블 황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칼라반 그대가 나를 강가까지 데려와주었다. 하지만 이를 건너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야. 그래야만 한다. 강을 건너는 것까지 그대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