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34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4화
#첫 서열전
커다랗게 지어진 원형경기장 건물 안에서 칼라반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대기하고 있는 방 안쪽 벽에는 여러 무기들이 걸쳐져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각종 방어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꾸준히 관리를 해온 덕분인지 무기와 방어구들의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따로 준비하신 무기가 없다면 이곳의 무기들을 자유롭게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이곳으로 안내해 준 관리부 소속의 사람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아무 무기 없이 나설까 하던 칼라반은 조용히 옆에 놓아진 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래도 무기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들고 나가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겠지.”
칼라반이 주워든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려는 찰나 누군가 그의 대기실로 들어섰다.
제법 다부진 체격에 배틀 엑스를 등에 짊어진 사내였다.
“네가 공민인가?”
“그렇다만?”
“후후 내 이름이 바로 라모텔이다. 곧 너를 상대할 블레이드 후보이기도 하지.”
“아아… 그렇군.”
칼라반은 무신경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80이 넘는 칼라반조차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라모텔은 커다란 체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다 무기 또한 배틀 엑스를 등에 메고 있어 힘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임을 대놓고 과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첫 서열전에 999위인 나를 고르다니… 참 특이한 녀석이로군. 게다가 생긴 것부터가 눈에 띄는 놈이야… 혹시 남다른 관심이 필요한 녀석인거냐?”
라모텔이 털털한 척하며 칼라반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칼라반은 그런 라모텔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라모텔은 자신의 위압감에 칼라반이 기가 죽은 것이라 여겼다.
하얀 이빨을 여실히 드러낸 라모텔이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잘 부탁한다.”
그가 내미는 손에 칼라반도 같이 손을 마주잡았다.
라모텔은 손에 은근하게 힘을 주었다.
기선 제압용으로 칼라반의 손아귀를 으스러트릴 생각이었다.
“헙…….”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칼라반은 꿈쩍도 않고 라모텔의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혹시 몰라 라모텔이 더욱 힘을 주었으나 칼라반은 여전히 멀쩡한 얼굴로 라모텔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고통이 느껴지는 쪽은 라모텔인 듯했다.
그는 절로 구겨지는 인상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이럴 리가…….”
“대체 얼마나 손을 잡고 있을 생각이지?”
“흐음…….”
라모텔은 마주 잡은 손을 풀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그는 칼라반의 시선을 피해 빠르게 허리춤의 무언가를 풀어놓았다.
“이따 보자고, 신입.”
뒤돌아서 쿨하게 인사를 건넨 라모텔이 이만 대기실을 나섰다.
그는 철문을 닫자마자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내밀었던 오른손은 아직까지도 얼얼한 느낌이었다.
이제 보니 살짝 부어오른 것 같기도 했다.
“뭐냐… 겨우 저런 비쩍 마른 놈한테 내가 힘으로 지기라도 했단 말이냐…?”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라모텔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라모텔은 자연스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자식… 다른 수를 부렸나보군… 마법이라도 익힌 건가…?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 이기는 것은 내가 될 테니까 크큭.”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라모텔은 다시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완전히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느낀 칼라반은 다시 내려놓았던 검을 집어들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바에야 무공 스킬이라도 연마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칼라반의 눈앞에 뜬금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태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상태 이상?”
[몸 안으로 독이 스며들어와 만독지체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칼라반은 갑자기 발동된 만독지체 스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껏 조용하다 뜬금없이 독이 스며들 리 없었다.
그러다 칼라반은 조금 전 라모텔이 떨어트리고 간 가죽 주머니를 발견해내었다.
“이것 참…….”
라모텔은 자신과 얘기하는 그 사이에 독을 풀어놓고 가버린 것이다.
생긴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인 터라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게다가 무색무취의 독이었던 지라 만약 만독지체 스킬이 아니었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독에 당할 뻔했다.
“만독지체 스킬이 이럴 때도 도움이 되는군.”
칼라반은 독이 담겨 있던 가죽 주머니를 곧바로 땅에 묻어버렸다.
다행히 강한 독은 아니었는지 만독지체 스킬은 몸으로 스며든 독을 모두 해독해 주었다.
“가만… 이걸 잘 이용하면 애써 연기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질 수 있겠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칼라반이 다시 서열전에 출전할 준비를 시작했다.
칼라반을 모셔가기 위해 찾아온 시모로프는 눈앞에 보이는 칼라반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옷을 걸치고 병장기를 들고 있을 거란 그의 예상과 다르게 칼라반은 그저 검 하나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정말 그렇게 가셔도 괜찮겠습니까? 너무나도 위험해 보입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아… 블레이드 후보님께서 그러시다면야…….”
칼라반의 모습은 시모로프가 지금껏 봐온 서열전 복장 중에 가장 편한 복장이었다.
이쯤 되자 시모로프의 짐작은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싫으셨나보구나… 바로 기권하려드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그러나 그의 짐작과는 달리 칼라반은 마냥 져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들고 있는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어둠의 정령을 소환하지 않고 무공 스킬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현재 실력은 어느 정도인 건지 순수한 궁금증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 상대로 라모텔이 적격으로 보였다.
심안으로 바라본 그의 전투력 수치는 5만 정도였으니 전투력도 엇비슷한 정도였다.
시모로프를 따라 한참을 걸어 복도 끝에 다다르니 쇠창살로 이루어진 문이 보였다.
“서열전이 시작되면 이곳의 문이 열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시모로프는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나머지는 칼라반의 몫이었다.
시모로프는 마저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칼라반은 검을 반쯤 기울게 든 채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우… 왠지 걱정스럽긴 하네… 앞으로 어쩌시려고 이런 험난한 길에 접어드신 걸까…….”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뭐가 어찌되었건 그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드르릉―!!
시모로프가 자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라반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철창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흐음… 이렇게 생긴 격투장이었군.”
칼라반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탁 트인 공터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의 맞은편에는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라모텔이 배틀 엑스를 들고 서 있는 중이었다.
라모텔은 또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칼라반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정작 칼라반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원형격투장에 있던 다른 블레이드 후보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칼라반과 라모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저 녀석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또 한 명의 블레이드 후보다.”
“신입 블레이드 후보가 하이데 말고 한 명 더 있었어?”
“재밌네. 이번엔 어떤 녀석이려나?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는 하이데 녀석이 워낙 쉽게 이겨버린 탓에 구경하는 재미도 없었는데.”
“근데 저기 있는 것 라모텔 녀석 아니야?”
“라모텔이라면… 서열 꼴찌인 블레이드 후보잖아?”
“크큭… 뭐야 그럼… 지금 저건 서열 꼴찌 결정전인거냐!?”
“크하하하 이거 참 골 때리는구만! 그럼 저 녀석 자신의 첫 서열전 상대를 서열 꼴찌로 정한 거잖아?”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그리고 그 얘기들의 대부분은 칼라반과 라모텔을 조롱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한바탕 격투를 치르고 돌아온 하이데도 땀을 닦아내며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동료들이 하이데를 반겨주었다.
“수고했다, 하이데.”
“이왕이면 300위권부터 노리지 그랬나?
“맞아. 네 본래의 힘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됐어. 천천히 갉아먹으며 올라갈 생각이다. 그보다…….”
하이데는 자신의 뒤로 또 다른 신입 블레이드 후보가 있다는 말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칼라반쪽에서 멈췄다.
“하!? 저 녀석은 그때 그…….”
“샹그렐라에서 마주쳤던 녀석이다. 이제 보니 저 녀석도 블레이드 후보였나보군.”
“후후 이거 재밌네. 같은 블레이드 후보였다니… 그래서 저놈은 서열이 몇 위냐?”
“듣자하니 첫 서열전이라던데. 게다가 상대는 999위인 라모텔이다.”
“쯧… 역시나 별 볼일 없는 놈이었나. 저런 놈한테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시간 아까운 일이다.”
“그래도 다른 의미로 재밌지 않겠나? 누가 누가 약하냐의 싸움이니까 말이야. 이곳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신박한 재미가 아니겠어? 크큭큭.”
“그것도 그렇겠군.”
하이데는 돌연 고개를 들어 위쪽에 앉아 있는 여인을 올려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여인도 하이데를 내려 보았다.
“어쩌냐, 헤이나? 네가 반했다는 남자의 수준이 고작 저 정도 인 것 같은데 말이야. 크흐흐흐.”
“…….”
헤이나는 하이데의 조롱을 가볍게 무시하며 칼라반쪽을 바라보았다.
그 일 이후로 하이데가 종종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하이데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500위권에 들어온 하이데는 감춰둔 본 실력을 드러낸다 해도 300위권이 한계일 터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하이데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형 때문이었다.
“쯧… 형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별 볼일 없는 놈 주제에 잘난 체는…….”
헤이나는 하이데보다 칼라반쪽이 더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뛰어들었던 그의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999위랑 첫 서열전을 치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네가 아는 사람이냐, 헤이나?”
헤이나의 곁에 앉아 있던 올백 머리의 사내, 글라우스가 넌지시 물었다.
그는 자신의 상반신만한 검을 곁에 놓아두고 있었다.
“그냥… 이상하게 좀 신경 쓰이는 사람.”
“호오… 천하의 헤이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니…….”
헤이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저 사람이 이곳에 왔으니 곁에 있던 특이한 복장의 사내도 이곳에 와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칼라반과 함께 있던 유운량을 찾아낸 헤이나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역시…….”
솔직하게 말해서 칼라반에게서는 별다른 것을 느끼진 못했지만 저 사내는 달랐다.
풍기고 있는 인상이나 분위기와는 다르게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헤이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유운량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했으나 헤이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칼라반쪽을 바라봤다.
“저 녀석… 정말 허수아비인건가? 테스트를 치르지 않은 것도 그렇고… 곁에 호위를 둔 것도 그렇고…….”
그녀가 칼라반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 때에 서열전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