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4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44화
#제국에서의 움직임
똑똑똑.
갑자기 들리는 문소리에 운량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종이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황실 귀족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흐음…….”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프려던 찰나에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그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들어오시지요.”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심판관의 가면을 쓰고 있는 이였다.
그와 함께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두 분이 같이 움직이실 줄은 몰랐는걸요.”
“잠시 시간 괜찮나 유운량.”
“예. 말씀하시지요 레기온님.”
“혹시 부탁했던 것은…….”
“아아 일전에 부탁했던 자료들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주변 분들에게 부탁해 조사해두었습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조사를 마쳤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디…….”
운량이 몸을 일으켜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아래층 서랍에 넣어두었던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한 장 한 장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다.”
“그런데 그들을 왜 조사해달라고 한 겁니까? 모두 주군과 관련이 있는 자들 같았습니다만…….”
“맞다. 정확히 말하면 대기사장 시절 칼라반님과 친했던 가문들이지.”
“흐음… 그렇군요. 그들도 칼라반님이 무너지고 많은 고초를 당한 이들도 있던 것 같습니다만… 그들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려 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 반대다.”
“예……?”
레기온의 말에 운량이 턱을 매만졌다.
의외의 답에 그도 조금 놀란 것이다.
“칼라반님은 이들 대부분과 좋은 인연들이 있었지. 운량 너도 알다시피 적에게는 무자비하지만 내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것이 바로 칼라반님이야.”
“그렇지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그렇게 무른 칼라반님이기 때문에 그분이 이곳에 없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만들어진 인연에 벌을 내리는 것은.”
“허어… 그런…….”
“이들 중에는 분명 돈을 받고 황실에 칼라반님의 정보를 팔아넘긴 자들이 존재할 거다. 그뿐만이 아니야. 칼라반님의 정보를 캐려 일부러 접근한 자들도 적지 않다. 군단에 첩자를 넣은 것도 이자들의 짓이지… 그게 당장 과거만 그럴 거라 자신할 수도 없는 노릇.”
“설마 그들이…….”
“지금이라고 다를 거라 생각할 순 없다. 내가 모두 다 철저히 조사해내겠다.”
“그래서 벨제인님과 함께인 겁니까?”
운량이 미소를 보이며 벨제인을 바라보았다.
벨제인이 괜히 시선을 피했다.
운량의 눈빛을 보면 괜히 자신의 마음속을 모두 들키는 기분이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군요. 벨제인님의 능력이라면 리카누스 전쟁에서도 충분히 활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보다야…….”
“내가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벨제인님은 기꺼이 수락해주었고.”
“그야… 당신은 내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으니까. 은혜는 갚아야지…….”
“어쨌거나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벨제인을 보며 운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그럼? 그것 말고 더 있겠어?”
“아니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남녀사이엔 예상치 못한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 뭐라는 거야!?”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레기온님께는 그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있어서요.”
“뭐……?”
벨제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운량의 말에 레기온이 움찔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으로 오자마자 소니아님에게 연락을 취해봤었습니다.”
“아… 그랬나… 소니아에게…….”
레기온은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운량은 그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모셔오려 했지만 그곳에서 레기온님을 기다리겠다 말씀하시더군요. 모든 것이 끝나면 레기온님께선 돌아올 곳이 필요할 거라면서.”
“후후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레기온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벨제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런 눈빛과 미소를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소니아란 여자는 누구예요?”
“아, 레기온님의 가족입니다.”
운량이 싱긋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벨제인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지만 그녀는 이내 자리를 나서버렸다.
레기온은 조용히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런 레기온을 보며 운량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눈치가 없는 것도 때로는 피곤한 일입니다.”
“뭐?”
“아닙니다. 어쨌거나 심판관의 권력을 돌려 달라 청했던 것은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그래. 나는 칼라반님의 검이 되기로 했었잖아.”
“그 검이 바로 이런 쪽의 검을 말했던 것이로군요.”
“칼라반님을 배신했던 자들, 그리고 그분을 이용하려 했던 자들까지 모조리 찾아내 벌을 받도록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들 중에는 당연히 황제의 수족들도 있을 테고”
“역시 레기온님께서도 그들이 순순히 수도를 벗어났을 리 없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
단호한 답과 함께 레기온이 이만 몸을 일으켰다.
집무실 밖에는 다른 심판관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을 보며 운량이 턱을 매만졌다.
“저들이 바로 이번에 다시 부활한 심판관들이로군요.”
레이블 황제는 놀랍게도 심판관들을 부활시키는데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혼자선 이 광활한 영토를 모두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줄 만한 자들을 필요로 한 것이다.
귀족들만 온전히 믿을 순 없었다.
그들을 견제할 수단도 필요했기에 레이블은 그런 존재로 심판관들을 택했다.
심판관의 부활은 귀족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일로 다가왔다.
몇몇 귀족들은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지만 레이블의 고집을 막을 순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황권이 가장 강력한 시기였다.
아크로이어 황제를 따랐던 귀족들로선 군소리 없이 레이블 황제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레이블의 눈 밖에 났다간 상당히 골치 아파질 터였다.
그러니 몸을 웅크리기로 했다.
“아크로이어 황제께선 분명 다시 돌아오신다.”
“그래. 그때까지만 죽은 듯 몸을 웅크리고 있자고.”
“크윽… 얼마나 급하셨으면 우리들에게 말도 않고…….”
“메칸스 공작님까지 숙청당한 지금…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귀족들은 쉬쉬하며 황제가 하려는 일들에 따랐다.
레이블 황제는 평민들의 힘을 높이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평민들의 대표를 뽑아 그 뜻을 황실에 전하도록 명령했다.
덕분에 불안함에 휩싸여 있던 평민들도 점차 레이블 황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평민들의 대표가 의견을 모아 전달하면 황실에선 제국민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선 귀족들의 사병들도 동원해주었다.
“다음은 노예 제도인데…….”
“그것은 천천히 시도해야 할 일입니다.”
“어째서지?”
“귀족들의 반발이 매우 거셀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레이블 황제를 따르는 귀족들까지도…….”
“반대할 거라는 얘기인가?”
“예… 어쩌면 몇몇은 레이블님에게 힘을 실어준 것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지금껏 평민들을 지원하는 일들만 해왔는데 노예 제도까지 폐지하겠다 말씀하신다면…….”
“흐음, 그렇군.”
“우선은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귀족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불만이 은연중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때 다시 한 번 말을 꺼내보시지요. 급할수록 천천히 기초부터 다져야 합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들었다간 본래의 색깔마저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 알겠다. 내가 너무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야.”
레이블 황제가 운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앞에 놓아져 있는 차에 손을 가져갔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제 그만 쉬어야겠어.”
“예. 그렇게 하시지요.”
운량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준비해두었던 서류들을 들고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운량.”
“예.”
“그대가 있어 다행이로군.”
“후후 별말씀을.”
“칼라반은 좋겠어. 그대와 같은 인재를 곁에 두다니.”
“그러는 전하께선 칼라반을 곁에 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군. 이번에 새삼 느껴졌어. 칼라반은 굉장히 뛰어난 자야.”
“전하의 곁에는 레케리드와 칼라반님을 비롯한 굉장히 뛰어난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하를 중심으로 모였다는 것은 전하께서도 굉장한 능력을 지녔다는 말이 됩니다. 군주의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하하!! 그대와의 대화는 언제나 재밌다. 대화를 거듭할수록 내가 배우는 것 같거든.”
“저 또한 전하께 많은 배움을 얻어갑니다.”
운량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이만 자리를 비켜주었다.
떠나가는 그를 보며 레이블도 이만 침소에 들었다.
이때만큼은 수많은 시선에서 벗어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어둠이 낮게 내려앉은 침대 위에서 레이블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처럼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지금이 어쩌면 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낙이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레이블 황제는 자신을 되돌아볼 새도 없이 바쁜 나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사색에 잠겨 있던 레이블 황제가 마침내 잠에 빠져들었다.
레이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잠에 들 무렵 수상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내성의 한쪽 벽면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레이블 황제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둠 속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척! 처척!
빠르게 수신호를 교환한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지나가는 도중 마주하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단칼에 목을 베어버렸다.
귀신같은 솜씨에 경비병들은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해내지 못했다.
푸른 달을 수놓은 그들의 검이 달빛에 비춰졌다.
십 수 명의 인원들이 황제가 있는 곳에 들어섰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선 시간은 이곳을 지키는 기사들이 교대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목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또다시 기다란 통로가 펼쳐졌다.
인원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이런 길이 있었습니까?”
“말을 아껴라.”
선두에 선 사내가 짧은 말과 함께 다시 몸을 날렸다.
한참을 내달리자 이번엔 갈림길이 펼쳐졌다.
“갈림길?”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잘못된 곳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그래 확실히 이상하군… 눈감고도 움직일 수 있는 내성에서 이런 길은 처음이야.”
“설마…….”
선두에 있던 사내가 혹시 몰라 옆의 벽면에 칼을 그었다.
그릭곤 다시 몸을 움직였다.
한참을 내달리던 사내가 다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함정에 당한 것 같다.”
“예……?”
“여길 봐라…….”
사내가 가리키는 곳엔 선명한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설마 지금까지 같은 곳을 돌았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한쪽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함정을 파놓은 거다! 우리가 이곳으로 찾아올 것을 알고!!”
사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모두 병장기를 뽑아들었다.
그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통로에선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생각보다 빠르게 눈치채셨군요.”
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는 그들의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