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4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46화
#무산(霧散)
“안 됩니다! 황제께서도 허락지 않으실 겁니다.”
“저들과 대화를 나누려 하시는 거라면 이곳에서도 충분합니다.”
“맞습니다 운량님. 우선은 이곳에 계시는 것이…….”
기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량은 유유히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운량이 파초선을 살랑살랑 부쳤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제 몸 하나쯤은 충분히 건사할 수 있으니까요.”
“예……?”
“잠시 저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운량이 고집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자 기사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가서 레케리드님을 모셔와라.”
“그렇지만 안쪽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어쌔신들과 푸른색 옷을 입은 어쌔신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푸른색의 옷이라면… 설마 나이트워커들이 돌아온 것인가?”
“그럼 붉은색 옷을 입은 쪽은 대체 어디란 말입니까? 나이트워커들과 싸우고 있음에도 결코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나니머스일 거다. 일전에 들은 적이 있다. 어나니머스의 새로운 마스터가 바로 칼라반님이라고…….”
“예? 그럼 어나니머스가 칼라반님의 손아귀에 들어갔단 말입니까? 세상에…….”
“이젠 놀랍지도 않다. 모든 것이 다 그러려니 해. 어쨌거나 혹시 모르니 빨리 레케리드님에게 연락을 취해라! 운량님을 지켜내지 못했다간 우리들의 목도 달아날 수 있다.”
“예!!!”
다른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수석 기사가 깊은 침음성을 흘렸다.
운량은 현재 제국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자였다.
그는 다방면에 능력을 보이며 제국이 안정기로 접어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었다.
황제인 레이블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까지도 그의 일처리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운량이니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했다.
정말로 이곳에서 운량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물론 칼라반까지 나서서 자신들을 벌할지 몰랐다.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순 없는 법인가. 결국 저들이 반감을 드러내고 마는구나… 하지만 시기가 이상하군…….”
단순히 불만을 표시하기엔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내성이 나이트워커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진 지금 저들이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내성 안의 병력들도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했다.
“혹시나 저들이 이쪽 사정을 알고 찾아온 것이라면!?”
어쩌면 저들은 지금까지 아크로이어 황제 측과 연락을 취해왔는지도 모른다.
“설마 아크로이어 황제가 이번 일을 노리고 저 많은 귀족들을 두고 간 것이라면…? 하지만 왜 곧바로 일을 시행하지 않은 거지? 메칸스 공작이 예상치 못하게 죽음을 맞이해서? 흐음… 알 수 없구만…….”
수석 기사가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운량은 귀족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귀족들도 걸음을 멈춰 섰다.
“이 밤에 이곳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호오… 최근 황제의 총애를 받는 쥐새끼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네놈이 가장 꼴 보기 싫었는데 잘 되었군. 레이블 황제에게 이상한 바람을 넣은 것이 바로 네놈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이상한 바람을 넣다니요?”
“시치미 떼지 마라. 네놈은 이 제국의 귀족 출신이 아니야. 평민처럼 지내온 네놈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평민들의 힘을 높여주고 싶은 거겠지.”
“흐음… 그것 참 이상하군요. 저는 이미 황제께 귀족의 작위를 하사받았습니다만…….”
운량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평민들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반쪽짜리 귀족의 작위다! 평민출신인 네놈 다른 귀족들이 인정할 것 같으냐?”
“솔직하게 말씀하시지요. 평민들을 위한 정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귀족들의 힘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고.”
“그래. 그 말도 맞다. 어째서 이 나라의 기둥인 귀족들을 괴롭히는 거지?”
“이 나라의 기둥이 어째서 귀족들이지요?”
“그럼 누가 나라의 기둥이라는 거냐? 우리가 있음으로 해서 이 제국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눈앞에 턱수염을 기른 귀족이 가장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두 눈에 쌍심지까지 켜며 운량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없다고 해서 이 나라가 당장 어찌 되지는 않습니다.”
“뭐야!?”
“여러분들을 대체할 자는 이 제국에 차고 넘친다는 얘기입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군요. 이제 그만 귀족들의 자리에서 물러나 달라고.”
“하!! 뚫린 입이라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거 아십니까? 그동안은 옆에서 지켜보느라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이 자리에 서니 확연히 보이더군요. 이 제국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운량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의 기세에 귀족들도 움찔하고 말았다.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선 엘디아 후작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제국이 썩었다니?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이라… 그럼 묻겠습니다. 여러분들 중 제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분은 과연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황제께 임무를 부여받은 이후 지금껏 귀족들이 행한 죄를 조사했습니다. 제국 수도에 남은 귀족들만 조사하고 있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더군요. 자잘한 죄부터 커다란 죄까지. 몇몇은 숨길 생각조차 없었던 모양입니다. 두드리자마자 여러 증언과 증거들이 술술 나오는 것을 보면.”
운량이 엘디아 후작의 뒤편에 선 귀족들의 면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에 뜨끔한 몇몇 귀족들이 괜히 시선을 피했다.
“과연 여러분들은 아무런 죄가 없어서 황실에서 가만히 있는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죄의 경중을 따져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자그마한 처벌로 넘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이 제국 수도에 귀족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운량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반응에 엘디아 후작도 말을 삼켰다.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저 무서운 사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도무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귀족들의 반응을 살핀 운량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그 허접한 욕망들을 채울 동안 다른 평범한 제국민들은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제대로 된 도움조차 받질 못했더군요. 심지어는 굶어가는 자식들을 위해 도둑질을 일삼아야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었으니까요.”
“그런…! 우리들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겐 얼마든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귀족으로서…….”
“금화 한 개를 주면 두 개를 받아오는 식이… 그들이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노예로 팔아버리는 방식이!! 과연 정직한 도움입니까? 그들은 당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차라리 양심을 저버리자는 선택을 한 겁니다. 결국 그들이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당신들이 만들어내었다는 말입니다. 엘디아 후작님의 뒤에 계시는 부리제콕 백작님만 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어떻게든 재산을 회수하려 애쓰셨더군요. 없던 영지법까지 만들어가면서 말이죠.”
운량의 지목에 부리제콕 백작이 부르르 떨었다.
그의 동공이 눈에 띄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그래서!? 그게 무슨 잘못이지!? 우리가 있음으로 해서 저들은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따르면 그저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을!”
“왜 인간인 그들에게 가축의 삶을 강요하시는 겁니까.”
“크윽…!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질 않나!! 우리는 선택받은…….”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 빌어먹을 선택 때문에 참으로 능력 없고 쓸모없는 인간들이 제국 요직에 앉아 있습니다. 겨우 핏줄 하나 잘 타고난 덕분에!! 그러니 평민들이 귀족들의 교육을 받는 것에 반대를 하는 것이겠지. 당신들은 어차피 그들이 귀족들의 교육을 받아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아니.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당신들은 그저 두려울 뿐입니다. 화려함만 가득한 빈껍데기뿐인 당신들과 다르게 평민들은 교육으로 내실을 다져갈지도 모르니까. 노력하지 않고 지금의 것들을 그저 편하게만 누리고 살아오려 한 당신들이니까!”
운량의 목에 핏줄까지 세워졌다.
그는 눈앞의 귀족들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가 직접 제국 수도를 돌아다녔기에 알 수 있었다.
제국 수도 곳곳에 보이는 참혹한 광경들을 말이다.
심지어 이곳은 제국 황실이 있는 수도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면 다른 영지들은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만약 저들이 조금만 정신 차리고 영지민들을 돌보는데 힘썼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크로이어 황제와 그의 측근들은 그저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갔을 뿐이다.
그들의 눈에 제국민들은 제대로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이제 보니 네가 레이블 황제께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확신이 드는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 손으로 다시 황제를 세우면 그만이다. 아크로이어 황제께선 살아계시니까.”
“저 또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짐승들과 더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운량이 파초선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러자 엘디아 후작이 조소를 흘렸다.
“이곳에 있는 병력이 얼마인지 아나? 자그마치 500명이다. 그것도 정예로 꾸린 기사들이야. 게다가 지금 안에는 나이트워커들이 레이블 황제의 목숨을 노리고 있지. 그대를 보호해줄 병사들과 기사들? 그것도 미리 손을 써놓았다. 그들은 이곳으로 지원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요?”
“뭐?”
“그게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네놈을 지켜줄 자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저 뒤에 있는 기사 열 명 정도를 빼면 말이야.”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제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당신들의 앞에 섰을 것 같습니까?”
“호오… 그럼 이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여러분들께선 한참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칼라반 군단의 일원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칼라반님의 곁에 가장 오래 머문 사람이기도 합니다.”
운량이 슬쩍 파초선을 들어올렸다.
귀족들도 파초선을 본 적 있었다.
운량이 그것을 이용해 더위를 식히는 것을 몇 번 목격한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파초선에 대해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엘디아 후작이 크게 소리치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운량을 향해 검을 내리칠 기세였다.
운량이 파초선을 든 팔을 휘둘렀다.
“만만히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휘웅―!
슈와아아앙――!!!
운량이 파초선을 한 번 부치자 거센 바람이 일었다.
당장 바로 앞에서 바람을 맞은 엘디아 후작이 두 눈을 깜빡였다.
거센 바람에 눈을 뜨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들이 서로를 붙잡으며 바람을 견뎌내려 했다.
이를 본 운량이 다시 파초선을 들어올렸다.
“제가 있는 한 당신들의 계획은 어림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지요.”
휘리링―!!
슈파아아앙!!!!
운량이 다시 한 번 파초선을 부치자 이번에도 거센 돌풍이 일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한 바람에 결국 귀족들과 기사들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고 말았다.
“으아아!!!”
“이까짓 바람 따위!!”
몇몇 기사들이 땅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곤 양손으로 검을 붙잡으며 바람에 맞서려 했다.
그러자 운량은 조용한 미소와 함께 다시 파초선을 들어올렸다.
“아직 한 번 더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