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5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55화
#투지
콰앙!!
콰르릉――!!!
두 개의 검이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붉은 갑옷의 기사와 은백색 갑옷을 입은 기사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 드러난 무성한 검흔(劍痕)이 대지를 난잡하게 만들어버렸다.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검을 쳐올렸다.
그러자 갈고리처럼 번져나간 오러가 상대의 목을 노리고 들었다.
쿠우웅!!!
은백색 갑옷을 입은 기사, 헤카르도가 굳게 다문 입술로 대검을 들어올렸다.
대검에서 뻗어 나온 푸른 오러가 갈고리들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휘리릭―!
붉은 갑옷의 기사가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들었다.
붉은빛과 함께 검신이 헤카르도의 몸을 반으로 가르는 듯했다.
콰아앙!!!
“흠!”
묵직한 일격.
헤카르도로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힘으로 밀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푸른 오러가 더욱 강한 빛을 뿜어내었다.
대검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도 받아봐라 데포르.”
슈와아아――!!!
엄청난 기세와 함께 헤카르도의 대검이 수직으로 움직였다.
태산을 반으로 갈라버릴 기세였다.
그런 엄청난 압박감 앞에서 데포르는 차분했다.
그녀는 검을 들어 반월을 그렸다.
휘콰아앙!!!
노도와 같이 몰아친 오러를 뚫고 데포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검과 헤카르도의 대검이 마주했다.
“잊었나? 힘으로는 내가 한 수 위라는 것을 말이야.”
헤카르도의 대검이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키리릭!
밀리는 것처럼 보이던 데포르가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반보 앞으로 내민 발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혔다.
휘리링!!
촤라락! 촤락!!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데포르의 검이 헤카르도의 몸 이곳저곳을 베고 지나갔다.
헤카르도가 미소를 보였다.
그의 대검에 맺혀 있던 오러가 데포르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콰아앙!!!
뒤이어 밀려온 오러가 데포르의 몸을 튕겨내었다.
묵직한 충격에 데포르가 휘청거렸다.
“미안하지만 이곳은 내어줄 수가 없다 데포르.”
“…….”
헤카르도가 빈틈을 놓치지 않으려 도약했다.
그의 대검이 소용돌이치는 오러와 함께 데포르에게로 짓쳐들었다.
데포르가 두 손으로 검을 말아쥐었다.
휘리링―!!
콰광!!!!
두 사람의 오러가 또 한 번 충돌하자 거센 충격파가 일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천외천의 싸움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각 진영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왕이시여!”
헤카르도의 싸움을 지켜보던 트라자가 인상을 굳혔다.
이에 그의 앞에 서있던 프시케가 눈썹을 찌푸렸다.
“한눈 팔 틈이 있나?”
슈욱―!
빠르게 파고든 프시케의 검이 단숨에 트라자의 약점들을 노렸다.
실로 깔끔하고 간결한 찌르기였다.
트라자는 몸을 뒤로 물렸다.
“하아…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아직도 그 얘기야?”
“그렇잖아. 소꿉친구인 우리가 왜 이렇게 검을 겨누어야 하냐고.”
“그야 추구하는 입장이 다르니까.”
“쳇.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는 게 어때?”
“나보고 우리 대장을 배신하라는 말이야?”
“미안하다. 실언이었어.”
“허튼 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싸워.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우리에게 잡아먹히고 말 테니까.”
“알아. 나도 그건 잘 알고 있다고…….”
트라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데포르가 이끄는 최강의 부대.
루체테가 이곳에 와 있었다.
과연 과거의 명성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듯 그들은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다.
루체테가 있는 곳은 아군의 비명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저들을 어떻게 막느냔 말이야.”
“이곳에 우리만 왔을 거라 생각해?”
“그럼 설마… 뭐 더 있기라도 한 거냐?”
트라자가 헛웃음을 지으려는 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쪽에서 시끄러운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헤카르도가 이끄는 리마루스 왕국군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리카누스 왕국의 전사들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온 대전사 푸아크가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이제 다시 받아가겠다. 우리들의 성을.”
그의 손짓에 전사들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두 진영의 합공에 리마루스 왕국군은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자들도 나름 헤카르도가 대기사장시절부터 함께 해 온 강군들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투지를 불태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콰앙!!!!
트라자가 프시케의 검을 막아내었다.
잠깐의 빈틈을 보였을 뿐인데 역시나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집중 안 해?”
“후우… 정말 어쩔 수 없나보군…….”
“차라리 너희가 물러나는 것은 어때? 어차피 이곳에 있는 것은 너희와는 상관없는 칼라반님의 군단이잖아?”
“상관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프시케.”
“그렇지 않아?”
“아니. 그들은 우리들의 동료였다.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그럼 선택하면 되겠네. 우리인지 아니면 칼라반인지.”
“하하하하!!!”
프시케의 말에 트라자가 크게 웃었다.
그의 반응에 프시케가 검을 거두었다.
“뭐가 웃긴 거야?”
“그냥 우리 꼴이 우스워서 말이야.”
“음……?”
“아냐. 아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나는 그저 헤카르도님을 따를 뿐이야. 네가 데포르님과 뜻을 함께 하듯이 말이야.”
“그렇지. 하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니. 나는 언제나 헤카르도님과 같은 곳을 바라볼 거다.”
“기사의 맹세 때문에?”
“후후 그깟 맹세 따위 개나 주라지.”
“야 너 신성한 기사의 맹세를 그렇게…….”
“다른 것 다 떠나서. 나 또한 헤카르도님과 같은 생각이다.”
“무슨 생각인데?”
“우리 제국에 필요한 것은 아크로이어 황제가 아니야. 나는 이 제국이 다시 변화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레이블 황제라 믿고 있어.”
“미쳤구나 너… 그자가 어떤 자인 줄은 알고…….”
“나도 정확히는 몰라. 가까이서 뵌 적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크로이어 황제보다는 낫겠다 싶은 거지.”
“그자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몰라? 제국의 귀족들을 마구잡이로 처벌하고 있잖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것을 위해 제국의 법이 있는 것 아닌가?”
“하… 언젠가부터 너 정말 이상해졌어. 노예 제도를 없애자는 헤카르도님의 말에 찬성하지를 않나…….”
“이상해진 것이 아니야. 변화한 거다.”
휘리링―!
콰아앙!!!
트라자의 검이 프시케를 거칠게 밀어내었다.
프시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포기해 트라자. 이미 너희 군단은 패색이 짙어. 이길 수 없을 거란 말이야.”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휙―.
카가강.
트라자가 들고 있던 검을 내던졌다.
그리곤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도끼를 꺼내들었다.
“이미 각오한 바야.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면 그것 또한 좋았겠지만 이 중요한 위치를 너희들이 가만둘 리 없지. 분명 병력들을 이끌고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너 정말 진심으로……!”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 헤카르도님이 갖고 있는 마음의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다면 말이야.”
“뭐?”
“데포르님과 너희 루체테는 분명 강하다. 거기다 오랫동안 데포르님과 함께 싸워온 군단병들 또한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정예병들이지. 하지만 우리 또한 파괴의 군주라 불린 헤카르도님의 강병들이다.”
콰아앙!!!
트라자가 사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강한 충격음과 함께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일격을 피해낸 프시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트라자는 정말로 자신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엔 커다란 구멍이 패여 있었다.
쿠오오오――!!!
트라자의 전신에서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헤카르도님 또한 대기사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셨던 분이다. 그런 분과 함께 대전쟁 시대를 이끌어왔던 우리들이… 부끄러운 싸움을 보일 순 없지.”
“그 말은…….”
“물러섬 따윈 없다. 그에 우리 대장님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콰라랑!!!!
트라자가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둘렀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되었는지 리마루스 왕국군 기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내었다.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창과 방패를 들어올리며 적들을 향해 매섭게 질주해갔다.
“이 상황에서 더욱 투지를 불태운다라? 하하하!!!! 제국놈들… 제법이잖아!?”
푸아크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는 더욱 열성적으로 적들을 향해 질주했다.
그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데포르와 싸우고 있는 헤카르도의 모습이었다.
“저자가 제일 강해 보이는데…….”
하지만 그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데포르가 자신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 삼엄한 경고를 보내고 떠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다른 인물을 찾았다.
“저기가 좋겠네.”
푸아크가 향한 곳은 트라자가 있는 곳이었다.
기에리스가 이끄는 루체테도 더욱 공세를 높였다.
루체테의 맹공에 리마루스 왕국군이 전열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칼날이 팔을 베고 창이 몸을 관통했다.
그럼에도 리마루스 왕국군은 물러서거나 등을 보이지 않았다.
꿰뚫은 창을 붙잡아 끝까지 검을 휘두르는 이가 보였다.
어떤 이는 무기를 잃어 주먹으로 적을 때렸다.
또 어떤 이는 두 팔을 잃어 입으로 적의 귀를 잡아 뜯었다.
그들의 처절한 분전에 루체테와 다른 병력들마저 기가 질리고 말았다.
특히나 리카누스 왕국의 전사들은 완전히 그들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멋진 자들이다.”
“적군이지만… 존중받아 마땅하다.”
“지독한 전사들이야. 제국에도 저런 자들이 존재했나…….”
도망치지 않으니 추격할 필요가 없다.
리마루스 왕국군은 자신들이 딛고 선 그곳 그 자리에서 적들을 맞이했다.
전장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가 움직임을 방해할 정도로 널렸다.
콰아앙!!!
콰직!!
데포르의 검이 마침내 헤카르도의 갑옷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이어 그녀의 검이 헤카르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크으……!”
순식간에 일격을 내준 헤카르도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몸을 웅크리거나 발을 뒤로 물리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악스럽게 대검을 들어올렸다.
휘콰아앙!!!
그의 대검이 데포르의 검에 가로막혔다.
데포르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노려보았다.
“역시나 대단하군. 그때보다 더 실력이 좋아졌어.”
헤카르도가 피식 웃었다.
언젠가 이 여자를 뛰어 넘겠다 다짐했건만 결국 지금까지도 자신은 데포르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정도였다.
딱히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콰직!
헤카르도가 거친 손으로 데포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데포르의 검이 빠르게 날아왔다.
스각―!!
촤라락!!
헤카르도의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대검이 데포르의 옆구리를 찍었다.
“크읍!”
이번만큼은 데포르도 견딜 수 없었는지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반면 헤카르도는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았다.
“헤카르도님!!”
“왕이시여!!”
“으아아아――!!!”
분노한 리마루스 왕국 기사들이 이곳을 향해 뛰어왔다.
이에 루체테 기사단도 데포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크으윽……!”
이를 악문 데포르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헤카르도가 그런 데포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있는 한. 너희는 이곳을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데포르.”
그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대검을 짚고 섰다.
붉은 핏물이 계속해서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어느새 데포르의 곁으로 다가온 푸아크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 푸아크의 한쪽 손엔 트라자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