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5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57화
#도착한 지원군
“무리하고 있군.”
푸아크는 비교적 냉정하게 헤카르도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비록 그가 지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고 계속될 순 없었다.
분명 헤카르도는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푸아크조차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 때문이었다.
이 날카로운 기도는 언제든 자신을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크음…….”
목숨을 잃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 생각해왔다.
전장에서 장렬히 싸우다 죽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은 몸이 움직이질 않는단 말인가!
마치 전신이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헤카르도가 그를 바라보며 외쳤다.
“피를 보더니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이냐!!”
“크윽!”
한 차례 입술을 깨문 푸아크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겼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검을 들어올렸다.
“저희가 먼저 저자를 처치하겠습니다!”
“맞습니다. 푸아크님께서는 편히 계십시오!”
푸아크의 몸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전사들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말릴 새도 없었다.
십 수 명의 직속 전사들이 헤카르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휘리링―!!
콰라랑!! 콰르릉!!!
헤카르도의 대검이 수평을 그리자 세 명의 전사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붉은 핏물이 대지를 적시기도 전에 헤카르도의 대검이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측면을 파고들던 전사들에게 향했다.
촤라락!!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전사들이 순식간에 반절로 줄어들고 말았다.
헤카르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발을 사선으로 내밀며 대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솟구친 오러가 전사들의 몸을 무자비하게 베어버렸다.
전사들이 공격을 막아내고자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오러가 막아서는 검마저도 단숨에 파괴해버린 것이다.
척!
처적!
무섭게 달려들던 전사들의 움직임이 다시금 멈췄다.
그들 중 누구도 섣불리 헤카르도를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버린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카누스 왕국의 전사들이…….”
지켜보던 다른 전사들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헤카르도를 중심으로 다른 병사들과 기사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의 점이 되어 길목을 지키고 섰다.
루체테가 틈을 파고들려 했지만 생각보다 난항을 겪었다.
시체로 쌓아올린 벽을 두고 그들의 저항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황은 헤카르도군에게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데포르까지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자 헤카르도마저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눈빛으로 데포르에게 검을 겨누었다.
“끈질기구나 헤카르도.”
“후후후 잊었나? 우리들 중에 내가 가장 지독했다는 것을.”
“그래… 그런 네 모습이 밉진 않았어. 아니 오히려 좋았다. 대충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네가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칼라반 대신 내가 너를 꼬실 걸 그랬군.”
헤카르도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의 말이 거슬렸는지 데포르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여기서 그 녀석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호오, 그래도 신경은 쓰이나봐?”
“이미 잊은 이름이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내가 생각했을 때 너를 그만큼이나 순수하게 사랑해줄 사람은 없었다. 너는 네 스스로 너의 행복을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어.”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내 행복은 내가 정한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그래서 지금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거냐? 아크로이어의 개로 살아가면서? 그리고 아닌 척 해도 너. 아직도 칼라반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잖아? 네가 원했던 삶이 그런 불안한 삶이었냐?”
“내가 원했던 삶은 위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지 않도록!”
“크하하하!!! 그래 너는 위로 올라섰다. 그래서 네가 그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어. 하지만 어쩌냐. 정작 그들은 너를 올려다보지 않는 것을.”
“뭐……?”
“올라서기만 하면 될 줄 알았나?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과정이다. 네 눈엔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론 그렇지 않아. 그들은 눈과 귀에 똑똑히 진실을 새겨 넣고 있었다.”
“무슨 소릴…….”
“데포르 네가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칼라반을 배신했다는 것. 우리들이 모를 줄 알았나? 아크로이어의 꾐에 넘어갔다고? 하! 웃기지 마라. 아크로이어에게 가장 먼저 칼라반을 팔아넘긴 것은 바로 너였지 않나 데포르.”
헤카르도의 말에 데포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지금까지 헤카르도가 무슨 말을 해도 크게 반응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감정의 동요가 있었는지 검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세상엔 수많은 눈과 귀가 있다. 그들을 모두 속여 넘겼을 거란 오만한 생각은 하지 말아라 데포르.”
“그 사실을… 칼라반도 알고 있나?”
“아니. 굳이 이 사실을 칼라반 녀석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칼라반은 너를 용서하지 않을 생각일 텐데.”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다.”
휘잉―!
스각!
빠르게 휘두른 검이 헤카르도의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거듭된 전투로 갑옷은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시뻘건 핏물이 헤카르도의 가슴팍을 적셨다.
“크으…….”
헤카르도가 고통에 신음했다.
손을 가져가 가슴팍을 짓눌렀다.
“칼라반은 나를 어쩌지 못해. 내가 아는 그 남자는…….”
“너야말로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데포르. 너는 칼라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그동안 오랜 시간을 곁에서 함께 보내왔으면서도 말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너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칼라반만이 아니야.”
헤카르도의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데포르의 검이 또다시 헤카르도의 몸을 찔렀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던 헤카르도가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이 정도의 화풀이뿐이다.”
“헤카르도 네가 정말……!”
데포르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때 푸아크가 그녀를 지나쳤다.
“적과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는 겁니까. 빨리 죽이고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레이젠 성을 함락하는 게 목표니까요.”
푸아크는 신속하게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끝이 헤카르도의 목을 치려는 순간 다른 쪽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카앙!!!
난데없이 튀어나온 검은 놀랍게도 푸아크의 검을 튕겨내었다.
“음!?”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을 감았던 헤카르도가 갑자기 들린 쇳소리에 두 눈을 떴다.
그의 앞으로 푸른 갑옷을 입은 여인이 자리해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곧바로 움직여 아이르크.”
처음 얘기한 여인보다 뒤에 들려온 목소리가 더욱 익숙했다.
눈을 뜬 헤카르도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이 목소리는… 로제리아인가?”
“용케도 기억하시네요.”
“하…하하하…! 지원군은 없을 것처럼 얘기하더니… 이제 보니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을 지원군으로 보내줬잖아?”
“맞아요. 당신말대로 본래 지원군은 없었을 거예요. 칼라반이 큰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요.”
“그러고 보니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에요. 칼라반의 곁에 있던 만인대장들도 각 전선으로 흩어졌어요.”
“그럼… 그럼 칼라반 그 자식은…! 그 자식은 어쩌라는 겁니까? 겨우 살아 돌아온 놈을… 또다시 혼자 두었단 말입니까!?”
“총사령관인 칼라반의 결정이에요. 아마 어둠의 정령들과 함께 중앙군을 막아보려는 생각이겠죠.”
“말도 안 되는… 어둠 정령 군단이 분명 대단하긴 하나 상대는 아마 대기사장 반테일이 이끄는 제국 최고의 군단일 겁니다. 제아무리 칼라반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그러니까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칼라반을 도우러 가야만 해요. 중앙군은 반테일뿐만 아니라 리카누스의 다른 대전사들도 함께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제기랄… 이것 참. 또다시 짐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말씀 마세요. 우리가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훌륭히 레이젠 성을 지켜주셨잖아요.”
헤카르도의 몰골을 살핀 로제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척!
처저적!!
로제리아를 중심으로 용병들이 자리했다.
용병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엄청난 위압감은 한눈에 보아도 그들이 심상치 않은 이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평범한 용병들이 아니다.”
데포르 또한 손을 들어 루체테를 불러들였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로제리아가 헤카르도와 대화를 나누는 그 잠깐 동안 아군의 병력들이 줄지어 쓰러지고 말았다.
용병들처럼 갖가지의 장비들로 무장을 했지만 데포르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저들 모두 비슷한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었다.
“설마… 아니… 불가능한 것도 아닌가?”
“네?”
“모두 조심해라. 저들은 용병들이 아닐지 모른다.”
“저들이 용병이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
“발키리… 라카이 왕국의 발키리들일지도 몰라.”
데포르의 경고에 루체테뿐만 아니라 그녀의 군단병들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응? 발키리? 그게 뭔데 그러는 겁니까?”
정작 푸아크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치로 물어왔다.
다른 리카누스 왕국의 전사들도 생소한 이름이었는지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제국 북쪽에 있는 강대국 라카이. 그 라카이 왕국의 최정예 기사들이 바로 발키리입니다.”
그나마 발키리에 대해 들어본 전사 한 명이 푸아크에게 알려주었다.
이에 푸아크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국도 아닌 다른 왕국의 강자들이 이곳으로 왔다는 거냐? 크흐흐 끼어들 판을 잘못 고른 것 아냐?”
“방심해선 안 됩니다. 라카이 왕국 또한 제국과 오랜 전쟁을 치렀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왕국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랜 전쟁이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저 발키리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호오, 그렇다면 실력 좀 살펴보도록 할까.”
푸아크가 손짓으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천여 명의 전사들이 일시에 뛰쳐나갔다.
그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기를 들어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로제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르크.”
“예. 말씀하십시오 대장님.”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와줘서 정말 고맙다.”
“무슨 말씀을. 로제리아님께서 원하신다면 저희는 그곳이 어디더라도 달려갈 겁니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아니. 너희들만으로 충분해. 나중에 기꺼이 너희들을 이곳으로 보내준 파칼리오스한테도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어.”
스릉―!
로제리아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발키리들도 그녀를 따라 무기를 들어올렸다.
“모두 들어라.”
챙!!
채챙!!!
로제리아의 말에 발키리들이 검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할 일은 레이젠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레이젠 성을 지키는 것은 헤카르도와 이곳 리마루스 왕국군에게 맡긴다.”
슈와아아――!!
파지지직!!!
파짓!
로제리아의 전신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차갑게 가라앉았던 그녀의 두 눈에 살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 이곳의 모든 적들을 섬멸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향한 곳엔 데포르.
그녀가 서 있었다.
데포르 또한 로제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만났네.”
그녀를 알아 본 데포르가 검을 겨누었다.
이를 본 로제리아가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검에 푸른 전격이 휘감겼다.
“모두 진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