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7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70화
#종전
콰과광―!!!
기의 힘에 밀려난 반테일이 볼품없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끄으으…….”
부들거리는 손으로 땅을 짚은 반테일이 헛웃음을 토해내었다.
다 죽어가던 저 사내가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힘이 빠지는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군사들이 달려왔다.
반테일의 친위대도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이리로 다 몰려오면 전선이 다 붕괴되잖아!”
그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긴 칼라반이 어느새 반테일의 앞에 섰다.
그가 손을 펼치자 먼발치에 떨어져 있던 포르티나가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쉬리링―!
끝을 예상했는지 포르티나가 지독한 냉기를 내뿜었다.
반테일은 눈앞에 멈춰선 새하얀 검신을 보고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의 내부가 여기저기 망가져 도저히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완벽한 패배로군요.”
반테일은 그 자리에서 하늘을 보고 대(大)자로 누워버렸다.
그의 시선에 칼라반의 얼굴이 들어왔다.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가.”
“당신처럼 강한 기사에게 패해 죽는 것이니. 이것 또한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멍청한 생각이로군. 죽는 것을 영광으로 삼다니.”
“예……?”
“죽으면 끝이다. 그 뒤에 남는 영광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난데없는 칼라반의 말에 반테일이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칼라반은 반테일을 향해 겨누었던 검을 거두어들였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저를 죽이지 않는 겁니까?”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살아남든 죽든 전쟁은 이미 끝을 보이고 있었다.
리카누스 왕국의 전사들도 그 수가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반테일의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쓸데없는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겠지.”
“그렇군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반테일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수신호를 확인한 제국군 기사들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어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후열에서 붉은 깃발이 올라왔다.
항복을 전한 것이다.
전장을 살피던 칼라반이 적군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웅혼한 내기가 실린 그의 외침에 대기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처저적!
철그럭!! 철그럭!
그와 동시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인상을 굳히고 있던 리카누스 왕국군 전사들도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를 본 칼라반 군단의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트렸다.
“우오오오―!!!”
“이겼다아――!!!”
“승리했어!!!”
그들의 환호에 만인대장들도 미소를 보였다.
이클립스의 대장들과 블레이드들도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겼습니다! 승리해냈습니다 에네르시아님!!”
“그럴 줄… 알았어요…….”
조금이나마 몸을 추스른 에네르시아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상대의 병력은 아직까지도 이쪽의 3배는 넘었다.
하지만 저들은 지금 싸울 의사를 잃고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으하하하!!! 에네르시아 여왕!! 우리가 이겼습니다!!”
먼발치서 한달음에 달려온 아라카인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를 본 에네르시아도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이런 전쟁을… 매일 같이 경험해왔단 말이지? 어마어마하잖아……?”
헤이나의 시선은 여전히 로제리아를 향해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뛰어넘겠다는 일념만 남은 헤이나였다.
“저희는 어찌 할까요 헤이나님.”
“뭘 어떻게 해!? 다시 수련이다!!”
“아이고…….”
헤이나의 말에 리게로가 울상을 지었다.
“참! 걔네는 어떻게 되었어?”
“누구 말씀이십니까?”
“아르페와 클라우스 말이야.”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다른 의미의 다행 같습니다만…….”
“흐흐 이제 아르페랑 매일 같이 수련해야지. 그러려고 도와준 거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적장을 전장에서 뺄 생각을 하시다니… 우리 헤이나님의 머리에서 나ㅇ…….”
여기까지 말하던 리게로는 그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의 말을 그대로 내뱉을 뻔했다.
“전쟁에 지쳐 있는 녀석이었어. 게다가 사랑을 아는 뜨거운 여자였다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헤이나를 보며 결국 리게로는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이제 전쟁도 끝이 났군요.”
모든 전장에서 승리해내고 말았다.
칼라반과 그의 수하들은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반테일은 누워서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로군. 아크로이어 황제를 지키기 위해 다시 덤벼들 줄 알았는데.”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는 황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대기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그럼?”
“처음엔 그저 강한 기사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제가 제국 최강의 기사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었죠.”
“그렇군.”
“그런데 세상은 역시 넓었습니다. 제가 뛰어넘을 사람이 아직도 한 명 남아 있었다니.”
“글쎄… 어쩌면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르지.”
칼라반은 슬쩍 로제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발키리들과 함께 해후를 풀고 있었다.
“몸은 챙기면서 저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칼라반은 인벤토리 창의 남은 약들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반테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끝내 아크로이어 황제께 가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는 결코 그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곳엔 텐타카 왕이 있습니다. 텐타카 왕은 산짐승 같은 사내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라. 그곳엔 산의 여왕이 가 있으니.”
“네?”
“그보다 반테일 그대에게 제안하고 싶군. 함께 새로운 황제를 섬기는 것은 어떻겠나?”
“그건…….”
“당장 결정하기엔 어려운 일일 테지. 천천히 말해줘도 좋아.”
“저는 당신의 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말씀을…….”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나와 로제리아도 처음엔 적으로 만났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그대만 괜찮다면 제국의 대기사장으로 남아줬으면 좋겠군. 앞으로의 제국에는 반테일 너와 같은 인재들이 더욱 필요해질 테니까.”
여기까지 말을 마친 칼라반은 이만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그가 향하는 곳은 아크로이어 황제가 있는 리카누스 왕국의 수도였다.
* * *
“아… 아크로이어님.”
“큰일입니다! 이제 어찌해야 할지…….”
“서둘러 자리를 피하십시오! 이제 곧 적들이 몰려올 겁니다!”
귀족들이 안절부절못하며 한마디씩 말하고 있을 때 아크로이어 황제는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년이었다.
그 오랜 기간을 평화와 그 뒤에 숨은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아크로이어 황제에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를 느낀 베르무트 공작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베르무트 공작님 서둘러 아크로이어 황제를 모시고 피해야 합니다.”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예!?”
“더 이상 우리가 물러설 곳은 없다. 리카누스 왕국마저 무너진 이상 그 어떤 나라도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을 주진 않을 것이다.”
“리카누스 왕국이 무너지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텐타카 왕이 패했다.”
베르무트 공작의 말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들이 믿고 있던 마지막 보루였다.
그만큼 텐타카 왕의 패배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털썩.
귀족 한 명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럼 이제…….”
귀족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마침내 그들이 닥치고 말았다.
헐레벌떡 달려온 기사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적들이… 적들이 이곳까지 발을 들였습니다…….”
귀족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창백해지고 있을 때 아크로이어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아크로이어님!!”
“황제시여!”
그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아크로이어 황제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중정의 길을 따라 바깥으로 향했다.
지평선을 가득 메운 군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 선 사내.
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라반…….”
“아크로이어!!”
두 사내의 시선이 마주쳤다.
칼라반을 보며 아크로이어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래, 내가 진즉에 이렇게 될 줄 알고 너를 제거하려 했건만… 네놈은 죽어서도 이렇게 다시 살아 돌아오는구나!”
아크로이어 황제가 뒤의 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앉을 것을 가져와라!”
그의 외침에 기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곳에 앉을 만한 것이라곤 그가 늘 앉아 있던 금으로 된 옥좌뿐이었다.
기사 네 명이 달라붙어 옥좌를 아크로이어 황제가 있는 곳까지 옮겨왔다.
아크로이어 황제는 그곳에 앉았다.
마지막까지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곳에 앉아있으니 하는 수 없이 귀족들도 아크로이어의 곁에 섰다.
베르무트 공작 또한 아크로이어 황제의 곁에 서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온 칼라반이 궁전까지 당도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대로 아크로이어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칼라반이 타고 있던 군마가 아크로이어 황제에게 다가가는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다가닥. 다가닥.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칼라반과 함께 온 수많은 기사들이 오직 칼라반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아무리 그래도 이곳엔 제국의 황제께서 계신다!! 말에서 내려라 칼라반!!”
“감히 저런 무례를!!”
보다 못한 귀족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두려움 가득한 그들의 외침이 칼라반의 귀에 들릴 리 없었다.
계단 끝에 올라선 칼라반이 말을 탄 채 아크로이어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불경하구나. 감히 제국의 황제를 내려다보다니.”
“오랜만이로구나 아크로이어.”
“뭣!?”
칼라반의 부름에 아크로이어 황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칼라반을 가리켰다.
“나는 제국의 황제다!! 예를 차려라!!”
“웃기는군. 이곳은 제국도 아닐 뿐더러 너는 이미 제국을 버렸을 때부터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선 평범한 놈이다. 그런 네게 어째서 예를 차려야 하지?”
칼라반의 말에 아크로이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술만 질끈 깨물고 말았다.
슈와아―!
칼라반의 곁으로 모습을 드러낸 카이사르가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아크로이어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칼라반은 카이사르와 함께 떠오른 메시지를 보았다.
아크로이어 황제의 시선이 그런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거대했다.
칼라반을 바라본 솔직한 느낌이었다.
이 태산 같은 사내 앞에 자신은 한참이나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애써 괜찮은 척 하려 해도 연신 마른침이 삼켜졌다.
억지로 침을 삼킬 때마다 바싹 메마른 목구멍이 따끔한 통증을 전해왔다.
그때 칼라반이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레이블 황제와 한 약속.
아크로이어의 생사여탈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가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휘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칼라반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쳤다.
“헙!”
“으아!!!”
설마 싶었던 귀족들도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 다르게 칼라반의 검은 아크로이어의 목 옆에서 멈추었다.
“사… 사… 살려다오…….”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에 아크로이어 황제가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검신을 따라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크로이어 황제를 보며 칼라반이 검을 거두었다.
“아크로이어.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느 한 명 너를 지키겠다고 달려드는 이가 없구나.”
칼라반의 말에 아크로이어 황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귀족들도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다른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은 그대가 만들어낸 결과니까.”
아크로이어의 바지자락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이를 보며 칼라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당장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이진 않겠다. 하지만!! 너는 결코 편하게 죽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