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37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371화
#마지막 선택
칼라반 군단의 무사 귀환.
그것은 곧 내전의 끝을 알림과 같았다.
불안에 휩싸여 있던 제국의 국민들도 칼라반 군단이 승리해냈다는 소식을 듣고 차츰 안도하기 시작했다.
반면 몰래 아크로이어 황제를 응원하고 있었던 몇몇 귀족들에겐 참담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크로이어 황제가 패배하다니…….”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아크로이어 황제의 검이라고 할 수 있던 반테일 대기사장이… 순순히 항복했다고 합니다.”
“그냥 항복한 것도 아니고 칼라반의 제안에 승낙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제안입니까?”
“레이블 황제를 섬기는 것 말입니다. 제길…! 제국의 기사가 어떻게 두 명의 주군을 섬긴단 말입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
“크음… 반테일 대기사장에게 무척이나 실망이 큽니다. 그런데 베르무트 공작님은…….”
“아, 못 들으셨나보군요…….”
베르무트의 이름이 나오자 귀족들의 얼굴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에게도 베르무트는 가슴 아픈 이름이었다.
“베르무트 공작님은… 이 일에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에비테르 공작가에 큰 피해가 가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죠.”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찌르기 전 그렇게 말씀하셨다더군요. 레이블 황제가 어떻게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갈지 궁금하지만… 일생에 두 명의 황제는 섬길 수 없다면서…….”
“쯧… 반테일 대기사장보다 베르무트 공작이 오히려 더 기사다운 면모가 있었군요.”
귀족들은 그밖에도 여러 소식들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따로 주어진 선택권은 없었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레이블 제를 따라야 하겠군요.”
“쯧. 귀족들의 힘을 반감시키기 못해 안달인 황제를…….”
“이번에 노예 제도까지도 폐지하려 한다면서요?”
“죽은 헤카르도 왕의 유지라지 않습니까.”
“황제의 권력이 너무도 강해졌습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황제가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면 이 제국은…….”
“그럼 다른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반테일 대기사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레이블 황제에겐 칼라반이 있질 않습니까.”
“후우… 칼라반을 따르던 자들이 황실의 요직에 앉아 있으니…….”
“그게 더 문제입니다.”
귀족들이 쉽게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칼라반의 힘도 두려웠지만 다시 되살아난 심판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칼라반의 심복이었던 유운량의 존재도 문제였다.
운량은 레이블 황제의 곁에서 제국에 수많은 바람을 몰고 왔다.
이들에게 운량의 파격적인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레이블 황제가 무조건적으로 유운량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귀족들과의 회의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들였다.
때로는 귀족들의 손을 들어주며 그들의 권력을 챙겨주었지만, 아무래도 아크로이어 황제가 다스리던 제국 때만큼은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 하늘이 바뀌었으니 우리도 순응하며 살아야지.”
이들 중 가장 늙은 귀족의 말에 다른 귀족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편 제국 황실에선 성대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는 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으며, 동시에 레이블이 제국의 진정한 황제로 거듭남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칼라반을 따르는 수많은 인사들이 이 축제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클립스의 대장들도 루시엔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그중엔 가장 부상이 심했던 자르칸도 있었다.
“그래서. 너는 창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했나?”
칼라반의 물음에 자르칸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레처드에게 도전한다 해도 자신의 패배가 틀림없었다.
그만큼 레처드와 자신과의 차이는 극명했다.
“부족합니다.”
“후후 곤란하게 되었군. 창을 주려했던 두 명 다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하니…….”
“그렇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창에 어울리는 주인이 되어보겠습니다.”
자르칸의 눈빛을 본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은 무리하면 안 돼.”
언젠가부터 자르칸의 옆에 항상 붙어있는 벨제인이었다.
그녀는 자르칸이 돌아온 뒤로 줄곧 그를 간호해주고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칼라반.”
칼라반을 찾아온 아라카인이 그에게 술을 권했다.
이번 전쟁에서 크게 고생한 아라카인이었다.
“나와 함께 싸워줘서 고맙다 아라카인.”
“앞으로도 언제든 불러라! 난 아직도 네게 고마움이 많이 남았으니까.”
“이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흐음… 그게 말이지…….”
아라카인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에네르시아가 서 있었다.
“내겐 너무 과분한 여인 같아서 말이다.”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군. 자신과 혼인해주었으면 한다고 말이야.”
“에… 에네르시아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나조차도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보기엔 어떨 것 같나? 우리 둘 사이 말이야…….”
아닌 척해도 아라카인이 은근한 기대를 비치며 말했다.
이를 알아차린 칼라반도 아라카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라카인도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이외에도 칼라반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들 모두 칼라반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준 이들이었다.
칼라반은 직접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돌아다녔다.
그가 레비오스 왕과 히리엘 여왕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을 때 로제리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로제리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 그 자체였다.
“와아… 세상 부럽구만…….”
다른 여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반테일조차 로제리아의 아름다움 앞에선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말았다.
로제리아를 본 칼라반이 지금까지 중 가장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인사는 잘 하고 온 건가?”
“네.”
“정말 그들과 함께 가보지 않아도 되겠어?”
“지금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런가.”
“라카이 왕국은 이후에 언제든 들르면 되니까요.”
“그래.”
칼라반이 로제리아의 손을 맞잡는 때 드디어 레이블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번 전쟁의 승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칼라반과 로제리아를 바라보며 레이블 황제가 멋진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후 칼라반에겐 명예 대기사장 직을 내려주었다.
레이블의 마음 같아선 더 크고 멋진 것들을 내려주고 싶었건만 칼라반이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결정한 내용이었다.
명예 대기사장으로 있으면서 후배 대기사장들에게 귀감이 되고 또 언제든 제국의 요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레이블 황제의 뜻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칼라반도 결국 명예 대기사장 자리는 승낙하고 말았다.
그렇게 성대한 파티가 끝나고 칼라반은 늘 얘기했던 대로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제국 황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때 그의 옆에는 로제리아가 함께였다.
“그런데 아크로이어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자에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거라는 형벌이 내려졌다더군.”
칼라반이 로제리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로제리아는 부드러운 칼라반의 손길에 고개를 포옥 맡겼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인가요?”
“아마도. 언젠가 레이블 황제가 내게 이런 말을 했어. 아크로이어가 살아왔던 모든 흔적들을 이 제국에서 지워낼 거라고, 그게 바로 아크로이어가 맞이하는 진정한 죽음일거라더군.”
“그자에게 어울리는 최후네요.”
로제리아는 시선을 돌려 칼라반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새하얀 손이 칼라반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래서 모든 것을 끝낸 기분이 어때요?”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군.”
“그렇군요…….”
“로제리아. 정말 이대로 나와 함께 가도 괜찮겠어?”
“함께 가서 여동생에게도 인사드리고 싶어요.”
“이레아가 좋아하겠군… 이렇게 멋진 여자가 내 옆에 있는 걸 직접 봤으면 그 녀석 성격에 뭐라고 했을지.”
죽은 이레아를 떠올리자 칼라반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빤히 바라보던 로제리아가 살며시 칼라반의 고개를 당겼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밤이 더욱 깊어지고 어둠이 짙어지자 칼라반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는 로제리아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슈와아――!!
그 순간 칠흑빛 어둠이 번지며 그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이계의 공간으로 진입합니다.] [거부할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여러 가지 메시지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마침내 다 사라졌을 때 익숙한 무언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다시 깨어난 건가?”
“오랜만이로구나.”
“영영 못 보는 줄 알았다 아포칼립스.”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겨 눈앞의 아포칼립스를 끌어안았다.
아포칼립스도 조용히 칼라반을 끌어안아주었다.
“저번엔 나무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나는 본래 형체가 없는 정령왕이다. 네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 또한 달라지는 거다.”
“그러냐.”
“어둠의 정령들을 통해 그동안 네가 걸어온 길들은 모두 보았다. 정말 고생 많았구나 칼라반.”
아포칼립스가 그런 칼라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냐?”
“아니. 아쉽지만 오랜 잠에서 잠시 깨어난 것뿐이다.”
그의 말에 칼라반이 두 눈을 깜빡이며 아포칼립스를 바라보았다.
아포칼립스가 손으로 원을 그리자 그의 뒤로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칼라반.”
“말해라.”
“너는 이곳에 와서 복수를 이루었다.”
“그래…….”
“그러니 이번에도 너의 열망은 끝이 났다. 칼라반 너는 본래 이곳의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잘 생각하고 대답해라.”
아포칼립스는 자신의 뒤편에 자리한 게이트를 가리켰다.
“지금 이곳으로 돌아가면 본래 네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저곳과 다르게 지나간다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을 거다.”
아포칼립스의 말에 칼라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공민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곳으로 들어가라.”
“…….”
“남겨진 사람들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이곳을 지나가는 순간 너는 그들에게서 잊힐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마.”
“나는 돌아가지 않아 아포칼립스.”
“너무 빠르게 선택하는 것 아닌가? 이곳에서의 삶을 택한다면 저쪽 세계에 있는 네 몸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말은 즉, 다시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신중하게 답해라.”
“다시 생각한다 해도 내 대답은 똑같을 거다. 나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아. 이곳에 내 모든 것이 있으니까.”
칼라반의 단호한 답에 아포칼립스도 순순히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사실 아포칼립스로서도 어느 정도 칼라반의 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으니 그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다. 그것이 너의 대답이라면…….”
아포칼립스가 다시 팔을 움직이자 뒤틀렸던 공간이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이어 아포칼립스가 양 팔을 들어올리자 칼라반에게 스며들어 있던 어둠이 아포칼립스 쪽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네가 이곳에 왔을 때 가장 큰 열망은 가족과 친구를 얻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네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니 더 이상 어둠의 정령들이 네 곁에 머물 필요는 없겠지. 어둠의 정령들은 죽음을 몰고 다니니 이제 녀석들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칼라반.”
“여러모로 고맙다 아포칼립스. 이제 다시 돌아가는 건가?”
“그렇다. 세계의 법칙을 거슬렀으니 다시 돌아가야 하겠지.”
“아쉽군… 이렇게 짧은 만남이라니.”
“후후 나는 어둠이다. 네가 있는 곳 어디에든 나와 나의 정령들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친구여.”
차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아포칼립스가 서 있던 곳에 차츰 달빛이 스며들었다.
칼라반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아포칼립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녀석 급하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 어둠의 정령들을 불러내 보려 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다 떠난 건가.”
그렇게 그가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점점 날이 밝았다.
부스스 눈을 뜬 로제리아가 칼라반의 등 뒤로 안겼다.
“잠도 안 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한 거예요?”
“그냥…….”
칼라반이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때 어둠속에서 작은 방울이 일어났다.
방울 속에 드러난 금색 눈동자가 칼라반을 향해 인사했다.
녀석을 본 칼라반이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처음 이곳에 온 그날처럼 까망이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이만 몸을 일으킨 칼라반이 로제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나랑 함께 가도 정말 후회 안 하겠나?”
“이제 그만 물어봐요. 더 물어보면 정말 후회하겠어요.”
“후후 미안하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서.”
쪽.
살짝 입을 맞춘 로제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이제 좀 믿어지나요?”
“어.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