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05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5화
“아니요…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 다만… 이 얘기들을 들으면 미친놈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말씀해보세요. 마침 이 병실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고. 저는 듣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에요.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당신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있어요.”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에 공민이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짧게 자른 머리에 선한 눈동자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눈동자가 맑으시군요. 제 여동생이랑 많이 닮았습니다.”
“그런가요?”
그녀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공민의 시선이 그녀가 들고 있는 차트에 머물렀다.
“안 물어보시나요? 거기엔 제가 외동으로 나와 있을 텐데.”
“그런 것보다 저는 공민 씨가 말씀하시는 여동생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네요.”
그녀의 말에 자연스럽게 이레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선한 눈매가 눈앞의 박규은 씨랑 닮았는데, 이레아는 좀 더 밝은 이미지였다.
사랑하는 남자를 데려와 나중에 그 사람과 혼인을 올릴 거라며 좋아하던 그 모습.
부모님이 적들이 보낸 어쌔신에 살해당했을 때 함께 슬퍼하던 그 모습.
모든 기억들이 찰나에 스쳐지나갔다.
“제 여동생은…….”
공민은 결국 하나둘씩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전생에 관한 얘기들.
그 모든 얘기들을 하는 동안 눈앞의 여인은 단 한번도 지루해하거나 흥미를 잃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공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에게 집중해주었다.
공민도 처음에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얘기에 집중하다보니 외려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공민이 여동생에 대한 얘기들을 실컷 늘어놓는 도중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동생 분을 많이 아끼셨나 봐요.”
“네, 뭐… 그렇죠.”
잠시 침묵이 오갔다.
공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녀도 묵묵히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굳게 닫혀 있던 공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은 사실 거의 없어요.”
공민은 부모님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 태어나 행복할 것만 같은 인생을 보냈을 것 같지만, 사실 공민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란 사람은 어린 공민에게 관심과 사랑 대신 돈을 주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공민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들은 공민을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의문은 내가 과연 이 사람들의 자식이 맞을까…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리고 말았죠.”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에서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어버린 공민의 부모는 다시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나란히 자살을 택해버리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공민은 고아원에 맡겨졌으며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부모 없는 거지새끼라고 소문나버린 바람에 지독히도 괴롭힘을 당했어요. 아주 엉망인 삶이었죠.”
“아…….”
조용히 공민의 말을 들어주던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네요. 제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려준 사람은 당신이 두 번째로군요.”
“두 번째요?”
“네… 첫 번째는…….”
여기까지 말하던 공민이 이만 말을 멈추었다.
첫 번째로 눈물을 보여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세계의 부모님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굳이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이세계에 관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곳에 없는 여동생 얘기만으로 충분히 이상한 사람이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얘기를 꺼냈던 것은 조금이라도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함이었을지도 몰랐다. 눈앞의 여인이 자신의 말을 믿건 안 믿건 그것은 사실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푸는 것이었으니까.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실 충분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한결 편안해졌네요.”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오늘은 이만 얘기하고 좀 더 쉬세요. 다음에 또 찾아올게요.”
“네.”
짧은 대답을 끝으로 그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녀는 병실 밖으로 나섰고 홀로 남겨진 공민은 다시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이원도 의사가 밝은 얼굴로 공민을 찾아왔다.
“이렇게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어제 밤에 골똘히 생각해봤는데…! 이걸 좀 추천해드리고 싶어서요.”
이원도는 가방에서 여러 책들을 꺼내었다.
“이게 뭔가요?”
“무협 소설인데… 혹시 무협 소설 안 좋아하세요?”
“아뇨…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 그래요!?”
이원도 의사가 반색하며 손뼉을 쳤다.
“마침 처음 시작하시는 분이 읽기 쉬운 책으로 가져와봤어요! 병원에 혼자 있으면 적적하고 그런데 한번 읽어보세요. 한번 책장을 펴면 다 읽기 전까진 덮기 힘든…! 그런 책으로 가져와봤으니까요.”
그는 신난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공민은 우선 책부터 받아들었다.
“그럼 저는 아침부터 수술이 잡혀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네, 알겠어요.”
이원도 의사가 돌아나가려는 때 공민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무슨 일이시죠?”
“그… 제가 돈이 없…….”
“돈 얘기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원비는 이미…….”
“그 분 연락처라도 알려주세요.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돈도 돌려 드릴려구요.”
공민은 죽기 전 마지막까지 모아두었던 돈이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돈을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원도 의사는 웃기만 할뿐 공민이 원하는 답은 들려주지 않았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그 분도 공민 씨가 우선 완쾌부터 하시길 바라고 계시니까요.”
“아… 네…….”
이원도 의사는 능구렁이 같이 빠져나가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네…….”
이원도 의사는 확실히 공민이 지금까지 봐 왔던 의사들과는 조금 달라보였다.
훨씬 더 인간적인 면이 있었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다 멍만 때리고 있던 공민의 시선에 아침부터 이원도 의사가 주고 간 무협 책이 들어왔다.
“심심한데 진짜 이거나 읽어볼까…….”
그는 1권부터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몰입해버리고 말았다.
공민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권, 2권, 3권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주인공은 가문에 버림받고 사랑하는 사람한테까지 배신당하는 모진 인생 속에서 기연을 얻어 무공을 배우게 되고, 결국 복수와 사랑을 쟁취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이원도 의사가 완결까지 가져와준 덕분에 한시도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어…어라…? 벌써 완결까지 다 읽으신 거예요?”
저녁에 잠시 들렸던 이원도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것 더 없습니까?”
공민이 처음으로 생기 있는 얼굴로 물어오자 이원도 의사도 신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있지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협 소설을 좋아해서 소장해놓은 책들이 많아요! 내일부터 하나씩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계시는 동안 천천히 다 읽어보세요!”
“네… 고맙습니다.”
공민은 그 날 이후로 이원도 의사가 가져다주는 무협 소설들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좋았고 복잡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씩은 박규은 상담사가 병실에 들러 공민이랑 여러 얘기들도 나누어 주었다.
“호호. 요즘은 무협 소설 얘기로 가득하네요.”
“아… 제가 그랬나요…….”
공민이 머쓱함에 코끝을 쓰윽 훑었다.
“좋아요. 어찌나 재밌게 말씀하시는지 듣다보면 저도 한번씩 읽어지고 싶더라니까요. 게다가 전보다 표정도 훨씬 밝아지셨어요.”
“제가 그랬나요?”
“그럼요! 이원도 의사님께 정말 감사드려야 할 것 같아요. 공민 씨 병원비도… 아…….”
그녀는 황급히 말을 멈추었다.
“설마 제 병원비를 다 내신 분이…….”
“네… 사실… 이원도 의사선생님께서 병원비도 다 내주셨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삶의 가치로 느끼시는 분이셔서… 그래도 공민 씨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실수해버리고 말았네요…….”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보다 큰 빚을 지고 말았군요…….”
“우선은 몸부터 다 낫는 것만 생각하세요. 그리고 세상에 갚으시면서 살면 되요. 이원도 의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 건가요?”
“그야… 그이가 제 남편이니까요. 호호.”
#다시 이세계로
“요즘에도 같은 꿈을 꾸시나요?”
“예. 며칠 전부터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다섯 개의 기둥에 여러 사람들이 조각된 돌들… 그리고 땅 여기저기에 꽂혀 있는 무기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무기들의 무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공민이 미간을 모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계속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매번 같은 광경을 바라보니 이제는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외울 지경이 되어버렸다.
“흐음… 대체 뭘까요…….”
박규은 상담사도 짚이는 것이 없는지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미 없이 볼펜만 딸깍거렸다.
“뭐…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르죠.”
더 고민해봤자 어차피 꿈일 뿐이라는 생각에 공민이 가볍게 넘기려 했다.
“음? 잠시만… 잠시만 다시 한번 얘기해보시겠어요?”
그때 그녀는 무언가 떠오른 듯 모니터를 밝혔다.
공민은 좀 전에 했던 얘기를 똑같이 나열해주었다.
“맞네… 그런데 이거 좀 신기한데요? 공민 씨가 말한 거랑 비슷하지 않아요?”
그녀는 모니터를 돌려 공민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조금 전 공민이 얘기한 부분과 굉장히 흡사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꿈에서 본 곳이랑 굉장히 흡사했던 터라 공민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그런데 여기는… 현실 속 세상이 아니에요.”
“현실 속 세상이 아니라구요?”
“네. ‘라스트 로열’이라는 게임 세상 속이에요. 한번쯤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아… 가상현실게임 말씀이시군요.”
공민의 물음에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공민 씨한테 이 게임을 추천해주려고 했는데 잘 되었어요.”
“네? 저한테 게임을요?”
“근래에 이런 게임을 통한 심리 치료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라스트 로열은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고 성장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제 2의 세계라고 여겨질 정도로 엄청난 자유도를 자랑하고 있거든요. 놀랍게도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라스트 로열에서 펼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가는 분들도 상당히 있어요. 나중가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말이에요.”
“그렇군요…….”
그러나 공민은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공민 씨가 좋아하는 무협 있죠? 로스트 로열을 시작하면 무협 관련 직업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때마침… 여기 이 장소가 무협 관련 무공서? 같은 게 있는 곳일 거라고 하네요.”
“네? 무협이요?”
공민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