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5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52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52화
#칼라반과의 만남
“그럼 빨리 찾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일단 이쪽으로 가보죠.”
헤이나가 오른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유운량은 조용히 주변의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곤 나뭇가지를 이용해 땅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유운량의 행동에 헤이나는 답답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렇게 그림이나 그릴 시간이…….”
그러나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헤이나는 말을 멈추고 말았다.
단순한 그림이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마법…진……?”
하나의 문양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진 진의 중심에서 유운량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눈을 감고 두 손을 진 위로 가져갔다.
헤이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몰라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유운량이 있는 진이 한 차례 빛나고 특이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아무리 봐도 마법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법진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유운량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곤 파초선을 들어 곧바로 북서쪽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갑자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곳에서 오우거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에에…? 그게 말이 되요?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후후, 조금 전까지 지켜보시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유운량이 먼저 북서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태도가 너무도 단호해 헤이나는 따로 의문을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뭐지? 뭔가 이상하게 자꾸 말리는 기분이야…….”
알 수 없는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녀는 이번에도 유운량의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북서쪽으로 이동하자 그들의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피 냄새…….”
“지독하군요…….”
“이렇게 멀리까지 피냄새가 전해져 온단 말이야……?”
“흐음… 그렇군요. 상당히 많은 피를 쏟은 모양입니다.”
“천천히 따라와요 제가 먼저 가볼 테니까.”
파밧! 팟!
헤이나가 먼저 앞서나가며 몸을 날렸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하니 유운량으로선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허어… 정말 신체 능력이 엄청나신 분이로군요…….”
순식간에 앞으로 멀어지는 헤이나를 보며 유운량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의 능력으로 그녀를 따라가기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보다 유운량은 피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곳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피 냄새가 전해질 정도라… 이번에도 크게 한 바탕 하시는 모양이로군요.”
그는 파초선을 들고 뒷짐을 진 채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급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그가 이렇게 여유로운 걸음을 가져가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멀리서부터 서서히 칼라반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었다.
“나참… 그 사이에 이토록 성장하시다니… 제가 곁에 없었던 몇 개월 동안 어떤 방법을 사용하신 겁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운량은 흐뭇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한편, 유운량을 두고 먼저 앞으로 달려나간 헤이나는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르게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파방!
달려가는 그녀의 앞으로 오우거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이를 본 헤이나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비켜!”
그녀가 주먹을 힘껏 내지르자 오우거의 상반신이 그대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너 따위에 지체 할 시간이 없단 말이야.”
헤이나는 멈추지 않고 오우거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공터가 나왔을 때 그녀는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헤이나는 그저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녀가 이렇게 놀라는 이유.
앞에는 수많은 오우거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오우거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온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지를 딛고 서 있는 오우거들의 모습도 피투성이를 한 녀석들이 많았다.
게다가 녀석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사내.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칼라반이었다.
“저게 그 공민이라고……?”
헤이나는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을 눈을 비벼보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사내는 틀림없는 칼라반이었고, 그는 거침없이 오우거들을 죽여 나가고 있었다.
칼라반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오우거들을 상대했다.
오우거들도 흉폭한 성정을 지닌 몬스터답게 지지 않고 칼라반에 맞섰다.
탄탄한 근육에서 비롯된 강력한 공격이 칼라반의 몸을 무차별로 때렸다.
“아……!”
오우거에게 맞으면서 계속 공격을 이어나가는 칼라반을 보며 헤이나는 절로 탄성을 토해내고 말았다.
여기저기 빗발치는 몽둥이들은 칼라반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뭐… 뭐하는 거야!? 오우거들의 공격은 피하면서 공격을 이어나가야지, 저건 너무 무식한 싸움 방법이잖아…? 자기 피부가 무슨 철갑옷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그러나 칼라반은 전혀 오우거들의 공격을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는 오우거들의 몽둥이와 주먹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러면서도 주먹을 휘두르고 발은 내지르며 오우거들을 공격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칼라반의 과격한 싸움 방법에 헤이나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저렇게 계속해서 싸우다간 오우거들의 공격에 칼라반이 먼저 쓰러질 것만 같아보였다.
보다 못한 헤이나가 나서려는 때 유운량이 그녀를 말렸다.
“저것은 주군의 싸움입니다. 제 3자인 저희는 빠져있는 것이 주군을 도와드리는 길입니다.”
“네? 지금 저 모습이 안 보여요?”
“잘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태평한 말이 나온다구요? 당신 정말 공민을 따르는 사람이 맞는 건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겁니다.”
유운량의 말을 들으며 헤이나는 그저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그녀는 오우거의 공격을 모두 받아가며 싸우는 칼라반이나 이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유운량이나 둘 다 제정신은 아니라 여겼다.
“지금 섣불리 주군을 도와드리려 하는 것은 그저 주군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필요한 일이 있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제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니 저는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헤이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유운량은 자연스레 말을 덧붙였다.
“아아…….”
지금의 그녀로선 유운량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마음인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대단한 신뢰라도 있는 건가…….’
유운량을 한 번 바라본 헤이나는 다시 칼라반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칼라반은 여전히 오우거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오우거들을 처치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오우거들의 숫자도 꽤나 줄어들어 있었다.
오우거들은 아무리 공격해도 쓰러지지 않는 칼라반을 보며 복잡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공격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작은 체구의 인간은 아직도 멀쩡한 모습을 한 채 공격해오고 있었다.
마치 성난 들짐승처럼 칼라반은 오우거 무리의 한복판에서 계속해서 날뛰고 있었다.
“쿠르륵!!”
그때 누군가의 외침에 오우거들이 한쪽으로 비켜서기 시작했다.
후줄근한 넝마를 뒤집어쓴 오우거 한 마리가 칼라반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 뭉쳐있던 불덩이가 칼라반을 향해 날아갔다.
“저건 마법……!?”
오우거가 발현한 마법에 헤이나가 소리쳤다.
무아지경에 이르러 주먹과 발을 휘두르던 칼라반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덩이를 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내었다.
지금까지 오우거들의 육탄 공격엔 신경 쓰지 않던 모습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동이었다.
“성가신 존재가 있었군.”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오우거의 존재를 확인한 칼라반이 돌연 몸의 방향을 비틀었다.
그는 최우선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오우거를 죽이기 위해 몸을 날렸다.
다른 공격들은 그나마 금강지체 스킬을 이용해 버틸 수 있었지만 마법은 아니었다.
일전에 다른 오우거와 싸우다 마법에 당한 적이 있었다.
금강지체 스킬도 마법은 막아주지 못했는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아직도 등의 그을린 자국들이 때로는 고통으로 찾아와 칼라반으로 하여금 잠을 설치도록 만들었다.
“쿠어어!!”
마법을 사용한 오우거가 무어라 소리치자 주변 오우거들이 녀석의 앞을 막아섰다.
칼라반의 돌진을 막아내기 위해 밀집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칼라반이 내기를 발쪽으로 순환시켰다.
그는 경공을 펼쳐 허공으로 크게 도약했다.
그러자 하늘 높이 뛰어오른 칼라반의 몸이 단숨에 마법을 사용한 오우거의 곁에 다다랐다.
“쿠워어어―!?”
“그뤄어!!”
오우거들은 칼라반을 저지하기 위해 뒤늦게 움직였지만, 칼라반의 손속이 훨씬 빨랐다.
뚜둑―!
그는 단숨에 마법을 사용한 오우거의 뒤를 점하며 목을 비틀어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다른 오우거들이 더욱 분노를 표출하며 칼라반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때.
“쿠롸아아―!!!”
강렬한 외침과 함께 커다란 뿔이 돋아난 오우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더 커다란 덩치에 이미 한 손에는 불덩이를 소환해 놓고 있었다.
“드디어 나타난 것 같군.”
쿰바타는 오우거들의 족장답게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녀석은 커다란 눈동자로 칼라반과 뒤에 있는 헤이나, 유운량까지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칼라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앞의 참혹한 광경을 만든 이가 바로 칼라반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칼라반은 동족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였다.
단 한 명의 인간을 어쩌지 못하고 수많은 동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쿰바타는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쿠라!!”
쿰바타가 손을 휘두르자 불덩이가 칼라반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나갔다.
칼라반은 날아드는 불덩이들을 피해내며 본능적으로 쿰바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카차!!”
쿰바타가 손가락으로 칼라반을 가리키자 한 줄기 전격이 쏟아져나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온 전격에 칼라반은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허벅지에 맞아버리고 말았다.
“크윽… 전격마법까지 다룰 줄 아는 건가……!?”
마법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들다는 마법이 바로 전격마법이었다.
그런 전격 마법을 오우거가 사용할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버텨내지 못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칼라반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며 쿰바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와아!!”
쿰바타가 커다란 주먹을 내지르자 칼라반도 허리를 크게 비틀며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질풍수라권!!!”
휘우웅―!!!
파앙!!!
칼라반의 주먹과 쿰바타의 주먹이 강하게 부딪쳤다.
충격에 비명을 토해낸 것은 칼라반이 아닌 쿰바타였다.
칼라반의 주먹과 부딪힌 녀석의 주먹은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었다.
지켜보던 유운량과 헤이나도 적잖이 놀란 얼굴들이었다.
“허어…….”
“이상해… 지금까지 보여준 움직임도 그렇고… 오우거의 주먹을 저렇게 만들어버릴 정도의 힘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라모텔 따위에게 질만한 실력이 아닌데… 설마…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기라도 한 건가요?”
헤이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운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유운량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저만큼이나 강해지신 겁니다.”
“말이 돼요? 기껏 해봐야 그때 이후로 반년 정도 지났는데… 그 사이에 저만큼이나 강해졌다구요? 그 말을 지금 저더러 믿으라는 말인가요?”
“후후, 믿고 안 믿고는 헤이나님의 자유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주군께선 앞으로도 더욱 크게 성장하실 거라는 점입니다.”
유운량은 빛나는 눈빛으로 자신의 주군인 칼라반을 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유운량도 작금의 상황을 헤이나에게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그조차도 칼라반의 엄청난 성장에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