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5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54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54화
#돌아온 서열전
“아…….”
칼라반의 말에 헤이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어리석은 질문을 한 기분이었다.
“그렇지… 당연한 건데…….”
“물론 블레이드가 되는 것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뭐?”
“블레이드는 내게 목표가 될 수 없다. 그저 수단일 뿐.”
“수단? 그렇다면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
“그게 뭔데?”
“그것을 내가 너에게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알려 줘!”
“왜지?”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칼라반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헤이나와 제대로 이야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제 겨우 얘기 몇 마디 정도 나눠본 것뿐인데, 그런 그녀에게 왜 이런 것까지 왜 말해야 한단 말인가!?
칼라반으로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반면 한쪽에 물러서서 얘기를 듣고 있던 유운량은 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칼라반마저도 딱 저 나이 또래로 보였다.
“청춘인 겁니까? 후훗…….”
그는 헤이나와 칼라반을 번갈아 보며 파초선으로 입가를 가렸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난번에 너를 도와준 바람에 이미 라그나로크 안에도 소문이 퍼져 버리고 말았어. 너와 내가 그… 아무튼…! 그것 때문에 나를 싫어하던 블레이드 후보들이 괜히 검끝을 너한테 돌리고 있다는 얘기까지도 전해지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습격자들이 잦은 이유에 분명 내 책임이 없진 않겠지.”
“그게 어째서 내가 네게 속내를 말해야 할 이유가 되는 거지?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내가! 이제 됐어? 괜히 나 때문에 네가 피해를 받는 것 같아서 신경 쓰여서 그런 거라고…….”
“그런가…….”
헤이나의 말에 칼라반이 잠시 생각을 곱씹어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것에 대해 말을 한다면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하아? 거참 되게 비싸게구네… 그냥 말할 수 있는 것 아냐!?”
“글쎄…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너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는 거지?”
“잘 알고 있다. 이름은 헤이나 아닌가?”
“그렇지… 에? 뭐야 설마 그게 끝이야……?”
“더 알아야 하나?”
칼라반의 물음에 헤이나는 그저 기가 찰 노릇이었다.
힘이 곧 권력인 라그나로크에서 이제 겨우 1000위에 랭크된 블레이드 후보가 자신 앞에서 이런 태도라니…….
‘확 뒤집어엎을까?’
평소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하겠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했다.
선뜻 행동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막상 칼라반과 마주하니 아직까지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칼라반에게 남아 있는 만드라고라의 향 때문이었지만 그녀로선 이 같은 일을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적이 헤이나 스스로도 처음이라 그녀는 자꾸만 헝클어지고 있는 머릿속을 어찌할 줄 몰랐다.
“나참… 다른 녀석들 같았으면 벌써 말했을 텐데…….”
확실히 지금까지 라그나로크 안에서 만난 이들과 칼라반은 달랐다.
그 이전부터 그동안 그녀가 봐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타입일 것이라 생각해 왔지만, 막상 이렇게 칼라반과 얘기를 나눠보니 그것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혼란스러워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칼라반도 하는 수 없이 말을 더해주었다.
“나는 아직 너를 믿을 수 없다.”
“뭐?”
“그렇지 않은가? 그대가 나를 도와준 것은 분명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곳 라그나로크는 기본적으로 힘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 들었다. 블레이드는 제국을 겨눌 검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여야 하는 데다, 라그나로크라는 집단 자체가 제국에 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점차 힘을 우선시하게 되었다고 들었지. 그런 라그나로크에서 널 처음 만났고 나는 아직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너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 아니겠나?”
“그건 그렇지.”
“그러니만큼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수많은 전쟁터를 겪은 칼라반의 버릇이기도 했다.
수많은 암습과 음모가 오가는 전쟁터 속에서 다른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칼라반은 가장 믿었던 이에게도 배신을 당했으니 누군가를 섣불리 신뢰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 같은 사정을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 헤이나는 그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칼라반의 말에 틀린 것은 없어 보였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감사 인사를 받으러 왔다는 자신이 멋대로 칼라반에게 속내를 털어놓아 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웃긴 일인 듯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며 넘겼을 일인데 이번에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조금씩 일고 있었다.
그렇지만 밖으로 티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네. 내가 네게서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했던 이유는… 사실 간단해.”
“뭐지?”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그대가 나를? 어째서?”
“그건…….”
나름대로 진심을 말하기 위해 솔직해지긴 했지만, 이어지는 칼라반의 냉정한 질문에 헤이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야 말로 그녀 스스로도 질문의 답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 갑자기 솟아난 감정들에 뒤덮인 것인지 헤이나 스스로도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곤란해 하는 듯하자 유운량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마 헤이나님께서도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물어보셨을 겁니다. 게다가 알아보니 헤이나님은 현재 10위에 랭크되어 있는 블레이드 후보님이십니다. 그러니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칼라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도 이미 헤이나가 얼마나 강한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여전히 헤이나의 전투력은 물음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이렇게 강해진 지금까지도 헤이나의 전투력은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칼라반의 행색을 한 차례 훑어본 유운량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
“그나저나… 주군께서는 이곳에 더 머무실 생각입니까?”
“음…….”
칼라반이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그는 동굴 밖으로 나와 쫓는 녀석이 있었다.
그는 녀석을 이 숲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생각했다.
단 한 번이었다.
녀석은 분명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칼라반은 이곳에 와서 지금껏 그만큼 강렬한 기운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그는 호승심에 곧바로 녀석을 쫓아 나섰으나 애석하게도 녀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오우거들을 마주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오우거 사냥에 나섰던 것이다.
“그래… 어쩌면 아직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군…….”
솔직하게 말해 처음 그 기운을 느꼈을 땐 저도 모르게 손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큼 그 기운은 강렬했고 거대하게 느껴졌었다.
녀석을 쫓긴 했지만 혹시나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그저 정체만 확인하고 돌아설 생각도 없진 않았다.
다만, 막상 마주하게 될 경우 어둠의 정령까지 불러내어 온 힘을 다해 상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긴 했었다.
그렇게 새로운 목표를 정해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운이 다시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였다.
“좀 더 강해지고 나서 녀석을 찾아봐야겠군.”
파스스스―!
파스스!!
그때 나무들이 격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루엉!!!”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가 나무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자신의 팔만큼이나 거대한 나무기둥을 들고 있던 몬스터가 코를 벌렁거렸다.
[던전 몬스터 트윈헤드트롤이 나타났습니다.]“트윈헤드트롤?”
오우거들보다도 더욱 거대한 덩치의 트롤은 옆에 서 있는 큼지막한 나무와도 비슷한 키를 자랑했다.
특이한 점은 머리가 두 개인데다 일반적으로 봐왔던 트롤들보다도 컸다.
유운량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빛 피부에 넝마가 된 가죽을 걸치고 있는 트윈헤드트롤이 큼지막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허어… 정말 거대한 녀석이로군요…….”
“당연하지. 트윈헤드트롤이라면 오우거보다도 상위 포식자니까. 아무래도 오우거들의 피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네.”
헤이나는 가볍게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칼라반이 입을 열었다.
“직접 나설 생각인가?”
“응.”
“내가 처리해도 된다. 그러니…….”
“아니. 네 덕분에 머리가 복잡해져서 이렇게라도 몸을 좀 움직여야겠어. 게다가 네가 나를 못 믿겠다고 하니 이런 거라도 좀 하면서 신뢰를 쌓아보려고.”
“흐음…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군.”
“나도 몰라.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리고 어차피 나는 내 멋대로 구는 성격이니까 그냥 그쪽에서 그러려니 해.”
“알겠다.”
칼라반은 앞으로 나서려다 잠자코 뒤에 섰다.
사실 그도 헤이나의 실력을 제대로 지켜보고 싶긴 했다.
헤이나는 고개를 들어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크르릉―!!”
트윈헤드트롤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인간을 내려다보며 턱을 긁적였다.
녀석은 곧 음험한 눈으로 헤이나를 훑기 시작했다.
네 개의 눈동자가 굴러다니는 모습이 징그러워 보일 정도였다.
트윈헤드트롤은 말없이 나무기둥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정작 헤이나는 트롤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휘우우웅―!!!
콰앙!!!
트윈헤드트롤이 강하게 휘두른 나무기둥이 그대로 헤이나가 있는 곳에 처박혔다.
“내가 예쁜 것은 알지만 어딜 건방지게 그런 눈으로 나를 내려다 봐? 한낱 몬스터 주제에.”
한 손으로 나무기둥을 막아낸 헤이나는 멀쩡한 모습으로 트윈헤드트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땅을 박차며 순식간에 트윈헤드트롤의 머리 위로 몸을 날렸다.
헤이나는 천천히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
이어 들어 올린 발이 빠른 속도로 트윈헤트롤의 한쪽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얌전히 머리 처박고 있어.”
휘콰아앙―!!!
“쿠륵―!!”
단 일격이었다.
트윈헤드트롤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지면에 커다란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헤이나는 이어 다른 쪽 머리도 지면에 박아버렸다.
트윈헤드트롤의 머리가 박힌 지면은 얼굴의 반절만큼이나 움푹 패여 있었다.
순식간에 트윈헤드트롤을 처리해낸 헤이나가 슬쩍 칼라반쪽을 바라보았다.
칼라반도 말없이 헤이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 칼라반의 눈은 묘하게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 * *
“음? 그 사이에 이런 것이 도착해 있었군요.”
유운량은 집 언저리에 놓아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붉게 수놓아진 테두리 덕분에 눈에 띄는 종이였다.
종이를 알아본 헤이나가 곧바로 아는 체 했다.
“음? 그건 관리부에서 서신을 보낼 때 쓰는 종이인데?”
“관리부에서 말입니까?”
“무슨 내용이에요? 관리부에서 이쪽으로 서신을 보낼 이유가 있나?”
유운량은 곧바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헤이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유운량의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칼… 아니 공민님.”
유운량의 부름에 조용히 씻을 준비를 하던 칼라반이 그를 돌아보았다.
유운량은 그에게 보여주듯 종이를 펼쳐보였다.
“서열전에 참석하시라는 내용입니다.”
“서열전에?”
“예.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반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이 딱 그 시기인 듯하군요.”
“그렇군…….”
칼라반은 그제야 그때 들었던 내용을 기억했다.
그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블레이드 후보는 1년에 두 번 정도 서열전에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