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5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57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57화
#하이데의 수하
경기장의 입구가 열리고 양측 선수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경기장 안에 들어온 것은 칼라반이었다.
그는 조용히 경기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냉랭해 보였다.
반면 도그로나드가 입장할 때엔 여러 환호로 가득했다.
특히나 그를 격하게 반기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중심에는 하이데가 자리해 있었다.
“흐음… 변함없는 상판이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헤이나가 하이데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마냥 가만히 있기에는 성미에 맞지 않아 애써 얼굴을 가린 채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다행히 이번 서열전은 라그나로크의 많은 사람들이 관전할 수 있는 오픈 형식이었기에 그녀가 사람들과 섞여 들어오는 데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어차피 그냥 들어왔으면 여러모로 얼굴도 팔리고 귀찮은 일도 많았을 텐데 차라리 잘 되었지 뭐.”
그러면서도 그녀는 하이데를 잠시 노려보았다.
도그로나드는 하이데와 붙어 다니던 블레이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도그로나드를 거의 하이데의 수하와 다를 바 없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이데가 암암 중에 블레이드 후보들 사이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본인을 포함한 싱글 넘버의 블레이드 후보들도 알고 있었다.
도그로나드는 초창기부터 하이데와 붙어다니던 녀석이었지만 최근 들어 하이데를 따르는 블레이드 후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상위 블레이드 후보들이 그를 견제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크게는 블레이드 후보들 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경쟁이 인정되는 룰 때문이었다.
스스로가 힘이 부족해 다른 블레이드 후보들과 연합을 결성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정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관리부나 다른 블레이드 후보들도 굳이 간섭하려들지 않았다.
물론 만약 하이데의 성장이 신경 쓰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면 다른 블레이드 후보들도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 모두 가만히 있다는 것은… 역시 아직은 견제할 거리도 안 된다는 얘기겠지.”
그렇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블레이드 후보 중에서 하필이면 하이데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이 칼라반의 상대로 나오게 된 것이 영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자식… 또 무슨 수를 쓴 것 아냐? 분명 그러고도 남을 놈인데…….”
한 번 문 사냥감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쫓는 것이 하이데의 성격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몇 번이나 칼라반을 죽이는데 실패했으니 충분히 그런 일을 펼치고도 남을 인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헤이나가 매번 나설 수도 없는 노릇.
그동안은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나서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칼라반이 겪을 경쟁에 마음대로 끼어들 순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이번에도 도와주면… 에이, 아니야. 대체 저런 녀석을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야 난?”
그동안은 하이데의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갖다 붙였지만 이제는 확실히 헤이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비단 하이데의 행동에만 반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은연중에 칼라반을 신경 쓰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은 칼라반에게 시선조차 두지 않았을 터였다.
본래 자신보다 약한 자라면 말을 섞기조차 싫어하는 헤이나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서열전을 시작하기 위해 관리부 간부인 마르쿠셀로가 칼라반과 도그로나드의 사이에 섰다.
“두 분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칼라반과 도그로나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서열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짤막한 말과 함께 마르쿠셀로는 곧바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콰앙!
서열전을 알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왁자지껄 떠들던 관중들도 하나둘 두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이데 역시도 비릿한 조소를 띄며 칼라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흥. 저 녀석도 서열전 제약 때문에 이번만큼은 기어 나올 수밖에 없었을 테지.”
“큭큭, 그래서 이번 저 녀석의 상대로 도그로나드를 붙인 거야?”
“덕분에 돈이 좀 들긴 했지만, 뭐 그래도 저 녀석의 면상이 구겨지는 꼴만 볼 수 있다면 나름 만족한다.”
“너도 참 악취미로군.”
“저 공민이란 녀석은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거기다 헤이나까지 저 녀석을 감싸고도니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고 보니 헤이나는 아직 근신 처분이 안 풀렸다지? 안타깝게 되었네. 자기 애인이 곧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르는데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꼴이라니.”
“글쎄에…….”
곁에 있던 동료의 말에 하이데는 홀로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있는 헤이나가 앉아 있는 쪽이었다.
한편 칼라반과 마주선 도그로나드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안타깝네, 공민.”
“……?”
“이번 서열전 상대로 날 만나게 되다니 말이야. 참고로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라모텔처럼 무르지 않아.”
“그렇군.”
도그로나드의 말에도 칼라반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여유 있는 모습에 도그로나드가 눈매를 좁게 떴다.
그러나 이내 칼라반이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곧바로 조소를 보이고 말았다.
“뭐냐. 무기조차 들고 나오지 않은 거야?”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들고 나오지 않았다.”
“후후, 그 말은 어차피 네가 질 걸 알아서 그렇다는 거냐?”
“…….”
칼라반은 조용히 도그로나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전투력 수치가 드러났다.
정작 칼라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전투력 수치 위에 나타난 글자였다.
이를 본 칼라반은 그저 우두커니 서서 도그로나드의 다음 행동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에 도그로나드는 칼라반이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어 얼어붙은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너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나 또한 서열전에서 승리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뭐, 어차피 네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날 이길 순 없을 테지만 말이야.”
“자신감이 과한 편이로군.”
“이게 자신감이 과한건지 아닌 건지는 이제부터 공민 네가 직접 판단해보면 될 일이다!”
도그로나드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입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칼라반은 가만히 서서 도그로나드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본 헤이나가 답답함을 드러내었다.
“아니,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그나마 도그로나드를 이기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인데 어째서 손 놓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냐고……!!”
그녀는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며 이를 악물었다.
도그로나드가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미동조차 않는 칼라반.
그의 모습에 그녀는 칼라반이 이 시합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아니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도 그렇게 말해줬는데… 오호… 그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이거지? 블레이드 후보 자리가 만만한 거냐? 아니면 진짜로 욕심 같은 게 없는 거야? 아니 근데 나한테도 말해주지 못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며…!? 대체 뭐 어쩌자는 거야 저 자식은……?”
그녀는 순식간에 많은 말들을 뱉어내며 이를 잘근잘근 물었다.
손가락은 쉴 틈 없이 그녀의 머리칼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왠지 칼라반이 언제라도 기권을 외칠 것 같아 그녀는 무의식중에 양쪽 다리를 떨고 있었다.
“아니지, 아니지. 저 녀석이 그냥 기권하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장 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랑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 참 웃겨죽겠네.”
그러나 뱉어낸 말과는 다르게 그녀는 칼라반에게서 전혀 시선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반면 헤이나와 다르게 하이데 쪽은 슬슬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도그로나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이번 서열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도그로나드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았다면 저렇게 바보같이 우두커니 서 있진 않았을 텐데.”
“쿡쿡, 그건 네가 공민이란 놈에 대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라모텔에게도 패배한 녀석이야. 그 후로 집구석에만 박혀 바깥으로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쓰레기인데… 지금 저기 서 있는 것만으로 아마 한계일거다.”
“표정을 보니 알만하네. 겁먹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 같잖아? 저러다 집으로 도망쳐가는 것 아냐!? 하하하하!!!”
“훗… 끝났군.”
하이데는 더는 두고 볼 필요도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도그로나드가 마침내 두 눈을 떴다.
“나의 부름에 응하라!”
그의 힘찬 외침과 함께 도그로나드의 발밑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도그로나드와 칼라반이 딛고 선 대지가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졌다.
이어 그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구구궁……!
[하급 대지의 정령 노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노움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칼라반의 눈앞에도 메시지가 나타났다.
칼라반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노움을 바라보았다.
노움은 칼라반을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려두고 있었다.
이어서 도그로나드의 곁으로 두 마리의 노움이 더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그로나드는 무릎을 굽혀 노움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계약자의 손길에 노움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었다.
“네 녀석이라면 아마 노움 한 마리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긴 하지만… 확실을 기하기 위해 두 마리를 더 소환했다.”
도그로나드는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대지 정령의 등장에 칼라반은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보였다.
“보다시피 나는 다른 녀석들과는 조금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말이야. 직접 검을 쥐고 싸우는 데엔 흥미 없지만, 대신에 이렇게 대지의 정령을 불러낼 수 있다.”
“그렇군…….”
도그로나드의 친절한 설명에도 칼라반은 차분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도그로나드는 칼라반이 애써 담담한 척하는 것이라 여겼다.
“생각보다 정령술사는 그리 흔치 않은 존재지. 덕분에 나는 이 능력을 인정받아 블레이드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랬나.”
“아마 네놈 따위가 이렇게 실제로 정령을 접해보는 것도 처음인 일일 테지만… 미리 경고해두도록 하마. 비록 노움이 대지의 정령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긴 하지만, 그 힘은 충분히 널 뛰어넘는다. 그러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게 좋아.”
“참고하도록 하지.”
“후우… 나는 그 건방진 태도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노움들아. 이번에도 부탁한다!!”
도그로나드는 노움들에게 공격하라는 의미로 칼라반을 가리켰다.
그러나 노움들은 꿈쩍도 않고 도그로나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야!? 왜 그래? 나를 보고 있지 말고 저자를 공격해!”
그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 노움들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칼라반은 그런 노움들과 도그로나드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칼라반의 앞에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띠링!
[칭호 ‘정령들의 축복을 받은 자’가 발동되었습니다.] [하급 대지의 정령 노움은 칼라반님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이를 본 칼라반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믿고 있는 구석이 따로 있긴 했지만 ‘정령들의 축복을 받은 자’ 칭호가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발동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도그로나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