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6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62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62화
#아라곤 지역
해가 중천에 뜬 시각, 두 사내는 화려한 건물 앞에 섰다.
제르단은 무안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제가 또 첫날부터 실례를 범했지 뭡니까…! 그래서 죄송하다는 의미로 이곳으로 모셔온 겁니다!”
“이곳?”
“그 왜… 제가 또 제법 눈썰미가 좋은 편이라… 지난번에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민 지부장님의 눈빛을 또 읽어냈다는 것 아닙니까!”
“내 눈빛을 읽었다고?”
“그으렇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자자, 어서 따라오세요.”
제르단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라반의 등을 떠밀었다.
그가 일단 밀고 보니 칼라반도 떠밀려 건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훗…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제르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점원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이구! 우리 제르단님 오셨군요! 오늘도 달리시는 겁니까!?”
“으하하 물론이지! 오늘도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그런데 옆에 분은…….”
“아아. 이분은 내가 직접 모셔온 손님이야. 신원은 내가 보장하지!”
“흐흐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르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러면 바로…….”
점원은 칼라반과 제르단을 뒤로하고 굳게 닫혀 있는 커다란 철문 앞에 섰다.
칼라반은 조용히 철문 쪽을 바라보았다.
철문의 뒤편으로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철문 너머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여기까지 적나라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오오…! 감이 오시는가 봅니다? 역시…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이죠.”
“뭐……?”
끼이익―!
철문이 열리고 제르단이 칼라반에게 공손한 손짓을 보냈다.
“아하하!! 꿈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철문의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수많은 금화와 은화들이 곳곳에 놓아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여인들이 돈 꾸러미들을 여기저기에 가져다주었다.
곳곳엔 창칼을 든 사내들이 삼엄한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칼라반은 이 모든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제르단은 살며시 칼라반의 곁에 다가와 그의 어깨에 살며시 팔을 올렸다.
그리곤 칼라반에게 귓속말을 하기 위해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생각보다 훨씬 강렬한 반응이시군요…! 그때는 제가 없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제대로 한 밑천 잡으면 금화가 우리들의 품에 똬악!!!”
제르단의 강렬한 제스쳐에 칼라반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따로 돈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미리 말해주었다면 금화라도 조금 가져와봤을 텐데 아쉽게 되었군.”
“에헤이… 이거 아마추어처럼 왜 그러십니까. 그런 것쯤은 당연히 제가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후후”
제르단은 미리 가져다놓은 금화주머니들을 꺼내두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할 금화주머니를 하나, 칼라반이 사용할 금화주머니를 하나를 양 손에 들어올렸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칼라반이 드디어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다.
“훌륭한 친구였군.”
“아하하, 그렇게 바라봐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주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기대하지.”
그렇게 칼라반과 제르단은 도박장 안으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제르단은 도박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몸놀림으로 도박에 참여했으나 칼라반은 조용히 주변 상황부터 살폈다.
“제가 많이 따게 되면 오늘밤 한턱 거하게 쏠 테니 기대하십시오!”
“알겠다.”
제르단은 그때부터 물만난 물고기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도박에 열을 올렸다.
반면 칼라반은 도박보단 주변 상황을 계속해서 살피고 있었다.
도박장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평민들 같아보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개중에 몇몇은 평민으로 분장한 귀족들 같아 보였다.
“그래도 나름 변장을 하고 나온 것 같긴 한데… 그러기엔 표정이나 행동이나…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다른 건 속이질 못하는군…….”
그러나 자신이 아라곤에 있을 때만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긴 했다.
할리아른은 기사도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사내였다.
특히나 그는 술이나 도박과 같이 정신을 흐리는 것들을 경계했다.
영지민들이 건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도박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기 때문에 아라곤 내에서 도박과 같은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
물론 암암리에 어딘가에서 도박장이 열렸을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규모가 크게 벌어지진 않았던 것 같았다.
특히나 도박장에 귀족들까지 드나들다니…….
할리아른이 알았다면 더없이 노발대발할 일이었다.
“으… 으아아―!! 이럴 순 없어…! 분명… 분명 내가 이기는 판이었다고!!”
쿠당탕―!!
그때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앉아 있던 의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쯧… 도박판에서 지는 것이 하루 이틀인가. 졌으면 깨끗하게 돈을 내면 되지 뭔…….”
“시끄러! 네놈이 속임수를 부린 것은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계속 도박을 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데…….”
“뭐… 뭐라…!? 이게 돈을 잃었다고 생사람까지 잡네!? 내가 속임수를 썼다고!?!?”
“그럼 아니냐!?!?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 봐라!!”
살집 있는 중년인이 마른 체형의 사내를 멱살 잡아 올렸다.
중년인은 당장이라도 주먹을 한 대 날릴 것처럼 씩씩거렸다.
마른 체형의 사내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이거 왜 이래!? 도박에서 졌으면 순순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이게 무슨 추태야?”
“네놈이 속임수를 쓴 게 틀림없는데 순순히 받아들여지겠느냐!?”
“뭐!? 내가 속임수를 썼다면 증거를 대봐 증거를! 증거를 못 대겠으면 그냥 꺼지시던가!!”
“뭐… 뭐라…!? 꺼져!?!? 너 이놈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행동에 중년인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들은 뭐냐!? 썩 비켜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시면 곤란합니다. 돌아가시지요.”
“호오… 네깟놈들이 내 앞을 막아선다고!? 감히!?”
“저희도 먹고살아야 하는 입장이니… 더는 편의를 봐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물러나셔야겠습니다.”
사내들은 중년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두 팔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도박을 하고 있던 몇몇 사내들이 중년인의 곁으로 다가와 그들을 막았다.
“감히 나를 이따위 취급을 해!? 너희 같은 것들이……!!”
중년인은 자신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의 뒤에 서서 눈을 부라렸다.
행동거지로 보아 귀족인 것이 틀림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년인의 곁을 지키고 선 것은 그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삼엄한 시선으로 흑색옷을 입은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흑의인들은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익숙했는지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을 관리하는 분이 누구신지 잊으신 겁니까?”
“이익… 너… 지금 날 협박하려 드는 거냐?”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됐다! 그냥 내가 흥분해서 잠깐 실수한 것으로 해두지. 오늘은 그냥 물러가겠다.”
중년인은 함께 온 수행기사들과 함께 이만 몸을 돌려버렸다.
칼라반은 그 같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도박장이 누군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던 것인가…? 귀족으로 보이는 저 사내가 이렇게 쉽게 돌아설 정도라면… 보다 높은 귀족인가보군…….’
중년인 이후로도 여기저기 계속해서 소란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근처에 서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나서서 그들을 끌고 나가거나 중재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칼라반은 적당히 도박을 즐기는 척하며 제르단 쪽을 지켜보았다.
그는 어느새 술까지 가져와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제르단의 앞에 앉은 세 명의 사내는 은밀하게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제르단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때마다 빠른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빼돌리거나 더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제르단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도박을 진행했다.
그들의 손놀림이 빠르긴 했지만 칼라반의 눈마저 피해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를 눈치챈 것은 본인만이 아닌 것 같았다.
‘흐음… 뻔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속아주면서 도박을 하는 건가? 정말 특이한 사내로군…….’
분명 제르단의 시선이 그들의 손놀림을 쫓는 것을 칼라반도 확인했다.
그러나 제르단은 그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도박을 진행하고 있었다.
돈을 따면 아이처럼 기뻐하고 돈을 잃으면 금세 시무룩해져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 제르단을 지켜보다 칼라반은 적당히 도박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를 확인한 제르단도 재빨리 몸을 일으켜 칼라반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리가 재미없으십니까!?”
“흐음… 지루하군.”
“에에… 많이 잃으셨나보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오늘은 제가 좀 딴 것 같으니… 술값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만 따라오십시오!!”
제르단은 도박에서 따낸 금화주머니를 들고 거침없이 밖으로 나섰다.
그가 철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보다 많이 준 것 아닙니까?”
“괜찮아. 어차피 저 주정뱅이 녀석은 내일도 온다. 그러면 내일 다시 돈을 따가면 돼. 오늘 제법 돈을 가져갔으니 내일은 아마 더 많은 돈을 들고 올 거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를 해놓도록.”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참 신기해… 대체 저 주정뱅이 녀석은 어떻게 매번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오는 거지?”
뒤편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칼라반의 귓가에 들려왔다.
검기를 다룰 수 있고나서부터 그의 청각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해져 있었다.
분명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정도였지만 칼라반에게는 선명히 들려왔다.
“매번 많은 돈을 가져온다라…….”
칼라반은 눈매를 좁히며 제르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칼라반의 시선이 따가웠는지 제르단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칼라반과 제르단은 근처 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다시 거처로 돌아왔다.
제르단은 전과 마찬가지로 잔뜩 취한 채 걸음을 비틀거렸다.
“오셨습니까.”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운량이 칼라반을 맞이했다.
칼라반도 제르단과 함께 술을 마셨기에 그에게서도 술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이에 유운량이 놀라 칼라반을 바라보았다.
“술을 드신 겁니까?”
“제르단과 한 잔 했다.”
그러나 제르단과 다르게 칼라반은 아주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술을 마셨을 때 칼라반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만독지체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술도 독으로 인식한 것인지 자동으로 만독지체 스킬이 발동되어 술기운을 모두 해독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칼라반은 아무리 술을 들이마셔도 그저 쓴물만 먹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칼라반이 입에 술을 대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운량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만취한 제르단은 곧바로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운량이 입을 열었다.
“어떠셨습니까?”
“일부러 저런 행동을 보이는 듯한데… 아직은 이유를 모르겠군. 정말로 나태한 녀석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그런 척을 하는 것인지… 뭐, 며칠 더 같이 다녀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저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이야.”
“저도 이곳에서 여러 가지를 파악해보려 했습니다만… 정말 지나치게 간단한 임무들만 수행해 왔던 것 같더군요.”
“어떤 정도지?”
“단순히 아라곤 지역에서 일어난 몇몇 굵직한 정보들만 라그나로크에 보내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없으면 정보를 보내는 일도 하지 않더군요. 그 외에 별다르게 하는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하긴… 겨우 두 명만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었겠지… 그래도 이건 지나치게 소일거리로군.”
“아라곤 지역이 비록 제국 황실의 눈에 띄지 않는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곤 하나… 영지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입니다. 그런 아라곤 지역에 사람을 단 두 명만 두다니… 아무래도 라그나로크에서도 상당히 외면하는 곳인가 봅니다.”
“후훗… 그 말은 내가 완전히 그들의 눈 밖에 났다는 말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