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63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63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63화
#뒤바뀐 아라곤
“그런 셈입니다. 게다가 헤이홀즈에게서 연락 온 것을 보니 아라곤 지역은 라그나로크에서도 범죄를 저지른 자나, 쓸모없는 인사라 여겨지는 자들이 보내지는 곳이라 하더군요. 또한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블레이드 후보를 이곳에 보낸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이곳으로 보내진 거였군. 블레이드 후보 최초로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군께서 이곳으로 오셨다고 하니 헤이홀즈도 일이 잘못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을 내비치는 듯 보였습니다.”
유운량의 말에 칼라반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도 이곳 주변을 머물고 있는 기척들을 감지했다.
라그나로크에서부터 자신을 뒤따라온 자들이었다.
그들을 알아차린 것은 유운량도 마찬가지.
“저들이 신경 쓰이신다면 이곳에도 진을 설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저들은 당분간 내 행동들을 살펴보다 다시 돌아갈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지내실 생각이십니까?”
“뭐… 저들을 속이면서 따로 행동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지금은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저들이 안심하고 당분간은 내게서 온전히 시선을 거둘 수 있도록. 그리고 제르단을 따라다니면서 아라곤 영지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볼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허면 저는 무엇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영지를 둘러볼 동안 그대도 아라곤 영지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알아봐주었으면 좋겠군. 마냥 모른 척하기엔 할리아른과의 약속도 있고… 계속 신경 쓰여서 말이야.”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운량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파초선을 살랑살랑 부쳤다.
다음 날이 되자마자 제르단은 어김없이 칼라반을 찾아와 그를 데리고 나섰다.
이라벨이 그들과 함께 나서고 싶어했지만 제르단은 이것은 어른들의 일이라며 뒤따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유운량은 그들의 행동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제르단 역시 유운량에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구입니까?”
“내 심복.”
“심복이요? 호오… 역시 블레이드 후보님이라 그런지 충성스런 부하까지 데리고 다니나보군요!”
“후훗, 그렇지. 뭐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녀석이니까.”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공민 지부장님께서 그토록 신뢰하고 계신 겁니까?”
“음? 저 친구가 돈 관리는 꽤나 잘하거든. 덕분에 라그나로크에서 지낼 때에도 돈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이야…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그냥 독특한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또 그런 특출한 능력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제르단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척 말했다.
그리곤 이번에도 역시 칼라반을 데리고 아라곤 지역의 유흥가들을 돌아다녔다.
칼라반은 적당히 제르단의 의도를 받아주며 유흥가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는 쉼 없이 아라곤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탓인지 그가 알고 있던 아라곤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었다.
특히나 길바닥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모습에 칼라반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다.
부족하긴 해도 부랑자나 노숙자가 거의 보이질 않던 곳이 바로 아라곤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오고 꽃향기가 가득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제르단을 따라 다니는 곳마다 술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이전처럼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흐음…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길바닥에 내몰린 사람들이 많진 않았는데…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어째서 영지민들의 삶은 그때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거지?”
“호오… 그럼 공민 지부장님께서는 10년 전에도 아라곤 영지에 와보셨던 겁니까?”
“인연이 있어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랬군요… 사실 저도 이곳으로 온지 엄청 오래된 것은 아니라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여러 가지 상황?”
“넵! 그렇지만 그런 복잡한 얘기를 나눠봐야 뭣합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속편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제르단은 쾌활하게 웃으며 또다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그는 며칠 동안이나 칼라반을 데리고 술집과 도박장 등을 드나들었다.
칼라반은 단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이 제르단과 흥을 맞춰주며 함께 다녔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유흥가의 점주들도 서서히 칼라반을 알아보고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칼라반은 낮엔 제르단을 따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영지를 살피고 밤에는 유운량을 통해 아라곤 영지에 관한 것들을 보고 받았다.
“주군께서 가장 의문을 품었던 것이…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건만 어째서 아라곤 영지민들은 전보다 더욱 힘든 삶을 사는지 였지요? 이렇게 뒤바뀐 모습에 관해서도 궁금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이상하더군. 10년이 흘렀다곤 하지만 바뀌어도 너무 바뀐 모습이야. 특히나 할리아른을 포함한 아라곤 영지의 귀족들은 기사도 정신이 아주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대쪽같은 성격 탓에 주변 영지의 귀족들도 불편해 했었는데… 그런 귀족들이 머물고 있는 아라곤이 이렇게 변했다? 더더욱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군…….”
“그 말씀이 맞습니다. 우선 알아보니 현재 아라곤 영지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더군요.”
“두 개의 세력으로?”
“예. 한 곳은 영주인 기아스를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입니다.”
“신흥세력이라…….”
“신흥세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영주인 기아스와 네라도 백작입니다.”
“네라도 백작은 처음 듣는 이름이군.”
“원래부터 아라곤에 머물던 귀족은 아니라고 합니다. 전쟁 때 몰락했던 백작 가문인데, 떠돌아다니는 생황을 하다 이곳 아라곤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입니다. 본래 아라곤 영지의 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전 영주인 할리아른이 죽고 나서부터 기아스에게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기아스가 가장 아끼는 심복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라곤 영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 네라도 백작이 기아스를 등에 업고 나서기 시작하면서라고 하더군요.”
“흐음… 네라도 백작이라…….”
칼라반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홀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며칠 동안 제르단과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이름이긴 했다.
도박장이나 유흥가에서 쉬쉬하며 들려왔던 이름인지라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운량의 말을 듣고 나니 다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흥 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곳이 바로 워렌 백작을 중심으로 한 구시대 세력입니다.”
“워렌 백작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다. 늘 할리아른의 곁을 지켰던 인물이니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기아스와 워렌 백작과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틈을 이용해 네라도 백작은 젊은 기아스를 설득하여 아라곤 영지를 더더욱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었던 것 같습니다.”
“음… 우선은 기아스를 직접 보는 것이 좋겠군. 할리아른이 그토록 자랑했었는데 어떻게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궁금하고.”
“마침 조금 있으면 아라곤 영지에 커다란 행사가 열린다고 하더군요.”
“행사?”
“예. 격기장에서 열리는 행사인데… 검투사나 실력 있는 기사를 두어 기아스 영주와 대련을 펼친다고 들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의 행사를 열어 영지민들을 독려한다고 하더군요.”
“음… 일단 알겠다. 고생했다, 운량.”
“고생이랄 것 있겠습니까.”
운량은 담백한 미소와 함께 파초선을 펼쳐들었다.
바깥을 바라보며 살랑살랑 파초선을 부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절로 여유로움을 자아내었다.
* * *
쿠궁!
다부진 체격의 기사가 검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의 화려한 갑주는 햇빛을 받아 더욱 늠름해 보였다.
수많은 젊은 귀족들이 중앙의 이 기사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선망어린 눈빛과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금발의 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크로이어 황제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커다란 대전에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를 멀리까지 들리게 해주는 확성 마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였다.
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양옆으로 길게 나열해 있던 귀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 광활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금빛으로 수놓은 화려한 옷을 걸친 아크로이어 황제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좌중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저 멀리 중소귀족들은 몸을 바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이에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내비친 아크로이어 황제가 선단에 올라섰다.
그를 위해 마련된 커다란 의자는 아름답게 세공된 보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크로이어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안 온 것인가?”
양옆을 둘러보던 아크로이어 황제가 곁에 서 있는 가르망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가르망디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다. 찾으시는 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번엔 테오스 왕이 방문해주었습니다.”
“흐음… 그렇군… 테오스가 왔나.”
아크로이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테오스가 앞으로 나서며 아크로이어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크로이어도 직접 몸을 일으키며 그의 인사에 답해주었다.
비록 테오스가 자신의 산하에 있는 군주이긴 하지만, 그 역시도 왕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자리한 곳이니만큼 테오스의 위신도 충분히 세워주어야 했다.
“아크로이어님. 이번 황실 아카데미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이들입니다.”
가르망디는 귀족들의 앞으로 도열해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열 명의 남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중 단 한 명.
화려한 갑옷을 걸친 기사 한 명만 우직하게 서서 아크로이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크로이어의 시선이 마침내 그에게로 향했다.
쿵!!
기사는 아크로이어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미치자 그때서야 무릎을 꿇으며 아크로이어 황제에게 예를 표했다.
황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에게만 주는 특권이었다.
“그대인가보군. 이번 황실 아카데미를 월등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했다는 인재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크로이어의 말에 사내가 우렁차게 답했다.
그의 기개에 아크로이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바짝 얼어 있는 듯 보이지만 사내의 눈빛은 강렬함이 살아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바트로라고 합니다!”
“알겠다. 앞으로 우리 제국을 이끌어갈 인재이니만큼 내 기억해두도록 하겠다.”
“영광입니다!”
아크로이어의 말에 바트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귀족들은 두 눈을 빛내며 바트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껏 많은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아크로이어 황제가 이름을 기억해두겠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바트로의 이름은 황제가 기억하겠다 하였으니 앞으로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나 다름없었다.
아크로이어 황제 곁에 있던 테오스 또한 바트로를 눈 여겨 보는 듯했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동안 아크로이어 황제는 그들을 축하하는 말을 전했다.
앞으로 제국을 위해 헌신한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들을 주겠다는 내용들이었다.
그가 축하의 말을 모두 마쳤을 때 잠자코 있던 바트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황제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