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6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65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65화
#과거의 퇴물
관중들의 반응에 만족한 고위 귀족들이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테오스만은 달랐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테오스만큼은 고르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살핀 가르망디가 슬쩍 다가왔다.
“이렇게 좋은 날에 왜 그렇게 어두운 안색을 하고 계십니까.”
“후… 내가 그랬나…….”
“혹시 바트로 경이 걱정되어서 그런겁니까? 그런 거라면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바트로 경은 이번 황실 아카데미 졸업생 중에서도 가장 뛰어남을 자랑한 인물입니다. 그런 바트로가 질 리 없질 않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그래도 이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군…….”
테오스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테슬러 후작이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
“제 제자는 누구보다 강합니다. 그러니 불안치 마시고 믿어주십시오.”
“이런… 미안하게 되었네, 테슬러 후작. 내가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든 것 같군.”
“아닙니다. 과거 대전쟁 시대를 몸소 겪으신 분이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테슬러 후작은 은근히 테오스의 반응을 비웃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평소 테오스란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가르망디로선 사뭇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르아가 대체 어떤 자이길래 테오스 왕께서 그런 얼굴을 보이시는 겁니까? 아크로이어 황자님을 가까이서 모시긴 했지만… 저는 사실 칼라반과 그들 군단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고르아는…….”
쿠르르릉―!!
그때 두꺼운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선 온 몸을 쇠사슬에 묶인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왔다.
그의 등장에 장내가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른 것보다 사내의 어깨에 드러난 문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
큼지막하게 새겨진 불꽃의 문양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흑염의 문장…….”
“저것은… 솔 기사단의……!?”
“아아…….”
장발의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고르아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체격에 비해 조금은 야윈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드러내는 엄청난 존재감만큼은 지켜보는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고르아를 처음 보는 귀족들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고르아란 사내는 결코 평범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바트로의 상대가 설마하니 솔 기사단의 일원일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제국민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고르아에게 다가가 그를 묶고 있던 쇠사슬들을 하나 둘 거두어들였다.
“저자가 바로 고르아…….”
고르아를 처음 마주한 것은 바트로 또한 마찬가지.
막상 고르아와 마주서고 보니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게다가 고르아는 정작 자신의 앞에 있는 바트로에게는 시선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아크로이어 황제와 테오스 왕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테오스가 무거운 침음성을 삼켰다.
“누… 눈빛… 부터가 다르군요… 눈빛을 마주하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당연하다… 칼라반이 이끌었던 13군단의 병력은 총 5만. 그는 우리들과는 다른 군사 제도를 사용했다.”
“다른 군사 제도요?”
“칼라반이 고안해낸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는데… 숫자로 짝을 지어 십인장, 백인장, 오백인장 등의 기사장들을 두었다.”
“그럼 저 고르아란 사내는…….”
“고르아의 위치는 오천인장이다. 칼라반의 13군단 내에서 단 열 명밖에 없는 오천인장… 그중 한 명이 바로 거력의 기사 고르아다.”
“아…….”
테오스의 소개에 가르망디도 다시 한 번 고르아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는 깊은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고르아를 지켜보던 테슬러 후작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봤자 구시대의 기사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저자는 오랫동안 감옥에 감금되어온 자. 몸도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그렇네… 그럴 수 있겠지.”
“거기다 사실 대전쟁 시대를, 아니 칼라반의 군대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저희들로서는 사실 소문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 늘 의구심을 품어오기도 했습니다. 으레 그렇듯, 소문은 과장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저 또한 많은 분들이 칼라반 군단의 잔존 병력들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
테슬러 후작의 말에 테오스는 그저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결국 테슬러 후작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 터였다.
사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귀족들이 아직까지도 칼라반이라는 망령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그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칼라반이 다시금 살아 돌아와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눌 것 같은 공포와 불안감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때 어떻게 해서든 칼라반 휘하 만인대장들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그들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쫓았지만 그들은 귀신과도 같이 제국군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버리고 말았다.
칼라반 군단의 많은 간부들을 붙잡거나 사살했지만 정작 만인대장은 단 한 명밖에 잡아들이질 못했다.
“후우… 그래 그나마 한 명이라도 붙잡아서 다행이로군…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저들이 언제든 칼을 갈고 복수해 왔을 수도 있었을 거야… 붙잡힌 그 한 명이 그들의 움직임을 조이는 인질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니…….”
칼라반의 성향을 따라 솔 기사단 역시 동료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이들이었다.
만약 허튼 행동을 한다면 그들의 동료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10년 동안이나 그들도 잠잠히 지내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덕분에 마찬가지로 제국 황실 역시 칼라반과 관련된 자들을 함부로 사형시키거나 할 수 없었다.
자칫 그들의 죽음이 잘못해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칼라반 군단과 솔 기사단의 괴물들이 언제든 황실에 검을 들이밀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그만큼 칼라반의 잔존 세력들은 아직까지도 이들의 폐부를 위협하는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아… 아닐세.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야.”
가르망디의 물음에 테오스는 손사래를 치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 테오스를 보며 테슬러 후작은 남몰래 고개를 젓고 말았다.
“나는 디키뮬리 가문의 바트로다―!!”
그때 연무대의 중앙에 있던 바트로가 패기 있는 모습으로 외쳤다.
갑작스럽지만 그의 호기로운 외침에 관중들도 함께 환호를 보냈다.
아크로이어 황제나 다른 고위 귀족들도 흐뭇한 미소를 띠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면 고르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트로는 고르아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질 않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나 바트로를 보아라! 나는 황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몸이다. 그대의 상대로 부족함은 전혀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과거의 퇴물일뿐인 당신에게 나는 과분한 상대일지도.”
그러나 이번에도 고르아는 자신이 아닌 아크로이어 황제와 테오스 왕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는 누군가를 찾듯 고개를 돌렸다.
고르아가 시선조차 주질 않자 바트로도 이번엔 발끈하고 말았다.
바트로를 상대조차 않는 고르아의 행동에 장내 관중들도 술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주목 받아야 할 자신의 무대가 고르아 하나 때문에 망쳐질 순 없었다.
이를 악물던 바트로는 이내 조소를 지었다.
“훗… 그대에 대해서는 얼추 들었다. 보이는 덩치처럼 무식하게 힘만 센 기사였다지? 검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자가 이끄는 군단이었으니… 당신 같은 사람도 기사장을 할 수 있었나보군.”
바트로는 일부러 어이가 없다는 과장된 몸짓까지 보여주었다.
그 순간 드디어 고르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이에 바트로는 때는 이때다 싶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모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저자는 단지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얼어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눈앞의 반역자는 단지 과거의 퇴물일 뿐!! 언제까지 기억에 썩혀둘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제국은 그 이후 수많은 번영을 이룩해냈으며 그때보다 더욱 강한 기사들을 배출해내었습니다. 그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번 황실 아카데미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받았습니다. 과감히 말씀드리지만 황실 아카데미 안에선 저의 경쟁자라 불릴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의 기억을 발목잡고 있는 저 과거의 퇴물을 철저히 무너트리고! 제 실력을 입증해 보임으로서 신세대의 기사들도 결코 과거에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더욱 낫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고르아는 말없이 바트로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듯하자 마침내 바트로도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신의 도발이 먹혀들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친 것이다.
스릉―!
그는 고르아를 향해 검끝을 겨누었다.
“칼라반이라 했던가! 나는 늘 생각했다. 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를 기사라 부를 수 있지? 또한 그런 한심한 기사의 밑에 있던 그대 따위에게도! 나는 결코 질 수가 없을 것 같군.”
“우오오오――!!”
“와아아아!!! 역시 젊음의 패기로군!!”
“크하하하!!!!! 제국의 미래가 밝다!!”
바트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광신도라도 된 것처럼 바트로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트로는 단 한 순간에 얼어붙어가던 장내의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후훗, 제법이로군.”
“호오… 자신감이 좀 지나치긴 하지만 그것은 아직 젊으니 그렇다 치고… 생각보다 뛰어난 인재가 나온 것 같군요. 사람들을 휘어잡는 웅변술까지 갖고 있다니…….”
“좋은 달변(達辯)이긴 했는데 검술 실력도 저 말솜씨만큼이나 뛰어났으면 좋겠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트로는 제가 애정으로 키운 제자입니다. 그러니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테슬러 후작의 어깨가 한껏 치솟았다.
곁에 있던 고위 귀족들은 부러움과 시기가 한데 섞인 시선들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시선이 느껴지자 테슬러 후작은 더욱 자랑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실 고르아와의 대결도 자신이 낸 아이디어였다.
바트로도 테슬러 후작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흔쾌히 따라주었다.
마음 같아선 테슬러 후작 본인이 직접 나서서 고르아를 상대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본인의 위치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치가 되어버렸다.
가볍게 나설 수 없는 만큼 묵직한 체통을 유지해야 했다.
더욱이 자신은 고르아와 같은 반역자들과 대결을 펼칠 이렇다 할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이 키운 제자 바트로가 고르아를 쓰러트린다면, 자연스레 그런 바트로를 가르친 자신 또한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 이제 바트로가 고르아를 이기기만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자… 보여주거라 바트로. 과거의 퇴물 따위 쉽게 죽여 버려라. 그리고 나서 오늘의 명성을 얻는 거다.”
테슬러 후작은 누구보다 눈을 반짝 거리며 고르아와 바트로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