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7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71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71화
#늑대 부족
늑대가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산악 민족은 조용히 칼라반을 응시했다.
칼라반은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몰라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전투력 52만.
이 수치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수치도 아니었다.
단언컨대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상대임은 틀림없었다.
“흐음…….”
상대도 칼라반을 의식한 것인지 다른 움직임은 보이질 않았다. 칼라반의 시선이 그 뒤편으로 향했다.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과 다르게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들은 필요한 행동들만 최소한으로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곁에 있는 영지민들에게 위협만 가할 뿐, 직접적으로 손을 대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자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인지, 그들이 기아스 군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도움을 줄 생각도 없어보였다.
“부족이 다른 건가.”
칼라반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눈앞에 있던 산악 민족이 반응했다.
다만 한 가지 칼라반의 눈에 이상하게 비춰졌던 것은 마치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이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을 감시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들이 더 강한 힘을 지녔음에도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칼라반이 슬쩍 기아스 군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나 눈앞에 있는 자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도 칼라반에게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칼라반이나 다른 이들이 자신의 부족을 건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다가왔던 것 같았다.
“후우… 살벌하군요…….”
제르단이 어느새 칼라반의 가까이로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조금 전 산악 민족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저 자를 적으로 돌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예? 하지만 저들은…….”
“영지민들을 무참히 죽이고 있는 것은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들이다. 조금만 지켜봐도 알겠지만 늑대 가죽을 쓰고 있는 산악 민족들은 영지민들을 일절 건드리지 않고 있다. 마치 미리 명령을 받은 것처럼 말이야.”
칼라반의 말에 제르단도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늑대 가죽을 쓴 산악 민족들은 필요한 것들을 옮기는데 주력했다. 전투보다는 짐꾼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곳곳에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한 영지민들이 발견되어도 못 본 척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니 우리도 굳이 저들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칼라반의 시선이 곰 가죽을 쓴 산악 민족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마치 도적떼처럼 눈앞에 보이는 영지민들은 닥치는 대로 죽이며 약탈을 가하고 있었다.
그들을 막아서기 위해 왔던 기아스 군이 오히려 산악 민족들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다.
“크학―!”
곰 가죽을 뒤집어 쓴 우람한 체격의 사내에게 일격을 허용한 기아스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잽싸게 몸을 일으켜 다시 검을 겨누었다.
“그저 무식한 놈들인 줄로만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하지만 나 기아스가 있는 한 너희들은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
그가 눈에 불을 켜며 눈앞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곰 가죽을 쓴 사내가 크게 웃으며 그를 비웃었다.
“크하하!! 웃긴다. 웃긴다 이 제국놈. 약한 주제에. 입만 살았다.”
어눌하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제국어였다.
그의 웃음에 다른 산악 민족들도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조롱 섞인 그들의 웃음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뭐가 그리 웃긴 거냐, 이 개자식들……!”
“크윽… 젠장… 이 자식들 생각보다 강하잖아……!”
“으으…….”
병사들과 기사들의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마음 같아선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저 산악 민족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심지어 곰 부족은 놀라운 근력을 드러내며 기아스 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동물의 가죽을 아무렇게나 입고 있는 산악 민족과 다르게 단단한 갑옷까지 걸친 기아스 군이건만, 그러한 것들이 무색할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전열을 정비해라!! 오른편에서 오는 녀석들을 상대해!! 그리고 너희! 그렇게 뒤로 물러나면 그쪽의 방어선이 비어버리잖아!! 제길… 쓸모없는 녀석들…! 검투사 군단을 데려왔어야 했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기아스가 그들을 향해 다급한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진형은 붕괴되어버린 뒤였다.
그들은 막상 마주하게 된 산악 민족들의 힘 앞에서 점차 공포를 맛보고 있었다.
게다가 마냥 미개한 자들이라 무시했던 것과 다르게 산악 민족들은 개개인의 전투 센스가 뛰어난 편이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그것이 곧 전술이 되어가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넌. 나랑 놀자.”
그때 우람한 체격의 사내가 기아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기아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내 이름. 우라쿠. 곰 부족이다. 너 죽이고. 왕께 사랑받는다.”
“개소리 하지마라!!”
기아스는 자신을 막아선 우라쿠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우라쿠에게 닿지 못했다. 연신 휘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우라쿠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여유롭게 기아스의 검을 피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아스는 더욱 울분이 치밀었다.
“이 자식…! 그래, 지금부터는 최선을 다해 상대해주겠어!! 병사까지 신경 쓰느라 제대로 상대해주지 못했더니 아주 날 만만하게 보고 있네.”
기아스는 그동안 연마해온 검술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했다.
그가 거친 기세를 보이며 우라쿠를 몰아붙이는 상황을 보이자 기아스 군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슈각―!
마침내 기아스의 검이 우라쿠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이에 기아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봤냐? 너 따위는 내 상대가…….”
그가 자신만만해 하는 얼굴을 보이며 한 마디 하려는 때, 큼지막한 주먹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파앙!!
우라쿠의 주먹이 기아스의 안면부를 때렸다.
“크헉……!”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기아스가 비명을 토해내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너. 죽인다.”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자 우라쿠의 분위기가 바뀌고 말았다. 그의 눈빛은 맹수의 눈빛처럼 사나워져 있었다.
살기를 머금은 우라쿠가 기아스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눈빛을 본 기아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영주님!! 피하십시오!”
“영주님을 지켜라!!”
잔뜩 성난 우라쿠를 막기 위해 쓰러진 기아스의 앞으로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라쿠와 산악 민족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콰직!!
스각! 콰지직!!
산악 민족들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며 기아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나마 진형을 갖추고 산악 민족들을 상대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겠지만, 이미 그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으아아아―!!”
심지어 목숨에 위협을 느낀 기아스가 겁을 집어먹으며 등을 보이기까지 했다.
지휘관인 그가 등을 돌려버리자 기아스 군도 오합지졸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들 역시도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산악 민족들로부터 패주하고 말았다.
기아스 군이 퇴각하기 시작하니 곰 가죽을 쓴 산악 민족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아스 군을 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본격적으로 영지민들을 약탈해갔다.
“최악이로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칼라반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한줄기 기대를 걸었던 것마저 무너져 내려 버린 느낌이었다.
“주군께선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만약 이 일이 정말로 하르스마이어라는 블레이드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번 일에 나서게 되는 순간 다른 이들로부터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래. 우선 조용히 충분한 힘을 키우고 그 후에 움직임을 갖으려는 것이 내 계획이지.”
“그랬지요.”
“하지만 이제부턴 계획을 바꿀 생각이다. 운량.”
칼라반이 검을 집어 들었다.
그가 먼저 발걸음을 떼니 제르단이 화들짝 놀라 칼라반의 곁으로 달려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일에 하르스마이어 블레이드님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니까요! 만약 여기서 산악 민족들을 상대하며 기아스 영주를 돕는다면 하르스마이어님에게 찍힐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 내가 라그나로크에 들어간 것은 우선 몸을 숨기기 위함이 컸지, 그들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라그나로크가 원하는 것이…….”
칼라반이 말을 이어가려는 때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치 챈 칼라반이 운량과 제르단을 뒤로 하고 앞으로 섰다.
“피해라!”
파쾅!!
칼라반이 검을 드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차가운 칼날이 목을 파고들 뻔했다.
그들을 향해 달려든 이는 다름 아닌 조금 전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산악 민족인이었다.
“라그나로크와 블레이드…! 너희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여인?”
커다란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탓에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여인의 것이 분명했다.
칼라반의 시선에 살기 가득한 그녀의 눈이 들어왔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칼라반을 죽일 것처럼 분노에 물들어 있었다.
“너희들 때문에 내 오라버니가…! 결코 용서할 수 없어!”
파카앙!!
카라랑!!!
그녀의 검은 빠른 속도로 칼라반을 쫓았다. 마치 칼라반의 모든 것들을 물어뜯으려는 것처럼 그녀의 검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속도도 워낙 빠른데다 실려 있는 힘도 만만치 않아 칼라반으로서도 그녀의 검을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그 또한 그동안 몬스터들을 상대로 숱한 실전 경험을 늘려왔었다. 칼라반은 반격을 가하기 위해 내기를 끌어올렸다.
“갑자기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칼라반의 검에 검기가 흘러나왔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수라월령보 스킬을 발동합니다.]칼라반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검이 잔상만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비류잔월검 스킬을 사용했습니다.]콰가강―!!
콰랑!! 콰라랑!!!
폭발적으로 몰아치는 쾌검에도 여인은 능숙하게 검을 피해내거나 최소한의 방어를 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칼라반도 두 눈을 부릅떴다.
제 아무리 검기를 쏟아낸다 해도 상대의 몸에 닿지 못하면 그저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움직임 때문에 칼라반의 검은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반면 상대는 차분한 시선으로 칼라반의 빈틈을 찾았다.
쉬릭―!
스각!!
그녀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자마자 칼라반의 팔뚝에 상처가 생겨나고 말았다.
“……!”
분명 검 끝을 완전히 피해냈다 생각했는데 팔뚝에 상처가 생겼다. 본능적으로 팔을 뒤로 빼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잘려나갈 뻔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태 이상이 감지되었습니다.] [만독지체 스킬이 발동되어 독을 해독합니다.]이어지는 메시지에 칼라반은 그녀의 검 끝을 살폈다.
푸른색과 녹빛이 묘하게 반들거리고 있었다.
“독을 발라놓은 건가…….”
다행이 칼라반의 몸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한 독은 아니었다.
만독지체 스킬 덕분에 몸 안으로 스며든 독은 곧바로 해독되어지고 있었다.
치익……!
칼라반의 상처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독이 땅에 떨어지자 곧바로 산화해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여인도 눈빛을 달리했다.
방금 칼라반의 몸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독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독이 통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