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7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74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74화
#그들의 계획
칼라반의 말에 로테시란스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온 수하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로테시란스는 어이가 없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지…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잘못 들은 거겠지요……?”
“똑똑히 들었을 거다.”
“후우…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이렇게나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신 줄은 몰랐군요… 설마 그런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실 줄이야…….”
로테시란스가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뒤에 서 있던 헤이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칼라반의 태도는 진지했다. 그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테시란스의 시선이 칼라반의 뒤편에 있는 제르단에게로 향했다. 어째서 지금껏 이런 애송이를 죽이지 않았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제르단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것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태도에 로테시란스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쨌거나 블레이드님의 뜻은 곧 라크나로크의 뜻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하르스마이어님의 명령을 받아 이번 일을 주도하고 계신 분은 하이데님이시니… 부디 이외의 다른 마찰은 빚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이번 일은 공민님과 헤이나님도 모르고 저지르신 일 같아 위에 보고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서도 이제는 본인의 임무에만 집중해주십시오.”
로테시란스는 계획을 바꾸어 그들에게 빚을 지워놓는 것처럼 해두기로 했다.
어차피 작금의 상황에서 이들에게 딱히 받아낼 것도 없었으니, 나중이라도 이 일을 빌미로 삼을 수 있도록 남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칼라반의 현 위치를 상기시켜주었다.
“물론 그럴 생각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쓸데없는 학살을 자행하지만 않는다면.”
“쓸데없는 학살이라니요… 이왕이면 이유 있는 학살이라고 칭해주십시오.”
“그대 얼굴에 나타난 희열은 그저 쾌락을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진 않는데 말이야.”
칼라반의 말에 로테시란스도 아차 싶었다.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드러냈던 것이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제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께 경고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 일에 또다시 방해를 하신다면… 그때는 저희 측에서도 가만히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로테시란스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는 본인의 할 말만 마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뒤에 있던 로테시란스의 수하도 칼라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이곳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운량이 먼저 입을 떼었다.
“저렇게 보내도 되겠습니까? 저들의 눈빛으로 보아 주군께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아보였습니다만… 이대로 두면 이곳에서의 일이 하르스마이어에게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그… 이봐요, 지부장님…! 대체 어쩌자고 그런 얘기를 한 겁니까?! 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르스마이어님에게 만큼은 찍히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그렇게 대놓고 적대시 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 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운량과 제르단의 시선이 동시에 칼라반에게로 향했다.
묵묵히 저들을 바라보던 칼라반이 몸을 돌렸다.
“운량.”
“예.”
“내가 정말 죽이고자 하는 것은 나와 동료들, 수하들을 배신한 자들뿐이다. 내가 검을 겨누고 싶은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제국민들이 아니야.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운량이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러나 제르단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칼라반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대로군. 그렇다면 그대가 보기엔 어떻지? 이것은 나의 치기 어린 욕심인가?”
“주군께서 나아감에 있어 필시 희생은 따를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주군께선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군께서 그들의 희생을 최대한으로 줄이고자 노력하신다면 저 또한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그 언젠가 희생을 감행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마땅히 나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훗… 그대는 나를 어리석다하지 않는군.”
“오히려 무자비한 피의 길을 걷는 것보다 이쪽이 저의 마음도 편안할 테니까요.”
“좋다. 그렇다면 우선 하르스마이어의 계획부터 막아야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헤이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허리에 두 손을 올리며 칼라반의 앞에 섰다.
“뭐야 지금? 너 설마 하르스마이어님과 척을 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필요하다면 그럴 생각이다.”
“하!? 지금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알기는 해? 그래, 뭐 어차피 지금 네 수준으로는 하르스마이어님이 신경도 쓰지 않긴 하겠지만. 만약 그분이 본격적으로 널 죽이려 나선다면? 하르스마이어님이 자그마한 군대만 파견해도 너 정도는…….”
“네가 있질 않나?”
“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헤이나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웃음 짓는 칼라반의 모습에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괜히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지금이 장난칠 때야!?”
“후훗. 걱정마라. 네 말대로 하르스마이어는 지금의 날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일부러 많은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과 같이 생활해왔던 거니까.”
“뭐?”
“말 그대로다. 덕분에 이제는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해졌지. 나를 감시하거나 조사하는 자들을 달고 움직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
“후후. 그럼 주군께선 무엇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동안 수련에 매진했으니 이제부터는 함께 할 자들을 모아볼 생각이다. 헤이나의 말대로 지금의 나 혼자서는 하르스마이어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일 테니. 그 이상의 존재들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좋은 생각이시군요. 그리고 혼자라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주군의 곁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유운량은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다른 이들이 머뭇거릴 때 한니발이 앞으로 나섰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민님을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이상 어떤 길을 걸어가시던 함께 하겠습니다. 그때의 맹세는 제 진심이었으니까요.”
“저도!! 저도 함께 할래요!!”
한니발을 따라 이라벨도 손을 들고 나섰다.
그러자 제르단이 이라벨을 말렸다.
“아서라 꼬맹아. 지금 이게 무슨 대화인줄은 알고 떠드는 거냐?”
“네! 공민님께서 나쁜 놈들을 혼내준다는 말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알아들었는데…….”
“뭐!? 아하하!!아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이라벨의 순수한 말에 모두가 웃음 지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헤이나가 슬쩍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는데.”
“뭐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막말로 당장 하르스마이어님의 군대가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산악 민족들이 대규모로 들이닥칠지도 모르잖아?”
“이번 일의 주된 말은 산악 민족입니다. 그러니 하르스마이어는 결코 자신의 수족들을 이 일에 전면적으로 내세우진 않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하르스마이어는 아직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벌써부터 제국의 눈에 띄기 시작한다면 곧 그들의 표적에 오를 테니까.”
운량의 말에 칼라반이 동의했다. 유운량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선은 산악 민족들의 움직임을 막아내면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하르스마이어의 계획에는 많은 차질이 빚어질 겁니다.”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
그때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쪽에 묶여 있던 늑대 부족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칼라반쪽을 향해 있었다.
그동안의 대화와 저들의 행동들로 비추어 보건데 이곳 무리의 중심은 칼라반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대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말해봐라.”
그동안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여인이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해왔다. 이것은 칼라반으로서도 반길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아직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하르스마이어라는 자와 무슨 관계지?”
“아무 관계도 아니다.”
“거짓말 마. 너희가 같은 라그나로크라는 것쯤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후의 얘기도 들었지 않나? 우리는 하르스마이어가 하려는 일을 막을 생각이다.”
“어렵게 말하려 들지 마. 너희는 하르스마이어와 같은 편이냐 적이냐. 그것만 답해.”
“굳이 그렇게 말하자면…….”
칼라반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적이다.”
그의 단호한 답에 여인이 처음으로 오묘한 표정을 보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칼라반의 눈동자를 살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칼라반의 눈동자엔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였다.
“…틀림없나보군. 좋다. 그렇다면 믿겠어.”
“좋을 대로. 그보다 그대가 어떻게 우리를 돕겠다는 거지?”
“나의 이름은 세오나. 늑대 부족 족장인 세루라의 딸이다.”
“족장의 딸이라고?”
“본래 그라다 산에는 많은 산악 민족들이 살고 있어. 그 중에서도 세 개의 커다란 부족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곰 부족과 독수리 부족, 그리고 우리 늑대 부족이다. 어느 한 곳이 싸움을 일으키면 다른 부족이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공연히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그러다 그들이 나타난 거다.”
“그들이라면…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을 말하는 건가?”
세오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놈들은 갑자기 그라다 산에 나타나 곰 부족과 거래를 했다. 곰 부족의 족장 우라후가 그라다 산의 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한 거다.”
“칸?”
“그라다 산을 지배하는 부족장을 말한다.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은 야비한 수를 써서 우리 부족과 독수리 부족민들을 함정에 빠트렸고… 그 결과 현재 곰 부족이 다른 부족들을 모두 지배하에 두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세오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 칸이라는 자는 곰 부족의 족장 아라후라는 말이로군?”
“흥! 누가 그런 무식한 놈 따위를 칸으로 인정해? 놈은 그저 본능에 충실한 짐승 같은 놈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 그자는 결코 칸이 될 수 없다.”
“흐음… 그렇군.”
“게다가 곰 부족의 족장인 아라후는 그라다 산 최강의 전사가 아니야.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라다 산 최상의 전사는 우리 부족의 세키라드다.”
“너보다도 강한가?”
“당연하지. 세키라드는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그런데 어째서 그를 필두로 놈들에게 저항하지 않는 거냐. 혹시 전쟁에서 패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우라후와 대륙인들은 함정을 이용해 우리들의 어머니를 납치해갔다. 놈들은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다 말했다. 어머니는 현재 우리 늑대 부족의 족장… 족장인 어머니가 저들의 손에 잡혀 있으니 우리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을 잇는 세오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곰 부족 손에 붙잡혀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놈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도록 둘 수 없다. 그렇기에 놈들의 말을 거절할 수 도 없어…….”
“그럼 지금 그 세키라드라는 자는 어디에 있는 거지?”
“세키라드는 두 손과 발이 묶인 채 곰 부족 영역의 골짜기 깊숙한 곳에 가둬져있다. 놈들이 나를 붙잡아가려 하자 세키라드가 대신 자처해서 인질이 되었다.”
“흐음… 그렇다면 세키라드라는 자와 늑대 부족의 족장이신 당신의 어머님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얘기로군요. 그렇지요?”
운량의 정리에 세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두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늑대 부족이 너희를 도와줄 수 있다. 우리 늑대는 강해. 결코 무식한 곰 부족에 뒤처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