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08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8화
“그렇습니다. 아포칼립스 님은 친구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셨습니다. 제가 아포칼립스 님께 그동안 왜 나서지 않으셨냐고 불평도 해보았지만…….”
“정령왕인 녀석은 함부로 인간 세상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
“맞습니다… 아포칼립스 님도 칼라반 님처럼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내셨지요.”
“너를 보냈…다고……?”
“사실 제가 자청해서 가겠다고 했습니다만… 이렇게 칼라반 님의 얼굴을 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클레이는 칼라반의 두 손을 어루만졌다.
“어째서 널 여기까지 보냈다는 말이냐?”
“아포칼립스 님께서는 제게 정령의 길을 열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뭐!? 인간의 몸으로 정령의 길을 열었다가는……!”
“맞습니다.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 아포칼립스 님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죽어가는 목숨이었습니다. 아니, 죽어가는 목숨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칼라반 님을 다시 한번 뵐 수만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한다고 했을 겁니다!”
레클레이가 일부러 씩씩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칼라반 님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죽을 때가 다가오자 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이라니… 무슨 선택?”
“정령의 길을 이곳에 열어두고 칼라반 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자는 선택이었습니다.”
“아아…….”
그렇게 천 년이 지났다는 소리였다.
공민에게는 게임 세상 속이었지만 레클레이에게는 천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 상상하기조차 힘든 긴 시간 동안 오직 자신만을 기다리며 백골이 되어서도 정령의 길을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그의 충정에 공민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후후.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친구와 함께 왔다고.”
레클레이가 손짓하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자가 네가 말한 그 사람이냐?”
붉은 머리칼에 호남형으로 생긴 사내가 팔짱을 끼며 공민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레클레이의 대답에 그가 한번 더 공민을 살폈다.
“듣던 것과 다르게 너무도 평범한데? 이렇게나 약한 자가 정말 너의 대장이었다는 말이냐?”
사내의 물음에 레클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대장님은 그 누구보다 강하신 분이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그 속은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강하신 분이야.”
레클레이가 공민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의 진심어린 말투에 붉은 머리 사내가 포권을 말아 쥐었다.
“그렇군! 이거 실례했소. 본좌는 아수라라고 하오.”
“아수라……?”
처음 보는 사내였지만 이름만큼은 익숙했다.
라스트 로열 무협 세계관에서 마교의 교주인 천마와 함께 최강으로 거론되는 사나이.
그 사내의 이름이 바로 아수라였다.
“호오… 나를 아는가?”
아수라가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지며 흐뭇해했다.
“많이 듣긴 했습니다.”
“크하하하! 그것 보아라, 친우여! 내가 무어라 했느냐!! 나의 이름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후세에 남겨져 있다고 하질 않았더냐!? 그렇다면 나를 따르는 수라교 녀석들도 잘 있는 것이오? 아니면 혹시 나의 염원인 천하제패를……!!”
아수라가 희망에 찬 눈빛으로 공민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아수라에 관련된 무공을 익힌 유저들이 있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전해 듣지 못했다.
물론 아직 공민이 라스트 로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찾아보면 있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혀 듣지 못했었다.
때문에 공민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뭐… 뭣이…!? 그렇다면 천마놈의 마교는?”
“마교는 아직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교의 무공을 배운 유저들이 몇몇 던전을 주름작고 있다는 얘기를 이원도 의사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이…이럴 수가!!!! 본좌의 수라교가 아닌 마교 따위가 세상에 활개치고 다닌단 말인가!?!?”
적잖이 충격이었는지 아수라는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했다.
휘콰아앙―!!
그때 던전이 요란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띠링!
[백림산의 동굴 던전이 모든 마력을 소진해 폐쇄 시간에 진입합니다. (폐쇄 15분 전)]안내 메시지를 본 공민의 표정이 굳어갈 때 레클레이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칼라반 님.”
레클레이는 반가움은 잠시 잊고 자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런……!”
“저 뒤편에 보시면 정령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시면 다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저는 어차피 죽은 몸입니다. 이곳에 남아 이렇게 칼라반 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인 일입니다. 그리고 칼라반 님을 성공적으로 돌려보낸다면 아포칼립스 님께도 면목이 서겠지요.”
레클레이가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직하게 착한 놈… 그대는 정말 복 받은 사내요. 이런 사내를 수하로 두었으니…….”
아수라가 곁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공민은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이곳을 유지하고 있던 우리 둘의 마력이 사라졌으니… 곧 동굴이 무너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
레클레이가 복잡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칼라반 님이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라는 말은 아포칼립스 님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포칼립스 님께서 다시 돌아오면 이곳, 한국이라는 세계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꼭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신중히 선택하셔야 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공민을 보며 레클레이가 한번 더 입을 열었다.
“어려우시겠지만… 전적으로 모든 것은 칼라반 님의 선택이니 저희들은 그 어떤 선택도 존중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레클레이!”
공민이 힘차게 레클레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고개를 숙였던 레클레이도 그를 올려다보았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나의 선택은 오로지 단 하나!! 가족들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거기엔…….”
데포르의 이름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애써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복수를 해야겠다. 너와 나를 포함해 아크로이어의 농간에 넘어간 나의 동료들을 위해!!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만약 아크로이어가 내 여동생까지 건드렸다면… 놈은 물론 놈의 가족들까지 모두 내 손에 죽을 거다.”
공민은 서릿발 같이 차가운 분노를 드러내었다.
섬뜩할 정도로 느껴지는 그의 살기에 레클레이는 물론 아수라도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크하하하!! 마음에 드는 눈이로군. 그대라면 자격이 있소!”
휘잉―!
아수라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허공섭물(虛空攝物)의 수법으로 의자 뒤에 있던 목함이 딸려왔다.
“이것을 가져가시오!”
목함이 열리자 퀴퀴한 환약 냄새와 함께 낡은 책들이 보였다.
띠링!
[무림의 전설 아수라의 유품을 습득하셨습니다.]“이게 무엇입니까?”
“나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물품들이오! 이 힘을 사용하고 안 하고는 그대의 자유! 마찬가지로 이 힘을 이용해 어떤 삶을 이어가는 것 또한 그대의 자유!”
웅혼한 내공이 실린 아수라의 말에 대기가 요동치고 대지가 흔들렸다.
“허나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아주 정확한 편이지. 그대는 나의 힘을 결코 허투루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믿소! 나의 친우 레클레이의 상관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인품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말이오!”
아수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건넨 물품들이 공민의 인벤토리에 귀속되고 말았다.
쿠르르릉―!!!
콰르릉!!
동굴의 이곳저곳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결정을 내리셨다면 서두르시지요.”
레클레이는 곧바로 정령의 길이 있는 게이트로 공민을 안내해주었다.
황급히 이동하던 중 공민은 옆에 있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까 이 조각상들은 왜 공격하지 않은 거지?”
“그야… 동료들을 공격할 순 없질 않습니까.”
“동료?”
“예. 이곳에서 죽기 전 전장에서 함께 죽어갔던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만들다보니 순식간에 저만큼이나 조각되어지더군요.”
“허면 왜 하나같이 얼굴이 없는 거냐?”
“조각하지 못한 겁니다.”
“그건 어째서…?”
“그들이 어떤 얼굴로 죽어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슬픔인지… 환희인지… 분노인지… 괴로움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 나의 얼굴도 알 수 없었나?”
“죄송하지만 저 조각상 중에 대장님은 안 계십니다.”
“……?”
이유를 묻는 듯한 얼굴에 레클레이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대장님은 이렇게 살아 계시질 않습니까!? 저의 마음속에서도 늘 살아계셨습니다! 그러니 대장님은 저들의 틈에 낄 자격이 없으십니다!”
레클레이의 마지막 말에 공민은 가슴 한 켠에 묵직한 한 방을 먹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자!! 이제 곧 정령의 길과 함께 이곳이 무너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서 떠나십시오!!”
레클레이가 공민의 등을 떠밀 듯 말했다.
“고맙다. 레클레이…….”
“이 정도 가지고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늘 대장님께 더한 것도 받아왔으니까요!”
레클레이가 검을 바닥에 꽂으며 포권을 말아 쥐었다.
아수라를 따라한 것이다.
공민도 똑같이 포권을 말아 쥐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저… 칼라반 님…….”
“왜 그러지?”
마지막으로 레클레이가 공민을 붙잡았다.
“혹시 마지막으로 이것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만약… 제 가족들의 묘지라도 찾게 된다면 이것을 함께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레클레이가 목에 걸고 있던 팬던트를 빼내 공민에게 건네주었다.
“물론이다.”
“어서 가시오!! 이제 곧 이곳이 무너질 터니!”
아수라가 천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가 두 팔을 뻗자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며 공민의 머리 위로 무너지는 돌덩이들을 무참히 파괴했다.
“그럼…….”
공민이 정령의 길이 있는 게이트의 앞에 섰다.
띠링!
[이 길의 끝은 발견되지 않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일부 기능들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입장하시겠습니까?]“그래… 이 현상을 고작 게임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겠지.”
공민은 눈앞에 나타난 YES버튼을 누르고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거든!! 나의 무공으로 다시 수라교도 일으켜 주시게!!”
아수라는 마지막까지 주저하던 말을 결국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외치고 말았다.
공민은 알았다는 듯 손으로 사인을 보내며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나의 주군이시여…….”
그 자리에 주저앉은 레클레이가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샤아아아―
그의 몸이 다시 백골이 되어갔다.
“이제 후회는 없는가!”
“물론… 다시 한번 주군의 얼굴을 뵌 순간.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것들이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것 참 다행이로군!”
두 사람은 닫혀가는 게이트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군. 그리고 너의 유품도…….”
“으하하하! 친우인 그대가 모신 상관이기에 믿고 줄 수 있었다!
“후후. 예나 지금이나 네게는 신세만 지는구나… 함께 오늘을 즐겨줘서 정말 고맙…….”
마력이 다한 레클레이의 백골은 미처 할 말을 끝맺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성미 급한 녀석… 할 말은 다 마치고 가야하는 것 아니더냐.”
아수라가 레클레이의 곁에 앉으며 무너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과 새하얀 빛이 아수라의 시야에 들어왔다.
“좋은 하늘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