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0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80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80화
#습격
“그걸 당신이 알아서 무엇 하려는 겁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는 산악 민족들과 대화가 가능하니까 원하시는 것을 부탁해볼 수 있습니다.”
“크흠… 우린 버핀 가문에서 온 자들입니다.”
“버핀 가문이라면… 아라곤 영지의 워렌 백작님 가문이 아닙니까? 그럼 혹시 이곳을 지나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가니카스가 일부러 얼굴을 굳혔다.
그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사내의 위아래를 훑었다. 덕분에 사내는 가니카스를 경험 없는 기사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겨우 이유 하나 묻는 질문에 저렇듯 굳은 얼굴을 보이는 것이 영락없는 초보 기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사 아라곤 영지의 버핀 가문이라면… 별 볼일 없는 가문이 아닌가?’
게다가 뒤에 있는 사내들의 행색도 별반 좋아보이진 않아보였다.
그저 귀족 가문의 행렬 수준으로 구색 정도만 갖춘 정도였다.
그러나 한 가지. 사내로 하여금 신경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짐을 실은 수레의 존재였다.
짐승의 가죽들로 위쪽을 덮어두긴 했지만 그 사이로 비치는 형형색색의 것들은 틀림없는 보석들이었다.
‘저건 좀 탐나는군…….’
가니카스는 잠시나마 사내의 눈에 내비춰진 탐욕스런 시선을 읽었다. 이를 확인한 가니카스가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내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해대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해 달라 부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대략적인 이유라도 좋습니다.”
“흐음…….”
가니카스는 일부러 고민하는 척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뒤에 있던 제르단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순순히 길을 터줄 것 같지 않습니다.”
“크흠… 우리가 이유를 알려주면 정말로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제르단과 가니카스의 호흡은 척척 들어맞았다.
그가 망설이는 듯 보이자 사내가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입니다. 여러분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제가 사정이 있어 이곳에 머물고 있으나 이들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부탁쯤이라면 이들도 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베네치스에 군자금을 전달하러 가는 길입니다.”
“베네치스에요? 갑자기 베네치스에는 왜…….”
사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아라곤 영지에서 베네치스로 곧장 향하려면 이 길을 지나는 것이 가장 빠르긴 했다.
그러나 이들이 갑자기 왜 베네치스로 향한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나질 않을 때 가니카스가 말을 덧붙여주었다.
사실 바그라드에 있을 때 아라카인에게서 주워들은 말이긴 했지만 제멋대로 살을 좀 붙여두었다.
“베네치스에 곧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전쟁이라니 그런 당치도 않은…….”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그곳엔 이미 보이지 않는 적들이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들과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군자금이 필요하다는 급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촌각을 다투며 가려 하는 겁니다.”
“흐음… 그렇군요…….”
사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니카스의 입에서 ‘베네치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니카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적이 곧 하르스마이어와 하이데를 가리키는 말이 분명할 터였다.
특히나 하이데는 이미 베네치스 안에서 그들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인가? 이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사내는 생각을 달리 해야 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순순히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옆에 있는 갈로흐에게 다가갔다.
갈로흐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다른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선 이들을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저들을 모두 죽이는 게 어떻겠나?”
“저 수레에 실린 것들이 탐나서 그러는 거냐. 너희들에게 저 물건들이 쓸모 있다는 것은 안다.”
“아니, 놈들은 아라곤에서 왔다. 저 보석들을 이용해 무기를 구입할 생각이다. 즉, 저들이 구입하는 무기가 곧 너의 동족들을 죽일 도구가 될 거란 얘기다.”
“……!!”
사내의 설명에 갈로흐가 표정을 달리했다.
두 사람이 산민족어로 대화한 탓에 가니카스나 다른 이들은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들이 어떤 얘기를 나누고 어떤 결정을 짓던 가니카스와 일행들이 택할 선택은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얘기를 마친 갈로흐가 가장 첫 번째 수레로 다가왔다. 그는 다짜고짜 수레를 덮은 가죽을 벗겨 보려했다.
다른 이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가니카스가 말렸다.
“놔둬라.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가니카스의 말에 수하들이 물러섰다.
갈로흐가 가죽을 벗겨내었다. 그러자 수레 안에 실려 있던 보석들과 금화들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흐음…….”
이를 확인한 갈로흐가 손짓했다.
그러자 곰 부족 전사들이 길을 터주었다. 이곳으로 지나가라는 얘기였다.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니카스의 앞에 섰다.
“얘기는 잘 끝났습니다. 지나가도 좋다고 합니다.”
“그렇소!? 정말 고맙습니다. 그대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니카스가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다.
사내는 처음에 사양하는 듯 했지만 이내 가니카스의 권유에 못 이겨 금화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럼……!”
가니카스가 손짓하자 수하들이 수레를 끌고 출발했다.
그들이 끌고 있는 수레의 숫자는 얼추 세어 봐도 30대가 넘었다.
모든 수레에 조금 전 봤던 금화들과 보석들이 실려 있다면 이건 어마어마한 재산이었다.
“그래서 호위가 많이 붙었나보군. 그러나 뭐 이 정도쯤은…….”
그들의 뒤편에서 사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따로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발사믹님께 보고 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선 조치 후 보고.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수하가 사라지고 사내가 탐욕스런 눈길로 수레들을 한 차례씩 바라보았다.
그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필 이곳을 지나가는 것을 원망하고 또 모든 것을 순순히 말한 너희를 원망해라.”
가니카스 일행이 중심부에 다다르자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크게 손짓했다.
그의 수신호를 읽은 갈로흐가 고함을 터트렸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주변을 맴돌던 곰 부족 전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가니카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었다.
“뭐긴! 너희들을 죽이려는 거지!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재물은 베네치스까지 갈 수 없을 거다. 그 보석들과 금화는 모두 이 레비님께서 가져가 주도록 하마.”
레비가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근처에 모여 있던 그의 수하들까지 곰 부족과 전사들과 함께 했다.
채챙―!
챙!
가니카스와 그의 수하들이 차례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들이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자 곰 부족 전사들과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승기를 확신했다.
갈로흐가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대륙인들을 보며 비릿한 조소를 보였다. 그는 가장 선두에 있는 가니카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서야 가니카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느라 혼났다, 풋내기들아!”
휘리릭―!
슈콰앙!! 카앙!!
가니카스가 휘두른 박도는 갈로흐의 돌도끼를 손쉽게 튕겨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갈로흐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자신이 온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번엔 두 손을 모아 돌도끼를 휘둘렀다.
캉―!!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돌도끼는 가니카스의 박도에 가볍게 막혀버리고 말았다.
“산에서 사는 놈들이라 밥도 잘 못 먹고 다니는 거냐!? 뭔 놈의 힘이 이렇게도 약해!?”
이번엔 가니카스가 시원하게 박도를 휘둘렀다. 갈로흐는 재빠르게 돌도끼를 들어 박도를 막아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박도에 실린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호오… 이걸 버텨내?”
가니카스가 눈에 이채를 띠며 갈로흐를 바라보았다. 그때 제르단이 뒤에 있는 수레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두 나와요!”
펄럭―!펄럭!
제르단의 신호에 수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늑대 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실 첫 번째 수레에만 보석과 금화들을 쌓아놓고 나머지 수레에는 늑대 부족원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이었다.
늑대 부족은 수레를 덮고 있던 가죽을 집어던졌다.
그리곤 기형의 무기들을 들고 곧바로 곰 부족 전사들을 공격했다.
“늑대 부족!?”
“늑대가 우리를 배신했다!!”
“크아아―!! 죽여라!!!”
곰 부족 전사들이 늑대 부족 전사들을 알아보고 살기를 드러내었다.
갈로흐도 수레에서 뛰쳐나오는 늑대 부족 전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대륙인과 손을 잡다니!! 저 건방진 늑대 놈들을 모두 죽여라!!!!”
그가 분노하며 돌도끼를 치켜 올릴 때 누군가 그의 앞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회색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여인이었다.
“그러는 너희들도 대륙인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나??”
그녀는 단숨에 갈로흐의 품으로 파고들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갈로흐의 겨드랑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아프겠구만.”
이를 지켜보던 가니카스는 시선을 돌려 레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레비는 작금의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정신을 차렸다.
“놈들을 막아!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레비의 명령에 수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가니카스와 그의 수하들에게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봐, 저기는 늑대 부족과 곰 부족 간의 전투다. 너희들의 상대는 여기야.”
“이익……!”
레비는 자신 앞을 막아선 가니카스와 그의 수하들을 노려보았다.
숫자는 이쪽이 우세했지만 그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저들이 드러내는 존재감은 거대했다.
실제로 뭣 모르고 덤벼들었던 곰 부족 전사들과 그의 수하들은 몇 번의 일격도 버텨내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레비는 굳은 얼굴로 뒤편에 있는 수하에게 넌지시 말했다.
“너는 지금 즉시 여기를 떠나서 발사믹님과 곰 부족 족장에게 이 상황을 알려라.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하 한 명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가니카스와 수하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레비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적들이라면 이 사실을 알리려는 것을 온힘을 다해 막으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마치 일부러 보내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고도 모른 척을 하고 있었다.
‘설마…….’
그가 뒤늦게 저들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
“왜……!?”
증원군이 도착하면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은 저들이었다.
그렇다고 놈들이 함정을 준비했을 리도 없었다. 이곳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닌가……!
영문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저들의 계획대로 흘러가게 두고 싶진 않았다.
“아냐! 일단 저…….”
“쉿. 열심히 뛰어가는 부하를 말릴 필요 있나?”
순식간에 따라붙은 가니카스가 레비를 붙잡았다. 가니카스의 수하들도 동시에 움직여 레비와 레비의 수하들을 가로막았다.
아이러니한 형국이 되어버리고만 것이다.
레비의 시선이 늑대 부족과 곰 부족 간의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향했다.
“역시… 더러운 늑대 부족이 너희들과 손을 잡은 거였군…….”
“음?”
“시치미 떼지 마라. 최근 아라곤을 습격했을 때 늑대 부족만 아라곤 영지민들을 죽이지 않았다지? 그럼…….”
“크하하하!!! 하르스마이어의 부하들은 전부다 바보냐?”
“뭐… 너 지금 뭐라고……!”
“너희들 눈에는 우리가 아직까지도 제국 놈들로 보이는 거냐?”
가니카스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박도를 들어올렸다.
레비의 시선에도 박도의 손잡이에 박힌 문양이 선명히 보였다.
“상어……?”
“이제 알아보겠냐?”
“아라카인의 부하들이었나!? 하지만 네놈들이 대체 왜 여기에……!”
“왜긴 왜야. 너희들이 하려는 일이 꼴사나워서 방해 좀 하러 온 거지. 큭큭.”
가니카스가 웃기 시작하자 다른 수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레비의 수하들을 도륙했다. 한순간에 전투가 아닌 학살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레비의 수하들이 최선을 다해 반격했지만 상대는 아라카인의 곁을 맴도는 친위대였다. 전투 실력의 질부터가 달랐다.
덕분에 레비는 절로 떨리는 입술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이건 말도 안 돼…….”
“우리는 너 따위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그러니 너희 상관 녀석을 서둘러 불러오게 두라고.”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니카스와 달리, 레비는 절망에 물든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