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5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85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85화
#어둠의 정령술사
“보여준다니 뭐를……?”
칼라반은 헤이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홀로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칼라반이 단신으로 나서자 대지의 정령 소환을 마친 도그로나드가 선두에 섰다.
“공민! 저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이번에도 그 운이 통할거란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칼라반은 도그로나드의 옆에 선 노르무스와 노움들을 바라보았다.
대지의 정령들이 칼라반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칭호 ‘정령들의 축복을 받은 자’가 발동 되었습니다.] [대지의 정령들이 칼라반님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이번에도 칭호 효과가 나타났다.
이를 모르고 있는 도그로나드는 노움과 노르무스를 다그쳤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대지의 정령들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이익… 이것들이 또…! 정말 저 녀석에게 뭐가 있기라도 한 건가……!?”
일전에 서열 전을 치렀을 때도 어딘가 느낌이 께름칙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노움들은 두려움에 떨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노르무스도 칼라반을 바라보며 굳은 얼굴이었다.
도그로나드가 이를 악물며 칼라반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벅. 저벅.
칼라반은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도그로나드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대는 아직도 정령들과 소통하지 못하는가보군.”
“정령들과 소통을 해!? 하! 웃기지마라! 대지의 정령들은 그저 나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멍청한 녀석들이 네놈 앞에만 서면 말을 듣질 않는단 말이지……!”
잔뜩 화가 난 도그로나드의 두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런 도그로나드를 보며 칼라반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령과 소통하지 못하면 진정한 정령술사라 일컬을 수 없다.”
“뭐!? 허튼 소리마라. 네깟 녀석이 정령술사에 대해 뭘 안다고!”
“나는 다른 누구보다 정령술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개소리!”
도그로나드는 칼라반의 뒤편에서 우두커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헤이나를 살폈다.
이제야 그는 칼라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호… 그래 알겠다. 이제 보니 이렇게 시간을 끌어서 헤이나가 회복할 수 있는 틈을 벌어주겠다는 심산이었구나? 하지만 순순히 네놈 뜻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을 거다!”
도그로나드는 어림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도그로나드의 수하들이 무기를 들어올렸다. 하나같이 기세등등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맞은편에서 칼라반이 멈춰 섰다.
도그로나드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후후, 잘 가라 얼간이…! 네깟 놈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이 많은 병력 앞에서 실컷 네놈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느껴봐라!!”
“…….”
도그로나드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했다.
그가 판단하기에 칼라반은 이곳에 있는 수많은 적들을 보며 그저 얼어붙어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마침내 도그로나드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이 일제히 칼라반을 향해 달려들었다.
칼라반은 조용히 그들이 몰려오는 광경을 지켜보고 섰다.
도그로나드와 그의 수하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데도 칼라반이 가만히 서 있자 답답해진 헤이나가 입을 열었다.
“뭔가 보여준다며!? 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러나 칼라반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그들을 보고 섰다.
보다 못한 그녀가 결국 움직이려는 때, 칼라반이 서서히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편에 있던 어둠도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슈와아아―!!
칼라반을 중심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갑작스럽게 번지기 시작한 어둠에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짓쳐들던 도그로나드 군은 그때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돌아서기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내공이 실린 칼라반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울렸다.
“나와라.”
그의 명령과 함께 어둠의 정령들이 어둠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최하급 어둠의 정령 둠(까망이)을 소환합니다.] [최하급 어둠의 정령 둠(까망이)을 소환합니다.] [하급 어둠의 정령―어둠잡이 카피오를 소환합니다.] [중급 어둠의 정령―잔혹극의 광대 루디오를 소환합니다.] [중급 어둠의 정령―빛을 등진 골렘 두루스를 소환합니다.]순식간에 많은 메시지가 칼라반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많은 양의 내공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그의 발밑으로 퍼진 까망이들이 주변 곳곳에 어둠을 뿌렸다.
―끼루루!!
―끼룩!!!
까망이들이 사방으로 퍼지자 도그로나드 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뭐…뭐야……!?!?”
“당황하지마라!! 어차피 상대는 혼자야!!”
어둠의 정령을 처음 보는 그들로선 현재 칼라반이 마법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경계했던 것과 달리 주변이 어두워지는 것 말고 별다른 위험은 없어보였다.
결국 그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주위로 퍼지는 이 칠흑 같은 어둠이 사실은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는 것을 말이다.
“죽어라!”
“네놈의 목은 내가 가져가겠다!!”
가장 먼저 칼라반의 지척으로 다다른 세 명의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그들도 라그나로크에 속해 있었기에 칼라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일격만으로 충분히 칼라반의 목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그로나드를 포함한 그들 모두가 눈앞에 칼라반의 행동을 근거 없는 허세쯤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
콰득―! 우뚝.
칼라반의 앞에서 거짓말처럼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마치 무언가에 발을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더 이상 발을 내딛지 못했다.
여러 마리의 카피오가 삼지창으로 그들의 그림자를 찍어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왕께 다가갈 수 없다.
“이…이게 뭐야……?”
“어떻게 된 일이지?”
“몸이 움직이질 않아……!”
언제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작은 악마 형상의 카피오가 그들을 향해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휘링―!!
스가각―!! 촤륵!!
한 줄기 섬광처럼 날아든 검이 그들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칼라반의 검이었다.
목을 잃은 몸뚱이들이 힘없이 허물어지자 카피오들이 어둠을 묶고 있던 삼지창을 회수했다.
칼라반은 검을 휘둘러 검신에 묻은 붉은 핏물을 허공에 뿌렸다.
살기를 드러내며 도그로나드의 수하들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카피오들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외형은 조금 귀여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손속은 거침없었다. 카피오들이 날카로운 삼지창을 이용해 적들의 몸을 단숨에 꿰뚫었다.
“크아악!!”
“크흡……!”
피를 쏟은 몇몇 사내들이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카피오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도그로나드의 수하들도 분주해졌다. 작은 체구로 빠른 몸놀림까지 보이는 카피오들을 상대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정신 차려라! 저런 괴상한 것에 놀아나지마! 어차피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그때 그들의 리더 격인 사내가 칼라반을 가리켰다.
그러자 우왕좌왕하던 도그로나드의 수하들도 조금씩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오우… 전장에서 지휘관의 존재는 상당히 거슬린답니다.
여기저기 명령을 내리고 있는 사내의 옆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루디오가 나타났다.
푸슉―!
루디오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크아악…! 뭐냐, 너는……!!”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뒤늦게 루디오를 발견한 사내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날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때 루디오의 가면이 웃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기괴한 장면을 목격한 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루디오의 몸이 한순간에 어둠속으로 떨어져버렸다. 덕분에 거칠게 날아들던 검날들이 허공을 베었다.
“뭐냐…! 어디… 쿨럭!”
“뭐…뭐… 크학!!”
“으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황하고 있는 사내의 뒤에서 루디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느새……!”
스강―!
촤륵!!
어둠으로 만들어진 검이 사내의 어깻죽지를 파고들었다.
루디오의 정면에서 창날이 날아들었다. 이에 루디오가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어둠속으로 루디오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이런……!”
뒤편에 자리한 어둠에서 또다시 루디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워요.
루디오의 검날이 여지없이 사내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다. 소환된 카피오들과 루디오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칼라반이었다. 그는 거침없는 검격을 날릴 때마다 적들이 우후죽순으로 쓰러져갔다.
예전의 그였다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어둠의 정령들에게 보호받으며 전장을 지휘하던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지금은 칼라반이 중심이 되어 전투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괴…괴물…! 죽어라!!”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 화염구가 칼라반을 노렸다. 멀리서 미리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마법사가 쏘아낸 불덩이였다.
칼라반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고도 피하려들지 않았다.
후웅―!
퍼버벙!!!
어둠으로 물든 대지에서 커다란 손바닥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손바닥에 부딪힌 불덩이는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오랜만이구나, 두루스.”
칼라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칠흑빛깔의 골렘이 대지를 짚고 올라섰다.
어둠 속에서 올라온 두루스가 커다란 몸체를 온전히 드러내며 장엄함을 발산했다.
“고…골렘…!?”
“뭐야… 저 자도 하르스마이어님처럼 마물들을 다룰 줄 아시는 건가……?”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그 힘은 하르스마이어님이나 하이데님처럼 그 가문의 특별한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럼 대체 저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거야!?”
사내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전장을 휘젓고 있는 괴 생명체들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마물에 가까웠다.
그때 누군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극심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사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봐! 정신 차려!!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새…생각났어…….”
“생각났다니 뭐가!?”
입술까지 파래진 사내가 괴생명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것들이 뭔지 생각났다고… 트…틀림없어… 저건 어둠의 정령들이야……!”
사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지근거리에 있던 도그로나드도 경악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말도 안 돼!!”
“그래! 아무리 겁에 질렸다고 해도 그딴 미친 소리를……!!”
“어둠의 정령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고!!”
그들이 말도 안 돼는 얘기라며 사내의 얘기를 받아들이길 애써 거부했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예전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자에게 분명히 들은 적이 있었다.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삼지창을 든 악마에… 어둠의 골렘… 가면을 쓴 괴물까지… 내가 들었던 것과 똑같아… 그렇다면…….”
그는 전장의 중심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카…칼라반 대기사장… 그가… 살아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