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7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87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87화
#세키라드의 귀환
발사믹의 신호에 몇몇 인영들이 움직였다.
때맞춰 감옥을 지키던 곰 부족 전사들도 서서히 자리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은빛늑대들의 공격에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평소라면 은빛늑대들도 이를 이상하게 여길 법 하건만 그들은 지금 곰 부족에 대한 분노와 세오나의 안전을 생각하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세오나가 붙잡혀 있던 늑대 부족들을 데리고 감옥에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세오나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머니가… 이곳에 없다…….”
당연히 족장인 세루라가 이곳에 갇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루라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그 때문에 주변 늑대 부족민들에게도 물어봤으나 그들은 모두 며칠 전 아라후가 그녀를 끌고나갔다는 얘기만 할 뿐, 이후의 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세오나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을 무렵, 그들의 앞으로 발사믹이 다가왔다.
“이것 참… 가출했던 새끼 늑대가 용케도 이런 발칙한 짓을 꾸몄군.”
“너는……!”
발사믹을 알아본 세오나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를 본 것은 단 한 번.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함정에 빠트린 장본인이었으니 말이다.
“후후… 그렇게 일그러진 얼굴을 지켜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군.”
“어머니를 어디로 데려간 것이냐!”
“응? 네 년이 찾고 있는 자가 혹시 저 여자를 말하는 거냐?”
발사믹이 미소를 보이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그의 손짓에 늑대족 모두가 시선을 위로 돌렸다.
“아아…….”
“세루라님!!”
“흡……!!!”
그곳에 보이는 광경에 모두가 절망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특히나 세오나는 붉게 충혈 될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으하하하!! 그러게 내가 늘 말했잖아. 네 년이 도망치면 네 년 어미의 목숨도 끝이라고. 그러게 빨리 돌아왔어야지.”
발사믹이 대놓고 조소를 흘렸다. 곁에 서 있던 그의 수하들도 절망하고 있는 늑대족을 보며 조롱했다.
“…죽인다…! 네놈들의 사지를 하나하나 다 잘라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주겠다!!”
분노에 사로잡힌 세오나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늑대족 모두가 분노를 드러내었다.
“큭큭… 안됐지만, 네놈들도 거기서 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딱!
발사믹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위에서 커다란 바위와 나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옥 위의 석벽과 나무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오나님!!”
“세오나님을 지켜라!!!”
당황한 늑대족 전사들이 세오나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세오나도 위에서부터 들려오는 거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빨리 내달린다 해도 하늘을 뒤덮은 바위덩어리와 나무들을 모두 피해낼 순 없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
그녀는 분노에 찬 괴성을 질렀다.
이대로 목숨을 잃는다면 억울하고 원통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발사믹에게로 향했다. 발사믹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세오나가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저런 상황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후훗. 멍청한 늑대 계집… 그곳에서 편히 죽어라.”
발사믹 뿐 아니라 쿰바도 이 상황이 손쉽게 해결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적어도 한 사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됐지만 당신들의 계획대로는 안 될 겁니다.”
세오나가 있는 곳 근처로 유운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파초선을 들어 힘껏 부쳤다.
후웅―!!!
파초선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 강풍으로 바위와 나무들을 걷어내기엔 어림없었다.
유운량은 곧바로 한 번 더 파초선을 크게 부쳤다.
후우웅―!!
슈와아아!!!
그러자 강풍이 엉키며 거센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소용돌이는 늑대족을 향해 떨어지던 바위들과 나무들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버렸다.
“너는…….”
세오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유운량을 바라보았다.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던 늑대족도 유운량이 일으킨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서 있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겁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복수를 시작할 때입니다.”
유운량의 말에 뒤늦게 세오나도 정신을 차렸다.
어쨌거나 유운량의 등장으로 발사믹의 함정은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반격에 나설 때였다.
“모두들 무기를 들어라!”
세오나의 명령에 늑대족 모두가 무기로 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 들었다.
은빛 늑대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섰다.
“우리들도 싸우겠소.”
“이대로 도망가는 것보다 저 눈엣가시 같은 놈들을 죽이는 게 더 속 시원할 것 같군.”
“나는 독수리 부족 족장 가륜달이라고 합니다. 부디 힘을 합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늑대족 뿐만이 아니었다.
감옥에서 탈출한 다른 부족들도 함께 싸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들의 모습에 발사믹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유운량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를 뼈다귀 같은 것이 나의 계획을 이렇게 망가트려 놓다니…….”
“발사믹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멍청한 소리! 어차피 놈들은 다 죽어가던 산짐승 같은 놈들이다! 계획이 망가지긴 했지만 결과는 다름없다! 그러니 놈들과 싸울 준비를 해라!!”
발사믹의 외침에 수하들도 하는 수 없이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그의 곁으로 쿰바가 다가왔다. 그는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획이 있다더니… 고작 이런 거였나?”
“쯧… 시끄럽다. 대체 저 놈은 뭐냐!? 산민족처럼 보이진 않는데…….”
“그건 내가 묻고 싶다. 그러나… 어차피 저 자가 누구든 상관없다.”
쿰바가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땅굴에 숨어 있던 곰 부족 전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늑대족과 다른 산민족들을 보며 강한 살기를 띠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 짓쳐들 것만 같은 기세였다.
“세오나님. 생각보다 적들의 숫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희들의 뒤에는 전투를 할 줄 모르는 일반 부족민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지키며 싸우기엔…….”
은빛 늑대 한 명이 살며시 다가와 말했다.
세오나도 작금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들을 앞에 두고 성공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가기란 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강행돌파다. 하는 수 없어.”
“알겠습니다.”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세오나의 선택에 모두가 그녀를 따랐다.
전투를 치르지 못할 것 같은 자들은 뒤로 물러서게 했다.
“이분들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유운량이 파초선을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등장에 늑대 부족들이 물러섰다.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유운량을 경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유운량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그를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보기까지 했다.
이를 확인한 세오나가 마음 놓고 곰 부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늑대 부족과 다른 산민족들도 함께 돌진했다.
“건방진 놈들을 죽여라!!”
쿰바의 명령에 곰 부족 전사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순식간에 산악 민족들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늑대 부족과 다른 부족원들은 그간 감금되어 있었던 원한을 풀기라도 하듯 거세게 곰 부족 전사들에게 맞섰다.
곰 부족 전사들도 만만치 않은 전투 실력을 발휘하며 적들과 싸웠다.
그들이 우직한 공격을 내지르면 늑대 부족 전사들은 날랜 몸놀림으로 피해 다녔다.
그중에서도 은빛 늑대들은 더욱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곰 부족 전사들을 압도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독수리 부족이라 소개했던 전사도 예상 이상의 전투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나 이들의 선두에 선 세오나의 실력은 단연 두드러졌다. 그녀는 거침없이 전장을 휘저으며 곰 부족 전사들의 급소를 공격했다.
그런 세오나의 모습은 사나운 늑대와 다름없어 보였다.
“호오… 저자가 바로 세오나로군. 늑대 부족에서 끔찍이도 아끼는 전사라더니… 그렇게 말할만한 이유가 있었어.”
“늑대 부족의 미래가 밝군. 저 정도면 세키라드도 금방 따라잡는 것 아냐?”
“에이… 그대는 지금까지 세키라드를 보지 못했나보군? 그 녀석이 싸우는 것을 직접 봤다면 절대 그런 얘긴 못 할 거다.”
늑대 부족의 전투를 보며 타 부족 전사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전투의 양상은 더욱 치열해져가고 있었다.
“쯧…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더니… 이대로는 안 되겠군.”
보다 못한 발사믹이 대기하고 있던 그의 수하들도 투입시켰다.
자신을 지키게 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전력이었지만 작금의 상황이 좋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투입해야 했다.
스무 명 남짓의 병력들이었지만 전황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복병들의 등장에 다른 산악민족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면 곰 부족 전사들은 아군이 늘었음에 더욱 사기를 높였다.
그들의 등장으로 늑대 부족 연합이 밀리기 시작했다.
“놈들을 죽여라!!”
세오나의 시선이 쿰바에게로 향했다.
이 상황에서 쿰바만 먼저 죽일 수 있다면 다시 전황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무작정 돌진하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함부로 자리를 비우면 이곳이 뚫려 피해가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이도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너. 실컷 잘난 척 하더니 겨우 이런 상황도 해결하지 못하는 거야?”
“너는…….”
어느새 전장으로 난입한 긴 머리칼의 여인이 거침없이 발을 휘두르며 갈색옷의 사내들을 걷어 차버렸다.
그녀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곰 부족 전사가 죽일 기세로 도끼를 휘둘렀으나 이내 이상함을 느꼈다.
두 손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져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다.
“……?”
촤라락―!!!
두 팔에 뜨거운 고통이 밀려왔다.
“끄아아―!!!”
곰 부족 사내가 소리치며 쓰러짐과 동시에 다른 곳에서 붉은 핏물들이 튀어 올랐다.
그들의 사이로 누군가 신속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딱지 위로 다시 뜨거운 핏물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를 본 늑대 부족 전사들이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을 했다. 특히나 은빛 늑대들은 마치 진짜 늑대처럼 하울링 하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대장의 귀환. 그토록 기다렸던 대장이 돌아온 것이었다.
“세…세키라드… 네가 어떻게……!”
쿰바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곰 부족 전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키라드의 등장은 그들을 절망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 쿰바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물러서지 마라!! 조금만 더 버티면 곧 아라후 족장님이 전사들을 이끌고 돌아올 것이다! 거기다 우리에겐 붉은곰 바르밀가가 있다! 그가 곧 붉은 곰들을 이끌…….”
우렁차게 외치던 쿰바는 곧 사색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그의 앞으로 굴러오는 머리가 있었다. 몸뚱이를 잃은 머리는 두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바…바르밀가!!!”
“바르밀가님!!!”
“으어어―!!”
쿰바를 비롯한 곰 부족 전사들은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바르밀가의 얼굴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