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91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91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91화
#해양도시 디라키온
아라곤 영지와 인접해 있는 도시 디라키온.
디라키온은 두 개의 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해양 도시였다.
이곳에 사는 영지민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익히고, 생선이나 수산 자원들을 채집하는 것을 배웠다.
게다가 디라키온은 조선(造船)기술이 발달해 속도도 빠르고 내구도도 좋은 배를 만들기로 유명했다. 그 덕분인지 무역이 활발해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나 밤의 거리로 유명한 로스린레스 골목은 밤낮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헬라니아 주점은 오늘도 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으하하!! 소니아를 불러!”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한 중년인이 곁에 있는 여인을 붙잡으며 말했다. 여인은 능숙한 태도로 중년인에게 술부터 따라주었다.
중년인은 스스럼없이 술을 받으면서도 다시 한 번 외쳤다.
“소니아를 부르라니까아―!!”
“아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메도라스 백작님. 소니아도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예요.”
“아으…! 빨리 소니아를 보고 싶구만……!”
메도라스 백작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자 함께 앉아 있던 사내들도 함께 술을 들이켰다.
그들이 한창 대화를 이어갈 무렵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선 여인은 곧바로 메도라스 백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메도라스 백작님.”
“아하하!! 아니야, 소니아! 네가 이곳으로 온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이다!!”
“호호,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소니아는 자연스럽게 메도라스 백작의 곁에 앉았다. 그녀는 새하얀 손으로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때, 메도라스 백작의 손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많이 바빴던 건가!?”
“바쁘게 다니고 있어요. 다행이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말이에요.”
“흐흐… 당연하지. 소니아 너는 얼굴만 이쁜게 아니고 뭐랄까… 행동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품격 있어 보이고… 아무튼! 여기에 있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야.”
말하는 동안 메도라스 백작의 시선이 소니아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 소니아도 그의 시선이 탐욕에 물드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빼며 마저 술병을 들어올렸다.
“저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늦게 왔으니 먼저 술부터 한 잔 따라드릴게요.”
“그래그래, 우리 소니아가 따라주는 술이 또 꿀맛이지!”
술이 술잔을 채워가는 동안 메도라스 백작은 소니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게 오는 것은 어떻겠나? 그대는 나 혼자서만 독차지하고 싶은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이곳이 좋아요.”
“여기가!?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 나와 함께 가면 고급진 음식들도 잔뜩 먹을 수 있고, 그래! 예쁜 장신구들도 원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지! 어때?”
“죄송해요. 그래도 저는 이곳이 좋아요. 게다가 저는…….”
“허허… 소니아! 내가 아무 여자한테나 이러는 것 같나!? 너니까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잖아!”
뜻대로 되질 않자 메도라스 백작이 술기운에 언성을 높였다.
소니아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능숙한 태도로 그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렇지만 이미 메도라스 백자님께는 부인과 자제분들이 계시잖아요? 더군다나 저는 귀족가에 몸을 담을 만큼…….”
“시끄럽다! 그런 것은 내가 신경 쓰는 거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니, 그래도……!!!”
메도라스 백작이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자 보다 못한 다른 사내들이 그를 말려주었다.
그들은 메도라스 백작이 잠시나마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곁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혹시 그놈 때문이냐?”
“그놈이라뇨?”
“내가 모를 줄 알아!? 너와 함께 지낸다는 그 사내놈 말이야!”
“아아…….”
“나도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듣자하니 앞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라면서!? 너 설마 불쌍해서 거두어준 놈한테 마음이라도 생긴 거냐?”
“아니에요, 그이는…….”
“하!? 표정부터 달라지는 것 봐라!?”
메도라스 백작이 붉게 상기된 얼굴을 찌푸렸다. 많이 언짢았는지 그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고 있었다.
“소니아, 너… 설마 그 반병신 놈한테 마음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겠지? 네가 그런 등신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야 그렇잖아! 너처럼 아름답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하는 여자가, 앞도 못 보는 등신을 좋아한다고!? 그건 너무 세상이 억울할 일이 아닌가!?!?”
메도라스 백작의 말에 소니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러나 워낙 빠르게 스쳐지나가 아무도 그녀의 표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소니아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백작님께서 술기운이 꽤나 오르신 것 같아요. 오늘은 이만 하시고…….”
“너!”
메도라스 백작이 손가락으로 소니아를 가리켰다. 그의 부름에 소니아도 메도라스 백작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 등신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 정말!?”
“오늘은 푹 쉬시고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이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눈앞에 있는 메도라스 백작은 디라키온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권력이 강한 사내였다.
그런 메도라스 백작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사람은 많아도 이렇게 대놓고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가 누구건 자신의 할 말은 삼키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소니아의 매력이기도 했다.
메도라스 백작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소니아의 그런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당돌한 태도를 보이는 소니아가 더욱 좋았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오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소니아를 붙잡았다.
“앉아라, 소니아.”
무겁게 가라앉은 메도라스 백작의 목소리에 걸어 나가려던 소니아도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마냥 무시하기엔 목소리가 경고를 포함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라곤 하나 이런 것까지 무시하고 지나칠 순 없었다.
결국 소니아는 다시 메도라스 백작의 옆에 앉았다.
“잘 들어라, 소니아. 너는 어차피 내 말을 들어야 될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왜?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깟 놈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거든.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 너는 똑똑하니까 잘 알아들었겠지. 그럼 우선 술부터 따라라.”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소니아는 다시 술잔에 손을 가져갔다.
술 방울이 술잔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그녀는 보이지 않도록 살며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동안 술자리를 이어가던 메도라스 백작은 날이 저물어서야 자리를 떠났다.
함께 온 일행들도 모두 떠나고 소니아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이 안에 들어섰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소니아 언니. 많이 피곤하시죠? 사장님이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래요.”
“어머 정말!? 그 싸가… 아니, 사장님이 그래?”
“네, 정말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메도라스 백작님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언니밖에 없잖아요. 매번 메도라스 백작님이 이곳으로 오실 때마다 언니가 이렇게 고생해주시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대요.”
“아냐. 나는 빠른 퇴근, 이게 정말 좋은걸!! 있잖아 오늘 가게에 특산품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어?”
“아? 네 맞아요. 아까 손님이 주고 가신거긴 한데…….”
“그거 나도 좀만 가져가도 돼? 조금만이라도 가져가고 싶은데… 아니면 내가 값을 치르고 사갈게!”
“에이~ 아니에요. 언니라면 당연히 가져가도 되죠!”
여인은 은근슬쩍 소니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소니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애인 가져다주시려고 그러죠?”
“뭐…!? 애…애인은 무슨…….”
“호호! 그 정도 지냈으면 애인이죠, 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부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걸요.”
“부…부부라니… 아니야……!”
“어머?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져요?”
“내…내가 뭘……!”
소니아는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그녀가 당황해하니 여인이 까르르 웃어대었다.
“대체 어떤 남자길래 철옹성 같은 소니아 언니의 마음을 훔쳤을까요?”
“그런 것 아니라니까……!”
“아니긴요, 뭘… 아, 나도 한 번 보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도 그 분이 마을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그렇게 잘 해결해준다면서요?”
“나도 잘 몰랐는데 오시는 손님들이 그렇다고 전해주시긴 하더라.”
“요즘엔 다른 사람들과 대판 싸우고 해결이 안 되면 그분을 찾아간대요. 명쾌하게 해결해준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이?”
“네! 그리고 자신의 조언이 본인들 마음에 들면 앞에 있는 바구니에 마음에 드는 만큼 돈을 놓고 가달라 말씀하신대요. 물론… 일부 양심 없는 사람들이 해결책만 듣고 돈은 내는 척만 하면서 가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돈을 두고 가는 사람들도 많은가 봐요.”
“아… 그래서 요즘…….”
소니아는 몰랐던 사실에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에 여인이 다시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청 매력 있는 분이시라고 하던데… 은근 후밀리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뭐!? 그게 정말이야!?”
“호호호, 말은 그렇게 해도 이런 것은 신경 쓰이나 보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아는 한 이곳에서 언니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어요.”
“그러면 뭐해… 그 분은 나를 보지 못하는 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참 아이러니했다. 그녀는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의 외면만 보려 할뿐 정작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들을 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주지 않고 외면에만 시선을 뺏기는 그들에게 더더욱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랬는데 정작 후밀리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아… 맞다, 그랬죠… 근데 정말 후밀리스라는 분은 어떤 사람이에요? 길가에서 처음 만났다면 서요?”
“맞아, 그랬지… 후밀리스는 신기한 사람이야.”
“신기한 사람이요?”
여인의 물음에 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흥미로웠는지 주변으로 다른 여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꼭꼭 감추어둔 그 분에 대해 얘기해주는 거야?”
“소니아의 은밀한 비밀이 풀어지는 거네?”
“깔깔! 이런 재밌는 얘기를 나만 놓칠 순 없지!!”
“그래서? 왜 신기한 사람이야?”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소니아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소니아가 얘기를 해주지 않기라도 한 다면 계속 붙잡고 늘어질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럴 땐 빨리 얘기를 해주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사실 별 얘기는 아닌데…….”
“뭔데 뭐야?”
“궁금하니까 빨리 얘기해봐!”
“맞아! 질질 끌지 말고……!”
그녀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소니아의 붉은 입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그 사람을 만난 것은 바다가 보이는 길바닥 위였어.”
“길바닥 위요? 그냥 길바닥?”
“응.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차가운 길바닥 위에 혼자 주저앉아 있었는데… 옆에 그 사람이 보였거든. 분명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요?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소니아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벌써 꽤나 시간이 지난 기억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녀에겐 당장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