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92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92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92화
#후밀리스
후밀리스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답답한 마음하고 울적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한참동안이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이 답답할 때는 이렇게 바닷가에 찾아와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근처에 보이던 그 사내도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씩 지켜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내의 앞에 놓아진 바구니에 돈을 얹어주고 갔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인가…….’
일찍부터 부모를 잃고 어린 남동생까지 챙기며 악착같이 삶을 버텨온 그녀에게 저런 부류의 사람은 그다지 달가워보이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곁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봐준 것 같은 느낌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도 웃기네. 저 사람이 뭘 해줬다고… 그냥 곁에 앉아 있었던 것밖에 없는데…….”
자조어린 웃음을 머금던 소니아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벌써 날이 저물었으니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사내는 아직까지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음에도 불구 사내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돌아갈 집도 없는 거야……?”
문득 사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이 날은 평소 하지 않던 행동도 했다.
그녀는 품에 있던 돈들을 꺼내 사내 앞에 놓아진 바구니에게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두 눈이 감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는 바구니에 돈이 놓아지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숙여보였다.
“눈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사내의 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러건 말건 사내는 다시 바닷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소니아는 그 사내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표정은 애처롭기까지 할 정도로 처연했다. 그 얼굴이 소니아로 하여금 신경 쓰이게 했다.
마치 그 옛날 자신의 모습을 닮아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부모님을 바다에서 여의고 넋을 놓은 채, 살아갈 희망도 잃은 채 앉아 있던 그날의 자신을 말이다.
그렇게 사내의 얼굴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버렸다.
그녀가 잠시 동안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가 고프신 모양이로군요.”
사내의 말에 소니아도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알고 보니 그녀의 뱃속에서 허기짐으로 계속된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괜한 헛기침을 해대었다.
그때 사내가 그녀를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사내의 손에 들려진 것을 확인한 소니아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보다는 당신에게 더 필요할 것 같은걸요.”
사내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빵이었다. 분명 누군가 그에게 건네주고 간 빵일 터였다.
그러나 빵의 상태를 본 소니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난 것인지 빵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상당히 메말라 있었다. 부드러운 식감보다는 딱딱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혹시나 그가 오래된 빵을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려던 찰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어느 여성분께서 제게 주고 간 음식입니다. 비록 차갑게 식긴 했지만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안심하고 드셔도 될 겁니다.”
사내의 말을 듣고 나서야 누군가 앞이 보이질 않는 이 사내에게 오래된 빵을 건네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 또한 사내의 팔자려니 싶었다.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있고, 또…….”
“지금 배고픔을 달랠 음식을 갖고 있으신 겁니까?”
“아… 그건 아니지만…….”
그녀의 말에 사내는 들고 있던 빵을 두 개로 갈랐다.
그리곤 하나를 자신의 입에 가져가고 다른 하나를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건넸다.
“그렇다면 드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계시던 어떤 위치에 있으시건… 지금 허기를 달랠 방법은 제가 들고 있는 이 빵밖에 없질 않습니까? 혹시나 먹지 못할 빵이 의심되는 것이라면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저도 이렇게 함께 먹고 있으니까요.”
사내는 딱딱해진 빵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먹었다.
소니아는 멍한 얼굴로 사내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빵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렇게 소중한 것을 주어도 되는 거예요? 보니까…….”
바구니에는 생각보다 적은 돈이 놓아져 있었다. 기껏해야 한 끼나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액수였다.
그렇다고 다른 먹을 것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 정도로 충분하니까요.”
“저어…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보십시오.”
“왜 바닷가에 계시는 거예요?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 눈이 보이질 않으시잖아요? 보이지 않는데 마치 바다를 보려는 것처럼…….”
“제 자신을 바라보고 싶진 않지만… 저는 바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들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그리고 이곳에 있으면 마치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 좋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아…….”
소니아는 빤히 사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사내의 눈은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대놓고 바라봐도 쑥스러울 것 없었다.
그녀는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동안 자신이 봐온 사내들에 비하면 잘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으면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신비로운 느낌에 그녀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소니아의 얘기를 듣고 있던 여인 한명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꺄악…!! 그럼 그날 이후로 함께 살게 된 거예요?”
“와… 이 언니 정말 대단하시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날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집으로 데려와요?”
“미안해요… 나는 그동안 언니가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어…….”
“그나저나 의외네… 나는 당연히 잘생긴 분이실줄 알았는데, 얼굴이 평범하다고요? 그럼 너무 아쉽지 않아요…? 가뜩이나 앞도 못 보는 사람인데 얼굴도 평범하고… 그렇다고 능력이 좋은 것도 아냐… 무엇 하러 언니가 그 사람을 데리고 사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데…….”
“나도 처음엔 그게 이해가 안 됐는데… 직접 만나보니까 알겠더라. 형부 되게 괜찮은 사람이야. 그렇지 언니?”
이들 중 유일하게 사내, 후밀리스를 만나본 여인이 찡긋 윙크를 날렸다. 그녀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후밀리스를 만나봤다는 사실에 고개를 한껏 치켜 올렸다.
형부라고 지칭해버리는 그녀를 보며 소니아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난 여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녀들은 서로 저마다의 얘기를 해대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근데 그 빵은 정말 괜찮았어요? 설마 그거 먹고 배 아팠던 것은 아니죠?”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까지 그것만큼 맛있는 빵을 먹어보지 못했는걸.”
“꺄아아―!!”
“미쳤나봐!!”
“어우… 우리 소니아 언니에게 이런 면이…….”
그녀들이 자지러지는 동안 소니아는 슬쩍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껏 얘기를 풀어내다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탓이다.
“많이 배고파하겠는 걸? 서둘러 가야겠어.”
그녀는 양손 가득 든 음식들을 보며 흐뭇함에 미소가 절로 새어나왔다.
소니아는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니아의 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소니아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손짓했다.
“소니아! 서둘러 와보라고!!”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몰려 계시는 거예요?”
“아니… 그게 저길 좀 봐봐…….”
중년인의 손짓에 소니아가 집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은 휑하니 열어져 있었고 집 안의 물건들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 뷰렉스는 피를 흘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후밀리스의 멱살을 쥐어 잡고 있었다.
“너 이 새끼야! 지금 뭐라고 했어!?”
“죄송하지만… 당신에게는 조언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장님 새끼가 지금!! 시건방 떠는 거야 뭐야!? 조금 유명해졌다고 유세떠는 거야!?!?”
“그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닥쳐!!”
파악!!
사내의 두터운 주먹이 그대로 후밀리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후밀리스는 신음 한번 흘리지 않고 다시 사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쭈?!”
“우리 형 때리지 마!!”
다시 몸을 일으킨 뷰렉스가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뷰렉스를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뷰렉스는 어떻게든 사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우습구나, 우스워. 뭐 상관없다! 애초에 네놈들 따위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내 목적은 네놈들에게 경고를 전하러 온 거다.”
“경고는 무슨…! 너 따위 놈이 우리에게 무슨 경고를……!!”
퍼억!!
거친 주먹이 뷰렉스의 얼굴을 때렸다.
사내, 로만슨이 조소를 지으며 뷰렉스와 후밀리스를 나란히 쳐다보았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런 허가받지 않은 장사를 하지 말아라.”
“허가 받지 않은 일…!? 웃기지마 이 새꺄! 우리는 여기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한테 도움을 준 것 뿐이라고!! 그리고 도움을 받은 마을 사람들이 감사의 인사로 우리들에게 그저 보답을 해준 것뿐이야! 그렇지 않아요!?”
뷰렉스가 바깥의 마을 사람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뷰렉스의 말에 선뜻 동의하고 나서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로만슨과 로만슨의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로만슨은 이곳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해적이었다. 그런 로만슨의 기분을 함부로 거슬렀다간 목이 두 개라도 남아나질 않을 터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파악한 뷰렉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닌가 본데? 크흐흐… 그리고 너. 아직 핏덩이라 그런가, 겁 대가리 없이 눈깔을 곱게 뜰 줄을 모르는 모양인데…….”
로만슨이 뷰렉스의 얼굴에 다시 손을 가져가려 했다. 그때 후밀리스가 그를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을 테니, 한번만 봐주십시오.”
“호오… 그래도 대가리가 좀 굵었다고 처신 하나는 잘 하는구나. 그래, 그래야지. 앞이 보이질 않아서 그런지 사람 대하는 법을 좀 터득했나보지? 큭큭…! 그렇지 않으면 제 밥값도 못하고 살았을 것 아니냐! 나 참… 다 큰 사내새끼가 여자한테 밥 빌어먹고 사는 꼬라지라니…….”
“나도 사람 대하는 법이라면 좀 아는데 가르쳐줄까?”
그때 로만슨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온 소니아가 대뜸 사내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크고 앙칼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대범한 행동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말았다.
로만슨이 누구인가!
이곳에서 마음껏 활대를 치고 다닐 만큼 규모 있는 해적단을 이끌고 있는 사내가 바로 로만슨이었다.
그런데 그런 로만슨에게 거침없이 따귀를 날리다니…….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로만슨의 분노가 자신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 이들도 있었다.
“누…누나?? 언제 왔어?”
“일어나,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당신도 그만 고개 숙이고 일어나요.”
소니아는 뷰렉스를 부축해주었다.
로만슨의 부하들이 당장이라도 소니아를 죽일 것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손을 내젓는 로만슨의 행동에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쯧, 손이 맵구만.”
로만슨이 자신의 뺨을 매만지며 소니아를 내려다보았다. 말로 전해 듣긴 했지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쩝… 아쉽게 되었군.”
그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이에 그의 수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 저 년을 그냥 두실 생각이십니까?”
“에이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얼굴도 저 정도면 최상급 아닙니까!? 당장 잡아다가 팔아버려도…….”
“쓸데없는 소리마라. 오늘은 이만 돌아간다.”
수하들의 말을 일축한 로만슨이 고개를 돌려 소니아와 후밀리스, 뷰렉스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구나, 너희들. 그러나… 내 뺨을 때린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니 피해보상으로 돈을 준비해둬라.”
“네놈들 따위에게 건네줄 돈은 없어.”
“크하하! 괜찮아 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해둬라. 네년이 돈을 준비하지 않으면 저기 있는 둘 중 하나는 분명 죽게 될 거다. 우리 손에 말이야.”
“웃기는 소리 마.”
“큭큭. 정말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가자!”
로만슨이 크게 외치자 그의 수하들도 그를 따라 함께 물러갔다.
마침내 해적들이 모두 떠나자 눈치 보던 마을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소니아와 후밀리스, 뷰렉스에게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 도움도 못되어서 정말 미안하게 되었구만…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네… 괜히 함부로 나섰다간 우리들의 목숨도…….”
“큭… 모두 나가주십시오.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고 있을 기분이 아닙니다.”
뷰렉스의 일침에 마을 사람들도 한 명 한 명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왜 저들에게 화를 내는 거냐.”
“이런 상황을 모두 보고만 있었잖아!? 난 그게 화가 난다고…! 게다가 저 사람들의 시선! 불쌍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를 비웃는……!!”
분에 못이긴 뷰렉스가 주먹으로 땅을 한 대 치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뷰렉스! 어디 가는 거야!?”
“몰라! 그냥 기분전환이나 하고 올 테니까 나 찾지 마!”
“놔두십시오.”
“그렇지만 후밀리스…….”
“아직 혈기왕성할 때잖아요. 그래도 제 딴에 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으니 이럴 땐 그냥 지켜봐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몰골이 이게 뭐에요…….”
소니아가 후밀리스의 상처들을 돌봐주는 동안 두 사람을 지켜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