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96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96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96화
#해적의 법칙
“뷰렉스!!”
기둥에 묶여 있는 뷰렉스를 보자마자 소니아가 소리쳤다.
해적들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그의 몰골은 이미 많이 상해있는 상태였다.
한데 묶여 있는 그의 친구들도 몸이 상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소니아는 해적들을 보며 치를 떨었다.
그러건 말건 로만슨은 그들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해적이다. 겁도 없이 우리에게 덤빈 것치고 이 정도면 굉장히 좋은 대접을 받은 거다. 원래 같았으면 몇 놈 정도는 죽이고 시작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순 없지.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상품이니까.”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해적이라는 것들은 정말 역겹군요.”
“크하하! 너무 그렇게 생각하진 말라고. 이렇게 신사적인 해적이 어디 있나? 본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빼앗고 마는 것이 해적의 법칙. 그러나 나는 지금 너희들과 거래를 하려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쪽 입장에서는 감사할 일이라 생각이 든다만?”
소니아와 뷰렉스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뷰렉스는 차마 계속해서 소니아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는 밀려드는 분노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고개 들어 뷰렉스.”
“누나…….”
“너는 잘못한 것 없어. 그런데 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하지만…….”
“뷰렉스. 네가 생각했고, 네가 판단했고, 네가 행동한 거라면 응당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지. 고개부터 숙이지 마. 그게 현실을 마주 보는 방법의 첫걸음이야.”
“미안해 누나…….”
“됐어.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누나는 안심이야.”
“호오… 남매간의 우애가 정말 깊군. 그래, 그쪽으로 전달한 만큼 돈은 가져왔나?”
“물론이야. 돈만 주면 약속대로 저 애들은 풀어주는 거겠지?”
“당연하지! 나는 약속은 지킨다.”
“그럼…….”
소니아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돈을 로만슨의 수하에게 건네주었다.
로만슨의 수하가 돈을 찬찬히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로만슨은 소니아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확실히 아까운 미모긴 하군. 너 정도라면 내가 저 돈도 받지 않고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줄 생각이 있는데… 어떠냐?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는 것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단호하군. 그건 저 장님 녀석 때문인가?”
로만슨이 소니아의 뒤편에 서 있는 후밀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소니아가 옆으로 걸음을 옮겨 후밀리스를 가렸다.
“그래. 나는 이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어. 그러니까 허튼 생각 말고 돈 액수가 맞는지 확인했으면 내 동생과 저 애들을 풀어줘.”
“하! 웃기는군. 너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겨우 저딴 놈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연민일 거다.”
“사랑이야.”
로만슨의 물음에 소니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녀는 로만슨과 해적들에게 서릿발같이 차가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답을 들은 로만슨은 묘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뒤편에 못 보던 사내들이 함께 따라온 것을 확인했다.
“뭐야? 혹시 몰라 잔챙이들이라도 끌고 온 건가?”
“형님. 1050골드입니다.”
돈을 모두 세어본 사내가 로만슨에게 알렸다.
이를 들은 소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액수는 그쪽에서 제안한 돈이 딱 맞지? 그러니까 이제…….”
“아니, 부족하다.”
“뭐? 무슨 말이야!? 뷰렉스는 100골드 다른 아이들은 50골드라며? 그럼……!”
“너를 기다린 시간이 있질 않았나? 당연히 이자가 붙지. 그러니 이자까지 내어라. 흐음… 그래 한 200골드쯤 더 주면 되겠구나.”
로만슨이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해적들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해적들이란 하나같이…….”
소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품속에서 다시 돈을 꺼내었다.
그녀의 행동에 로만슨도 이번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여기 200골드. 됐지?”
“이것 참… 내가 한 방 먹은 기분이로군.”
로만슨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소니아가 건네는 골드를 순순히 받아들었다. 그리곤 뒤쪽을 돌아보며 수하들에게 눈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수하들은 찝찝한 얼굴을 하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라 뷰렉스와 그의 일행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들은 해적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빨리 꺼져라.”
“약속은 지킨다. 그러니까 빨리 꺼져.”
해적들의 말에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해적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움찔거리는 동안 오직 뷰렉스만 날선 눈빛으로 해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전처럼 섣부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해적 한 명이 그를 향해 말했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녀석이로군. 그러다 빨리 죽는다. 너.”
소니아는 뷰렉스까지 붙잡혀 있던 모두가 자신의 곁으로 왔음을 확인했다.
이내 그녀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잠깐.”
그때 로만슨의 곁에 있던 해적들이 움직이며 그녀와 다른 이들을 둘러쌌다.
그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소니아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에요? 지금 약속을 안 지키겠다는 거예요?”
“무슨 소리지? 나는 분명히 약속을 지켰다. 돈을 가져왔으니 녀석들을 모두 살려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속에 너와 장님 녀석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억지……!”
“크큭… 말했잖아. 우리는 해적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빼앗는 것이 우리 해적들이란 말이다. 이 정도는 예상치 못했나 보지?”
“당신들 정말… 하… 그럴 줄 알고 우리도 귀족들에게 연락을 취해놨어요. 조금 있으면,”
“크하하하!!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냐? 그대가 생각하기에 정말 귀족들이 이곳으로 올 것 같나? 아니지, 아닐 거야. 아마 그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
로만슨의 말에 소니아가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귀족들과 해적들 간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을 뿐더러 지금 상황에서 그 문제를 따지고 들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으름장을 놓았던 것인데 역시나 해적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몇몇 해적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특히나 로만슨은 대놓고 음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별히 너는 내가 먼저 귀여워 해주고 메도라스 백작에게 보내주도록 하마.”
“뭐……?”
“아, 몰랐나? 이번 일을 사주한 것이 바로 메도라스 백작이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덩달아 하나 더 부탁했지. 저 장님 녀석까지 죽여 달라고.”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기는. 너도 그곳에서 일했으면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 아니야? 메도라스 백작에 관한 추한 소문들을 말이다.”
로만슨의 말대로 메도라스 백작에 관한 안 좋은 소문들을 많이 듣기는 했었다. 아무래도 많은 얘기가 오가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절로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메도라스 백작이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적지 않은 충격을 먹은 듯하군.”
“세상에… 이건 해적들과 다를 바 없잖아?!”
“응? 해적 듣기에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우리는 대놓고 하지만 그 녀석은 겉으론 깨끗한 척, 고상한 척 위선을 떨지. 차라리 우리가 낫지 않겠나?”
“아니! 너희들 모두 똑같아!”
소니아가 분노로 치를 떨었다.
옆에서 함께 분노하기는 뷰렉스와 동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너희 해적 놈들이 순순히 우리를 보내줄 리가 없지. 너희는 처음부터 우리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렇지!?”
뷰렉스의 말에 로만슨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제법 똑똑하구나. 그 정도 실력과 병력들로 여기까지 쳐들어 오길래 멍청한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크윽……!”
뷰렉스가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절망으로 가득한 상황이 미치도록 화가 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적들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나 비켜. 차라리 마지막까지 맞서 싸우겠어.”
“뷰렉스…….”
“가만히 당해주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싸우는 게 더 낫잖아!?”
뷰렉스의 말에 소니아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도 원망스럽기만 했다.
대체 자신과 뷰렉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또다시 해적과 엮여 이런 꼴을 당한단 말인가!?
그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다시 덤벼볼 생각이냐? 재미도 없겠구나. 멀쩡할 때도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지금 그 상태로는 더 한심할 것 아니냐?”
“웃기지마! 사람은 죽을 각오로 싸우면 몇 배는 더 강해진다고 했어!”
“크흐흐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덤벼봐라. 장님과 어중이떠중이 같은 두 놈. 그리고 다 죽어가는 녀석들의 조합이라… 아름다운 여자를 지키는 것치곤 너무도 허접한 조합이로구나.”
로만슨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때 뒤에서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칼라반이 후밀리스를 바라보았다.
“어찌할 생각이냐? 네가 원한다면 내가 나서주겠다.”
“아서십시오. 당신이 나서시면 더욱 골치 아파집니다.”
“그렇지 않을 거다만.”
“그보다 당신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 말인가?”
“예.”
“그게 뭐냐.”
후밀리스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느껴지는 바람에 익숙한 짠내가 섞여 있었다.
그는 이런 바닷바람이 좋았다.
이 냄새를 밭으면 바닷바람에 섞여 불어오던 소니아의 향기가 떠올랐다.
소니아를 처음 만난 날, 바람을 타고 불어왔던 그녀의 향기는 아직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었다.
“저를 찾아온 이유를 아직 정확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에게는 레기온 네가 필요하다. 흑염은 다시 타오를 테니.”
“그 이름… 정말 오랜만이로군요. 그때는 그토록 당신을 모시고 싶다 했는데 어째서 거절하신 겁니까?”
“그때의 너는… 너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날 선택했다. 나는 생각이 죽은 수하는 원치 않는다.”
“그랬군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도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후밀리스는 칼라반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칼라반은 마침내 그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제가 당신을 모시고 있었더라면,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죽어 있는 저를 살리기 위해 당신이 찾아오셨으니…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군요.”
“훗. 그 이유는 비단 나만이 아닌 것 같다만.”
후밀리스 아니 레기온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기온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하자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후밀리스?”
“형!?”
“후밀리스 형!!”
모두가 그를 불렀다.
그러나 후밀리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소니아의 앞으로 섰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졌기에 맡아지는 향기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후밀리스, 뒤에 있어요. 여기는 저희가 어떻게든…….”
“소니아 씨.”
“예?”
“우리는 가족이지요? 저와 당신과 뷰렉스 말입니다.”
“당연하죠……!”
“후후 그럼 가족끼리는 비밀이 있어선 안 되겠군요.”
“그건…….”
싱긋 웃은 레기온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사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제 이름은 후밀리스가 아닙니다. 후밀리스는 저 자신을 가장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스스로 붙여둔 이름입니다. 제 진짜 이름은 레기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