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98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98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98화
#제국의 심판관
높은 탑에 올라선 아라카인이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고 있을 때마다 허탈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우리는 왜 생각지 못했을까요?”
“이래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거다.”
그는 탑을 내려가기 전 다시 한 번 유운량이 만들어 놓은 진을 살펴보았다.
그 사내는 다른 마법사처럼 방대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마법진을 만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던 수하들의 말로 유운량은 그저 주위에 보이는 나뭇가지나 돌과 같은 자연 일부의 것들을 옮겨대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이 마법진을 완성시켰다는 말을 전해온 후로부터 신기하게 몬스터들의 습격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너무도 흥미로워 아라카인도 확인 해보기 위해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었다.
근처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탑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때 아라카인은 충격으로 헛웃음만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이곳으로 습격해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죽일 생각만 했다. 그런데 저런 방식으로 다시 돌려보낼 생각 따윈 전혀 하질 못했었단 말이지. 그럴 필요가 없다 여겼으니까… 이것 참…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해결해내지 못한 것을 겨우 며칠 만에 생각을 뒤집어 해결해 버렸다라…….”
그동안 아라카인과 바그라드의 검투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몬스터들을 죽이려 들었다.
녀석들을 죽이고 또 죽이며 압도적인 무력을 선사하면 몬스터들도 더는 이곳으로 침범할 생각조차 못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몬스터들의 습격은 끊이질 않았다.
아무리 많은 몬스터들을 죽여 봐야 개체를 빠르게 늘리는 몬스터들의 경우 또다시 비슷한 숫자로 이곳을 습격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아라카인과 바그라드 사람들은 이 일을 오랫동안 골칫거리로 여겼었는데 우습게도 유운량은 단 며칠 내로 이 문제를 해결해버렸으니. 다시 생각해도 허탈한 일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몬스터들이 길을 잃게 해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방법으로…….”
아라카인의 곁에 있던 수하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몬스터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말이 쉽지 저런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질 않습니까? 그냥 그때 찾아왔던 그 남자가 대단했던 겁니다.”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
“물론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저 어마어마한 마법진을 설치한 다는 것은… 분명 실력 있는 마법사이거나, 뭐 아무튼 그런 존재였을 게 분명합니다. 거기다 말도 얼마나 잘하던지. 그건 아라카인님도 봐서 알고 계시질 않습니까?”
“맞다. 나도 그 자의 말에 혹해 넘어가버리고 말았지. 참, 탐나는 인재였는데… 우리들 대부분은 검투사 출신이라 제대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자가 없질 않냐. 그렇게 똑똑한데다 이런 마법진까지 만들 줄 아는 자가 우리와 함께였더라면…….”
지나고나니 점점 유운량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었다.
아라카인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만 탑에서 내려와 중앙 대전으로 향했다.
아라카인이 주로 업무를 보는 곳이니만큼 바그라드의 모든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가 중앙 대전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업무를 하고 있던 이들이 인사를 건넸다.
“또 탑에 다녀오신 겁니까?”
“응. 워낙 신기해서 말이야.”
“아버지. 그냥 이참에 사람을 보내서 그 사내와 공민 블레이드 후보까지 불러들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톡 까놓고, 아버지가 그 블레이드 후보의 뒤를 봐준다고 하면서 가족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아니지! 뭐 하러 아버지가 먼저 그런 얘기를 해? 블레이드 후보가 여기로 찾아와서 부탁해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말도 안 돼는 소리야. 그건 아버지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거라고!”
“그건 또 그런 것 같네…….”
“그래도 나는 그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이 마음에 들던데.”
칼라반과 함께 움직였던 가니카스가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가 가니카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아라카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니카스에게 먼저 질문했다.
“어떻더냐?”
“아버지보다는 못생겼다!”
“미친놈! 누가 외모를 물어봤냐!? 그 공민이라는 풋내기 녀석이 어땠냐고 묻는 거다.”
“흐음… 사실 뭐라 말을 못하겠단 말이지!?”
“말을 못하겠다고?”
“응. 솔직하게 말해서 어떤 녀석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어.”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그러지 말고 아버지가 직접 가서 보는 것은 어때? 아니면 진짜 여기로 부르던지.”
“으음…….”
아라카인이 고민에 잠겨있는 때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왔다.
허겁지겁 달려온 사내는 숨도 고를 틈 없이 모두를 향해 손짓했다.
“속보야 속보!”
“속보?”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어 아버지! 죄수호송차가 움직일 거야.”
“죄수호송차? 그렇다면…….”
“맞아. 붙잡혀 있던 바티투스 형이랑 다른 가족들을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사내의 말에 아라카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도 한껏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때 아라카인이 가니카스를 바라보았다.
“가니카스!”
“엉?”
“확실하게 답해라. 공민이라는 풋내기, 내가 만나볼 가치가 있는 녀석이냐?”
“아버지도 산악 민족들 알지?”
“물론. 투박하지만 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자들 아니냐.”
“그 산악 민족들이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을 따르기로 했어.”
“……!”
“그러니 만나볼 가치가 있지 않겠어?”
가니카스의 말에 아라카인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 그의 반응이 무언의 긍정임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 * *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돌바닥 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밧줄에 손을 묶인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넋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듯 멍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메도라스 백작의 얼굴은 가히 가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이…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어…어째서…….”
그는 다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앞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은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본래 저 의자의 주인은 메도라스 백작이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메도라스 백작과 가문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붙잡혀 와 이렇게 묶여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자 대형으로 늘어선 병사들과 기사들의 모습. 정제된 판금 갑옷 위로 황금빛으로 수놓아진 모래시계를 관통하고 있는 검의 문양.
메도라스 백작이 이들의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째서 지금 이들이 이곳에 있냐는 사실이었다.
“메도라스 백작.”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들고 있던 서류들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차갑고 낮은 음성이었다.
아무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듯 들렸지만 메도라스 백작에게는 이상하게도 은근한 분노가 담긴 것처럼 들려왔다.
“예…예에…….”
디라키온 도시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힌 다는 권력자.
그런 메도라스 백작이건만 사내 앞에서는 한껏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도 이런 메도라스 백작의 태도는 처음 봤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제국의 심판관.
광활한 제국 영토 내에서도 오직 1000명에게만 허락된 지위.
그들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선별되는 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심판관들의 정체 또한 누구인지 철저한 기밀에 붙여졌다.
혹여나 신분이나 정체가 드러나는 심판관들이 있다면 황실의 비도(悲悼)라 불리는 나이트워커들이 찾아와 죽음을 선사할 정도로 기밀을 유지했다.
그들이 그만큼 심판관들의 정체를 감추려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심판관들이 가진 권력.
6명의 왕이 나오기 이전부터 활동했던 심판관들은 광활했던 제국의 영토를 떠돌아다니며 법을 어기거나 죄를 저지르는 귀족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다.
그 때문에 한때는 귀족들 사이에서 심판관의 존재는 사신처럼 여겨진 적도 있었다.
황실 직속이면서도 기괴하게도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들.
이렇게 강력한 권력을 지닌 만큼 심판관들의 정체가 드러나 이를 악용할 수 없도록 황실에서부터 철저하게 관리한 것이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서 6명의 왕들이 분할 정치를 시작하며 심판관들의 역할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드넓은 영토를 황제 혼자 다스리는 것보다 6명의 왕을 두어 다스리기 시작하니 귀족들에 대한관리가 조금은 더 수월해졌던 것이다.
황실은 그렇다고 해서 심판관의 존재를 없애지 않았다. 귀족들에게 언제나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메도라스 백작은 다시 한 번 사내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철제 가면. 이는 심판관들이 쓰고 다니는 가면과 일치했다.
철제 가면의 곳곳에 금빛으로 물든 부분들이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눈 밑에 있는 붉은 장미였다.
메도라스 백작은 그 붉은 장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붉은 장미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뒤죽박죽 섞여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이 난관을 어떻게 빠져 나가느냐 였다.
아직 자세한 정황도 드러나지 않은 마당에 자신을 이렇게 묶어놓은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심판관이 읽고 있는 자료들은 이미 사전에 준비해놓은 것들이었다.
저 자료들로는 그 어떠한 문제도 찾을 수 없을 터.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만 한다면 붉은 장미가 그려진 저 심판관을 상대로 황실에 따지고 들 생각이었다.
“재밌군. 더 없나?”
“예? 더 없냐니…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메도라스 백작 그대가 장난쳐놓은 서류들 말이다. 더 없냐고 물었다.”
“그게 무슨…….”
쫘아악―!
심판관은 들고 있던 종이들을 단숨에 찢어버렸다.
종이조각들을 바닥에 날려버린 심판관이 천천히 걸어 내려와 메도라스 백작의 앞에 섰다.
“해적들과 거래한 내용, 노예들을 비밀리에 타국으로 사고판 내용, 시민들에게 강제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은 내용 등등. 들어가지 않은 내용들이 너무 많군.”
심판관의 말에 메도라스 백작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그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알고 있어 순간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표정 변화를 놓칠 심판관이 아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대의 죄를 인정하는 것 같군. 황실에서 정해준 법대로 그대를 심판하겠다.”
“그…그렇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증거로!”
메도라스 백작이 다급하게 외치자 심판관이 그를 돌아보았다.
심판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곁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한 명이 여러 책들을 가져왔다.
그것을 알아본 메도라스 백작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말았다.
심판관이 집어든 책들은 모두 그가 비밀리에 작성하고 있던 장부였다.
“그 짧은 사이 집사를 시켜 장부를 빼돌리려 하다니.”
심판관의 말에 메도라스 백작은 그만 고개를 땅에 처박고 말았다.
저 장부가 심판관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