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99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99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99화
#생각지 못한 방문자
한편, 유운량과 칼라반은 함께 디라키온 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 도시에도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겠군요.”
“레기온이 나섰으니 잠잠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녀석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었겠지… 지나치게 썩기 시작하면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으니.”
“그나저나 레기온의 정체가 심판관이었다니… 정말 놀랍군요. 헌데 어째서 용서받지 못한 자라고 불리는 겁니까?”
“그건… 제국 황실의 명령으로 레기온이 타국과 내통한 귀족 가문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였을 때부터였다. 레기온은 모든 정황을 확인했고, 타국과 내통한 것은 엄청난 중죄였기에 처단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가문의 몰살. 관련된 이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그때 황실의 법도였다.”
“허어… 허면 살아남은 자들 중 그 가문과 관련된 이들이 레기온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까?”
유운량의 질문에 칼라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기온은 심판관 중에서도 가장 유능하다 평가 받는 자였다. ‘하얀 장미’로 불리던 녀석은 황실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심판관이었으며 귀족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였다. 그리고 이 사건 역시 레기온은 그 누구보다 깔끔하고 확실한 일처리를 보였다. 내통 죄에 관련된 이들은 자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그 어떤 심판관도 녀석만큼 훌륭히 일을 처리해내지 못했을 거다.”
“그것은 대단하군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때 내통 죄로 몰살된 가문은 레기온 본인의 가문이었으니까.”
“…! 아아…….”
“모든 것보다 자신의 신념을 중요시 했던 녀석이다. 결국 녀석은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제국을 위해 자신의 가문에 검을 빼든 거다.”
“잔인한 일이로군요…….”
“레기온은 사실 지금까지도 누구보다 이 제국을 증오하고 있을 거다.”
“제국을 위해 자신마저 감추고 살아가는 자가 제국을 증오한다라… 아이러니하군요.”
유운량과 칼라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무거운 얘기가 오간 것이 무색하리만치 맑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디라키온 도시에 몇몇 소문들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로만슨이 이끄는 해적단의 몰살이었다.
디라키온 도시를 몸살로 앓게 했던 로만슨 해적단이 정체모를 누군가에 의해 몰살당한 채 발견된 것이다.
이를 듣게 된 도시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기쁨을 드러내었다.
곧바로 이어진 소식은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는데. 바로 메라도스 백작가의 몰락이었다.
메도라스 백작가는 갖고 있던 재산을 몰수당하고 귀족으로서의 지위도 박탈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메도라스 백작과 식솔들은 밤중을 타 몰래 디라키온 도시를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은 바로 심판관의 등장이었다.
심판관이 이곳을 다녀갔음을 알게 된 것은 심판관의 군사들 때문이었다.
가슴에 모래시계를 관통한 검의 문장을 달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오직 심판관들을 돕기 위한 병력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을 실제로 본 디라키온 시민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덕분에 디라키온 도시의 분위기도 한층 어수선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안정을 되찾아갈 것이 분명했다.
“정말 그렇게 왔어도 괜찮았나?”
칼라반은 곁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레기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괜찮습니다. 길게 인사를 나누는 것보다 이렇게 짧게나마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저로선 더 마음이 편합니다.”
레기온은 소니아와의 작별을 떠올렸다.
그녀는 레기온이 떠나기 전, 갑작스럽게 입술을 포개었다. 그때의 부드러운 감촉은 아직까지도 입술에 생생히 남아 있는 듯 했다.
이제 이 세상에 자신이 심판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한 명은 바로 옆에 있는 칼라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소니아였다.
그 말은 즉, 그에게도 소니아는 이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칼라반은 레기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떤가. 돌아갈 가족의 품이 있다는 것은.”
“후후… 저는 이렇게 잠깐 행복한 것만으로 족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제가 감히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레기온은 문득 칼라반을 돌아보았다.
그는 일찍부터 가족을 잃었다. 그런 칼라반의 앞에서 말실수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다.
“괜찮다.”
그런 레기온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칼라반이 먼저 선답을 내놓았다.
레기온은 칼라반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부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칼라반과 함께 지냈었다.
그러니만큼 칼라반에게 가족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흑염을 다시 피우시겠다는 말씀은 역시… 그들을 태워버리겠다는 말씀이시겠지요.”
“물론이다. 많은 전우들이 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니 녀석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의 전우들을 그렇게 만든, 그 자들의 행복을 불살라버리는 것. 그것이 현재 내가 살아가는 목표이자 내 삶의 이유다.”
낮게 가라앉은 칼라반의 목소리에 위엄이 실려 있었다.
레기온은 홀로 무언가 결심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라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고맙다. 그러나 함부로 죽으려 들진 마라. 그대에게는 이제 돌아갈 가족들이 생겼질 않나? 그렇지 않아도 떠나기 전 소니아가 내게 부탁하더군. 너를 잘 챙겨달라고 말이야.”
“아… 소니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후후.”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레기온은 간만에 순수한 미소를 보였다.
칼라반과 유운량, 레기온이 다시 아라곤의 거처로 도착한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이라벨과 제르단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돌아오셨어요!!”
그들은 못 보던 얼굴을 보자 누구인지 표정으로 물었다.
칼라반은 손으로 레기온을 가리키며 그를 소개했다.
“레기온이다. 나의 오랜 전우이자 친구이기도 한.”
“레기온입니다.”
레기온의 인사는 짤막했다.
그러나 임펙트 있는 그의 인사에 제르단과 이라벨은 순간 멍해진 얼굴을 했다.
그때 그들의 뒤편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벌써 돌아온 건가?”
“응!? 뭐야 그 말투는? 내가 빨리 돌아와서 불만인거야?”
“아니다.”
칼라반과 여인의 대화를 듣던 레기온이 짐짓 놀란 얼굴을 했다.
여인의 시선이 레기온에게로 향했다.
“당신이 레기온이라는 사람?”
“그렇습니다만…….”
레기온은 칼라반에게 앞의 여인이 누구인지 눈빛으로 물었다.
“헤이나라고 한다. 라그나로크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현재는 나를 도와주고 있는 여인이다.”
“뭐야, 그게 끝?”
칼라반의 소개에 헤이나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더 소개할 줄 알았는데 짧아도 너무 짧은 소개였다.
칼라반은 오히려 더 해야 할 말이 있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됐어, 됐어. 기대한 내가 바보지.”
헤이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를 포함해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레기온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군요.”
“뭐가요?”
“이렇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있는 것 말입니다. 주군께서 편안한 분위기로 계시는 것을 보니 안심했습니다.”
어느 샌가부터 레기온도 유운량을 따라 칼라반을 주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뀐 그의 호칭에 칼라반이 예전처럼 자신을 부르라 했으나 레기온은 단호히 거절했다.
‘저는 칼라반님을 따르는 수하입니다. 이전에는 심판관과 대기사장의 위치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군주와 부하의 신분이질 않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부르도록 해주십시오.’
레기온의 말에 칼라반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가 계속해서 말린다 한들 순순히 말을 들을 레기온도 아니었다.
예전부터 외골수 기질이 있어 고집이 강한 사내였으니 말이다.
레기온의 합류로 모두가 통성명을 하던 때 이곳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게다가 그 손님의 정체는 모두가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들의 앞에 선 사내.
우람한 체격에 허리까지 내려온 붉은 머리칼은 사내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보이도록 했다.
“아라카인님……?”
별다른 수행원들을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었다.
단 두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온 것은 그만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아라카인은 곧바로 칼라반을 알아보았다.
“네가 공민이라는 풋내기인가?”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나는 아라카인이다.”
“라그나로크의 블레이드시군요.”
“호오…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로군.”
아라카인은 의외라는 듯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가니카스가 칼라반을 향해 아는 체했다.
“안녕하십니까, 공민 블레이드 후보님. 저 또 왔습니다.”
가니카스의 인사를 받아준 칼라반은 다시 아라카인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한 무리를 이끌어가는 수장다운 풍채라 할 수 있었다.
다부진 근육들에 새겨진 상처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단지 앞에 서 있는 것뿐인데도 강대한 기운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런 느낌은 칼라반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위협적인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수라윤회심공이 활성화되어 신체를 안정화시킵니다.]단전에서부터 시작된 칼라반의 방대한 내공이 전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의 내공이 아라카인의 투기를 흘려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라카인님.”
“흐음…….”
아라카인은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놀라기는커녕 긴장조차 하지 않고 있는 얼굴이었다.
‘지금껏 나를 만난 풋내기들 중에 이런 반응을 보였던 놈이 있었나?’
단언컨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라카인을 직접 마주했던 블레이드 후보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모습들이 역력했었다.
그것은 블레이드 후보들 중에서도 강하다고 이름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눈앞에 있는 헤이나도 막상 아라카인을 마주하니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는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투기가 상대에게 영향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가까이에서 투기에 노출된 칼라반은 아라카인의 투기를 물 흐르듯 흘려내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아라카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군.”
그는 이제야 가니카스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너. 나의 아들이 되어라. 어떻게 생각하나?”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호오…? 이 좋은 기회를 거절 하겠다?”
“그렇습니다.”
“너… 지금 내가 누군지 잊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라카인님. 그리고 이런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서 저희를 어찌할 분도 아니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크하하하!! 건방지군.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렇게 당돌한 풋내기는 정말 오랜만이거든!”
아라카인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시건방진 녀석이라 치부하며 인상부터 구겼겠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의 사내는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여유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외려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는 칼라반의 곁에 있는 자들부터 살폈다.
가장 먼저 유운량의 능력은 이미 직접 경험해보았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헤이나도 일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잘 알았다.
그런데 다른 누구보다 아라카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아닌 한쪽에 위치해 서 있는 사내였다.
조용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잘 벼려놓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검투사들 중에서도 저런 눈빛을 한 자는 늘 조심하는 것이 옳았다.
“마냥 볼품없는 녀석은 아닌 모양이고.”
이런 자들이 칼라반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홀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