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he is a hunter, he also uses internal skills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아… 임자가 있으셨구나. 아쉽네요. 못다 한 감사의 표시는 다음 기회를 보도록 하죠, 뭐.”
리오나는 당돌하게 말하며 뒤로 재빨리 물러섰다.
그러자 이지은이 미간을 모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 기회라는 건 없어. 적어도 내가 옆에 있는 한.”
“그럼 옆에 없을 땐 된다는 거네요? 훗!”
“내가 없을 때 건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와, 엄청 무서운 언니네요.”
“나 언니 아니야. 올해 열아홉. 오히려 네가 언니일 거 같은데?”
“열아홉이면… 동갑이네요. 그런데 왜 다짜고짜 반말?”
“꼬우면 너도 하던가.”
갑자기 시작된 두 여인의 날카로운 신경전에 강혁과 테오까지 모두 당황해 버렸다.
그러자 박단이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둘 다 스톱! 여자대장부가 말싸움이나 하고 뭐 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당당하게 붙어. 날짜, 시간, 장소만 말해. 내가 심판 봐줄 테니까.”
박단의 박력에 이지은도, 리오나도 움찔하고는 그제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들 여기 서서 뭐 해요?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어요. 할 이야기가 있으면 편하게 자리 잡고 하셔야지, 이게 뭐람?”
“단이 말이 맞다. 퀴퀴한 시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굳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다 같이 한풀로 가자.”
해도준까지 나서서 이곳을 뜨자고 하자 강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제가 크게 쏠 테니까 한 명도 빠짐없이 한풀로 모이시죠.”
강혁이 밝게 웃으며 꺼낸 말에 용사강이 헛기침하며 슬쩍 한마디 했다.
“크흐흠. 이왕이면 한우로… 괜찮겠지?”
용사강은 한우에 껌뻑 죽는 인물이었다.
“먹고 싶은 건 뭐든 다 먹어. 오늘은 파티다. 하하하!”
강혁이 시원하게 대답하자 백두식과 최창배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 둘도 한우라면 죽고 못 사는 엄청난 먹보들이었다.
* * *
9대 마인과의 전투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의 성과는 외부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동안은 그 누구도 감히 9대 마인을 깡그리 쓸어버릴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강혁이 그 엄청난 일을 해내자 대한민국이 통째로 들썩거렸다.
알음알음 퍼져나간 소문은 이내 쓰나미급으로 변해버렸고, 결국 세계로까지 뻗어나갔다.
특히 토마스와 패트리샤가 흔적도 없이 끔살 당했다는 소식에 유럽과 서부무림은 환호하며 축제를 열기까지 했다.
이 일로 강혁은 무림연합과 헌터 유니온에 열열한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3주 전까지만 해도 무림공적이라며 마녀사냥을 하던 작자들이 이젠 강혁을 무림계의 대영웅이네, 헌터들의 귀감이네 하며 치켜세우기 바빴다.
그 덕에 한풀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하지만 그들 중 강혁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하태성 공방주나 박기문 공방주의 선에서 모두 처리되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강혁은 한풀의 자택에서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후아암.”
푹신한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강혁.
탄탄한 상체를 훤히 드러낸 채 창가로 다가간 그는 커튼을 확 젖히고는 창문까지 열어버렸다.
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자 강혁은 눈이 부셨는지 손으로 눈을 살짝 가렸다.
그때,
팍!
창밖에서 그림자 하나가 안으로 불쑥 뛰어 들어왔다.
눈으로는 가히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의 빠르기.
하지만 강혁은 이미 그 그림자가 달려들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피하거나 막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강혁에게 달려들자마자 탄탄한 상체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저 왔어요.”
강혁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으며 작게 속삭이는 여인.
그녀는 바로 이지은이었다.
“빨리 왔네? 인사는 잘 드렸고?”
“네. 이젠 가족들 모두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에요.”
“고생했어. 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오빠가 같이 갔으면 저도 좋았겠지만, 오빠가 움직이면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니까 조심해야죠.”
이지은은 부모의 복수를 완료했기에 드디어 가족이 묻힌 무덤을 찾아가 그동안 쌓였던 한을 마음껏 풀고 왔다.
원래는 3일 일정이었지만, 이지은은 강혁과 떨어져 있는 게 싫어서 서둘러 돌아왔던 것.
“그런데, 지은아. 넌 어째 부주성채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문 대신 창문으로만 들락거리냐? 무슨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이젠 당당히 정문으로 출입해도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왜요? 제가 창문으로 다녀서 싫어요? 제가 이렇게 느닷없이 들이닥쳐야 오빠가 긴장할 거 아니에요.”
“뭐야. 그럼 나 긴장시키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거냐?”
“아, 몰라요. 저는 그냥 이게 편하다고요.”
이지은이 토라진 말투로 대답하자 강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강철의 여인처럼 강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이지은.
하지만 그녀는 강혁 앞에선 조금도 강하지 않았다.
마치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성격을 한 몸에 가진 것 같은 이지은.
오늘따라 강혁의 눈엔 그녀가 더욱 예뻐 보였다.
“근데, 이제 좀 놔주면 안 될까? 나 아직 옷도 제대로 안 입었는데.”
“어? 맞다.”
그제야 강혁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이지은.
두 볼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돌리던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진 돌조각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지은이 석벽 조각을 보며 인사하자, 조각이 우우웅 소리를 내며 떨다가 허공에 홀로그램 창을 띄워 올렸다.
[에잉. 잘 지내긴 뭘 잘 지내? 나야 늘 똑같지. 그런데, 너희 둘은 그렇게 꽁냥거리면서 살 거면 그냥 함께 살지, 뭐 하러 방을 따로 쓰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구나.]“에이, 그건 석옹께서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남녀가 한 방에서 같이 지내기 시작하면 신비감이 바로 깨지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아직은 같이 한 방에서 살면 안 되는 거랍니다. 게다가 아직은 이르기도 하고요.”
이지은은 석벽 조각을 아예 석옹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르긴 뭐가 일러?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그리고 남녀가 뭐 다르다고 그래? 둘 다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무슨 신비감이 남아 있다는 건지… 쯧. 아무튼 그건 그렇고 너도 얼른 준비해라. 84번 석벽이 그러는데, 혁 씨 늙은이가 아주 애가 닳아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는구나.]“천문 할아버지가요?”
[그래. 187층 보스를 코앞에 두고도 강혁이 녀석하고의 약속 때문에 거의 한 달째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냐.]“그럼 밖에 좀 나오셔서 세상 구경이나 좀 하고 다니시지, 왜 대마궁에서 꼼짝을 안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른 종족들이 187층을 먼저 깨고 더 깊이 내려가는 꼴을 못 보겠다지 않냐? 그놈의 혁 씨 늙은이 때문에 벌써 몇 개의 종족이 187층에서 가로막혔는지 아느냐? 자그마치 27개 종족이다. 이러다가는 마족까지 가로막을 상황이야. 그러니 얼른 대마궁으로 떠날 준비나 하거라.]석벽 조각이 말한 84번 석벽은 대마궁 84층 명예의 전당에 세워진 커다란 석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원래 강혁이 지닌 석벽 조각은 메인 석벽에서 떨어져 나온 단순한 파편에 불과했으나, 며칠 전 블랙스미스에 의해 진화를 끝낸 후로 더 이상 파편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강혁의 석벽 조각은 이제 별도의 지성을 가진 독립 개체로 거듭났고, 오히려 메인 석벽을 컨트롤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대마궁에는 이 석벽 시스템이 모든 층에 적용되어 있어서 석벽을 소유하게 되면 대마궁의 전체적인 상황을 한눈에 볼 수가 있게 된다.
지금은 강혁의 석벽 조각이 84층의 메인 석벽만 자신의 제어 하에 두고 있지만, 강혁이 대마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른 층의 석벽 시스템까지 하나하나 제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변화에도 강혁은 석벽 조각을 ‘석 씨’라고 부르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석 씨는 자신의 방대한 정보를 무기로 삼아 건방 좀 떨어보기 위해서라도 강혁이 빨리 대마궁에 들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봐요, 석 씨. 석 씨가 자꾸 그렇게 재촉하니까 더 가기 싫어지는 거라니까요?”
어느새 옷을 걸친 강혁이 한마디 하자 석 씨는 또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놈 할아버지 속 터질까 봐 그러는 거지, 누가 나 좋자고 이러는 거냐? 알았다! 이젠 나도 상관 안 할 테니 대마궁에 가든 말든 네놈 알아서 하거라. 흥!]“하여튼, 몇천 년을 살아온 양반이 속은 좁아터져 가지고. 알았다고요. 오늘 내로 출발할 거니까, 좀만 기다려요. 갈 땐 가더라도 사람들하고 인사는 해야 하니까.”
[오, 정말이냐? 드디어 오늘 대마궁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냐?]“그렇다니까요. 대신, 약속대로 매 층마다 최단거리 공략법이랑 히든피스를 모두 알려줘야 합니다?”
강혁은 석 씨의 진화가 끝났을 때, 그의 강화된 능력을 바로 알아보고 미리 약속을 받아 뒀다.
강혁은 적어도 100층까지는 시간 낭비 없이 초고속으로 내려갈 생각이었고, 그게 가능하려면 석 씨의 도움이 필수였으니까.
그래서 석 씨에게 최단거리 공략법을 도움받는 대신, 석 씨가 대마궁의 모든 석벽 시스템을 꿀꺽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일이었기에 석 씨도 흔쾌히 허락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 테니, 네놈이나 약속 잘 지켜라.]“알겠습니다. 믿고 갑니다, 그럼.”
강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석벽을 챙긴 뒤 이지은과 함께 방을 나섰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한동안은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이상이 걸리는 긴 여행.
이 여행에 동행하는 건 오직 이지은 한 명뿐이다.
혁천문은 187층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강혁이 100층을 돌파하면 그때부터 함께하기로 약속한 상황.
그러니 동료들을 만나 짧게나마 인사를 해두려는 것이다.
강혁은 오늘 이지은이 돌아올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어제 미리 동료들에게 대마궁으로 떠날 거라고 말해뒀다.
그들은 자기들도 같이 가길 원했지만, 그건 강혁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내가 없는 동안 심심해할 테니까 다 같이 놀 거리는 던져주고 가야겠지?’
강혁은 자신이 대마궁으로 떠나있는 동안 동료들이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바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강혁에겐 그 역할을 해줄 만한 아주 좋은 물건이 있었다.
바로 웨이브 균열.
아라신교의 악녀 우연희가 미친척하고 냅다 경기장에 풀어놓았던 막장 균열이 바로 웨이브 균열이었다.
한번 열리면 5분 간격으로 B급 수준의 몬스터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공포의 균열.
강혁은 그 균열을 자신이 구매한 균열 속에 열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웨이브 균열을 막아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도 그 파급력이 지구에까지 전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강혁은 웨이브 균열이 담겨 있는 큐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이지은과 함께 동료들이 모여 있는 대회의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 * *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강혁은 혁천문과 함께 200미터가 넘는 깊이의 협곡을 지나가고 있었다.
협곡은 굉장히 넓었는데, 폭이 100미터나 되어 협곡 바닥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은 위에서 보면 마치 개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주위로 상당한 숫자의 몬스터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놀라운 건 몬스터들이 마치 자객이라도 된 것마냥 나무와 바위 같은 지형지물을 이용해 모습을 숨기면서 두 사람을 뒤쫓고 있다는 것이다.
강혁과 혁천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허어. 네가 아무리 참백신마도를 익혔어도 북천제일신기공에는 안된다니까 그러는구나.”
“에이, 그건 아니죠. 할아버지의 북천제일신기공이 세계 무공 순위의 첫 번째에 올라 있긴 해도, 참백신마도 또한 두 번째에 올라 있는 엄청난 도법이라고요. 그 도법에 제가 익힌 무절심경이 더해지면 북천제일신기공을 충분히 깨뜨릴 수 있다, 이겁니다.”
강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중에 평범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혁천문의 독문무공이자 북두제일가를 천외천의 지배자로 발돋움하게 해준 무공인 북천제일신기공.
강혁은 그 무공을 자신이 깨뜨릴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참백신마도를 익혔다는 말도 나오고 있으니, 실로 놀랍기만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177층에서 참백신마도를 찾았을 때, 그걸 너한테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177층 보스를 죽인 건 저고, 히든피스를 찾아내서 비밀을 풀어낸 것도 저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보상으로 나온 참백신마도도 제 것이 맞죠.”
“이 할애비가 없었으면 그때 지은이가 멀쩡했을 거 같으냐? 네가 그놈의 발록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지은이를 지켜낸 게 이 할애비임을 잊으면 안 되느니라. 커흠.”
“아, 맞네요. 그건 인정. 그러니 제가 북천제일신기공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달라 이겁니다.”
“헌터 레벨이 고작 160밖에 안 되는 녀석이 지금 이 할애비하고 한 판 해보겠다는 거냐?”
누가 들으면 기가 찰만한 대화였다.
레벨 160을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은 전 세계에서 혁천문 한 명뿐이리라.
“헌터 레벨은 160이지만 무인 레벨은 170을 넘었다고요! 게다가 이젠 증폭 특성 쓰면 최대치가 346이나 되는데, 할아버지가 그걸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또 그놈의 증폭 이야기구나. 그놈의 사기적인 특성 하나 가졌다고 자랑질할 때는 이제 지나지 않았니, 손자야?”
“그러는 할아버지도 새롭게 ‘묻고 더블’ 특성 얻었다고 몇 날 며칠을 저한테 자랑하셨잖아요. 그건 사기적인 특성 아닌가요, 뭐?”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공격을 시전하기 직전에 캔슬하면 다음 공격의 위력이 두 배나 증가하는데, 이게 보통 특성이냐? 그리고, 공격 캔슬로 내가 버텨야 할 부담이 얼마나 큰데. ‘묻고 더블’ 특성은 내가 감수해야 할 타격이 큰 만큼 내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 어찌 사기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두 사람은 상당히 높은 레벨의 지능형 몬스터들이 은밀하게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옥신각신할 뿐이었다.
그때, 몬스터 중 하나가 주변의 동료들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셋을 세면 일제히 뛰쳐나가 저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족을 수천 조각으로 찢어 죽이자고 말이다.
풍뎅이처럼 생겼지만, 머리에 닭벼슬 같은 걸 달고 있는 몬스터, 아니 정확히 말해 마족 중 하나인 크리낙은 세 개밖에 없는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하나!’
크리낙이 첫 번째 손가락을 펼쳤을 때였다.
스스스스슷.
강혁과 혁천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크리낙의 뒤쪽에서 거의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놈의 동료들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지만, 크리낙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둘!’
두 번째 손가락이 펴졌을 때, 빛처럼 움직이는 존재는 크리낙의 동료 대부분의 목을 따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손가락을 펼쳤을 때,
“크롸우케토톡!”
마족의 언어로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며 크리낙이 뛰쳐나갔다.
하지만 크리낙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다.
대신, 잘려 나간 목에서 녹색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고 있는 머리 없는 몸뚱이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푸쉬이이이이이!
쿵.
쿵쿵쿵!
머리가 날아간 몸뚱이들이 차례로 엎어지는 소리에 놀라 멈춰서 버린 크리낙.
이미 강혁의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던 크리낙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가 상황을 인지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케루로(잠깐만) 아케보(기다려)…….”
촤아아악.
크리낙은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쿠궁.
반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쓰러진 크리낙.
그 뒤에는 얇고 긴 검을 흔들어 녹색 핏물을 떨쳐내는 이지은이 서 있었다.
그녀는 전보다 훨씬 더 예뻐진 얼굴로 강혁과 혁천문을 차갑게 노려봤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조무래기들 소탕은 저한테 다 맡기고, 두 분은 유유자적 어디 소풍이라도 나오신 것 같네요?”
철컥.
이지은이 핏물을 털어낸 검을 검집에 찔러 넣는 소리에 강혁이 움찔했다.
“에이, 소풍이라니. 네가 적들을 잘 썰어버릴 수 있도록 일부러 어그로를 끌고 있었던 거야. 그렇죠, 할아버지?”
“으응? 아, 그럼. 당연하지. 우리 손주 며늘아기 고생 많았다. 이제부턴 혁이 녀석하고 이 할애비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 넌 이만 쉬거라. 허허허허.”
두 사람의 말에 이지은의 싸늘한 얼굴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말이죠?”
“정말이고 말고.”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강혁과 혁천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은은 하얗게 웃음을 그렸다.
“그럼 저건 두 분이 알아서 하신다는 거죠?”
이지은이 협곡 위쪽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강혁과 혁천문의 고개가 슥 돌아갔다.
그리고 헉하는 소리를 내며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크허어어어어엉!
협곡 위쪽에 떠 있던 그것이 어마어마한 괴성을 내질렀다.
일정 수준의 레벨이 아니라면 10초 동안 몸을 굳게 만드는 피어.
하지만 놈의 피어는 세 사람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펄럭.
콰우우우우우우.
거대한 놈의 날갯짓 한 번에 협곡 아래의 나무와 바위들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놈은 정말 거대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만 50미터가 넘었고, 날개를 활짝 펼친 상태에선 좌우 길이만 60미터는 될 것 같았다.
거기다 지옥의 마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새빨간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아우스쿠림.
이 초대형의 레드 드래곤은 바로 대마궁 187층의 최종 보스였다.
강혁은 아우스쿠림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199네요.”
아우스쿠림의 가슴팍에 떠올라 있는 숫자는 199.
숨이 턱 막히는 엄청난 수치였다.
“어때, 죽이지? 난 이걸로 두 번째 마주하는 건데, 다시 봐도 정말 어마무시하구나. 허헛.”
혁천문도 조금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이지은.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혁이 오빠, 그리고 할아버지… 파이팅!”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바로 그 순간 하늘 위에 떠 있던 아우스쿠림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로 쏜살같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놈의 입은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쩍 벌려져 있었고, 입 안 중앙에선 이글거리는 화염이 구체로 만들어진 상태.
그 모습을 본 혁천문은 강혁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저건 아무리 너라도 혼자선 안될 것 같지?”
“제 말이요. 이번만큼은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부탁이냐?”
“부디요.”
강혁이 울상이 되어 손바닥까지 붙이며 도움을 바라자 혁천문이 크게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래도 이 할애비가 우리 손자 녀석한테 아직 쓸모가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 함께 해보자꾸나. 저놈이 센지, 내가 더 센지 오늘 끝장을 내보련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시원하게 외친 혁천문이 레드 드래곤 아우스쿠림을 올려다보며 발을 힘차게 굴렀다.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유성이라도 추락한 듯 땅이 터져나가며 혁천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강혁도 같이 진각을 밟으며 아우스쿠림을 향해 섬전처럼 쏘아졌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앙!
두 번의 폭음과 함께 하늘을 향해 포탄처럼 쏘아진 두 사람.
잠시 후, 강혁과 혁천문은 아우스쿠림이 뿜어낸 브레스를 정면으로 꿰뚫으며 눈부신 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파아아아아아앗!
그 빛은 이후 세 줄기의 번쩍임으로 변했고 한참 동안 협곡 상공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울퉁불퉁했던 거대 협곡은 점점 평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대마궁 역사상 처음으로 187층이 단 두 명의 인간의 손에 클리어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고, 그 기록은 수백 년이 지날 때까지 그 어떤 영웅들도 깨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