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1)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1화(1/101)
#1. 프롤로그
유스티나스는 특이한 아이였다.
“너 괜찮아? 많이 아파 보여.”
세드릭이 그녀와 처음 만났던 것은 그의 열한 살 생일 때였다.
“일어날 수 있겠어?”
그날따라 유독 재수가 없었다.
2주 내내 먹은 거라곤 길가에 난 잡초와 나무껍질뿐.
늘 뒤지던 음식점 쓰레기통도 누가 먼저 털어 갔는지 빵 부스러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팠다. 그러던 중 가게 너머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에, 그는 이성을 잃고 바게트 한 덩이를 훔치고 말았다.
“이 더러운 쥐새끼가! 어디 남의 빵에 손을 대!”
들켜서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졌지만.
쫄쫄 굶어서 그런지 어지러웠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 번 맞은 뒤통수도 욱신거렸다.
그런데 돌연 예쁘게 생긴 또래 소녀가 그에게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름이 뭐야?”
“…알 거 없잖아.”
“나는 유스티나스야!”
그녀는 억지로 세드릭의 손을 붙잡더니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했다.
배에서 꼬르륵대는 소리가 났다.
그런 세드릭을 보던 유스티나스는 곧, 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눅눅하고 곰팡이가 핀 빵이었다.
“이거 너 먹- 엇!”
세드릭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곰팡이 핀 빵을 입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었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 빵은 돌처럼 단단했지만, 이 주를 굶은 후라 그것조차도 너무 달게 느껴졌다. 세드릭은 빵을 전부 먹고 손바닥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싹싹 핥았다.
오랜만에 받은 호의는 달았으나 빵 한 조각은 허기를 달래기엔 턱없이 작았다. 유스티나스가 그런 세드릭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보다가 이내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집으로 올래?”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부터 세드릭은 그녀와 동거하게 되었다.
물론 단둘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유스 누나! 마티가 내 빵을 몰래 뺏어 먹었어!”
“흥, 그건 네가 먹던 중에 한눈을 팔아서 그런 거잖아.”
“자, 자… 둘 다 진정해.”
유스티나스의 집에는 마흔두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 내 빵을 줄게. 마티도, 다음부터는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면 안 돼?”
“…응, 알았어. 미안.”
제 몫의 식사를 넘기는 유스티나스를 보며, 세드릭은 일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너, 새로 온 애지?”
“…그런데.”
“유스한테 심술부리지 마.”
그보다 세 살 많은 소년은 세드릭을 보며 단단히 경고했다.
“이 주변의 고아들이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건 전부 유스 덕분이야. 걔가 자기 집을 내어줬으니까.”
“…유스는 어떻게 이 집을 가지게 되었는데? 고아 아니야?”
“아니었어. 2년 전까지는.”
세드릭은 그날 알게 되었다.
유스티나스가 2년 전 부모님을 잃고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에서 생활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 상황에서 길거리의 고아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허름하지만 안락한 집을, 배를 채울 식사를, 사랑을 베풀었다.
“정말 대단하지? 아홉 살이란 걸 믿을 수가 없어.”
당시에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세드릭 역시 동의했다.
그의 생일날 유스티나스가 건넸던 빵은 하루에 딱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그 귀중한 식량을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베푼 것이다.
‘나였으면 혼자 살았을 텐데.’
솔직히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이 살기엔 집이 너무 좁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기들 탓에 살림살이도 갈수록 빡빡해졌다.
그런데도 유스티나스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자기도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주제에, 더 달라고 보채는 동생들에게 기꺼이 제 몫을 통째로 내어주는 소녀였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지?’
세드릭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기억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빈민가에서 살았다.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는 천애 고아였다.
이상하리만치 기억나지 않는 아홉 살 전을 제외하면, 지난 2년간 그의 삶은 언제나 투쟁이었다.
약하면 빼앗긴다.
강하면 빼앗는다.
세상은 그 두 가지 명제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는데.
“세드릭, 왜 안 먹어?”
생각하고 있는 사이 유스티나스가 다가왔다.
깨끗한 푸른 눈이 휘어진다.
그 인형 같은 얼굴을 보던 세드릭은 문득 부끄러워져 고개를 휙 돌렸다.
“너 먹어. 나 오늘 배 안 고파.”
“으응?”
그가 내민 빵 덩어리를 본 소녀가 당황했다.
“그, 세드릭.”
“너 먹으라니까.”
세드릭은 그녀가 무어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도 굶었으면서.’
오늘도 빵을 동생에게 넘기는 게 영 아니꼬웠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잖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여기며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고마워.”
조그맣게 나온 말에, 세드릭은 무심코 뒤를 돌았다.
“고마워, 세드릭.”
유스티나스가 웃고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볼품없이 마른 몸인데도, 그 미소는 정말이지…….
“쳇.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세드릭은 황급히 뒤를 돌았다.
왠지 귀가 뜨거웠다.
***
유스티나스와 함께 생활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열네 살이 된 세드릭은 도움받는 쪽에서 도움을 주는 쪽이 되었다.
“세드릭, 이불 좀 빨아 줘!”
“그래.”
그사이 유스티나스 집에 머무는 아이들은 오십을 넘겼다.
다만 낡은 2층 주택이 수용할 수 있는 아이는 그게 최대였다. 요즘에는 유스티나스도 더 이상 고아들을 데려오지는 않고 있었다.
‘이 생활도 나쁘지 않아.’
조금 자란 아이들은 근처 어른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
세드릭도 곧 그런 무리에 끼게 될 것이었다.
‘앞으로도 잘해야지.’
그는 이곳이 무척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쭉 이들과 함께할 미래를 그렸다.
“야, 어디서 무슨 냄새 안 나?”
“무슨 냄새?”
“뭔가 타는 듯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불, 불이야!”
“아기들 다 데리고 나가!”
목재로 된 낡은 집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조금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밖으로 피했다.
세드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두 살배기 동생을 든 채 숨을 헐떡였다.
“다 나왔어?”
“어, 어떡해.”
순식간에 번진 불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그사이 한 소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루카! 루카가 없어!”
루카는 이제 다섯 살 된 소년이었다. 그 말에 아이들은 불타 무너지고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내가 들어갈게.”
먼저 나선 건 유스티나스였다.
“금방 나올 거야, 괜찮아.”
세드릭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말릴 새도 없었다.
유스티나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타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유스티나스는 고작 열둘이다.
열넷인 그조차도 불타는 집이 너무 무섭고 두려운데, 그녀는 마치 목숨을 버려둔 사람처럼 굴었다.
‘아냐, 그래도, 유스라면…….’
유스티나스는 대단한 아이다.
그런 비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불타는 집에서도 멋지게 동생을 구해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면 안 됐는데.
“지, 집이 무너져…!”
“유스! 루카!”
이 상황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루카, 루카다!”
집 입구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루카가 밀쳐지듯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세드릭은 보았다.
“유스, 안 돼!”
루카를 밀치고, 무너지는 목재 너머에 갇히는 유스티나스를.
그녀가 무어라 말했다.
세드릭은 그녀를 향해 달렸다.
하나 역부족이었다.
목이 터져라 외친다고 한들 무너진 목재가 일어나는 일도, 불이 꺼지는 일도 없었다.
눈앞에 자꾸만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맴돌았다.
“세드릭, 좋은 어른이 되어 줘.”
마지막 말도.
***
다시 10년이 지났다.
유스티나스를 잃은 세드릭은 암흑가의 수장으로 성장했다.
암살. 불법 유통. 추적.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해낸다. 유능한 심부름꾼인 그는 어느새 뒷세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의뢰가 있습니다.”
기묘한 날이었다.
그를 찾은 손님은 하얀 예복을 차려입은 사제였다. 뒷골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종교인이 여긴 무슨 일이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묵직한 꾸러미를 받아 든 세드릭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사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녀님을 호위해 주십시오.”
“…성녀?”
낯선 단어에 그가 멈칫했다.
‘동대륙에 성녀가 재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마도 공학이 발전하는 현재, 신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그런 와중 어떤 여자를 성녀로 추대했다는 소문을 듣곤 비웃었다.
미개한 건너편 대륙에서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날뛰는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교황의 꼭두각시라도 되나.’
세상에 성녀 같은 건 없다.
한낱 인간이 기적을 일으킨다니.
희대의 사기꾼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돈을 받은 이상 못 할 일은 없었다. 주머니를 잡아챈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대륙으로 가면 되나?”
***
“신전은 처음이십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암흑가의 수장이라고 불리지만, 결국 높으신 분들의 뒤나 닦아 주는 사냥개일 뿐이다.
복잡한 예를 차리는 건 세드릭의 성미와 맞지 않았다. 그는 온통 새하얀 신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런 비효율적인 건물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차라리 허물고 식료품 공장이라도 세우는 게 빈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그래. 믿지 않아.”
그가 간결히 대답했다.
“성녀님은 이 안에 계십니다. 기도하고 계시니 조금 이따가-”
세드릭은 사제의 말을 무시한 채 기도실 문을 열었다.
‘머리가 희군.’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성국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당하는 불쌍한 여자가 누구인진 몰라도, 그는 돈을 받은 만큼 일할 뿐이었다.
“저분이신가?”
하얀 베일을 쓴 채 여신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여자.
세드릭은 그런 여자를 보며 무뚝뚝한 인사를 건넸다.
“오늘부터 성녀님을 호위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죠.”
“아.”
짧은 감탄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곧 돌아가는 고개에.
“안녕하신가요, 형제님.”
다정히 건넨 말에.
“저는 유스티나스라고 해요.”
세월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은 그 미소에.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쿵, 쿵, 쿵, 쿵.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10년 넘게 그리워했던 첫사랑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유, 유스…….”
나오는 말은 형편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유스티나스에게 손을 뻗었다.
하나 상대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세드릭의 허물어진 표정과 내밀어진 손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 옆에 있던 사제가 말했다.
“세드릭 님, 성녀님께선 앞을 보지 못하십니다.”
“뭐?”
그는 그제야 당혹스러운 눈으로 유스티나스의 상태를 살폈다.
‘초점이….’
유리구슬처럼 예쁜 두 눈은 그저 박혀 있을 뿐. 미동도 없었다.
계속되는 침묵에 불안했는지, 유스티나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 죄, 죄송해요. 제가 뭔가 실례될 만한 행동을 했나요?”
“…아니요.”
세드릭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다시 만난 첫사랑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