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100)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100화(100/101)
#100. 死
이즈미의 성유성이 쏟아진 직후, 나는 떨어지는 호천의 머리와 함께 몸에 힘을 풀었다.
시야가 천천히 추락한다.
의식이 흐려진다.
“유스!”
세드릭은 호천을 마무리하는 대신 곧장 내게로 뛰어왔다. 그가 피 웅덩이에 누운 나를 받쳤다.
“유스, 아-”
“세, 드릭.”
힘겹게 눈을 떴다…… 가 감았다.
생각해 보니 굳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 이유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흔들리는 시야로 그를 살폈다.
‘머리에 갈색 색소, 다 빠졌네.’
축축한 습기 때문인지, 수없이 상처가 나고 회복되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마족으로 각성하고 있어서인지.
마지막만 아니면 좋을 텐데.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그건.
“부탁이…… 있어.”
“말하지 마, 유스. 말하면, 피가.”
“내가 죽더라도, 콜록.”
“안 들을 거야!”
그가 외쳤다. 사나운 눈매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네가 왜 죽어? 그렇게는 못 둬.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섬뜩한 선언이었다.
세드릭의 ‘무슨 짓을 해서라도’에 어떠한 제한선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죽음을 미뤄야 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사지에 장애를 가지게 되긴 하겠지만, 이즈미가 가진 신성력을 전부 흡수하면 응급처치는 되리라.
이건…… 그래.
결정했다.
나는 내 몸을 잡고 허리를 숙인 세드릭에게, 한쪽 팔을 뻗었다.
그의 뺨이 피로 물든다.
“……세드릭.”
“-그만 말해. 말할 때마다 피가, 아. 아아. 네가 뭐라고 하든, 어떻게 해서든 널 살릴-”
“내가 밉지?”
세드릭이 눈을 홉떴다. 나는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줄곧 네 마음을 이용했으니까…….”
“-유스.”
“응. 미안해. 알고 있었어.”
마른기침이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작은 내장 조각과 새빨간 피가 흘러나온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입 안에 찬 내 일부를 뱉어 냈다.
“유스! 그, 어떻게, 빨리 치료해야…!”
“…가지 마.”
나는 움직이려는 세드릭을 붙잡았다. 그 뒤로 내게 달려오는 동료들이 보였지만, 지금만큼은 세드릭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너무 추운데…… 안아 줄래?”
거의 처음인 어리광에 세드릭이 멈칫했다. 그는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재촉하는 손길에 천천히 다가온다.
나를 안는 손길이 마구 떨렸다. 그러나 세드릭은 밭은 숨을 내쉬면서도 간신히 나를 끌어안아, 피가 빠져나가 식어 가는 내 몸을 따뜻하게 감쌌다.
두근, 두근.
기분 좋은 박동이 들린다.
세드릭이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
“전에 말했던 거, 기억, 해?”
“……뭘?”
“난 세상을, 구하고 싶거든.”
세드릭이 입을 앙다물었다. 지금 상황에서까지 그런 말을 해야 하냐는 원망이 느껴지는 눈빛이다.
하지만 중요한걸.
“그러니까, 세드릭. 너는 날, 지지해, 줘야 해. 설령 내가…….”
“넌 안 죽어!”
“……응. 그렇네. 안 죽어.”
죽자마자 부활할 거라고.
어차피 곧 동료들도 내게 여벌 목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죽기 직전 남기는 말’이란 요소가 먹히는 것도 이번뿐.
그저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 볼 생각이다.
“있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내 사명을…… 대신……. 완수해 줘. ……부탁해도 되겠니?”
“왜.”
세드릭이 울먹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왜냐니. 그야.
“그게…… 옳은 일이잖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그렇기에, 이는 내 사명이다.
세드릭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오른손 엄지를 들어 그의 눈가를 천천히 쓸었다.
피로 가득한 손가락이 세드릭의 눈물에 깨끗해진다. 그가 자신의 뺨 위에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러면, 이제 슬슬 얘기해 줘야지.
“그리고 세드릭. 나는,”
사실 안 죽어.
죽고 깨끗하게 부활할 거야.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말을 고르던- 바로 그때.
“…!”
무언가 내 심장을 쥐었다.
격통. 또 격통.
무통각증 스킬을 구매한 이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고통에, 나는 세드릭에게 안긴 채로 몸을 웅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입에서 나오면 안 될 조각들이 튀어나온다.
“커흑, 컥.”
“유, 유스? 왜,”
뭐지?
왜?
갑자기?
세드릭을 잡은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불타는 듯하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에서, 점멸하는 의식에 속삭임이 들렸다.
“길동무 하나는 데려가야 하지 않겠나? 빌어먹을 인간 꼬마.”
레이븐?
‘…설마?’
카리프 산맥의 미궁.
그와 닮은 호천의 크랙.
“죄송해요, 콜록. 이렇게 민폐를 끼치게 되어서…….”
아주 오랜만에 걸렸던 몸살.
아니…….
몸살이라고 생각했던, ‘감기’.
나는 분명 감염병에 면역일 텐데.
흑사병도 걸리지 않는 튼튼한 몸이, 고작 감기에 걸린다고?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쳤다. 뻣뻣한 고개가 돌아가 이즈미에게로 향한다.
녹색 눈동자를 보면서,
“이즈-”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
“…유, 스?”
유스티나스는 완전히 사망했다.
***
툭.
돌연 그를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본래부터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작은 악력이었으나, 그마저도 사라진 손가락은 섬뜩할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유, 스?”
설마. 아니겠지. 그래선 안 돼.
세드릭은 메는 목으로 유스티나스를 불렀다. 자신에게 안긴 몸을 조급히 흔들었다.
만약 기절한 것이라면 서둘러 깨워야 한다. 피를 이렇게 많이 흘린 상태에서 의식까지 사라지면 위험하다. 그가 애원했다.
“유스, 눈 좀 떠 봐.”
“…….”
“……유스?”
“세드릭, 잠시만. 내가 상태를 한 번 보게-”
참다못한 이즈미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날이 선 태도로 그의 손길을 쳐 내더니, 곧 허리를 숙였다.
유스티나스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공기의 흐름이 없었다.
아니. 아니. 아니야.
세드릭은 평소라면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유스티나스의 가슴에 귀를 대었다. 어찌나 절박했던지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하지만-
“유스! 안 돼…!”
몸을 일으킨 세드릭이 외쳤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가 무의식적으로 흠칫 놀랄 만큼 비통한 어조였다.
“유스!”
그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손발이 와들거린다. 몸은 유스티나스의 기적으로 멀쩡할 터인데 창자가 생으로 끊어지는 듯한 괴로움에 숨이 막혔다. 세드릭은 헐떡이며, 문장이 되지 못하는 사고를 정신없이 뱉어 냈다.
“아니야, 유스. 아니지? 거짓말이야. 안 돼. 아, 제발. 유스. 눈 떠.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계속. 계속.
흔들고 깨워도.
간절히 불러도.
비굴하게 애원해도.
“눈 뜨라고, 유스티나스!”
유스티나스는 그대로였다.
“유스-”
“그만!”
릴리아나가 버럭 소리쳤다.
“언제까지 잡고 있을 셈인가? 네놈이 흔드니까 그녀가 흩어지고 있지 않나!”
“그러면!”
세드릭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 그냥 포기하라고?”
“내 말은 포기가 아니라-”
“……됐다. 전부, 닥쳐.”
무어라 반박하려던 릴리아나는, 세드릭의 주변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마력에 숨을 들이켰다. 뒤늦게 알아챈 이즈미도 마찬가지였다.
유스티나스를 끌어안은 세드릭의 등에서 두 장의 흑익(黑翼)이 뻗어 나왔다. 마력으로 된 새까만 날개는 점차 불길한 세력을 넓힌다.
“마족…!”
지켜보던 도성지가 뒤늦게 능력을 사용했다. 푸른 전류가 세드릭을 향한다.
그러나.
치이익.
두 장의 날개에 닿은 전류는 힘없이 스러졌다. 세드릭은 여전히 유스티나스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점차 검어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머리의 갈색 색소마저 지워지고, 마력에 잠긴 베이지색 셔츠가 검게 물든다. 창백할 정도로 하얬던 피부도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이 순간 인간으로서의 세드릭은 죽었다. 입자 단위로 분해된 그가 피와 살로 된 육신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마족으로 깨어났다.
세드릭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죽은 짝을 끌어안은 늑대처럼, 두 사람을 감싸는 흑익 속에서 그는 고요히 울부짖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