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3)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3화(3/101)
#3. 빈민가의 천사 (2)
세드릭과 아이들을 통성명시킨 나는 약한 패닉에 빠졌다.
‘여기가 만화 속이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키에토’라는 지명도 들어 본 적 있다.
세드릭이 부리던 암흑 조직.
‘그림자 낙원’ 부대가 나고 자란 활동 영역이 아니던가.
‘미치겠네.’
변명하자면 지난 2년간 이곳이 만화 속 세상이란 걸 눈치채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렇잖아?
만화에 등장하는 지명 하나를 가지고 대체 어떻게 알아?
상태창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드릭을 봤어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야 당연하지.
포스 있는 미남이었던 원작과 달리 지금의 세드릭은 코흘리개 어린애에 불과했다. 보기 드문 흑발과 흑안을 제외하면 원작과 공통점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유스! 밥 먹을 시간이야.”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밖에서 한 소년이 나를 불렀다.
푸른 머리에 고양이 같은 눈매를 가진 레인은 이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이었다.
체격은 작지만 두뇌 회전이 빨라 제법 두드러지는 아이다.
‘…자, 잠깐.’
그를 따라가던 나는 멈칫했다.
“레인, 우리 그림자 낙원의 참모는 너다. 나는 리더로서 네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겠어.”
‘으아아아!’
기억났다!
저 레인이란 녀석, 나중에 세드릭을 보좌하는 네임드 캐릭터잖아!
‘맙소사.’
나는 속으로 경악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째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 것 같은…….’
“유스? 왜 그래?”
이쪽은 세드릭의 과거 회상에서 반으로 잘려 죽은 소녀.
“마리! 유스 귀찮게 하지 마!”
이쪽은 그림자 낙원의 잔인한 학살자이자 돌격대장인 소녀.
“유스, 유스! 이것 봐! 내가 기차 장난감을 만들었어.”
이쪽은 그림자 낙원의 무기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발명가 소년.
‘젠장.’
일단 자각하고 나니 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진다.
틀림없었다.
내가 2년간 모은 아이들은, 만화에서 세드릭을 중점으로 모인 슬럼가 출신 고아들이었다.
‘잠깐… 그럼 내 역할은 뭐지?’
<이세계의 엑스트라로 환생한 나는… 이하 생략>에는 유스티나스라는 캐릭터가 없다.
‘이렇게 눈에 띄는 외형이면 히로인이 될 법도 한데. …혹시 후반부에 등장하나?’
내가 죽은 건 마지막 시즌이 나오기 직전이다. 마왕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시즌 4가 끝나 버려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반면 원작 소설 쪽은 완결이 났다. 스포가 싫어서 줄곧 외면했지만 말이다.
‘빙의할 줄 알았으면 소설로 결말이라도 볼걸!’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툭 쳤다. 레인이었다.
“유스. 오늘은 그거 안 해?”
“그거?”
레인이 샐쭉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면 매번 너한테 반하게 만들잖아.”
나도 가볍게 받아쳤다.
“레인도 참. 농담을 너무 잘해.”
“…농담 아닌데?”
“어쨌든 고마워. 직접 얘기 나누는 거, 깜빡 잊어버릴 뻔했네.”
“아니, 진짜 농담이 아닌…….”
언제나처럼 실없는 소리를 하는 레인을 지나쳐, 나는 빵 두 덩이를 집고는 구석에 있는 세드릭에게 다가갔다.
그는 낯을 가리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런 소심한 애가 커서 암흑가 보스가 된단 말이지.’
왠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그 뒤에는…….
“나는 세상에 실망했어. 그 애가 없는 세상 따위…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겠지.”
라고 말하며 동료였던 주인공의 등을 푹 찌르기까지!
‘안 돼. 절대 안 돼.’
세드릭은 그 뒤로 인류 1/3을 죽여 버린다. 그건 정말로 곤란하다.
여기 인구가 약 10억 명이니까.
한둘이면 몰라도 3억이 죽으면 퀘스트 보상은 그대로 날아가는 거잖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다행히 세드릭은 아직 열한 살짜리 꼬마였다.
그의 흑화 원인인 ‘그 애’가 누군진 몰라도, 지금부터 잘 다독이면 훌륭한 용사 파티의 일원이 되겠지.
‘좋아. 결심했다.’
이 녀석을 갱생시키는 거야.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세드릭, 잠깐 밖으로 나갈까?”
***
나를 졸졸 따라 나온 세드릭은 내게서 정확히 세 발자국 떨어져 걸었다.
내가 멈추면 멈추고, 걸으면 다시 걷는다.
꼭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와 친해지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느낌이네.’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다.
선행 포인트를 쌓기 위해선 타인의 호감을 사고 그 안에 파고들어야만 한다.
그들이 내게 좋은 감정을 가질수록 포인트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새집은 마음에 들어?”
“…뭐.”
그가 시선을 살짝 피하며 답했다.
“그냥, 밖보다는 나아.”
“다행이다.”
“…뭐가 다행인데?”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너 나 알아? 그것도 아니잖아. 괜히 착한 척하긴.”
그가 덧붙였다.
“이렇게 어린애들만 모아 두고… 뭔가 목적이 있는 거 아니야?”
‘헉. 어떻게 알았지.’
될 싹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이 녀석. 선행 포인트를 쌓으려는 내 속내를 죄다 꿰뚫어 봤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아, 목적이 있어.”
“…역시 그랬군.”
그가 몸을 바짝 세워 긴장한다.
“그렇게 순순히 털어놓고도 내가 계속 남을 줄 알았어? 안타깝지만, 난 저기 있는 멍청이들이랑 달라.”
예상보다 더 민감한 반응이었다.
뭐, 결국 뒤집히겠지만.
“장기매매? 아니면, 애들을 잡아다 몰래 노예로 팔아넘기나? 목적을 말해.”
나는 어느새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세드릭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자라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어른이 되는 거야.”
“…뭐?”
세드릭의 표정이 멍해졌다. 긴장이 탁 풀린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세드릭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다들 키에토 출신 고아들은 자라서 무조건 범죄자가 된다고 하잖아.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
“무슨….”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서대륙의 쓰레기장이라고 불리는 키에토 출신이어도…… 어떤 어른이 될지는 우리한테 달린 거야.”
입에 발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착한 척을 너무 오래 해서일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내 메인 퀘스트의 내용을 읊었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
10억 명을 구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구로 돌아가고, 다시 건강한 몸이 되고, 천억 원도 가진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
“그리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세드릭의 표정이 기묘했다.
‘처음부터 너무 과했나?’
아무것도 없는 슬럼가 출신 여자애가 세상을 구하고 싶다니. 멍청해 보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아, 미, 미안. 강요하는 건 아니었어! 그…….”
“…….”
“너무 바보 같은 소리였나…?”
힐끔 눈치를 보자, 세드릭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알긴 아네.”
“하하….”
“세상을 구한다니. 뭘 어떻게 할 건데? 당장 먹을 음식도 구하기 어려운 주제에.”
“음….”
너무 정곡을 찔러서 아프다.
내 목표는 10억 명 구하기.
솔직히 너무 원대하다. 과연 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곳이 만화 속 세상이란 걸 몰랐을 때였다.
<이세계에 엑스트라로 환생한 나는… 이하 생략>은 전통적인 용사물.
결말은 모르지만, 틀림없이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면서 끝날 터였다.
‘난 그냥 거기에 편승하면 돼.’
물론 바꿔야 할 점도 있었다.
흑화한 ‘세드릭 네온’이 후에 3억 명을 죽이는 에피소드.
전체 인구가 7억이 되니 원작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 내 목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다.
뭐. 그래도.
‘세드릭이 착해지면 되잖아?’
어릴 때부터 잘 키워서 흑화 따위는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던 중.
“…그래도.”
세드릭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려 준 건… 고마워.”
의외였다.
벌써 감사 인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천만에!”
기쁜 마음에, 나는 지는 해를 등지고 그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세드릭.”
그러자 검은 눈이 흔들린다.
그는 잠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춤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고 반대편으로 달려가 버렸다.
“?”
뭐야.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