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50)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50화(50/101)
#50. 죽은 자들의 호수 (4)
“유스.”
어어. 도준아, 누나 안 잔다.
“유스? 도착했어.”
“안 잤어요…….”
“유스?”
헉!
세드릭의 목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잠이 덜 깼어?”
“못 들은 척해 주세, 아니 해 줘…….”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자 세드릭이 그 상태로 굳었다. 그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부들부들 떨더니,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슬슬 물러났다.
“세드릭?”
“그,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체를 밝힌 후 하지 않던 존대까지 하며 시선을 피하는 세드릭.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나 역시 고개를 돌렸다.
‘유스티나스가 예쁘긴 하지.’
방금 건 내가 봤어도 꽤- 흠.
오해할까 덧붙이자면 나는 결단코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할 뿐.
“네 분이 다인가요?”
“네!”
이즈미가 활기차게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안개로 덮인 호숫가와 숲, 그리고 호수를 둘러싼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이 여자까지.
“제 이름은 이사벨라입니다.”
5 대 5 가르마를 해 승무원처럼 하나로 틀어 올린 검은 머리와 자색 눈. 나이는 글쎄, 스물 후반에서 서른 초반 정도려나.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간 눈매와 창백하리만치 투명한 피부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정말 예쁘게 생겼네.’
저런 사람과 결혼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겠는걸.
그나마 흠을 잡자면 묘하게 스산한 분위기다. 마을에 짙게 내려앉은 안개 탓일까? 아니면 이 사람의 창백한 피부 탓?
“이 마을에는 워낙 방문객이 없어 따로 여관이 없답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재워 드릴 수 있어요.”
“여기 다른 사람도 사나요?”
“아니요. 동절기가 다가오는지라 대부분 근처 큰 마을로 떠나고 남아 있는 건 저뿐이랍니다.”
그녀는 손에 쥔 램프를 들어 올리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러자 사나웠던 눈매가 부드러워진다.
웃을 때는 인상이 달라지는구나.
“이 깊은 숲속에 혼자? 여인 혼자라면 위험할 터인데.”
릴리아나 역시 내심 자국민이 걱정되었는지(라쿠스 마을은 아직 테라 국경 내부였다) 인상을 쓰며 걱정했다. 하나 이사벨라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저희 집안은 여성도 대대로 사냥과 낚시를 배운답니다. 이래 뵈어도 곰 하나를 혼자 잡을 수 있는 몸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지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 그럼 네 분 모두 저를 따라오세요. 누추하지만 빈방을 몇 개 내어드리겠습니다.”
***
“다들 시장하실 것 같아서 가볍게 식사를 준비해 보았어요. 사슴 고기인데 입맛에 맞으실까요?”
“솜씨가 괜찮은데?”
“맛있어요!”
“대접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
차례로 릴리아나, 이즈미, 나, 그리고 세드릭의 발언이었다.
특히 릴리아나와 세드릭은 사슴 고기가 제법 입맛에 맞는지 평소보다 식사에 열중했다. 반면 이즈미는 조금 깨작거린다.
“이즈미 님, 어디 아프세요?”
“아, 아니에요.”
평소 대식가인 그가 영 입맛이 없어 보여 물었더니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즈미를 줄곧 신경 쓰면서 이사벨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사벨라 님, 혼자 사시는데 굉장히 큰 가구를 쓰시네요.”
“하절기가 되면 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방문하거든요. 덕분에 반년 정도는 쓸쓸하지 않죠.”
“아이들이요?”
“10년 전 흑사병으로 부모와 살 곳을 잃은, 가엾은 아이들이랍니다.”
샐러드를 집던 내 손이 멈추었다.
“-흑사병, 인가요?”
“네. 10년 전 이 마을 전체를 흑사병이 쓸고 지나갔답니다. 덕분에 꽤 번영했던 마을이 이렇게…….”
그녀가 씁쓸히 웃었다.
“성국의 성녀님께서 열심히 힘내 주셨다곤 들었지만, 역시 성인 하나가 모두를 구할 순 없었겠지요.”
나는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당시 나는 흑사병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었지만, 스킬 포인트의 한계로 지금처럼 효율적인 치료는 불가능했다. 한 사람을 치료하고 나면 너무너무 아팠으니까.
“……안타까운 일이네요.”
“네. 그래도 부모 잃은 아이들이 제 밑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살아남길 잘했다는 생각이 매번 들어요.”
그녀가 고소(苦笑)를 지우며 밝게 말했다.
“사실 저, 10년 전에 딱 한 번 성녀님을 뵌 적 있답니다. 성녀님께서 저를 치료해 주셨을 때 그 따뜻했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했어요.”
“…아.”
그녀는 나를 알아봤을까?
솔직히 이 정도 특징이면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데, 어째 반응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반응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유스티나스’라면 여기서 굳이 생색을 내진 않겠지. 다른 파티원들도 내가 가만히 있는데 굳이 떠벌리는 족속들은 아니고.
“그렇군요.”
“네. …그런데, 아까부터 쭉 고기에는 전혀 손대지 않으시네요. 편식이라면 특이한걸요?”
이사벨라의 지적에 나는 애써 웃었다.
“……부끄럽게도 조금. 제가 종교인인지라 고기는 신념상의 이유로 가능한 피하고 있어요.”
“종교인이라…….”
그녀가 빙긋 웃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긴 해요.”
놀리는 건가?
‘전혀 감이 안 잡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어째서인지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다.
“아, 그렇지 참.”
정적 사이로 영 시원찮게 고기를 조각내던 이즈미가 끼어들었다.
“마을에 호수가 굉장히 커다랗더라고요. 아침에 보면 빛이 반짝반짝해서 예쁠 것 같아요!”
“호수가 예쁘다, 라.”
그 말에 이사벨라가 웃었다.
“-정말 그럴 것 같나요?”
음산한 말투였다. 갑자기 식탁 위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휘이이이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깜빡, 깜빡, 흔들렸다.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진다.
“사실 저는 웬만해선 호수 근처로 가지 않아요. 가장자리는 아주 얕은데 실은 수심이 들쭉날쭉해서, 어느 순간 확 깊어지거든요. 그러면 소용돌이도 생기고요.”
“그 말은…….”
“빠져 죽기 딱 좋은 호수랍니다!”
짝!
그녀가 박수를 쳤다.
“여러분도 가능한 한 호수 근처로는 가지 말아 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보기엔 예뻐도 외부인 인명 피해가 많이 나는 곳이니까요.”
“아, 아아. 넵.”
“…그렇군. 조심하겠다.”
이즈미와 릴리아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수긍했다. 세드릭은 그 와중에도 묵묵히 식사를 하다, 가끔 맛있어 보이는 과일이 보이면 내 접시에 놓아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
“이쪽이 남자 방, 이쪽이 여자 방이에요. 아이들이 쓰던 곳이라 침대가 작으니 불편하시더라도 두 개로 붙여 써 주세요.”
“그 정도는 문제없다.”
릴리아나는 내 한쪽 손을 잡고 이끌었다. 지팡이와 그녀를 의지해 방으로 이동하던 중, 복도에 달린 낡은 판자가 보였다.
[라쿠스 고 원]…흠.
“유스티나스, 이쪽이다. 부딪히지 않게 천천히 들어오도록.”
“고마워요.”
억지로 못 보는 척하는 것도 이젠 자연스럽다. 최근엔 다리를 절게 되며 아예 연기할 필요도 없어졌고.
탁…… 탁. 타악…… 탁, 탁.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안쪽으로 들어가자, 낡았지만 깨끗한 아이 방이 보인다.
회칠이 된 벽에는 누군가 직접 그린 듯 아기자기한 토끼 모양이 가득하다.
그 모습들을 전부 눈에 담았다.
***
그날 밤.
폭우가 내렸다. 굵은 장대비가 세차게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같은 방을 쓰는 릴리아나는 그 와중에도 죽은 듯이 잘 잔다.
‘안개가 심해지네.’
호수의 물도 불어난다.
창가에 앉아 호숫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도중이었다.
-유나야.
빗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나야, 유나야!
순간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에 전신이 굳었다.
이건, 이건, 그러니까. 그게.
-유나야, 이제 일어나. 그만 잘 때도 됐잖니. …응?
“어, 엄마.”
우리 엄마 목소리다.
본 적도 없는 유스티나스의 어머니가 아니라.
진짜 우리 엄마.
-이유나, 제정신이냐? 네가 비련의 주인공이야?
그다음은 이도준이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침대 위라 큰 소리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조용히.
혹시라도 내가 다리를 저는 소리에 릴리아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느 정도 복도를 지나고 나서는 정신없이 뛰었다. 도중에 짐덩이인 오른 다리 때문에 몇 번을 미끄러져 상처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달렸다.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이 멍청한 누나가 진짜…….
울먹이며 중얼거리는 동생의 목소리가 너무 진짜 같아서.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