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71)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71화(71/101)
#71. 거슬러 오르는 후회 (3)
‘여우. 여우라.’
나는 생각에 잠겼다.
‘수인족인가?’
“미리 주머니에 뿌려 둔 향수를 쫓아가는데 웬 초가집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문을 확, 여니까 파란색 여우? 그런데 사람 골격인? 아, 이걸 뭐라고 하지. 하여튼.”
“사람, 아니 사람은 아닌데, 하여튼 유사 사람이 동물이 됐어요! 순식간에 파란 여우로 변해서 돈주머니를 물고 수풀 속으로 쏙 들어가는데, 빨라서 못 잡았어요. 힝.”
이즈미의 증언대로면 수인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원작에서 수인족 캐릭터가 등장한 적이 딱히 없다는 거다.
‘들어는 봤지만…….’
다만 유스티나스의 지식으로 한정한다면 들은 바가 있긴 했다.
제피로스가 해 준 이야기였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인족이 있지요. 개중에 수인족이라는 종족도 있는데, 사람처럼 생긴 모습에 동물 귀와 꼬리가 달렸답니다.”
“흔히 볼 수 있나요?”
“지금은 남아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릅니다. 예전에 노예로 부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세상 어딘가에 동물 귀 달린 인간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을 뿐.”
“그렇군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으음. 이즈미가 말해 준 거랑 느낌이 다른데.’
제피로스가 말하길 이 세계의 수인족은 인간 골격의 짐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게 동물 귀와 꼬리 정도가 달려 있는 모양새였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단번에 납득했다.
그도 그럴 게, 여긴 일본산 라이트노벨 속이잖아?
수인족 모습이 동양에서 선호하는- 미소녀/미소년에 동물 귀와 꼬리만 달린 형태인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이즈미의 설명은 마치.
‘사람과 짐승의 골격을 섞어 둔 생물이라.’
그건 완전히 서양에서 선호하는 수인 형태 아니던가.
아니. 그보다 애매하다. 머리카락도 있다고 했고.
‘음…….’
실사체가 상상이 안 가네.
대체 어떤 모습일까?
‘뭐, 잡아 오면 알겠지.’
현재 전력에 도움 안 되는 나는 객잔에서 쉬고 있는 상태.
원작 용사 파티 세 명(feat. 강화 릴리아나)이 함께라면 여우 한 마리쯤이야 금방 잡아 올 테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음, 좋은 향기네요.”
조난에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한 용봉차 한 잔!
말이 용봉차지 사실상 개조 말차였다. 중국식(이라고 우기지만 누가 봐도 일본식인) 화과자와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렇게 차를 홀짝이고 있으니.
“저기.”
“…! (엄마 X발!)”
놀래라!
귀신, 귀신인가?
‘품위 유지’ 덕에 몸이 벌벌 떨리는 건 면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콩콩 뛴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러자.
“…….(이런 미친.)”
파란 여우 한 마리.
그것도 딱 인간의 형상을 한 여우다. 이즈미의 설명이 완벽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누구신가요?”
“아니요.”
“?”
내가 잘못 들었나?
누구신가요, 라는 질문에 아니요란 대답이 나오는 게 맞아?
“저, 이름을 알려 주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요?”
“네.”
그, 음. 그렇구나.
‘……수인이라 그런가.’
어쩌면 인간과 쓰는 언어가 다를지도 모른다. 그쪽으로 생각하니 이해가 되긴 하네.
왜 그렇잖은가. 원래 외국어는 문법도 틀리고 이상한 말을 해 가며 배우는 법이다.
“이건 혹시나 해서, 아니, 사실 확신하고 있지만요.”
“…….”
“우리 돈을 훔쳐 간 분이신가요?”
“네.”
“……그러시군요.”
이 새낀 뭔데 당당하지?
도둑놈이 숨기려고 해야 도둑놈인데, 이토록 당당하니 거의 강도 새끼가 따로 없다. 강도치곤 은밀한 데다 좀, 많이 귀엽지만.
사실 그렇다.
돈을 훔쳐 간 놈이 털 숭숭 난 아저씨라면 당장 헥토파스칼 킥이 날아가겠으나,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운 반인반수 꼬맹이라면 ‘혹시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외모지상주의의 폐해였다.
“형편이 곤궁한가요?”
“네.”
“…….”
나는 잠시 기다렸다.
하나 여우 꼬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애가…… 모자란가?’
어째 그래 보이기도 하고.
나는 이 귀여운 도둑놈과 협상을 시도했다.
“돈은 돌려주면 안 될까요?”
“네.”
“……안 된다는 거죠?”
“네.”
실패했다.
‘어쩌지.’
힘으로 뺏기엔, 글쎄.
아무리 당황해서라지만 이즈미조차 놓쳤던 꼬마다. 내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대체 어떻게 잠긴 방 안으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에 잠긴 때였다.
꼬르륵!
강한 소리가 방을 울린다.
품위 유지 스킬로 인해 내 배에선 저런 천박한 소리가 나지 않으니, 남은 범인은 한 명. 아니 한 마리?
어쨌든 하나뿐.
“배고프신가요?”
“네.”
이제 와 보니 발칙한 도둑놈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화과자에 고정되어 있다.
아니, 근데 훔쳐 먹지 않고?
“과자 훔치러 왔어요?”
“네.”
아. 훔치러 왔구나.
존X 당당한 새끼네.
내 눈이 차게 식었다.
***
도혜원은 제 앞에 있는 여자를 멀뚱히 보았다.
기실, 처음에는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현재 처참한 꼴이다. 짐승도 인간도 아닌 모습을 들켰다간 단번에 사로잡혀 수상한 단체의 실험체가 되거나, 저잣거리에 선보이는 구경거리가 될 터였다.
이러니 제대로 일도 할 수 없어. 그런데 또 살려면 먹고 자고 할 돈은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그는 생존형 도둑놈이 되었다. 주로 부유해 보이는 관광객을 털어, 후드를 뒤집어쓴 채 꼭 필요한 식자재와 물건을 구입한 뒤 산속에 숨어 살았다.
이번에 다시 마을에 내려온 건 자신을 추격하는 끈질긴 연놈들 때문이었다.
“여우, 어디 갔어?”
“이즈미, 그건 여우가 아니라 토끼잖나.”
“진짜 있는 건 맞나?”
셋이 산을 쥐 잡듯 돌아다니길래 기겁한 도혜원은 도로 근처 객잔에 찾아왔다.
여우 모습을 들켰으니, 설마 저잣거리에 돌아왔을 거라곤 생각 못 할 테지.
이름하여 등잔 밑이 어둡다 전략이었다.
‘배고프다.’
한데 집에서 밥도 못 먹고 쫓겨났으니 배는 고프고.
돈주머니로 뭐라도 사 먹고 싶었지만, 가을은 관광 성수기다. 물가가 영 비싸서 산나물이나 캐 먹을 시기란 말이다.
결국 수전노 도혜원은 가격표를 보곤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창 너머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에 저도 모르게 훌쩍 뛰어올랐다.
지붕 위에 올라오는 건 짐승에게 일도 아니다.
그렇게 창 너머로 방을 기웃거리니, 아까 돈을 훔쳤던 그 여자가 잔잔히 웃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 우연이?
신기해진 도혜원은 몸을 숨긴 채 여자를 관찰했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피부는 투명하리만치 반짝반짝 빛난다. 하나 더 빛나는 건 여인의 그림 같은 이목구비였다.
세상에 어찌 사람이 저리 예쁠 수 있을까. 아까 도둑질할 때는 대강 봐서 그저 역시 남역인들은 소문대로 화려하게 생겼구나, 정도로 넘겼었는데.
자세히 보니 보통 예쁘게 생긴 게 아니었다.
청초한 한 떨기 꽃 같은 모양새가 과연 천하제일이라. 수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국사화(水國四花)를 오화로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그가 한참 감탄, 또 감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눈이?’
처음 봤을 때는 미모에 가려 알지 못했다. 그러나 뚫어져라 관찰하니 푸른 눈이 영 어색하다는 걸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과연. 장님인가.
앞을 보지 못하는 이라면 그의 모습을 알아채고 놀라지 않을 터다.
그리하여 도혜원은 오랜만에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훔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함께 드시겠어요?”
한데 이 여자, 아주 순진하다.
낯선 침입자를 보고 겁도 먹지 않고는 그저 빙긋 웃으며 과자를 내미는 게 아닌가.
도혜원은 과자를 받으면서 묘한 눈으로 여자를 살폈다.
“생각보다 맛있답니다? 어서 드셔 보세요.”
…역시 모습을 몰라서인가?
어쩌면 그저 평범한 열 살배기 꼬마애로 착각하는 걸지도.
그를 괴물 아닌 사람으로 봐주는 이는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저잣거리에 오래 있는 건 별개라.
“가시게요?”
“네.”
화과자를 잔뜩 입에 문 도혜원은 왔을 때처럼 창문으로 훌쩍 나갔다.
그러곤 다시 전신을 가리는 후드를 쓰자 짐승 같은 꼬락서니가 가려진다. 도혜원은 조용히 지붕을 타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전낭, 전낭이 여기에.
“…….”
전낭,
없다?
길거리 거지새끼에게 돈을 훔칠 기인은 없으므로, 필시 자신이 어딘가에 떨어뜨린 게 분명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벌었는데!
사실 번 게 아니라 훔친 거지만, 그리고 딱히 어렵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허무해진 도혜원은 길 한복판에 잠시간 멍하니 서 있었다.
한편 화국 초입 뒷산.
이즈미의 목격담에 따라 열심히 푸른 여우를 찾아 헤매던 릴리아나는, 풀숲 한가운데 떨어진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한데 모양새가 어딘지 익숙한 게.
“…?”
짤랑, 짤랑.
“!”
화국 국경에서 환전한 이즈미의 돈주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