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hough She is a Blind Saint, She Can See RAW novel - Chapter (86)
맹인 성녀인데 눈이 보인다-86화(86/101)
#86. 거슬러 오르는 후회 (18)
‘…헉!’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을 본 직후 일순간이지만 정신이 마모되는 듯한 충격이 뇌를 강타했다.
‘정신 면역’ 스킬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단지 존재할 뿐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탓이다.
나는 이마를 붙잡았다.
‘하지만 저건, 저건 대체 뭐야.’
그것은 원으로 된 덩어리였다.
얇고 투명한 막 안에 있는 그것의 내부는 인체의 오장육부를 끔찍하게 뒤튼 뒤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그 상태에서도 선홍빛 심장은 펄떡거리며, 심장과 연결된 혈관이 연신 왈칵왈칵 피를 토해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뼈를 발라 필요 없는 부분을 전부 제거해, 정말 최소한의 생명 유지 기관만 남긴다면 저런 형태가 될까?
“■■■아■아■■아!”
그것이 울부짖었다. 소년과 사내의 경계에 선 앳된 목소리로,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살려 달라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래, 사랑하는 서원아. 드디어 너를 살려 줄 수 있게 되었구나.”
……아니.
틀렸어.
살려 달라는 게 아니다.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들렸다.
“죽여 줘. 죽고 싶어. 너무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괴로워. 살고 싶지 않아. 죽여 줘. 제발 죽여 줘. 부탁이야. 아파. 죽여 줘.”
기계음처럼 깨지는 절규에 귀를 기울이면, 제발 이 고통을 끝내 달라는 불쌍한 소년의 절박한 외침이.
“죽여 줘!”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덜덜 떨려야 할 손은 ‘품위 유지’ 스킬로 인해 멀쩡하다.
이번에는 얼굴을 더듬는다.
잔뜩 외치고 싶은 비명도, 일그러져야 할 얼굴도 평온하기만 하다.
‘투시’로 시야를 돌려 보면 그저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언제나와 같은 부동의 고결한 성녀가 보였다.
위화감이 든다.
‘어라?’
나, 왜 이러지?
누군가 억지로 도려내기라도 한 듯 가슴 한 부분이 시렸다. 찰나 묵직한 통증에 숨이 막혔다.
‘무통각증’ 스킬이 일하지 않는다.
왜지. 왤까…….
“눈이 보이지 않는 게 때론 편리할 때도 있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서원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내 동생을 치료해 줄 수 있겠나?”
그녀가 무릎을 굽혔다.
황제는, 아니지.
도서원의 누나 도성지는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흉측한 저주에 걸린 동생을, 여전히 예전 그대로라는 듯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럴 때마다 도서원이 외쳤다.
“아파. 죽여 줘. 죽여 줘.”
“이렇게 되어도 쓰다듬을 때마다 귀엽게 말을 걸어 주더구나. 누나를 알아보는 것일 테지.”
“아파! 아파! 아파!”
“그, 만.”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만, 그만 만지세요.”
“음?”
“…아파하고 있어요. 그 아이.”
도성지는 분명 동생을 아낀다.
그럼에도 괴롭히는 이유는, 역시 이 목소리를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아파. 너무 아파. 죽고 싶어.”
나는 그것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상냥히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서원 님.”
“죽여 줘. 죽여 줘. 죽여 줘.”
“서원 님. …살고 싶으신가요?”
“아파. 아파. 아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나는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쏟아지는 흉통에 숨을 쉬기가 어렵다.
왜?
이건 그냥…….
내 퀘스트 카운트에 들어가지도 않을, 인간도 아닌 고깃덩어리인데.
[완전 치유]손을 뻗어 흰빛을 내민다. 새하얀 성력은 살아 있는 육구(肉球)를 상냥히 감쌌다.
“아. 아. 아.”
찰나지만 소년의 절규가 줄어들었다. 내 눈에 잠시 희망이 스쳤다.
어쩌면.
저주에 걸린 이 고기를 고칠 순 없어도, 고통을 줄여 줄 순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
하지만 희망은 정말 찰나뿐이었다.
성력을 내뿜은 지 고작 십여 초가 지난 직후, 도서원은 조금 전보다 더 괴로워했다.
“황제 폐하.”
“방금 그 빛은 뭐였지? 서원이가 흘렸던 피가 멎었어. 그 빛을 계속 사용만 해 준다면-”
“서원 님이 이렇게 된 건 삼백 년 전쯤의 일이지요?”
‘유스티나스’가 물었다. 그러자 도성지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아직도 살아 계시나요?”
“그 빌어먹을 저주가 동생들을 불사로 만든 거다. 혜원도 서원도, 신체의 절반 이상이 잘려도 반드시 머리부터 다시 살아나지.”
“……그렇군요.”
나는 멍하니 도서원을 내려다보다, 반인반수 형태로 이쪽을 보는 도혜원을 보길 반복했다.
불사가 된 두 사람.
하나는 비천한 금수로.
하나는 이런 고깃덩어리로.
“…….”
감정이 차게 가라앉았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대의를 위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용납할 수 있다.
한데 상대는 마족이다.
마족. 인간 이하의 쓰레기들.
내가 배제해야만 하는 버러지.
“폐하. 제안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아니, 뭐든 좋으니 서둘러 그 아이를 치료해라. 그러고 나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마.”
“서원 님을 죽이면 어떨까요.”
“……뭐라고?”
“……네?”
도성지와 도혜원이 동시에 반문했다. 둘 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들어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한번 말해라.”
“커헉.”
내 모가지가 붙잡혔다.
살의를 담은 주홍 눈이 번뜩였다. 도성지는 거친 어조로,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뱉듯 되물었다.
“내 동생을, 어떻게 하자고?”
“죽이, 콜록! 컥!”
숨통이 더욱 좁아진다. 조금 더 힘을 주면 목뼈가 부러져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괜찮지만.
“내 고양이의 말을 듣고 신녀라 하여 유한 태도로 봐주었건만, 네가 죽음을 자처하는구나. 감히.”
“콜록, 켁, 커억.”
“…쯧.”
정말 숨이 넘어가기 직전 도성지가 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시야를 돌려 보자 목에는 현재진행형으로 시퍼런 멍이 생기고 있었다.
흉흉한 음성이 내리깔렸다.
“처음 네 녀석의 심상 세계를 접했을 때부터 알아챘지. 아주 제대로 미쳐 있더구나.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기는 한지도 의문이더군.”
머리가 웅웅 울렸다.
들어오지 않는 단어를 전부 흘려보내곤, 비틀거리며 땅을 짚었다.
“의미가, 콜록, 없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지금 서원 님이 살아가는 인생에는, 큭.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도성지의 전신이 분노로 타오른다.
그녀에게 동조한 주변 공기가 전격을 띠기 시작했다. 푸른 전류가 그녀 전체를 휘감았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기세다.
“결정했다. 강제로 내 동생을 살리게 만든 뒤, 널 아주 괴롭게 죽여 주마.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고문해 주지.”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폐하께서는 서원 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요?”
“무슨.”
“서원 님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
나는 완전히 일어섰다.
그러다가 움직이지 않는 오른 다리에 다시 자세가 무너진다.
하여 끝내는 먼지투성이가 된 사제복을 입은 채,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통점이 전부 기능하는 상태에서 삼백 년간, 피부도 뼈도 근육도 없이 저렇게 있다면…… 어떤 고통을 느낄지 상상이나 가시나요?”
도성지의 살의가 멈추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서원 님은 간절히 죽음을 바라요. 그렇다면 차라리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옳지 않나요?”
“죽음을…… 바란다고?”
그녀가 입을 벌렸다.
“하지만 성력이라 일컫는 네 힘이라면 고칠 수 있는 게 아닌가?”
“고칠 수 없어요.”
내 입으로부터 냉정한 선언이 흘러나왔다.
“제가 고칠 수 있는 건 신체적인 병뿐. 이토록 오래된 저주는…… 신의 기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또다시 묵직한 흉통이 숨을 틀어막는다. 분명 목이 졸렸던 건 아까인데, 이번 통증이 더욱 아팠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입술을 감쳐물던 내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폐하. 잠시 손을 내어주시겠어요?”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도성지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허공을 더듬는 연기조차 잊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아, ‘전언’을 통해 도서원의 말을 그대로 흘려 넣었다.
“아파. 죽여 줘. 아파. 아파. 너무 아파. 죽고 싶어. 아파…….”
그 비통한 절규와 외침에, 도성지는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사람처럼 완전히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