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116
“앤. 제니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야 살만해진 건데. 죽긴 왜 죽어?”
앤이 일방적으로 떠들고 제니퍼는 멍해져서 대답을 반복하는 사이에 벌써 몇 잔째인지 모를 ‘콜라’라고 하는 신기한 음료수에 얼음을 왕창 넣어서 마시던 루이지가 그렇게 따지며 다가왔다.
“루이지. 흠. 그런데 다들 어때?”
“어떠냐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들 뭐해?”
“다들 한잠 자고 일어났지. 먹고 씻고, 푹 자고 맛있는 걸 먹고. 제니퍼 너는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정신 차리라고. 네가 우리 지휘관이잖아?”
루이지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남은 콜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그래야지. 아! 소피아는?”
“소피아? 글쎄. 우리가 여기 소환됐을 때를 빼고는 못 봤는데?”
제니퍼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피아가 어디 있는지 주변에 돌아다니는 인간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거?”
“소피아의 성력이네. 위치는 바로 근처인가?”
제니퍼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소피아 특유의 성력, 농밀하고 시원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내성 3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기감에 제니퍼는 깨달았다.
자신이 머무는 숙소, 내성 주변에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바닥을 밟을 때마다 자근자근 하는 생명력 넘치는 풀을 밟는 소리. 깨끗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한 공기의 냄새. 나무 냄새. 물 냄새.
멸망을 바라보던 자신들은 이제는 잊어버린, 아주 오래 전에 경험했던 것들을 이 영지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처럼 누리고 사는 곳이라는 것을.
“소피.”
“어? 제니퍼. 더 쉬지? 벌써 나왔어?”
“우리 중, 누구도 4시간 이상 잘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걸? 너도 알잖아?”
“하긴. 그런데 여긴 괜찮아. 더 자도 되고, 더 마음을 놓아도 돼. 그런 곳이거든.”
“그렇게 보이긴 해. 그런데 넌 뭐 하는 거야?”
“나? 좀비를 잡고 있어.”
“응?”
“왜?”
그제야 제니퍼는 영지에 소환되고 거둬들였던 기감을 펼쳤다. 너울거리며 퍼져나가는 기감에 농사를 짓거나, 소와 양을 키우고, 배를 모는 영지민들이 잡혔고, 성벽을 넘어섰을 때.
“!!”
산자에 대한 악의로 점철된 것들이 느껴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제니퍼가 자신도 모르게 왼쪽 허리에 찬 검으로 손을 가져갈 때,
“괜찮아. 제니퍼.”
소피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제니퍼를 진정시켰다. 여긴 정말 괜찮아. 괜찮아. 라는 말이 마치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처럼.
“밖의 좀비는?”
“영지민들이 나가서 사냥 중이야.”
제니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한 소피아의 대답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자신이 느낀 이상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냥?”
“응. 사냥. 방어가 아니라 사냥 중이야.”
“보러 갈래?”
“그래도……. 돼?”
“당연하지.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고, 지켜야 하는 곳인데. 다른 애들도 다 부르자!”
소피아는 해맑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피아가 일어난 뒤에야 제니퍼는 소피아 뒤에 있던 커다란 아니,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이, 이거?!”
“아! 맞아. 세계수야. 영주 님 거야. 대단하지?”
한껏 어깨가 올라간 소피아의 설명에 제니퍼는 어디서부터 딴죽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왜 그걸 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냐, 세계수가 한낱 인간의 소유물이 되는 게 말이 되느냐 등.
“어휴. 일단 가자.”
“그래!”
제니퍼는 소피아의 변한 모습이 기꺼웠다. 그녀가 어릴 때, 그리고 소피아도 어렸던 시절에, 그 철이 없어 보이고 어딘가 조금 멍청해 보이는 소피아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있지~. 제니퍼~! 내가 딱 영주 님께 말했지!”
재잘거리는 소피아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제니퍼는 자신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땅을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가는 영지의 풍경을 한 번 보며 감탄했다.
“여긴…….”
“응?”
“희망이 넘치는 땅이네.”
“맞아! 영주 님 덕분이야!”
영주 님 덕분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이 제니퍼는 성벽에 도착했다. 경쾌하게 성벽을 오르는 소피아의 뒤를 따라 오른 성벽 위의 풍경은,
“이제 일주일 아니지, 6일 하고 14시간 남았대!”
“좋아! 나 오늘부터 일주일 간 안 잔다!”
“포인트 달달하고!”
하늘에서 좀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인간들은 정말 방어나 저지가 아니라 ‘사냥’하는 분위기였다. 그것도 축제처럼. 제니퍼는 모르겠지만, 이건 게임이라는 문화에 익숙한 지구인들이기에 더 그런 분위기가 나는 거였다.
“벌써 일어났나? 더 쉬어도 되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영주의 목소리에 제니퍼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여, 영주 님.”
“응. 그래. 다시 보니 반가워. 그나저나 보기에 어때?”
턱으로 영지 바깥,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묻는 영주의 말에 제니퍼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가,
“즐거워……. 보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정답을 말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영주.
“저들은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어서 좋은 거야. 겸사겸사 자신과 가족이 머무는 영지도 지키면서.”
“자신의 땅을 지키는 게 겸사겸사인 겁니까?”
“응.”
그리고 영주는 멸말을 향해 나가고 있는 차원의 거주민인 인간들이 어떤 축복을 받았고, 어떻게 강해지는 건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침략자를 사냥하면서 획득하는 재화로 강해진다……라.”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인간이 선하다면 말이다.
“딴 생각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글쎄……. 모르지?”
인간은 선하지 않다. 그건 제니퍼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순간에도 탐욕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거나, 군대를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 벌어진다. 그걸 수도 없이 지켜본 제니퍼가 걱정을 드러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괜찮으십니까?”
“뭐 이미 말했듯이 나도 모르지. 그런데 걱정은 안 해.”
“저들을 믿으십니까?”
“응? 아, 그런 뜻이 아니야. 딴 생각을 할지 안 할지를 모른다는 거였어. 딴 생각을 품고 헛짓거리를 하면 그걸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주변에 안 보여?”
“아!”
영주의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서야 제니퍼는 비로소 영지 곳곳과 성벽 위에 흩어져 있는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등에 비껴 맨 활과 허리와 허벅지에 수도 없이 결착 되어 있는 단도 그리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정령력까지.
감시자들이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 설명을 듣고서야 제니퍼는 눈앞에 선 남자가 제대로 보였다. 한없이, 어떤 의미에서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선하게 느껴졌던 남자가 사실은 과거의 자신보다 더 이성적이고 냉철한 존재라는 것을.
“제가,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영주 님.”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창천의 날개 기사단
118. 창천의 날개 기사단
“제가,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영주 님.”
“더 쉬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럼, 어디 보자……. 그래. 저기. 저거 보여요? 덩치가 커다란 저거.”
영주가 가리킨 것은 좀비의 네 배는 족히 될 것 같은 덩치의 무언가였다.
“저거……. 혹시 저것‘도’ 좀비입니까?”
“응. 특수 개체. 저것 말고도 여러 특수 개체들이 있어. 아무튼, 저거 어때? 상대할 수 있겠어?”
“가뿐합니다.”
“그럼, 저기 좀비들 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어때?”
“문제 없습니다.”
“그래? 그럼 엘븐나이츠는 좀 넉넉하게 쉴 수 있겠다. 너희도 마찬가지고. 잠시만. 올리비아!!”
영주의 부름에 성벽 위에서 왼손으로 마법을 날리고, 오른손으로는 허공에 둥실둥실 떠있는 책에 무언가를 기록하던 여인이 점멸하듯이 나타났다.
“여기 이쪽 기사단분들에게 카메라 달아드려.”
“네. 대장. 소피아의 동료시죠? 자. 이건 간단한 마법을 부여한 카메랍니다.”
올리비아라고 불린 마법사는 너무 태연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가슴에 부착한 카메라에 대해서 설명했다. 성벽 밖에 우글대는 좀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러니까 이게 좀비를 얼마나 잡았는지 집계한다는 겁니까? 그렇게 집계된 수에 따라서 여러혜택이 주어지고?”
“네.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돈으로 드렸을 텐데. 알겠지만, 이제 돈은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영지 내에서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할 때 쓸 수 있는 재화를 드리거나, 영주 님 관리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왜?”
제니퍼의 질문에 올리비아는 카메라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갑옷이나 어깨끈에 부착하면서 대답했다.
“각성자들은 자신이 사냥한 침략자에 카르마 포인트로 보상을 받아서 따로 무언가를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엘븐 나이츠와 당신들 그리고 엘리아나와 소피아가 사냥하는 침략자에 대한 보상은 모두 영주 님께 귀속되기에 영주 님께서 이런 시스템을 마련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니퍼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다.
“아니. 제가 궁금한 건 그쪽이 아닙니다. 왜 영주 님께서 굳이 저희까지 신경을 쓰시는지.”
제니퍼는 바보가 아니다. 소피아처럼 세상 해맑게 ‘영주 님이 최고야!’라고 외치는 머릿속이 꽃밭일 수 없는 성격이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영주 님이라고 불리는 저 인간 덕분에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즉,
“굳이 이런 걸 해주지 않으셔도 저희는 영주 님께 충성을 다 할 겁니다.”
영주 님은 이런 걸 해줄 필요가 없다. 이전에 평화롭던 세상에서 기사가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군주는 기사의 생활을 책임지는 형태의 계약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죠. 우리 보스의 능력으로 당신들을 소환했고, 소환하면서 카르마 포인트를 많이 소비했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보스는 당신들에게 대가를 주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주지 않을 이유도 없지.”
제니퍼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어느새 멀리 떨어졌던 영주가 다가오면서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쪽이 소피아가 말한 총사령관인가 보네?”
“네. 영주 님. 혹시 제 질문이 불쾌하셨다면…….”
“아니. 그렇진 않아. 앞으로 궁금한 건 자주 물어보고, 조언을 해줄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주라고. 난 그런 걸 좋아하거든. 전문가에게 전문적인 분야를 맡기는 걸. 앞에 ‘믿을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겠지만.”
“아.”
“일단 답부터 하자면, 내가 방금 한 말의 반복일 텐데.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지.”
“효율적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각성자들은 카르마 포인트로 자신의 스탯이나 스킬에 투자하면서 알아서 강해질 수 있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지금도 봐. 난 네 이름이 제니퍼라는 것과 멸망의 앞에서 대항하는 총사령관이었다는 것 밖에 아는 게 없어. 네가 어떤 스킬을 다루는지, 말 같은 걸 타면 전투력이 더 올라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아! 저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려던 제니퍼를 손을 펴서 말린 영주는 계속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그걸 알아서 준비하도록 하는 거지. 적을 처리한 것에 대한 대가로. 다행히 이 영지는 기묘한 것들이 많거든. 탈 수 있는 기승물이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마수나 영물 같은 것도 있고. 대장간에서 마력을 부여하거나 과학을 접목시킨 것들도 있고. 연구시설에는 여러 연구가 진행중이기도 하고.”
“그럼 그걸 찾아서 저희가 더 강해지시길 원하시는 겁니까?”
“맞아. 난 너희가 더 강해지길 바라.”
“왜……?”
솔직히 제니퍼는 눈앞에 있는 이 영주라는 남자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세상이 종말을 향해 갈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공허의 종자들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었다.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권력을 쥔 것들. 그 병신들이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전선에 있는 자신들이 강해지는 늘 경계했었다. 병적일 정도로.
“그래야 더 안전하잖아? ‘우리’가.”
“우리…인 겁니까?”
“응. 내가 깊은 인간불신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중에서 몇몇은 제외거든. 지금 옆에 있는 올리비아를 포함한 초창기 멤버와 내가 소환한 너희들. 그러니 난 너희가 더 강해지길 바라. 특수 개체를 사냥해. 그리고 너희가 사냥한 개체가 준 카르마 포인트를 이용해서 더 강해져. 날뛰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