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13
업무 짬처리를 당한 직원이 상사를 향해 눈으로 욕하는 것처럼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올리비아가 마지못한 얼굴로 단상으로 향한다.
솔직히 난 이런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마치 산 속에서 조난한 사람이 119 헬리콥터를 본 것 같은 표정과 감정 말이다.
회귀 전에도 저런 눈빛 때문에 그렇게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절반 정도는.
이번 생에는 더 저런 눈빛을 받겠지만, 괜찮다. 이번 생은 그러지 않을 거니까. 단지 그냥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잠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 올리비아가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다. 지구는 변화하고 있고, 인간은 종말의 위기를 맞았으며, 외계의 생명체나 다름없는 괴물의 침입에 인간은 각성을 할 수 있다. 또한, 각성하지 않아도 지금 순간부터 자신의 카르마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은 대충 끝냈고, 이제 이놈들을 잡아 온 이유를 알아야겠지.”
간략한 설명은 금방 끝났다. 대략 요약하면 ‘각성자가 아닌데, 마이너스 카르마가 높아 그늘이 질 정도면 사람은 최소 다섯 이상 죽인 살인범이다.’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더 애절해졌다는 거다. 그러니까 살인범이 눈앞에 백 명이 넘는데, 아이들은 마치 어미를 바라보는 젖먹이처럼, 수만 쌍의 애절하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기가 질릴 뻔했다.
‘이거 좀 이상한데?’
아이라서 겪는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도 너무 과하다. 뭔가 이상할 정도로 맹목적이라고 할까?
‘마치 각인 효과를 받은 새끼 새처럼……? 설마?!’
고유 능력 [영지].
무려 지구의 의지가 ‘하이 리스크 하이스트 리턴’이라고 장담할 정도의 클래스 [영주]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 능력.
내가 알기로 몇몇 상위 랭킹에 든 이들의 클래스는 아주 드물게 고유 능력이 두 개인 것도 있었다. 회귀 전에 그렇게 자랑하면서 증명한 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회귀 전에는 등장도 하지 않았으면서, 지구의 의지가 극찬한 [영주]라는 클래스의 고유 능력이 하나다?
영주(領主). 영지(領地). 그리고 영지민(領地民).
이 어딘가 비슷함이 느껴지는 단어들의 유사성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는 건가?
“음.”
가장 가까이 있는, 열 살이 안 된 것 같은 작은 키의 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낮춰 눈높이를 맞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야. 내가, 여기가, 지금 상황이 무섭지 않니?”
“저요?! 꺄아! 저요?!”
아이는 원하는 생일 선물을 받은 것처럼 돌고래 같은 비명을 지르며 기뻐했다. 분명히 이 분위기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 장면이 종말이 시작된 지금에 대비하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인터넷에서 봤던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우와! 와아! 정말이죠?! 제게 말한 거죠?! 아!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저씨는 그 아저씨잖아요!”
“그 아저씨?”
“회장 아저씨! 작년 여름엔 무지 덥고 힘들었는데! 내 방에 에어컨디셔너가 생긴 것도 아저씨 덕분이래요! 맛 있는 음식! 좋은 옷! 더는 냄새나지 않아요! 그래서 아저씨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리고 이상하게 아저씨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저는 선생님들도 가끔 아주 조오끔 무섭거든요.”
속닥거리며 자신의 비밀을 몰래 알려주는 아이의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조용한 주변 분위기 때문에 못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마른 웃음이 픽픽 세어나오는 데도 아이는 그저 내 눈을 바라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있죠. 아저씨~. 우리 이제 여기 사는 거죠? 회장 아저씨랑 같이? 네? 같이 사는 거죠? 맞죠?!”
“그…렇지? 맞단다.”
“우와!! 맞대! 맞대!”
갈색 머리카락이 팔짝팔짝 널뛰고, 주근깨가 있는 광대가 한껏 올라갈 정도로 신이 난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받는다.
‘이게 이래도 되나?’
내가 이들을 위해서 여러 투자를 한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반응을 보면 또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갑작스럽게 변한 주변에 불안해 하던 것은 오히려 지금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가 더 심했다. 지금은 그저 시선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인다.
‘에이. 몰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보기로 하고.’
“이제 저것들은 죽일 건데. 애들 보기에 괜찮겠으려나?”
올리비아와 아이들 사이사이에 있는 교사로 보이는 이들과 번갈아 시선을 맞추면서 물었는데,
“네. 오히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대답이 올리비아에게서 나왔다. 그 옆에 선 유다연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인데?”
“적응해야죠. 그런 세상입니다. 이제.”
씁쓸하고 오래된 커피를 입에 머금은 것 같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보면서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들 생각은?”
보육 교사로 보이는 이들에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없다시피 했다. 당장 그들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괜찮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내 손가락을 덥석 잡은 건 작고 따뜻한 갈색의 작지만 거친 아이 손이었다.
“저 아저씨, 아줌마가 나쁜 거죠? 빌런! 히어로는 빌런 무찔러요!”
“그래도 눈앞에서 죽는 걸 보는 건 다를 건데?”
“괜찮아요. 아이언맨도 총 든 나쁜 사람 많이 죽였어요!”
어, 그래. 아이언맨이 잘못했네. 그건.
“그러니까 괜찮아요! 영주 님은 히어로니까요!”
“그……!”
『살존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스탯. 관계 스탯 「충성(Allegiance)」을 개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클래스 [영주]의 전용 스탯 「위엄(Lordly-liness)」과 상호 작용하는 스탯입니다.』
『충성 스탯 「50」 이상일 때, 서브 클래스(Sub-Class) 영지민이 될 수 있습니다.』
『충성 스탯 「75」 이상이며, 서브 클래스로 영지민을 보유한 자는 영주에게 ‘직업’을 얻어 다른 서브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충성 스탯 「80」을 초과한 영지민은 영주를 배신할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집니다.』
『충성 스탯 「90」을 초과한 영지민은 어떠한 경우라도 영주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충성 스탯 「100」에 도달한 영지민은 영주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해 뛰어듭니다.』
‘이건 또 뭐야?’
아 진짜,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러면 회귀가 다 무슨 소용이야? 온통 모르는 일투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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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어. 화들짝 놀랐습니다.
예약이 안 올라가서;;
뭐야. 이거. 무서워.
분명 회귀한 후, 자살이 막히고 제대로 종말을 대비하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여러 계획을 세워놓았다. 침공 또는 종말이라고 말하는 그린스킨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부터 영지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지에 대해서까지.
그런데 벌써 고유 능력 [영지]는 [지주]와는 비교도 불가능하고 차원이 다른 부분이 여기저기 보인다. 물론 그 오차가 내게 이로운 오차이긴 하지만.
‘이건 또 뭐야?’
투덜대면서도 사람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힘이 생기면 써보게 되기 마련이다.
“영지 관리. 충성 스탯 노출.”
그러자 카르마 포인트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두 자리 숫자들이 떠오른다. 충성이 높을수록 숫자는 순백색의 찬연한 빛을 뿜어내고, 50 이하로 내려갈수록 어두운 그림자가 생긴다.
카르마 포인트 때와 마찬가지로 직관적이다.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 때와 마찬가지로 잡혀 온 놈들은 죄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나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천사의 날개처럼 반짝거린다.
물론 플러스 카르마가 높다고 그것과 비례해서 무조건 충성이 높은 건 아니었다. 일례로 아이들 중간에 있는 성인들, 그러니까 보육 시설과 관계없는, 내가 산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로 보이는 이들은 잡혀 무릎 꿇려진 이들과 충성 스탯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렇군.”
거기까지다. 아직은 영지민의 서브 클래스를 정해줄 때가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처리하자. 전사 계열. 그리고 클래스에 따라 마이너스 카르마가 많이 필요한 사람 위주로 목을 쳐.”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으나, 섬뜩하기 그지없는 내용의 명령을 전달하고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최대한 충격을 덜 받았으면 하기에.
“열다섯 살 이상 손 들어 봐.”
“저요!”
“저도!”
“넌 열네 살이잖아!”
“치잇!”
열다섯 살 이상의 제법 머리가 큰 아이들을 불러 그보다 어린아이를 보살피게 했다. 시선을 돌리고, 준비한 간식을 나눠주는 일을 시켰다.
“다 끝나면 준비한 텐트도 쳐야 해. 잘 할 수 있겠지? 며칠은 텐트 신세를 져야 할 거야. 불편해도 조금만 참자? 대신에 저 텐트는 스마트폰 충전도 할 수 있고, 여러 기능이 있어서 춥거나 덥진 않을 거야.”
“네. 괜찮아요! 저도 캠핑 가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아빠와 캠핑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러웠거든요.”
“…그래. 뭐, 이젠 괜찮아. 너희는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 셈이니까. 오히려 이제는 그 아이들이 너희를 부러워하게 될 거야. 동생들도 잘 부탁한다.”
“네에!”
존이라는 흔한 이름을 지닌 아이는 제법 덩치가 큰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였다. 보육 시설에서 자란 아이치고는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보기 드물게 선한 아이.
‘그러니까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에게 선택받은 거겠지만.’
여러 나라에 마련한 보육 시설에 모인 아이들은 무작위로 모인 게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통이 가능한 지구의 의지들은 자신의 사제들에게 눈을 빌려줬다. 태생이 선한 아이들을 고르기 위해서.
비명조차 제대로 제대로 지르지 못할 정도로 마이너스 카르마가 넘치는 놈들은 죽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다시 푸른색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영지의 조감도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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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Rank 영지 구성]― 성벽 [Rank: W]
― 성문 [Rank: W]
― 병영 [Rank: W]
― 성소 [Rank: R]
― 내성 [Rank: W]
― 창고 [Rank: W]
― 농장 [Rank: W]
― 행정청 [Rank: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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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그리고 성문, 병영과 성소는 고유 능력 [영지]를 발현한 것과 동시에 구현됐다. 영지가 화이트 랭크였을 때 등장한 기본 건물 말이다. 그리고 레드 랭크로 [영지]가 업그레이드 되고 난 후, 등장한 내성과 창고, 그리고 농장과 행정청은 각자 파란색으로 표시된 곳 주변에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난 당장 건설해야 하는 건물보다 이미 건설이 끝난 [성소]가 더 궁금했다.
지구의 의지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재신조차도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걸 설명해서 준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멸망의 상황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수단이라는 방증이겠지.
내성의 남쪽에는 우리가 영지로 나올 때는 없었던 건물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아이스크림을 덮어 놓은 것 같은 둥근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은 전체적으로 하얗고 중간중간 하늘색으로 치장된 건물이었다. 성스럽게 보인다기보다는 지중해의 반짝이는 바다를 연상케 한다고 할까?
이게 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마력이 느껴지는 은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단출한 실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해할 수 없는 문양과 여러 개의 동심원, 그리고 그 동심원과 문양들로 각인된 바닥 중앙에 위치한 얕은 재단.
텅―!
그 풍경을 감상하고 안으로 발을 들이기 무섭게 실내가 환하게 밝혀지면서,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영주 님.』
지구의 의지가 아닌, 조금 더 딱딱한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신기하고 의문스럽지만, 지금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이다.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아니, 내게 뭘 해줄 수 있지?”
내 고유 능력으로 지은 건물이지만, 아는 게 없었으니까.
『성소는 차원 방랑자를 소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차원 방랑자?”
『이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아득히 먼 과거에는 차원이 여러 이유로 멸망하고, 부서지고, 침탈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차원의 멸망과 함께 대부분의 생명체는 사멸하지만, 종종 위대한 의지의 보호 아래 차원이 소멸했음에도 생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와. 한국말인데 영어 듣기 평가하는 느낌이야. 하나도 모르겠어.
『위대한 의지가 개입해서 보호하는 이들은 대체로 강력하거나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위대한 의지의 보호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사멸할 존재. 그렇다고 그 우산 안에서만 머물기에는 위대한 의지에 비해 보잘것없는 필멸자가 살아가기엔 허무하고 힘든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이 방랑자들은 멈춰버린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어. 그래.”
하나는 알아들었다.
차원 방랑자라는 존재가 엄청난 강자이면서 특별한 존재라서 지구의 의지 비슷한 존재가 보호하는 중이라는 것.
내가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클래스는 전투 클래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뭐, 중세 시대 영주는 직접 말을 타고 전쟁에 나섰으니, 가망이 없진 않지만.
아무튼, 그런데 저렇게 강한 존재를 소환할 수 있다면?
개꿀이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글쎄? 이게 좋은 게 맞나?’
『이곳에서는 플러스 카르마를 대가로 현재 지구 시간으로 180일에 한 번, 차원 방랑자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180일? 여섯 달?”
『길다고 느끼실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강자니까요.』
“그게 더 문제 아닌가……? 강자라며?”
그래. 이게 문제다. 엄청난 강자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