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131
그러니 내 여자가 네 여자가 되고, 네 여자가 내 여자가 되는 그런 관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알지. 아니까 묻는 거잖아.”
너무 잘 아니까. 나는 그렇게 탐닉하던 이들의 끝이 좋은 적을 본 적이 없다. 하나 같이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끝은 파국이었다.
“우리에겐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에요.”
조금은 장난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질책하려고 만든 자리였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지해지면서,
“보스. 단순히 정절이나 사회적 통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거 아십니까?”
가만히 뒤로 물러나 질렸다는 눈으로 유다연을 보면서 티나지 않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네이선까지 나섰다.
“현재 영지에 성비가 극악입니다.”
“……성비가 이상하다? 난 보고 받은 게 없는데?”
“그거야 성비 정도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 영지는 큰 사건이 쉬지 않고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네이선의 보고에 올리비아의 보고가 더해지고,
“현재 영지에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2:8입니다.”
다시 네이선의 말이 더해지면서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이해했다.
“성비가 비슷하게 될 때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응? 왜?”
“아이를 낳는 것으로 어떻게 해결 될 정도의 성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24만의 영지민 중에 여성의 인구가 170만 이상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의문을 가지자마자 도미노의 시작 블록을 건드린 것처럼 여러 이유가 뇌리에 우후죽순 떠오른다.
일단 한국 내로 한정한다면 군대에 있던 남자들은 9할이 전멸했을 거다. 명령에 의해서 출동했을 거고, 화약의 효과가 사라졌으니 휘두르기도 애매한 총을 들고 우왕좌왕하다가.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인정하는 악업 중에 강간은 굉장히 높은 수준의 악업을 쌓는 편이다. 주로 힘에 의한 강간은 남자가 벌이는 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세상이 망해가는 순간 눈 이 돌아서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
악업이 쌓여 각성할 수 없게 된 남자는 당연히 죽었을 거다. 그린스킨은 여자는 살려줘도 남자는 식량으로 삼으니까. 반면 여자는 웬만하면 살려놓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오히려 2:8 정도의 성비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먼저 경고하지 않고, 회귀 전처럼 그대로 두었다면 다른 이유로 인류가 망해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 나온 김에 영지 내에 법을 새롭게 정해야 합니다. 기존의 법과 관념을 지금처럼 혼란스러움과 평온한이라는 모순된 분위기가 공존할 때, 지우고 멸망한 세상에 어울리는 개념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맞아요. 보스. 그래서 저희가 [전문직원]과 상의해서 몇 가지 준비를 좀 해봤어요.”
갑자기 분위기 영지 회의로 이어졌지만, 너무 순식간에 그리고 본래부터 이런 회의를 하려고 모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그렇게 회의가 진행됐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망해 버린 세상에서 잰더갈등이라도 일으키고 싶어?! 이럴 게 아니라, 엘리아나님. [행정청]에 정령을 보내 [전문직원]도 좀 불러 주세요. 시간이 되는 사람은 오라고.”
“하지만 남녀의 육체적인 스펙 차이를 아예 무시할 수 없잖아요?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하라는 게 아니라요. 아! 엘리아나 언니. 서다혜 아줌마도요. 그 아줌마 법원에서 근무했다고 했어요.”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다루는 쟁점들이 너무 뜨거워서 함부로 끼어들기도 애매해서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마력은 드러내지 말고. 그건 싸우자는 거잖아.”
너무 과열되면 중재를 하는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이었다.
지의사 중 일부만 모여서 하던 회의는 스무 명의 [전문직원] 전원과 서다혜를 비롯해 종말 전에 전문직에 종사하던 이들까지 합류해서 대회의가 되었다.
그리고,
“영쭈님~?”
여러 사람이 오가면서 열린 문을 통해서 설기의 헤츨링인 일명 ‘하찮이들’을 품에 안고 찾아온 리리노와 설기까지 들어오면서 난 엘라와 함께 뒤로 물러나 리리노와 설기랑 놀아주는 포지션이 되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자,
“다음 회의는 식당에서 해요. 영주님 방이 넓은데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좁네요.”
올리비아가 그렇게 회의의 끝을 알리자 우르르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고성이 오가던 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뭐지? 뭔가 홀린 기분인데?”
“풉.”
엘라와 설기 그리고 하찮이들만 남은 방에서 뭔가 뒤통수를 은근슬쩍 맞은 것 같은 기분에 중얼거리고 나서야,
“하아? 은근슬쩍 회의로 넘어가서 흐지부지됐잖아?”
애초에 저 녀석들을 내 방으로 불러 모았던 이유였던 ‘다음 차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했다는 깨달았다.
“이 새끼들이?!”
아주 제대로 당했다.
“어쩐지 유다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인 모습이다 했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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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화요일에 업로드 되는 원고가 예약 시간이 틀려서 완전 아침부터 등에 식은 땀을 흘려서ㄷㄷㄷㄷ
이제는 원고를 최소 3일치를 미리 예약으로 올려놓으려고요. ㅠㅠ
동시연재도 처음이고, 노블 프리 연재도 처음이고 그래서
비축이 줄어들때마다 잔고가 줄어드는 것처럼 불안해서 ㅠㅠㅠㅠ
더 노력하겠습니다.
내일(목) 0시 7분에 찾아뵙겠습니다.
처음부터였다.
133. 처음부터였다.
처음에는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시작하게 된 영지법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엘라와 소피아가 ‘최소한 그린 랭크에 오르지 못한 상태로는 블루 랭크의 주인님(영주님)과 잠자리를 당장은 감당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지의사들 사이에서는 사냥붐이 불었다.
어떻게서든 그린 랭크에 턱걸이라고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눈으로 이른 아침에 영지를 나가 안전지대 경계선으로 향해서 저녁이 돼서야 돌아오는 일정을 며칠 째 반복중이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거 괜찮네? 녹차랑 비슷하면서 꽃차 느낌도 나고? 이게 세계수의 잎으로 만든 차라는 거지?”
“네. 주인님. 마음에 드시니 저도 기뻐요.”
엘라와 한가하게 성벽 위에 티 테이블을 놓고 차와 쿠키를 먹으며 티 타임을 가지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높은 성벽에서 보이는 영지 경계 바깥에서는 폭음과 고함 그리고 좀비가 내지르는 괴성이 아련하게 들려오고, 폭발하고, 불타오르고, 터지고, 얼어붙는 원소의 힘이 넘실대는 장소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차는 그렇다 치고, 쿠키고 직접 만들었어?”
“네. 어떠세요? 주인님?”
“맛있어. 클래스가 [요리사]라고 해도 믿겠어.”
“호호호.”
겨울로 접어든 계절에 어울리는 데이트에 가까운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뒤로도 말없이 그저 서로 마주 앉아서 겨울이 성큼 찾아온 성벽 위에서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난리도 아니네.”
이제 막 각성자가 된 것일까? 성벽 너머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좀비를 상대로 개싸움에 가까운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참,
“못 싸우네.”
전투 자체에 소질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처절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생존을 향한 열망이 느껴지는 몸부림이었고,
“모순적이네.”
그렇기에 그 모습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하이엘프가 정령을 이용해 온기를 유지하는 호화로운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이 지독하게도 모순적이다.
“여유롭네.”
그 모습이 오히려 이 여유를 더 선명하게 한다. 검은색과 노란색을 교차로 배치하면 각각의 색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그렇게 끙끙거리면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 말고.”
맞은 편에 앉은 엘라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여전히 성벽 너머에서 열심히 사냥하는 초보자들과 그 주변에서 혹시 몰라 대기하면서 사냥하는 엘븐나이츠 2개 조에 시선을 두었다.
“주인님.”
“듣고 있어.”
영지의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심지어 그 대상에 유다연이 포함된다고 해도, 엘리아나는 내게 맹목적이고 순종적이다. 그런 엘리아나가 전전긍긍하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주제라면 무엇일까?
그게 짐작이 되지 않는다면 난 둘 중 하나다. 멍청하거나, 감정이 없거나.
난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고, 그녀가 꺼내기 어려워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도 역시 짐작한다.
“소피아는…….”
“엘라.”
문장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말을 잘랐다. 단호히.
“나는 말이야. 엘라. 이런 세상이 싫어. 그리고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싫어.”
“…주인님.”
“그거 알아? 난 어떤 일을 계기로 종말이 올 걸 알고 있었어. 그걸 알게 된 날. 내가 무엇을 했을 것 같아?”
“……?”
“죽으려고 했어.”
“!!”
흠칫 놀라며 숨을 들이키는 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감에 고스란히 잡힌다. 엘라가 나와 있을 때는 자신의 기척을 숨기지 않으니 느낄 수 있는 거겠지만.
“하지만 살았지. 유다연이 말렸거든. 솔직히는 나도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말렸어도…….”
뒤에 생략된 말을 엘라는 짐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맞은 편이 아니라,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아무튼, 다시 살기로 결심하고 나 혼자 몇 가지 원칙을 세웠어.”
“인간을 믿지 않는다.”
“살려야 하는 사람과 죽여야 할 인간을 구분한다.”
“힘이 닿는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은 유지해주자.”
“속으로. 아무도 몰라. 유다연도 모르는 거야. 엘라 네가 최초로 듣는 거지.”
* * *
두서없이 쏟아내듯이 말하는 이요한을 보며 엘리아나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저릿했다. 자신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인간. 자신의 처음을 준 남자. 무의 공간에서 꺼내주고 신록의 싱그러움과 생명의 찬연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소중한 주인.
엘리아나가 이요한에게 처음을 내준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유다연은 뒤늦게 뛰어들었다고 했지만,
‘처음부터였다.’
엘리아나는 공허와 무의 공간에서 꺼내져 빛이 가득한 성소에서 다시 눈을 뜬 날. 그곳에서 자신을 티끌 만큼의 음심도 없이, 애처롭고 애달픈 눈으로 내려다보는 남자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그에게 반했다.
긍지 높은 하이엘프가 단순히 무의 공간에서 꺼내줬다고 인간을 주인님이라고 부를 리가 없잖은가!
항상 투덜대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엘리아나가 경험하고 들었던 어떤 지도자보다 온정이 넘치는 남자였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사람.
권능을 다루는 그린스킨을 상대로 조금도 눈을 피하지 않고 전력으로 싸우면서도, 영지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당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고귀한 사람이다.’
엘리아나는 그렇게 단언했다. 그래서 잘못 생각했다. 아니, 착각을 한 거다.
‘아……! 성급했구나. 이미 한 번 경험하고서도……. 아둔한 엘라야. 엘라야.’
이 아름답고 소중한 영지에 그의 피를 이은 후계자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불과 며칠 전 블루(Blue) 랭크에 오르는 과정에서 서로 생각하는 차이가 있다는 걸 경험하고서도.
“엘라.”
미안한 마음에, 그리고 죄스러운 마음에 더 꼭 끌어안은 이요한의 입이 그녀의 가슴 사이에서 움직이며 따뜻한 온기와 미묘한 간질거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씁쓸함은 한 겨울 강 위를 휩쓸고 지나가는 모질고 세찬 바람 같았다.
“네. 주인님.”
“그런 건 좋은 말을 생산하기 위해 일정을 정해 교미하는 종마나 하는 짓이야.”
“…….”
“난 최소한의 인간이고 싶어. 이 난리에도, 백 척의 위에 간신히 걸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나는 여자를 만난다면, 감정을 교류하고, 이렇게 차를 마시며 데이트도 하고, 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그러다가 저녁에는 같은 침대에서 서로를 탐닉하는 그런 거.”
“그래요. 그렇게 해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엘리아나는 이전까지 지극히 순종적이던 모습은 착각이었다는 듯이 충동적으로 의자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요한과 눈을 맞추고 입술을 찾았다.
한참을 서로의 입술을 탐하던 둘이 떨어졌을 때, 이요한은 평소의 여유롭고 유쾌한 그로 돌아와 있었고 엘리아나는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런데요. 주인님.”
“음?”
“데이트를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좋아요! 해요! 데이트! 저랑도 하고, 소피아랑도!”
훨씬 밝아진 목소리의 엘리아나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아이처럼 당당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으스대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였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