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132
이요한이 피식 웃으면서 긍정의 대답을 내놓은 것은.
“소피아도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내 사람이니까. 충분히 자격이 있지.”
“맞아요.”
이요한도 소피아가 싫은 게 아니다. 그저 이런 분위기가 싫은 거였다. 종말에 뭐 그런 걸 바라냐고?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이요한은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거다.
‘종말이니까 더 그런 걸 원하는 거다.’
언젠가 이요한이 했던 말처럼, 이요한도 각성자다. 멸망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상과 같았을 일에 집착하는 다른 각성자와 다를 것 없는.
그렇게 엘라와 이요한의 성벽에서 티타임이 지나고 며칠 뒤 엘라의 말처럼 이요한은 소피아와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식당에 들러 천천히 밥을 먹고, 세계수 아래에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도 했다.
웃고, 떠들고, 피식 마른 웃음도 흘려보낸다.
그리고 성벽에 올라 파란 수국 자수가 새겨진 순백의 테이블보가 깔린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요한이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때였다.
“…뭘 하자고?”
이요한이 뭔가 잘못 들었다는 얼굴을 하고 소피아를 바라본다. 황당하다는 감정이 두 눈과 떡 벌어진 입으로 충분히 드러난 채로.
“종교요! 종교를 창시해요! 우리!”
“종교쟁이를 내 손으로 내쫓았는데, 나보고 종교를 만들라고?”
이요한은 기괴한 생명체를 마주한 것 같은 얼굴로 소피아를 바라봤다. 아무리 멸망에서 내로남불이 패시브라고 해도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이요한은 속으로 ‘빌어먹을 신성력!’이라고 외치고는,
“그건 선을 넘는 것 같은데? 불가야.”
그렇게 단호하게 반대했다.
“에에?! 왜요?! 종교를 창시하면 엄청 좋아요!”
“좋긴 뭐가 좋……?”
[마스터. 종교를 창시하고 종교관을 설정하시는 추천합니다. 적극적으로 말입니다.]경험에 의한 종교 혐오를 가진 이요한이 반대를 하려는 찰나, 데이트를 할 때면 눈치껏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고 끼어들지 않던 [정복 군주의 인장]의 군주 에고가 끼어들었다.
“일단 들어나 볼게. 뭐가 좋은데? 아니, 그 전에 종교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창시가 되고 그러는 건가?”
“영주님. 종교 창시는 가능해요. 어렵지도 않고요. 그리고 뭐가 좋냐니요?! 영주님 [치료소], 잊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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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소[Rank: Green]
3.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치료소를 통해 종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 종교를 세우면 [의사]와 [전문의]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와 [대사제]로 변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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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을 리가.”
그래. 잊었을 리가 없지. 신성력을 사용하는 클래스 계열인 [사제]와 [대사제]를 고용할 수 있는 시설인데.
‘그런데 종교관은 어떻게 설정하는 건데? 그냥 오늘부터 이런 종교가 생겼습니다. 하면 돼? 그렇게 쉬워?’
[단순히 종교관을 설정하는 건 [영지 관리]로 충분하지만, 보다 나은 설정과 교리 그리고 혜택을 정하는 데는 저보다 더 전문가가 있습니다.]“그렇게 하고 싶어?”
“네! 영주님을 위해서요.”
“나를? 나를 위해서? 종교를 창시하면 [치료소]에서 사제와 대사제, 추기경이나 이단심문관을 고용할 수 있다는 말 때문이야?”
“네? 그건 몰랐는데요?”
“그럼 왜 종교를?”
“그거야. 종교를 창시하면 그 종교를 믿는 이들은 ‘혜택’을 받으니까요! 그리고 혜택은 종교를 창시할 때 선택할 수 있어요. 보통은 안 되지만, 영주님은 가능하세요.”
“음…….”
여러 생각이 휘몰아치듯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것들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다. 그렇게 하나씩 사라지고 고려해야 할 것만 남았을 때,
“좋아.”
소피아의 제안을 이요한은 승낙했다.
“까아아아!! 좋아요! 좋아! 뭐부터 할까요? 네? 아! 교리부터 설정할까요? 이만판천오백 개의 교리가 벌써 떠올라요.”
“…굉장히 많으면서 쓸데없이 구체적인 숫자네?”
“그리고 성서도 집필해야 하고, 성가도 만들어야! 아아아!!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 전에 말이야. 종교면 신이 있어야 하니까 신부터 정해야 하는 거 아냐?”
“네? 그걸 왜요?”
“응?”
“신은 영주님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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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아오. 벌써 이러다니.ㅠㅠ
생각나면 추신으로 남길게요!
내일(금) 0시 7분에 찾아뵙겠습니다.
수치사 하는 최초의 각성자로 기록되는 게 아닐까?
134. 수치사 하는 최초의 각성자로 기록되는 게 아닐까?
“내가 죽으면 다잉 메시지로 범인은 소피아라고 적을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신은 죽지 않아요. 영원불멸이라고요.”
“그럼 난 신이 될 수 없겠네?”
“아뇨. 영주님은 영원불멸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영주님의 두 번째 부인이자, 성녀가 되어 함께 오래도록 곁을 지킬 거예요. 제 촉이 그렇대요.”
“그 촉 똥촉인 듯.”
“흥응~. 흥흥응~.”
소피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이제 푸른색 마력이 흘러나올 정도로 반짝이면서 진심 모드가 되었음에도 콧노래를 멈추지 않을 만큼 즐거워 보였다.
다만 그녀가 즐거워할수록 의도치 않게 내게 데미지가 온다는 게 문제다. 그것도 맨탈에 금이가는 데미지가.
“이러다가 진짜로 수치사 하는 최초의 각성자로 기록되는 게 아닐까?”
소피아에게 억지로 붙들려 하나의 새로운 종교의―무려 내가 신인 사이비스러운― 탄생을 지켜본 시간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손과 발이 실시간으로 닳아 없어지는 환상통이 생기는 기분이었으니.
“그럼 이제 영주님.”
“어. 그래. 마음대로 해. 빛도 내가 만들었다고 해도 좋아.”
“오! 좋아요! 하긴 영주님께서 [영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빛은 어디서 구하겠어요? 그건 나중에 추가할게요.”
추가할 거냐. 빌어먹을. 농담을 빙자한 비꼼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냐?
“그것보다요. 이제 정하셔야 해요.”
“뭘? 종교 이름?”
“그것도 중요한데요. 그것보다 이거요. 베네핏이요.”
“베네핏?”
다른 말로 혜택이다. 앞서 [정복 군주의 인장]의 에고도 언급했고, 소피아도 언급한 혜택.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까?
이해가 안 된다는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을 보더니,
“영주님. 종교는 왜 생겼을까요? 어떻게 종교라는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차분해진 소피아가 던진 질문은 고차원적이었다.
“음? 그거야. 뭐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뭐랄까.”
솔직히 종교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학자도 밝히지 못하는 문제라고 알고 있다. 종교라는 것이 수학처럼 어디부터 종교고 그 이전은 종교가 아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그럼 더 쉽게요. 동물이나 곤충은 그러지 않는데, 왜 인간이나 유사 인류에게만 종교라는 문화 체계가 생길까요?”
“설마 그게 베네핏, 그러니까 혜택 때문이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고대에 불을 숭상했다거나, 번개를 숭배했다거나, 소를 섬기는 일들도 다 저걸 믿으면 나와 내 가족이, 부족이 노여움을 피하고 안전할 수 있다! 혹은 농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거죠.”
눈이 반짝인다는 관용어구가 있다. 지금 소피아의 눈이 그렇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서 흥미와 흥분이라는 이름의 별이 떠 있었다.
“음. 그래서 종교 창설에 베네핏이 당연하다?”
“아니죠!”
“아니야?”
“종교 창설에 가장 중요한 게 베네핏이라는 소리죠!”
“음.”
“쉽게 정하기 힘드시면 제가 몇 가지 괜찮을 걸 추려볼까요?”
‘제발 허락해! 나에게 맡겨줘!’라고 말하고 있는 눈을 보면서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마자,
『[영지 관리]의 숨겨진 기능. 종교관 창설 메뉴를 불러옵니다.』
『종교관 창설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완성됩니다.』
『[영주]의 가신 소피아 로렌의 등급이 최고 등급 권한까지 격상됩니다.』
이런 시스템 메시자가 출력되고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어? 이거 괜찮네요. 다산(多産). 세계수와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그렇군.”
“오! 이런 것도 있네요? 전쟁 군주. 괜찮네요. 현재 영주님과 우리 영지의 상황을 고려하면요. 버프가 아니라, 신자의 수에 따라서 영구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하는 거니까요.”
“음.”
“오! 이것도!”
소피아는 열을 내며 좋아하고, 나는 멍청하게 ‘음’, ‘그래.’ 같은 추임새를 넣으면서 적당히 대꾸해주고 있었다.
중요한 상황인데 너무 대응이 멍청한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하라고?
내가 영지가 그린(Green) 랭크가 되고 성소에서 성소 담당 시스템에게도 말했다시피 난 내가 잘 모르는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종교에 관해서는 성녀인 소피아가 누구보다 전문가다.
‘물론 그 전문가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음? 오! 오오!! 영주님! 이거요! 이거예요!”
이것 봐라. 금방 결론이 나오지 않나.
“뭔데?”
“이거요! 신성(神聖).”
“신성? 신성력할 때 그 신성?”
“네. 신성(神性)이 아니라, 신성(神聖). 성스럽고 깨끗한 기운을 뜻하는 단어요.”
처음에는 왜 소피아가 이렇게 흥분했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력 성질이 변하는 거야? 아니면 추가 되는 거야?”
블루 랭크에 오른 특수 스탯의 영향으로 격이 상승한 내 머리는 그 효과를 바로 이해했고 소피아가 보고 있는 베네핏을 나 역시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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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핏 ― 신성(神聖)
이 특별한 혜택은 신자의 마력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신을 믿는 것만으로 신자의 마력은 성스럽고 깨끗한 기운을 가진다. 성스러운 마력은 삿된 것을 배척하고, 악을 경멸하며, 마(魔)를 부수는 힘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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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걸 단지 종교를 믿는 것만으로?”
설명이 더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앞에 나열된 내용만으로도 나를 기겁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내용일 곱씹을수록 이걸 어떻게 쓸지, 이게 불러올 효과들이 빠르게 연상되기 시작했다.
“미친!”
“아! 역시 그럼 그렇지. 조건이 없는 게 아니네요. 뒤에 보니까. 베네핏의 양과 질은 신자의 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오로지 신자 개개인의 믿음의 순수성에 따라서 질이 달라져요.”
“믿음의 순수성?”
“음. 얼마나 진실하게 신을 믿는가에 대한 정도?”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얼마나 순수하게 신을 믿는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숫자요? 숫자? 아! 숫자! 충성 스탯! 영주님은 충성 스탯이 있어요! 와아~! 이거 정말 좋은데요?”
“충성 스탯이?”
“네! 우리가 설정하려는 종교관에서 신은 영주님이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내가 수치사할 뻔했고.”
“헤헤헤. 그러니까 신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은 충성 스탯이라고 봐도 무방한 거죠. 따라서 충성 스탯이 높을수록 혜택의 질과 양은 강해진다는 거예요. 그 말은 곧 충성 스탯이 높은 영지민일수록 더 강해진다는 뜻이고요.”
“아!”
소피아의 호들갑이 괜한 게 아니다. 이건 엄청 좋은 거다. 충성 스탯이 90 이상인 이들의 행동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영주인 나를 욕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더 강해진다면? 좀비와 악마에게 치명적인 마력을 다루면서?
“그걸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