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186
―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이 부서질 때도 신음 한 번 내지 않던 어비스 나이트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고 두려워했다. 성인의 머리만 한 크기였던 어비스 나이트 로드의 핵이 어린 아이 머리 정도로 작아졌을 때,
― 나, 나, 나는 리치 군주에게 유이하게 이름을 받은 언데드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라는 처음 듣는 정보를 내놓았지만, 역시나 우린 무시했다. 엘라는 혹시 모를 안 좋은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비공정] 안에 태우고 나와 소피아만 내려와서 핵을 없애며 고통을 주는 상황인데, 도움은 무슨 도움?
어린 아이 머리만 했던 핵이 테니스 공 정도로 작아졌을 때,
―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 살려만 줘라! 살려만 주면 뭐든지 협력하겠다. 전적으로!!
이렇게 애원했다. 전적으로 협력? 그딴 걸 왜? 죽이면 되는데?
나와 같은 생각인 소피아는 멈추지 않았고, 테니스 공이 골프공보다 작아졌을 때,
― 노, 노예! 노예가 되겠습니다! 노 보다 더 한 것도 되겠습니다!! 사, 살려만 주세요!
그는 그렇게 애원했다. 말투도 바뀌고 모든 것을 포기한 존재처럼.
“응. 안 돼. 안 바꿔줘.”
소피아조차 살짝 손을 멈췄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그에 소피아의 신성력이 재차 움직여 작은 유리구슬 정도로 작아졌을 때,
―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게 맹세하겠습니다. 살려만주십시오.
비명을 지르지도, 그렇다고 악을 쓰지도 않았다.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애원할 때, 그때가 되어서야,
“좋아.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주관으로 노예 계약.”
나는 허락했고, 내 대답이 나오는 짧은 순간에도 크기 줄어서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보다 작아진 핵이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을 감사하다는 말만 하다가 나중에는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불쌍하다거나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아무 감정이 없었다. 우리 일행 중에 감정을 드러낸 건 [마법사] 계열 뿐이었다.
새로운 실험체에 관한 흥미? 딱 그 정도의 감정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대로 어비스 나이트 로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완전히 죽진 않았다. 지금 저 상태에서 언데드로 깨어나더라도 스켈레톤이나 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핵이 작아졌다.
그 구슬보다 작은 핵을 들고,
“계약을 주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분명히 날 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입니다. 특이 개체 어비스 나이트 로드, 개체명 오네로와 지구인 대영주 이요한의 계약을 우리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공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딱딱한 문자로 표현되는 대답이었지만, 어딘가 웃음기가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닐 거다.
“혹시 수수료를 드려야 할까요?”
『어머?』
내 질문이 의외였을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호의였을까? 놀란 말투와 함께 희미한 웃음 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진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요한 님. 하지만 괜찮아요. 수수료 같은 걸 받지 않아도 충분하답니다.』
뭐가 충분한 걸까? 하긴 지금 이 상황은 지구와 다른 차원 사이에 벌어진 공방전, 그러니까 공격과 방어를 하는 전쟁이다. 그 전쟁의 심판이나 마찬가지인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전쟁에 참여 중인 나에게 사적으로 뭔가를 받는 건 이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거라도?”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을 언제 만날지 몰랐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게 편의를 봐준 것을 보답하고자 준비한 게 있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은 에고 시스템이라 육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음식이나 장비 같은 것보다 이런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이거……? VR 장치인가요?』
종말 전에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랩탑과 데스크탑은 물론이고, 영상을 잔뜩 저장해 놓은 대규모 저장 장치와 게임과 오락거리를 역시 저장했다.
그리고 영지가 본격적으로 돌아가면서 영지 내부의 [내성]이나 [집] 같이 정식으로 건설된 영지 건물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이것들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었다.
[창고]에 넣어둔 전자제품 및 오락거리가 [고급 자판기]에 등록되고, 카르마 포인트의 여유가 생긴 이후로 그걸 사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그런 VR 장비를 [대마도사]나 [마도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비공정]을 만들면서 쉬는 시간에 만지작거리더니 저런 걸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네. 육체가 없어도 접속할 수 있습니다. [비공정] AI 시스템 훈련용으로 제작한 장비이니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타이틀도 여러 가지 넣어놨으니 지루하진 않으실 거예요.”
『…생각하지 못한 선물을 받았네요. 수수료…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네. 그걸로 충분하다면요. 영지에 소속된 영지민 중에 게임 개발자들도 있어서 추가로 신규 타이틀이 나오면 그것도 보내드릴게요.”
과학과 마법 그리고 마도 공학이 더해진 특별한 VR 구현 장치는 넉넉하게 24개나 있었고, 그걸 전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에게 보냈다.
관계라는 건 그렇다. 인간과 인간이든, 인간과 지구의 의지든, 어떤 관계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아득하게도 격이 높은 존재인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별 거 없는 인간 사이의 관계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이걸 준비한 거다.
『그것보다는 이런 문구가 더 확실해요.』
이렇게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가. 계약은 바로 진행됐다. 무려 13가지 항목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조금도 없는 계악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7. 오네로는 이요한과 그 아래 속한 아군의 존재를 [심연]보다 위에 둔다.
이거였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최우선’보다 더 확실하다는 의미로 바꾸길 추천해준 문구이기도 한 내용.
『…계약을 공증합니다. 그리고 오네로. 멍청한 생각하지 마세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당신의 생각까지도 읽고 있으니까요.』
살벌한 경고까지 들은 오네로의 핵이 부르르 떨린다. 두려움인지 안도인지 모를 그 떨림에,
“이거 가져가서 이것저것 해보시고, 리치 군주에 대해서도 알아보세요.”
아무런 감흥도 없이 [대마도사]에게 핵을 넘겼다. 언데드 따위 떨거나 말거나 그딴 거 알 게 뭐냐.
저기 흥미진진한 눈으로 핵을 받아서 마력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마법사들이나 신이 났지.
“가자. 집으로.”
“네.”
“네! 영주님!”
엘라는 조용히, 소피아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비공정]에 올라탔다.
‘[영지]로 돌아가면 이제……. 카르마 포인트가 얼마나 남았더라……. 그전에…….’
“영주님.”
“어?”
“복잡한 건 나중에 고민하세요. 지금은 우리가 완전히 이겼다는 게 중요해요! 돌아가면 파티하는 거예요!”
“…그래. 뭐, 그러자.”
복잡한 건 잠깐 내려놓고 장장 열흘 넘게 걸린 이 대원정을 승리하고 지구에 [심연]이 침식되는 걸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일이다.
“좋아! 예쓰!! 그럼 이번에 저 ‘막걸리’ 먹을 거예요! 밤 막걸리!!”
“그래. 그래. 다 먹어. 얼마든지 사줄게.”
“오예!! 서 셰프한테 김치부침개 구워달라고 해야지!!”
“소고기도.”
“그래요. 언니! 언니 소고기는 꼭 서 셰프한테 구워달라고 할 게요. 소고기! 맛있겠다!!”
전형적인 서양인처럼 생긴 소피아의 입맛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와인보다 막걸리를 좋아하고, 치킨보다 부침개나 전을 좋아한다. 엘라는 하이 엘프지만 고기를 더 좋아한다. 전형적인 육식파.
지의사 중 누군가 엘프는 고기 안 먹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가 못 배운 놈 취급을 받았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고 어떻게 활시위를 당겨 몬스터를 잡느냐고.
그렇게 파티에 준비할 음식을 마구잡이로 꺼내는 소피아와 엘라. 그리고 그런 두 여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마도사]는 [비공정]에 기본 장착된 통신 마법으로 영지에 전한다.
그걸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면서 문득 그런 기시감이 들었다. 종말이 한꺼풀 비껴가고 있다는 기시감이.
* * *
이요한과 소피아가 파티를 준비하던 그 시각.
이요한이 멸망이 조금은 비껴가고 있다는 느끼고 있던 그 순간.
리치 군주의 상황은 심각했다.
초월자에서 필멸자로 격하.
휘하 언데드 중 가장 믿고 있던 존재인 오네로의 반발.
그로 인한 기절.
기절한 사이에 반강제로 벌어진 오네로의 연결 해제.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 악재인데, 리치 군주와 종속 연결이 끊어진 언데드가 오네로라는 게 문제다.
데이몬과 함께 이름을 준 특별한 언데드.
리치 군주와 시작을 함께 한 언데드와 연결이 강제로 끊어지자 그 폭풍이 리치 군주에게 돌아왔다.
오네로가 소멸하지 않았음에도 종속 연결이 끊어졌기에 소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어비스 나이트 로드라는 특별한 최고위 언데드가 성장하며 쌓은 격이 또 강제로 날아갔다.
데이몬에 이어 두 번째 언데드인 오네로가.
쾅―!!!
오직 리치 군주에게만 들리는 폭음이다. 격이 무너진다. 리치 군주라는 존재를 떠받치던 기둥 두 개가 모두 사라지면서 불안한 상태로라도 쌓였던 격이 홍수를 만난 토산처럼 와르르 휩쓸려 나간다.
초월자의 위에서도 내려온 리치 군주의 격이 무너진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가 붕괴된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개체명 리치 군주가 소멸의 과정에 접어들었습니다.』
소멸하는 거다. 언데드이기에 죽음이 아니라, 소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개체명 리치 군주는 현재 차원 공방전을 진행 중이며, 계약의 주체입니다.』
『따라서 리치 군주는 결정해야 합니다.』
『존재의 소멸 결과로 차원 공방전을 포기할지.』
『아니면 차원 공방전을 포기하고 소멸을 당할 건지.』
둘의 차이가 뭐냐고?
차원 공방전 포기를 자발적으로 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하느냐 정도의 차이?
다시 말해,
『개체명 리치 군주는 기사회생할 가망이 없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도 리치 군주의 상황에 포기했다는 뜻이었다.
『리치 군주의 소멸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약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치 군주의 소멸을 최대한 막겠습니다.』
『리치 군주가 보유한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하겠습니다.』
『특이 사항 발생.』
『리치 군주가 끝내 회상하지 못할 경우 강제로 차원 공방전 2차전이 종료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경우 중도 포기 위약금이 필요합니다.』
『해당 위약금을 제외한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해 리치 군주의 소멸을 최대한 저지하겠습니다.』
그렇게 리치 군주의 소멸이 잠시 중지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개체명 리치 군주가 보유한 채무 증명서가 존재합니다.』
『만기가 지난 채무를 모두 회수합니다.』
『개체명 그린스킨 엠페러에게 카르마 포인트를 즉시 회수합니다.』
파국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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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네요.
독자님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내가 제일 고생 많았지
189. 솔직히 내가 제일 고생 많았지
영지로 돌아온 직후, 우리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도대체 이 멸망의 세상에서 어디서 준비한 건지 꽃잎과 색종이 조각까지 뿌려대면서 대충 봤을 때는 모든 영지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어머?! 오빠! 난리라니요! 환영식! 어! 그리고 뭐라고 했지?”
“개선식.”
“아! 맞아! 개선! 그거요! 평소 같았어도 오빠가 나갔다 왔으면 다들 무사히 돌아온 것에 기뻐했을 텐데. 이번에는 다들 각자 카르마 포인트 얻느라고 오빠를 돕지 못했고, 오빠 혼자 영지를 나가게 했으니까 오죽하겠어요? 당장 저도! 엄청 미안하고, 막 오빠가 엄청 대단하고 그런데?”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진정하렴.”
퇴근한 주인을 맞이하는 작고 활발한 비글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방방 뛰는 유다연을 진정시킨 것은 소피아였다.
“아! 맞다! 오빠! 우리 파티한다면서요?!”
“응? 어. 그렇지.”
“오예! 파티! 파티! 저 그럼 다혜 언니한테 먼저 가 있을게요! 언니가 요리 엄청 만든다고 했다요! 난 언니가 만든 불고기! 불고기 잔뜩 만들어 달라고 할 거다요!”
‘했다요.’는 어느 나라 화법이야? 쟤 토종 한국인 아니야? 어디서 이상한 말을 배워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는 인파 사이에 난 길을 통해 [내성]의 커다란 철문 앞에 도착했다. 그대로 들어가기에는 뒤를 따라온 영지민들의 분위기에 서린 기대감이 강력해 등과 엉덩이가 찜질방에 누운 것처럼 뜨거운 착각마저 들었다.
“에휴. [노임]. 단상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