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14
“꺄아아아아아!!”
…
머리 위에서 [성벽]을 무너뜨릴 기세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후후후. 영주님. 손이라도 흔들어주시죠?”
소피아가 장난스레 건네는 말에 픽 하고 마른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문득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충동적으로 손을 들어 흔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
위에서 ‘찢었다!’, ‘개쩔었다!’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앳된 목소리의 주인들이 보나마나 익숙한 아이들일 테니, 말을 예쁘게 하라고 뭐라고 했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소피아. 아까 봤어? 네가 아끼는 강바다 옆에 그 여자가 있던데?”
“아. 그……. 이번에 합류한 각성자죠? 영주님이 받기 꺼려하셨다던? 음. 봤어요. 생각보다 괜찮긴 했지만, 우려하실 정도는 아니던 걸요?”
“그렇지. 하지만 그녀의 고유 능력은 제법 까다로워. 애초에 지구의 의지 중 하나가 그녀를 위해 맞춤으로 제작한 고유 능력이거든.”
“엥? 신의 편애를 받았다는 건가요?”
“그래. 심지어 종말을 준비하는 나보다 더한 편애를 받았지. 다른 지구의 의지는 내게 주는 편의가 ‘계약’에 위배될 것을 걱정해 꼬투리 하나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전했는데,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한 지구의 의지는 계약 따위 무시하고 일을 저질렀지.”
“그럼 안 되잖아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래. 사고를 치기 직전에 잡아서 지금은 의지 자체가 소멸한 것 같던데?”
“어휴. 쓰레기 일정 성분 비의 법칙은 진짜 초월자에도 적용되는 법칙인가 봐요.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별 거 없던데요? 그 여자?”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기대했던 경지는 최소 블루(Blue) 랭크였는데. 쯧.”
두려워했던 기사 여왕의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다. 다만 그래도 기사 여왕이니 기대했던 정도의 무력이 있었다. 그랬는데 아직 블루 랭크에도 도달하지 못 했다니.
“영주님!!”
“강바다 사제. 숙제는 다 했나요?”
[성벽] 위로 오르기 무섭게 내게 쪼르르 달려오던 귀여운 10살 강바다는 소피아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내 뒤로 숨었다.“바다야! 아이고 영주님! 소피아 성녀님!”
그런 강바다의 행동에 부모는 어쩔 줄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보이고 자세를 낮춰 작고 귀여운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숙제하기 싫어?”
“네. 영주님. 소피아 성녀님 좀 혼내주세요. 이러다가 바다는 머리가 깨지겠어요! 힘드러워요!”
“풉.”
어째 ‘힘드러워요’라는 말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걸 다 해야 양몰이 쉘터에 갈 수 있는데?”
“우웅? 숙제 다 하면 양몰이 쉘터에 갈 수 이써요?”
“그럼. 대신 숙제를 다 하고, 소피아 성녀에게 합격을 받아야겠지?”
“으으으으. 알았어요. 소피아 성녀님. [상급 치유] 하고, [턴 언데드], 그리고 [집중 치유]였죠?”
“어머. 강바다 사제. [다중 치유]는 왜 은근슬쩍 빼먹으시나요?”
“우웅?”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얼굴로 귀엽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강바다의 눈빛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귀여워서 그냥 넘어갈 법도 하지만,
“어림도 없어요.”
소피아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눈빛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걸 알자 볼을 한껏 부풀리고 있던 강바다는,
“알아써요. 에휴. 사는 게 힘드러워요.”
열 살 주제에 세상 다산 노인네 같은 말을 하더니 제 부모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쟤가 걔죠? 펠리타교 창설한 날 부모랑 같이 유토피아에 합류한 아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성문]을 나설 때부터 함께 한 류보브 이바노바가 커다란 방패를 등에 걸치며 물었다. 그녀는 지의사 중 러시아 출신으로 [방패 전사]라는 특이한 클래스를 보유한 각성자였다.
“맞아. [전문직원]이 영지에 들어오기 전에 신앙 스탯이 93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보고하게 만든 아이. 귀엽지?”
“확실히 귀엽네요. 소피아 언니한테 따박따박 할 말을 다 하는 것도 대단하고. 풉.”
“사제로서 재능도 엄청나더라고. 벌써 그린(Green) 랭크일걸? 뭐, 부모들이 딸을 애지중지하느라 카르마 포인트를 몰아주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하지.”
“마스터 랭크에 오르고 싶어서 양몰이 쉘터에 가려는 건가요?”
“아니.”
“그럼요?”
“그동안 부모가 희생했잖아. 카르마 포인트 왕창 벌어서 아빠, 엄마 랭크 올려준다던데?”
“…세상에. 효녀네요.”
“그렇지. 이런 세상에서 볼 거라고 상상도 못한 ‘효녀’가 다 있네.”
망한 세상에서는 효녀 따위가 나올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성벽] 위에도 무슨 벚꽃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다들 어디서 돗자리 같은 걸 구했는지 자리를 깔고 다과와 음료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다 영주님 덕분이죠. 마치 멸망 전으로 돌아간 것 같잖아요.”
“그래. 다행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성벽]을 내려가는 나와 일행의 뒤를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애초에 숨기지도 않았지만, 숨겼다고 해도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수준의 움직임이었다.
알고서도 모른 척하며 [내성]으로 이동하다가 [내성]의 정문을 앞에 두고서야 몸을 돌려,
“내게 볼 일이 있나?”
[성벽]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사람에게 물었다.“…저도 참가하고 싶습니다.”
기사 여왕, 다이애나 프린스가 앞뒤를 잘라먹은 그 특유의 화법으로 답했다.
“일단 너는 그걸 알아야 해. 나와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은 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예?”
“우리는 여기서 하루에 그린스킨 10만 마리와 죽네사네 하는 동안 너는 파괴(破壞) 덕분에 꿀을 빨았잖아. 그리고 전에 올리비아에게 그러더라? 우리 영지의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 블루 랭크를 달성한 게 이상하다고?”
“그건.”
“예전에 파괴를 구해달라고 할 때도 느꼈는데 말이지. 넌 엄청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있더라? 네가 경험한 것이 진리고 그것을 벗어나면 불합리하다고 말하지. 저번 올리비아와 대화로 좀 깨닫는 게 있을 줄 알았더니. 여전하네.”
“…….”
“지금도 그래. 당연히 이런 문제는 내가 아니라, [행정청]이나 다른 각성자에게 물어서 양몰이 쉘터에 참여하는 적법한 절차를 찾았어야지. 나한테 직접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면, 내가 ‘아, 그래. 끼워줄게.’ 이럴 것 같았나 봐?”
“…….”
억울한 감정이 새하얀 다이애나의 얼굴에 드러난다.
“물론 그런 절차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어.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이지. 왜?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나와 함께 했고, [영지]가 생성되기 전부터 함께 그린스킨을 때려잡으면서 영지의 기틀을 쌓은 공신이니까. 그렇지만 너는? 너는 내게 어떻지? 너와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다른 각성자와 무슨 차이가 있어서 너의 편의를 내가 봐줘야 하는 거야?”
“…….”
“가 봐. 네가 있던 쉘터에서는 특별 대우를 받았을지 몰라도. 여기서 너는 일반 영지민 아니, 신앙 스탯이 낮은 너는 일반 영지민 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존재일 뿐이니까.”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던 다이애나에게 그렇게 경고의 말을 던져놓고 [내성]으로 들어갔다.
“영주님. 보셨어요? 아까 그 여자 우는 것 같던데?”
울거나 말거나. 내 여자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친위대조차 해제하지 않고 끌고다니는 여자 따위, 진짜 내 관심을 조금도 끌지 못한다.
“저러다가 양몰이 쉘터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 스탯을 맞춰오면 어쩌려고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그런데 될 리가 있겠어? 소피아는 더 잘 앓잖아? 신앙 스탯 90은 생각보다 어려운 거.”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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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이오업”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습니다.
– 이벤트 명 : 이오업 프로젝트 선정작 공개
– 이벤트 작품 :
– 이벤트 일정 : 2023-1-10 (화) ~ 2023-1-17 (화) (*7일간 진행)
– 이벤트 방식 : 댓글 작성한 선착순 100명에게 딱지 1장 제공
이렇다고 합니다.
소소하지만 딱지 챙겨가셔요. 다음주 화요일부터네요!
득시무태 시불재래(得時舞怠 時不再來)
217. 득시무태 시불재래(得時舞怠 時不再來)
다이애나는 일방적인 거절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이애나님.”
그런 그녀의 앞에 이전 쉘터부터 따르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다이애나를 보면서,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이요한 회장에게 해코지라도 당하셨습니까?”
“이요한 그자가?! 감히!”
…
각자 말을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다이애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전 영주님이 [성벽] 바깥에서 최고위 언데드를 잡는 걸 보지 못 했나?”
“그랬습니까? 이요한 회장이 직접 말입니까?”
“뭐, 보나마나 저번처럼 휘하가 우르르 달려들어 잡았겠지요.”
“그는 네이비(Navy) 랭크다.”
“네?”
“에?”
“하하하하. 다이애나님 농담이 느셨습니다. 표정 연기까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요. 하하하. 그래도 재미 있었습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렇지?”
“농담? 너희가 기억하는 내가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담았던가? 영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아라. 그는 홀로, 화살 한 방으로 최고위 언데드인 데스나이트 로드와 데스 나이트 수십을 죽였다. 분명히 말하는데, 화살 한 발이었다.”
그제야 친위대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지고 억지로 웃던 얼굴들이 하나 같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오전에 영지민들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어디들 있었나?”
“수련을…….”
“정보 수집을……!”
둘이 나오는 말이 다르다. 같은 [집]에 머물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반은 수련하고 반은 영지에서 정보를 모았던 걸까?
“그런데 수련을 했다고 하기에는 숨소리가 지나치게 안정적인데? 그리고 땀도 흘리지 않은 것 같고.”
“그, 그건……!”
“정보를 모았다? 그런데 영주가 네이비 랭크인 걸 모른다고?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정보인데?”
“그, 그러니까……!”
이들의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들, 그러니까 멘체스터에 있을 때부터 자신의 친위대를 자처하던 이들의 민낯이 그대로 보였다.
‘이 정도 사람들이었던가? 고작?’
사람은 위기 혹은 어려울 때 그 밑바닥이 보인다고 했던가? 뒤에 고작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붙일 정도로 다이애나는 친위대로 지정한 이들에게 실망했다.
“저……. 다이애나님. 그런데 정말인가요? 이요한 회장이 정말……?”
“네이비 랭크다.”
“아…….”
그리고 그 질문을 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이들의 눈에 실망과 조급함이 번지는 게 보였다.
‘그렇구나. 고작 이 정도였던 이들이었구나.’
이들이 실망하고 조급해 하는 이유는 다이애나 프린스의 고유 능력 때문이다. [친위대 지정]이라는 다이애나의 고유 능력에 따라 친위대로 등록된 이들은 다이애나의 경지에 따라 추가적으로 스탯이 상승한다.
물론 다이애나가 마냥 퍼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상호 동의가 필요한 만큼 친위대로 구성된 이들의 강함에 따라 다이애나가 획득하는 카르마 포인트의 양이 증가한다.
그렇기에 친위대를 구성할 때 다이애나도 여러 자격과 재능을 따져서 친위대를 선정했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친위대로 선정한 앙리에게 배신을 당했고, 유토피아에 이주한 이후 제대로 확인한 친위대의 성정을 보면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별로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게 된 셈이다.
“친위대를 해제해주지.”
“네?”
“아니, 친위대를 해체하겠다!”
“아, 아니. 다이애나님.”
“왜 그러지? 그걸 바란 것 아니었나? 다들 그걸 바라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물론 이젠 상관 없다. 난 유토피아라는 이 영지에서 정착할 거니까. 그러려면 이 땅의 주인인 영주님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아야겠지.”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지. 네가 영주님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땅에서 친위대라는 사병을 거느리고 다니는 여자를 네 편이라고 생각하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