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21
‘뭐지? 갑자기?’
깊은 인연을 맺지 않은 존재들이다. 개개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을 만큼 나와 저들 사이에 관계는 안면이 있는 정도 수준이다.
빠르게 나타났던 수천만 개의 화면이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사라진다.
그리고,
“여. 오랜만인가?”
어두운 하늘에, 아니 하늘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칠흑 같은 이 공간 상부에서 ‘육성’이 들려왔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은 아마도 내 의식 혹은 무의식의 어디쯤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육성이 들린다?
“그렇게 경계할 거 없어. 뭐, 어쩔 수 없이 경계가 되겠지만, 이번에도 선물을 주려고 나타난 거니까.”
쾌활함을 넘어 조금은 방정맞다는 느낌이 드는 목소리는 정말 선물을 주려는 건지 호의적인 감정이 가득했다.
“방정맞다니……. 너 눈치가 제법 빠르구나? 동료들이 그런 소리를 자주하긴 하는데.”
그러면서 다다다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들을 막 쏟아내는데. 내가 듣기에는 딱히 억울하다고 느낄 만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뭐라고 한다는 그 동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할까?
“야! 아무리 그래도 선물을 내가 주는 건데! 내 편을 들어줘야지!”
‘음. 죄송……? 근데 내가 말로 했던가?’
지금까지 한 번도 육성으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왜 말도 안 하고 있었을까? 왜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지?
“원래 그래. 초인이 되는 과정은 그런 거야.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기 때문이지. 그건 이제 됐어. 내가 방문한 순간 너는 필멸자가 가질 수 없는 크기의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아, 선물은 이게 아니야. 이건 일종의 사은품 같은 거지.”
“잠재 권능을 선택하는 중이지? 너는 특별한 존재니까 다른 초인과 다르게 추가로 한 가지 더 잠재 권능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가질 수 있다?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는 건가?
“당연하지. 아무리 치열한 삶을 살고 초인에 오른다고 해도 ‘그릇’을 초과해서 담을 수는 없잖아? 그릇이 뭔지 궁금하다고?”
아직 그런 말 아니, 생각은 안 했는데.
“너희가 말하는 특수 스탯. 그것이 그릇의 크기를 정하는 거지. 넌 다른 필멸자나 초인과 달리 특수 스탯이 세 종류나 되니까. 다른 초인보다 잠재 권능을 추가로 개화하는 게 가능해.”
“물론 나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걸 눌려줄 순 없어. 내가 능력이 없어서? 아니. 잠재 권능은 내가 열 개라도 줄 수 있지. 하지만 그럼 너 죽어.”
‘죽어’라는 단어가 이렇게 섬뜩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나? 그린스킨 황족이 나타나 [성벽]이 무너졌을 때조차 이 정도의 섬뜩함은 아니었다.
“뭐,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네 첫 번째 잠재 권능을 온전한 권능으로 올려줄게.”
‘음?’
내 첫 번째 잠재 권능? 첫 번째고 두 번째고 아직 잠재 권능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건 문제도 아니지.”
『첫 번째 잠재 권능 책정 중.』
『보유 키워드. [신앙의 존재]. [함께하는 신]. [재앙의 희망]. [기도 청취].』
『잠재 권능 [위신(僞神)].』
“자, 이제 이걸 권능으로 진화시켜줄게.”
따아악―!!
핑거 스냅의 소리가 어느새 끝이 보이지 않게 넓어진 공간을 가로지른다.
『특이 사항 발생. 존귀한 존재의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의 노고에 감사를 보냅니다.』
『잠재 권능 [위신(僞神)]이 권능 [생신(生神)]으로 진화합니다.』
권능으로 신? 내가 생각하는 그 신?
“아니, 아니지. 얘가, 얘가 김치국을 드럼통으로 마시고 있네?”
아니야? 한자나 뜻을 그런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이라는 건 훨씬 대단하고 고차원적인 존재야. 권능 하나 가지고 신이 될 수 없지.”
그럼 이건 뭐야?
“그건 말이지……. 잠깐, 너 점점 말이 짧아진다?”
제가 딱히 말을 하는 건 아닌데요? 그리고 이건 혼잣말 같은 느낌인데? 혼자 생각하면서 혼자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랄까?
“음. 일단은 넘어가줄게. 여기서 말하는 생신은 미역국을 먹는 그런 생신이 아니야.”
설마……. 에이. 설마. 저걸 농담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우리 설기조차 안 웃을 맨트를?
“흠흠. 갑자기 통신장애가 발생했네. 어디까지 했더라?”
통신장애? 우리가 지금 서로 스마트폰으로 화상통화라도 하는 건가?
“그래. 저 생신은 말이지.”
무시하는구나.
“자신을 믿는 이들의 염원을 이용해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이라고 보면 돼. 어렵지 않지?”
원래 권능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 아니었나? 내가 얼핏 듣기론 그랬는데?
“지금까지 너를 신으로 믿었던 이들의 염원, 기도, 감사 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기적을 일으키는 거지. 마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고! 이것과 이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해!”
“에휴. 말해서 뭐하냐. 직접 해봐야 알지. 다른 잠재 권능도 생길 테니, 직접 해보면 알거야. 이거 완전 사기라는 걸.”
“일단 깨어나면 해봐. 권능을 다루는 법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숨을 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 저절로 숨을 쉬는 것처럼.”
“그럼 선물도 줬으니 나는 가봐야겠다.”
‘저기……. 도대체 어떤 신이신지 힌트라도 좀 주시고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대로 입을 싹 닦기에는 받은 게 많아서요.’
“나? 내 소개는 저번에 하지 않았나? 스스로 신위에 오른 분을 곁에서 모시는 천덕꾸러기야. 그리고 너는 이미 값을 치렀어. 피난민 수천만을 받아줬잖아. 그럼 마지막까지 힘내라!”
그리고 거짓말처럼 천덕꾸러기라고 본인을 소개한 존재는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걸 어떻게 아냐고? 그냥 안다. 초인으로 벽을 넘는 존재의 의식에 개입할 수 있다니.
‘뭔가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네.’
『두 번째 잠재 권능 책정 중.』
『보유 키워드. [종말의 대적자]. [악인의 천적]. [심연 추방장].』
『잠재 권능 [파마(破魔)].』
거대하고 아득한 존재감이 사라지자 천덕꾸리기라는 그의 말처럼 의식이 한없이 확장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기겁하는 사이 두 번째 잠재 권능이 책정되었다.
『세 번째 잠재 권능 책정 중.』
『보유 키워드. [방랑자의 안식처]. [희망의 빛]. [피난민의 보금자리]. [안정]. [평온]. [화평].』
『잠재 권능 [평정(平靜)].』
마치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잠재 권능이라고 하는 신기한 개념이 빠르게 완료되었다.
『축하합니다.』
축하의 말을 끝으로 어둡던 시야가 급격히 멀어지고, 천천히 빛이 들어온다.
‘깨어나는 거구나.’
그리고 내 상태를 나는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했다. 내가 벽을 온전히 넘고 깨어나 바이올렛(Violet) 랭크에 완벽하게 들어선 상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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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귀한 발걸음으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다 같이 월요일 힘냅시다 ㅠㅠ
바이올렛(Violet).
224. 바이올렛(Violet).
물 아래로 잠수 했다가 물 위로 올라올 때의 느낌처럼 어둑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머리를 누르고 있던 게 사라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주군!!”
“대장!”
“주인님!”
나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러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그리고 곧 지금 상황이라면 가장 먼저 달려들어서 온갖 호들갑을 떨었을 소피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 보다 나를 걱정하는, 어쩌면 지구인이 모두 사망해도 내가 위험하다면 옆을 비우지 않을 존재들이 엘라와 소피아다. 그런데 그런 둘이 보이지 않으니,
“다들 지키느라 수고했어. 그런데……. 소피아나 엘라는?”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건 예감 같은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 소피아님은 엘리아나님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즈마제비티의 설명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리라.
“무슨 일이 있……?”
무슨 일이냐고, 다친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강렬한 기운이.
“반려!!”
“영주니이임!”
엘라와 소피아다. 그 둘은 지금 막 일어난 내 품으로 뛰어들 듯이 달려들었다.
“둘이 어디 갔던……?”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엘라를 안아줄 때의 느낌이 아니다. 어딘가 허전한……?
“엘라?!!! 설마?!”
“네. 반려.”
“출산을 한 거야?! 내가 그거 하는 동안에?”
“네.”
돌겠다. 아니, 둥둥이들―내가 엘라 옆에만 가면 배를 차대서 둥둥이라는 태명을 지었다―은 예정일보다 3주는 더 빨리 나왔다.
“그럼 둥둥이들은?”
“저기 오고 있네요.”
엘라가 가리킨 곳에는 이제는 자주 봐서 너무나 익숙한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 새하얀 강보로 싸맨 두 아이를 양팔에 품고 날아오고 있었다. 평소 ‘나 엘라임인데?!’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자존심이 높았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심하며 오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야아아…….”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보며 한껏 짜증을 담아 소리를 지르려던 엘라임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난 엘라임이 땅에 내려서자마자 공간을 접는 것처럼 전력으로 달려가 강보를 받아들었다.
눈을 감고 꼬물거리는 쭈굴쭈굴한 아이는 정말이지 틀로 찍은 것처럼 똑같이 생겼다. 쌍둥이다.
나는 바이올렛(Violet) 랭크에 올랐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빠르게 올라갔을 정도로 엄청난!
하지만 그런 건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내 품에 안겨 온기를 내뿜는 이 작고 귀엽고 연약한 생명체가 단어 하나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 아! 그, 그런데 이렇게 나와도 돼? 지금 태어났는데?”
“그게 왜요?”
나를 타박하거나, 내 의견에 반대하기 위한―엘라가 그럴 리가 없지만― 반문이 아니라,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오는 반문이었다.
마치 오지에 사는 원시 부족에게 고기를 날 것 그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 때, ‘왜요?’라고 되묻는 것처럼.
“아이는 감염도 조심해야……? 잠깐만. 엘라. 이렇게 다녀도 돼?”
“…왜요? 반려? 혹시 제가 추해요?”
“응?”
“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랭크 상승으로 평소에 느끼던 것과 다른 감각에 약간 혼란스러운데, 갑자기 출산을 했다면서 쌍둥이가 내 품에 안겨 있으니 혼란은 더 커졌다.
“어휴. 제가 설명할게요.”
보다 못한 소피아가 나서서 이곳 인간들―지구인들―은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는 면역력과 감염 등을 이유로 특별히 격리해서 관리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산모 역시도 아이를 낳다가 생각보다 많이 죽는다는 것도.
“그게 왜?”
하지만 엘라는 여전히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려. 우리 아이 주변을 주의 깊게 보시겠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내게 고개를 돌리고는 저렇게 부탁하는 게 아닌가. 사실 난 아까부터 아이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뭘 보라는 건……?
“음? 왜 정령…들이?”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잠이 든 아이들 주변에 작고 연약한 정령들이 빼곡하게 감싸고 있었다. 하급 정령보다 더 작은 정령들이.
“하이 엘프는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요. 그렇다는 건 정령들의 관심과 사랑도 당연히 따라오는 거고요.”
“그렇지. 그렇게 알고 있어.”
“그렇지만 막 태어난 아이에게 중급 이상의 정령이 붙는다면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겠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걸 알기에 하급 정령들도 다가오지 않는 거랍니다. 아직은요. 대신 아직 어린, 성숙하지 않은 정령들이 아이 곁에서 같이 숨을 쉬는 거예요.”
그녀의 말은 결국, 면역력 이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긴 당장에도 엘라임에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내 품에 안겨 있음에도 엘라임에게서 이어진 정화의 기운이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 몸은 괜찮은 거야? 엘라?”
“…저요?”
엘라는 잠시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떼구르르 굴리더니,
“힘든 것 같아요.”
내게 기대며 그렇게 속삭인다.
“흐음.”
즈마제비티가 눈치를 주지 않아도 나는 엘라가 멀쩡하다는 걸 알 것 같았다. 연기도 어색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럴 때는 모른 척해주는 게 매너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어깨에 기댄 엘라의 머리에 나도 머리를 기울여 맞대고 조심스럽게 비벼주면서 그녀의 노고를 치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