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32
“…혹시 내가 생각만 한 게 아니라, 말을 꺼냈던가?”
“아닙니다. 주인님. 다만 주인님께서는 생각하시는 게 얼굴에 드러나시는 스타일이신 것 같네요. 눈동자가 제 가슴에 고정된 것도 힌트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미안.”
“아닙니다. 주인님.”
어딘가 이상하다. 이 여자. 뭔가 결여된 것 같기도 하고…….
“주인님.”
“응?”
“주인님.”
“…응?”
“주인님께서는 주인님이실까요?”
어딘가 멍하면서도 빛을 잃은 것 같은 눈동자. 그리고 ‘주인님’을 몇 번이나 강조하는 말투. 마지막으로 목에 두르고 있는 초커.
“내가 너의 주인이 되길 원해?”
“네…….”
“그렇다면 되어줄게. 주인.”
내가 주인이 되어주겠다고 확언을 하기 전까지 무채색이었던 흑요수 주변이,
“…감사합니다.”
그녀의 미소와 함께 총천연색으로 칠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로파이처럼 부족민을 부탁하거나, 엘리아나 때처럼 [엘븐나이츠] 혹은 어린 엘프를 돌봐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인이 정해져서 기쁘다는 기색만이 역력하다.
“잘 부탁해요. 주인님.”
그 달큰하고 어딘가 배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아련하게 들리면서 시야가 바뀌고 난 [성소]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방금 따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낡고 헤진 갑옷을 입은 흑요수가 서 있었다.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흑요수는 나를 발견하고는,
“주인님.”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내 옆에 섰다.
그 과정에서 놀란 건 5m 넘게 떨어져 있던 흑요수가 거리를 바로 옆으로 좁히는 게 찰나였다는 것과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는 거다.
“가자. 다른 가신도 소개싴줄게.”
“네네. 전 주인님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더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흑요수와 함께 나온 영지 분위기는 전에 없을 정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영지 전체가 들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흑요수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 커다랗게 커지고 고양이 꼬리가 맹렬히 좌우로 흔들리고,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흑요수의 고개 역시 좌우로 빠르게 돌아다녔다.
“주인님. 주인님.”
“응?”
“이곳에 주인님의 집이 있는 건가요?”
“음? 아, 이 땅이 내 땅이야.”
“그렇……? 이 땅이요? 이 넓은 곳이 전부요?”
“시스템에 의하면 이곳뿐만 아니라, [부속 영지]도 내 땅이지만. 아무튼 그건 차차 알아가고, 그래서? 왜?”
“이곳은……. 행복한 땅이네요. 포근포근한 땅이에요. 공기가 푹신푹신하고, 마력이 보글보글해요.”
이게 뭔 소리야?
“그래서 흑요수는 행복합니다. 주인님.”
행복하다고 말하는 흑요수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얼핏 연한 핑크빛 안광이 스쳐지나가는 걸 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주인님. 오늘 무슨 날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이, 엘프가, 이종족이 모두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할 것 같습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특이했지만, 흑요수의 예상은 정확했다.
“맞아. 오늘 우리 국가에서는 지상 최대의 추첨 쇼가 열릴 예정이거든.”
“지상 최대? 추첨 쇼? 복권 같은 건가요?”
오늘은 이전에 신앙 스탯이 기준치 이하로 낮은 이들을 쉘터에 몰아놓고 관찰 카메라 같은 방송을 한 것을 더 발전시켜서 [주도]와 [부속 영지] 전체에 송출되는 방송이 예정되어 있다. 추첨 방송이다.
“복권이라. 비슷하다고 해도 되려나?”
“네?”
갑자기 언데드가 부족해서 자격심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복군주의 인장에 있는 군주 에고에게 묻기로 최소 15일은 필요할 거라는 말에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차원의 문]의 존재를 감지할 때 보았던 지구. [텔레포트 게이트]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절반은 불길하고 탁한 어둠에 뒤덮여 있던 그것을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다시 말해 [텔레포트 게이트]로 저번에 미국까지 연결한 경로 반대편으로 돌아 이동하면 [부속 영지]를 만들겠다는 거다.
“그래서 [비공정]을 특별히 커다란 걸 준비했는데. 자리가 많이 남아. 엄청 남더라고.”
[어비스 존] 해제를 위해서 만든 [비공정]이 그린 랭크 [비공정 조병창]에서 제작한 베히모스 급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작한 [비공정]은 두 단계 위인 오리온급이다.레비아탄 ― 베히모스 ― 디스트로이어 ― 오리온 ― 타이탄
단계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성능과 크기가 1.5배 이상 상승하는 만큼, 롯데타워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 같았던 베히모스 급 보다 오리온 급 [비공정]은 5배 이상 크고 넓으며 빠르고 강력하다.
성벽 한쪽에 거인족의 창이라고 되는 것처럼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서 있는 것이 바로 오리온 급 [비공정 ― 허큘리스]다.
전장 1,725m. 무게 3,752,500t.
선미에 달린 주포를 전력으로 발동시키면 핵정도는 우스울 정도의 화력을 보여준다.
그럼 왜 이걸로 언데드를 사냥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격추시키지 않았냐고?
이 주포라는 놈이 빌어먹을 정도로 효율이 지랄 맞기 때문이다. [마정석]을 말도 덤프 트럭 200대로 때려 붓는 수준으로 넣어야 1분 동안 발동할 수 있다.
그만큼 강력하다는 거고, 그래서 더 지구에서는 쓸 수 없다. 까딱하면 지구 자체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아무튼 허큘리스를 타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연결하고 [부속 영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지의사에게 말한 순간,
“그렇다면 그것은!!”
“80일간의 세계일주!!”
유다연과 릴리 로즈가 저렇게 외치면서 순식간에 세계 일주 계획이 되었고,
“그렇다면 이것은 그동안 바빠서 미룬 신혼여행?!”
“오오오오! 유다연! 천잰데?!”
어느새 신혼여행 계획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아까도 말했듯이 허큘리스는 엄청 크고 무거운 [비공정]이다. 당연히 [비공정]을 움직이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적지 않고, 자리는 엄청 많이 남는다.
“그러면 이참에 탑승권 추첨이라도 할까요?”
유다연이 아무 생각 없이 ‘추첨’이라는 말을 꺼냈고,
“괜찮군요. 추첨권은 저렴하게 카르마 포인트 1,000포인트 정도에 구매하게 하죠. 그러면 약 2천억 포인트 정도가 모이겠군요. [부속 영지]까지 대상으로 하게 되면 말입니다.”
올리비아가 빠르게 살을 붙였다. 단순히 공짜로 탑승권을 주는 게 아니라, 복권처럼 돈을 내고 사는 것으로.
“그래야 탑승권을 귀하게 여길 거고, 예산 확보도 되겠죠? [비공정]은 단순히 움직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이동하는 동안 먹을 음식과 물, 그리고 여러 활동을 위한 편의 시설에 사용하고 남으면 보스께서 영지에 사용하실 수 있겠죠?”
그걸로 올리비아는 빠르게 세계 일주 동안 소비할 카르마 포인트를 충당하고, 추가로 내가 영지 발전에 사용할 카르마 포인트까지 만들어냈다.
“아니다. 보스. 우리 왕국 [주도]에는 가족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차라리 탑승권을 2인 전용으로 하고 금액을 좀 올려 받아야겠어요. 미성년자는 모두 태우고요.”
“미성년자를 모두?”
“네. [행정청]에 알아봐야 정확한 숫자가 나오겠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보스께서도 아시다시피 종말에 아이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니까요.”
이렇게 지상 최대 추첨 쇼가 즉흥적으로 준비되었고, 오늘이 그 추첨을 하는 날이었다.
“아아. 펠리타 왕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상 최대 추첨 쇼, [비공정] 탑승권 추첨 사회를 맡은 유다연.”
“릴리 로즈입니다.”
그리고 [주도]와 [부속 영지] 어디에서 볼 수 있는 홀로그램 영상이 하늘에 나타나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참고로 저, 유다연은 국왕 폐하의 아내 중 한 명이고요. 아내들 중에 섹시를 맡고 있습니다.”
“릴리는 청순가련을 맡고 있습니다.
아, 방송에서 지랄 금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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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주. 인. 님.
235. 주. 인. 님.
유다연과 릴리 로즈의 헛소리로 시작했지만, 탑승권 추첨 방송은 엄청난 인기였다. 탑승권을 뽑을 때마다 엄청난 환호성과 누군가의 째지는 비명과 같은 환호가 나왔다.
“이번에는 왕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 저, 유다연이가 뽑겠습니다.”
가끔 저런 이상한 주접을 내뱉었지만, 방송을 보는 왕국민들은 그걸 굳이 지적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유다연의 주접을 엄청 좋아했다.
“어디 보자. 오! 이번엔 숫자가 기네요.”
유다연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이번에 뽑은 숫자는 제법 길었다. 무려 여덟 자리나 되었으니까. 천만 단위였다는 거다.
“75,477,381번!! 75,477,381!”
“꺄아아아! 나야! 나! 저예요!”
그리고 그 긴 번호의 주인은 [아스가르드]에서 온 피난민 중 녹투오스의 인정을 받아 [주도]에 머물 수 있게 된 수인족 중, 토끼 수인 토인족(兎人族) 여자였다. 특기가 약학과 마법이라고 했던가?
“예쓰으으으!!!”
[연금술사]가 있는 우리 영지에서 유일하게 [잡화점]을 열어 여러 포션 같은 걸 만들어 팔고 있어서 제법 영지에서 알려진 토인족이었다.뽑아야 할 인원이 250만 명이었기에 번호를 뽑고 말하는 건 빠르게 지나갔다. 당첨 번호와 대조하고 탑승권을 부여하는 건 오히려 [행정청]의 [직원]과 [전문직원]이 고생했다.
방송이기에 [주도]에서만 당첨자가 나오는 게 아니라, [부속 영지]에서도 적지 않은 당첨자가 나왔으니까.
어떻게 보면 유다연과 릴리 로즈의 주접에 특등석이 없는 탑승권 250만 장의 추첨은 지루할 수도 있는데, 방송을 보는 [주도]의 왕국민 뿐만 아니라, [부속 영지]의 피난민들도 하나 같이 쉬지 않고 즐거워했다.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조금 복합적인 감정에서 오는 흥겨움이었다.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니.”
당장 몇 년 전,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질 때만 하더라도 세계 일주가 뭔가 동네 일주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그런데 이걸 뽑기를 하고 있다니. 지금까지 악착 같이 살아남은 나 자신을 칭찬해.”
“그것도 비행기 따위를 타고 슝 지나가는 게 아니라, [비공정]을 타고 여유롭게 가는 거잖아! 젠장! 잘 버텼다. 과거의 나!”
“미친놈들.”
…
멀리서 마음 가는 대로 떠드는 목소리처럼 이것은 단순히 멀리 여행을 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렇기에 유다연과 릴리 로즈가 하는 저 방송이 같은 반복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250만을 손으로 하나씩 뽑아서 발표하려면 1분에 한 장씩 뽑는다고 해도 4만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니 그럴 수는 없다.
“자,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광고가 끝나고 저와 릴리가 쉬는 동안 500연뽑으로 한 시간 진행할게요.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 당첨자는 [주도]와 [부속 영지]의 [행정청] 앞에 게시할게요.”
자그마치 11시간의 방송이 끝나고 동반 1인을 대동하고 [비공정]에 탑승할 수 있는 250만 개의 탑승권 추첨이 끝날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방송을 지켜본 흑요수는,
“주인님……. 저 같은 것이 이 축복 받은 곳에서……. 정말로 이곳에서 주인님과 지내도 될까요?”
오히려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그러고 흑요수는 보니 왜 묘인족 여왕인데 다른 묘인족을 불러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은 걸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흑요수를 안심시켜야 했다.
“당연하지. 주인의 땅에서 주인을 섬기는 게 당연하잖아?”
“아아!!”
정답이었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주변을 무채색으로 물들이던 흑요수의 주변에 생기가 가득해졌다.
“반려?”
그리고 내게는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치트키처럼 상담해주는 엘라가 있었다.
“여기 새로 합류한 흑요수. 전에 [성소]에서 한 번 들어 봤지?”
“아. 묘인족(猫人族)?”
“그래. 맞아.”
“환영해요. 저는 반려의 첫 번째 부인 엘리아나 리라고해요.”
“아, 안녕하세요!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그리고 그런 흑요수를 빤히 바라보던 엘라는,
“음. 반려. 제가 잠시 흑요수와 대화를 나눠도 될까요?”
역시나 이번에도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자 엘라가 거의 잡아 끌다시피 해서 흑요수를 데리고 사라졌다.
“아빠아!”
“아빠!!”
엘라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잔뜩 신이 나서 달려드는 딸들을 안아주기 무섭게,
“아빠아! 우리 논노 가는 거예요?”
“아빠! 부우웅. 타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