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50
“…엘라. 엘프 세상에서 하이 엘프면 여왕의 포지션 아니야?”
과하게 기뻐하는 엘라에게 그렇게 대꾸하자, 맞는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내부대신]이 보였다.
“그렇지만 여왕이지 왕비는 아니잖아요? 반려의 반려도 아니고?”
이게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신이 난 엘라를 보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래서 몇 명이나 필요할 것 같아? [엠페러] 등급?”
[내부대신]에게 질문을 돌렸다.“[심연]에서 나온 것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영지]에 한 명의 [엠페러]를 파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각적인 대처를 위해서 연금술사 계열보다 기사나 마법사가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휘하 [영지] 196개에 파견할 [엠페러] 196명과 [주도] 방위에 고용할 [엠페러] 200명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그럼 넉넉히 따지자면……. [엠페러]가 400명?”
“네.”
와, 돌겠네. 호기롭게 [내부대신] 앞에서 ‘얼마나 필요해?’라고 물었는데,
“하하하하.”
“…송구합니다.”
자신감을 물씬 풍기던 몇 분 전의 내가 엄청 부끄럽다. 왜 내가 이렇게 후회하고 [내부대신]이 송구해 하냐고?
[그랜드 마스터 기사]를 [엠페러] 등급인 [나이트 엠페러]로 승급하는데 [영단]이나 [스킬북]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건 오직 카르마 포인트 2천억.200,000,000,000.
400명을 [엠페러]로 승급시키려면? 80조. 80조가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아까 말한 [그랜드 마스터] 등급의 전력은? 그 5배 그대로고?”
“네.”
“필요한 포인트가 그럼 얼마야?”
“81조 4천억입니다. 폐하.”
“와아.”
장모님. 어비스 랭크는 당분간 못 오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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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253.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소, 송구합니다. 폐하.”
“아니야. [내부대신]이 고의로 그러는 게 아니잖아? 설마? 고의였어?”
“아뇨! 아닙니다아!”
“알아. 농담한 거야. 어쩌겠냐.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진행시켜.”
“네!”
[내부대신]으로 승급한 전 [행정청장]과 대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정상이다. 왜 이런 대화가 오갔냐?“미친. 고용하는 비용만 90조? 역시 고정 지출 중에 가장 무서운 게 인건비라더니.”
“반려……. 괜찮아요?”
“응. 괜찮아. 한때는 겁도 없이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이제는 알지. 나란 남자. 태생이 돈이 모일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안 괜찮은 것 같은데…….”
“후우.”
“반려.”
“응?”
“가슴 만질래요?”
“어? 갑자기?”
“자. 여기.”
“음. 음. 음!”
너무 뜬금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에 놀라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엘라라는 것에 더 놀라고, 무엇보다 가슴에 올려진 손에서 느껴지는 탄력적이고 보드랍고 폭신한 감각에 다시 한번 더 놀란다.
‘오.’
그래. 카르마 포인트는 또 들어올 거다. 어차피 다 내게 도움이 되는 거고, 내 안전을 위해 과하게 준비한 전투 병력과 일상의 편안함을 위해서 사용되는 카르마 포인트.
‘100조가 아닌 게 어디야? 나쁘지 않아.’
다시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다. 아직도 내게는 460조 가량의 카르마 포인트가 남아 있고, 이 정도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말 무엇이든 말이다.
“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는 사이 엘라는 엄청 미세하게 움직이며 내게 몸을 기대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
“으응? 엘라?”
“사랑해요. 반려.”
엘라는 내 가슴에 등을 기대고 나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자세가 되었다.
그쯤 되니까,
‘이걸 고민해서 뭐해? 어차피 아직 닥치지도 않은 상황인데.’
왜 이걸 고민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남은 카르마 포인트가 460조가 넘는다. 뒤에 천억 단위는 계산조차 하지 않았다.
‘자꾸 조조 하니까 천억이 우습게 보였나? 이천억 카르마 포인트면 바이올렛에 오르는 벽을 넘을 수 있는 양인데?’
“음.”
특별한 목적 없이 부유하듯이 생각을 엮어가다 결론은 결국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결론은 결국,
‘어휴. 이 좀생이 같은 놈.’
아직도 1, 2 카르마 포인트에 벌벌 떨던 레드(Red) 랭크 때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심함과 창피함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고,
“으읏♥”
그것은 언제나 조신하고 현숙한 모습을 보이던 엘라의 입에서 야릇한 비음이 흘러나오게 했다.
“반려~♥”
그리고 출산 이후 눈에 보일 정도로 늘어난 엘라의 성욕에 기름을 붓는 발정 스위치를 올려버렸다.
“음. 역시 아이는 형제자매가 많은 게 좋겠지?”
“네에~♡”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볼과 흐느적거리듯이 풀린 눈으로 대답하는 엘라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곧장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방으로 향했다.
밖은 지금 [심연]에서 몰려온 존재들과 전쟁 중인데 아침부터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알 게 뭐냐? 심연에서 나온 고블린 따위.’
그날.
카르마 포인트 90조를 넘게 사용해서 생겼던 불안감 따위는 반려인 엘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만으로 날아갔다.
‘역시 가슴이 미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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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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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의 『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왜 뜬금없는 시의 등장이냐고 묻는다면, 이것은 ‘이름’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이름이라는 게 무엇인가. 존재의 가치를 세상에 ‘고정’하는 것이 이름에서 출발한다.
이게 무슨 개가 똥을 먹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라.
누군가에게 이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백 명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그 아이들은 이름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조건을 더하자.
그 아이들을 부를 때, ‘야’, ‘거기’, ‘너’ 같은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하며 자랐고,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면?
인간으로서 혹은 지성체로서 나와 같이 자란 동년배와 다름을 인식하는 범주가 엄청 좁을 뿐만 아니라, 이름이 없이 살았으니 세상에 자신을 소개할 수도 없다.
지성체에게 인식되고, 인정 받으며, 동시에 세계에 그 존재 가치를 고정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그리고 [심연]에서 비롯된 존재들은 본래 이름이 없다.
[심연]이라는 것은 차원에서 소멸해야만 하는 악의와 쓰레기 같은 기운이 모인 것이다. 그러니까 [심연]이라는 존재 자체가 쓰레기처리장 같은 곳이다.그렇기에 차원 세계 전체에서 ‘버려진’ [심연]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당연하게도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심연의 생명이라고 통칭하여 불리거나 어비스 고블린처럼 종족 자체로 뭉뚱그려 불린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것이다. 리치 군주는?
리치 군주는 자신을 리치 군주라고 불렀다. 또한, 마찬가지로 [심연]에서 태어난 언데드 데이몬과 오네로 역시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리치 군주 휘하의 수억의 언데드 중, 이름을 가진 존재는 고작 둘뿐이었다는 것을.
[심연]에서 이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할 정도라면 강자여야 한다. 그것도 엄청난 강자. [심연]의 지배권을 노릴 수 있는 존재들 말이다.그리고 그런 존재들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어내곤 한다. 리치 군주 역시 그런 케이스였고,
“깊은 절망이 말한다.”
새롭게 [심연]의 지배자가 된 깊은 절망 역시 같은 경우다. 그는 [심연]에서 가장 흔한 종족인 어비스 고블린과 어비스 코볼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태어났다는 의미가 어비스 고블린과 어비스 코볼트가 서로 사랑해서 태어난 건 당연히 아니다.
[심연]에서 전투는 일상이며, 전투의 결과에 따라 몸을 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심연]에서 태어난 존재는 암수의 구분이 없다. 이기면 이긴 존재가 ‘공’이고 패배한 존재가 ‘수’다.그렇게 가장 약한 존재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약한 존재들이 지닌 재능을 진하게 물려받았다.
어비스 고블린의 날렵함, 동체시력, 독(毒)을 다루는 재능.
어비스 코볼트의 손재주, 채집능력, 광물을 다루는 재능.
그리고 두 종족의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명석함.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약한 것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위치가 상승해 자신의 이름을 깊은 절망이라고 명명할 정도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강림한 그날.
깊은 절망은 자신보다 상위 순위에 존재하던 지배자들의 피와 살을 바르고 포식하고 흡수해 강해졌다.
단순히 그때 깊은 절망보다 상위 존재가 없어서 지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날 흡수한 힘을 토대로 그는 진정한 지배자가 되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수백, 수천 년 동안은 그 위치가 변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대비한다.”
“??”
그리고 그는 스스로 이름을 지을 정도로 명석한 깊은 절망은 차원 공방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심연]에서 숨을 쉴 때마다 수천 개체는 태어나는 어비스 고블린을 내보냄과 동시에 저렇게 선언했다.
대비한다? 무엇을?
“이런 멍청한 놈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 깊은 절망은 자신의 이름처럼 절망이 찾아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번 공방전은 우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저 지구라는 차원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게 룰이 바뀌었다는 걸 못 들었느냐!!”
“하지만 깊은 절망. 이곳은 [심연]입니다?”
“그래서. 저 지구라는 차원에서 이곳으로 쳐들오지 않을 거라는 거야? 아니면 이곳이 [심연]이니 와서 알아서 뒈질 거라는 거냐?”
“어? 어어. 대충 비슷하네요?”
차원 공방전을 앞두고 빠르게 소멸한 [심연]의 각 구역 지배자들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대가리를 들이밀던 이들은 하나 같이 깊은 절망의 무력에 대가리가 깨졌고, 굴종했다.
다만 [심연]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강한 개체는 99.87%가 멍청했다. 아니, 멍청하다기 보다 본능에 매몰되어 있다. 충실하다가 아니라, 뇌가 본능에 절여져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걸 수도 없이 봐 왔기에,
“깊은 절망이 명령한다.”
깊은 절망이라고 자칭하는 [심연]의 지배자는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우리는 대비한다.”
“아, 알겠습니다.”
“적의 침입을. 함정을 설치하고, [심연]의 기분을 곳곳에 뿌린다. 공방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가 챙기라고 한 것들은?”
“[심연]의 [깊은 곳]에서 담아온 찌꺼기는 충분히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오.”
“뭐.”
“공방전? 전쟁? 침략? 이것이 시작된 이후부터 우리는 [바깥]에만 머물러야 하는데. 이걸 우리가 사용할 게 아니라, 바닥에 뿌리려던 거였습니까?”
말투가 오락가락이다. 존댓말을 썼다가 하오체를 썼다가 은근슬쩍 반말도 섞여 나오는 놈들을 보며 깊은 절망은 깊은 빡침을 느꼈다.
빠―악!
“그냥!”
“쿠뤡?!”
빡―!
“시키는!”
“케흑?!”
빠빡―!
“대로 해!”
“켁! 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