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52
그렇게 사라진 유다연이었지만, 사비르 족의 9할이 올라온 [성벽] 위에는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족장. 대단하오.”
“역시 연륜에서 오는 통찰력인가? 거의 예지 수준이군.”
갈름이 유다연의 말을 예측한 것을 보면서 ‘우리 족장은 대단해! 우리 부족은 대단해! 그러니까 나도 대단해!’ 같은 기적의 삼단 논법으로 서로 으쌰으쌰하고 있었다.
“지랄하고.”
“응?”
“자빠졌네.”
“네?”
“이 모지리 같은 새끼들만 두고 내가 어떻게 눈을 감을까. 어휴.”
중얼거리는 한탄이었지만, 농밀한 마력이 담긴 그의 음성은 사면의 [성벽] 전체를 휘달리며 모두의 귀에 꽂혔다.
“지금 우리끼리 자화자찬할 때더냐?! 응?! 당장 몰려오는 놈들을 막을 준비부터 해야지! 활을 다루지 못하는 놈들은 하다못해 석궁이라도 들어라! 주술사는 주력 배분을 위해서 교대로 주술을 발현할 계획을 짜고!”
그의 입에서는 마치 이런 악조건을 수도 없이 겪어 본 사람처럼 여러 지시를 내렸다. 조금 전 눈앞에서 손자를 잃은 할아버지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그가 냉혈한이라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건 아니다.
“어휴. 이것들을 믿고 내가…….”
그에게는,
“갈름 족장?”
“눈을 감아야……. 한다니…….”
시간이 없었다. 손자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이.
“족장?!! 족장!! 치, 치료사!!”
“조…용. 머리…가. 울린…다. 이놈아.”
“족장. 왜 갑자기…….”
그렇지만 그의 물음에 갈름에게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 있는 것처럼 가쁘게 그리고 힘겹게 숨을 쉬면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죽은 걸까? 갈름을 안고 있는 중년의 사비르는 심장이 위장까지 떨어지는 섬뜩함을 느꼈다.
“족장! 누, 눈을 뜨시오!”
우우웅―!!
그가 막 고함을 지르는 순간 갈름의 몸에서 선명하고 진한 남색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던 갈름의 눈꺼풀이 열리며 그의 눈에서 정광이 흘러나왔다.
“조용히 하랬잖느냐!! 이 빌어먹을 망둥이 같은 놈아!”
“…괘, 괜찮은 거요?”
“괜찮겠냐?! 내 나이가 몇인데?! 당장 죽어도 당연한 일인게지!”
“…족장?”
“닥치고 내 말부터 들어라. 네게 갈름이라는 이름을 수여한다.”
“뭐?”
“네놈이 나 다음대 족장이라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듣기만 해라.”
그러면서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전대 갈름은 여러 당부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당대 갈름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면서 조언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이름을 전수하는 것은 단순히 족장이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걸 명심하여라.”
“아, 알겠소. 그러니 이제 좀 누워서…….”
“눕기는 이놈아. 얼마 남지 않았다.”
“젠장!”
누군가에게 향해야 할지 모를 원망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당대 족장이 될 이를 바라보던 갈름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우리 사비르 부족의 족장이 당대 한 번만 발휘할 수 있는 권리이니, 모두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라.”
농밀한 마력을 담아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믿고 섬기며 받들어야 할 존재는 푸른 하늘 용이 아니다. 우리 왕국의 국왕 이요한 님이야 말로 우리 부족의 신이시다.”
평소였다면 그의 이런 말은 거대한 반발을 불러왔을 거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노망이 났다’는 식으로 따르지 않은 이들이 있었을 거고.
하지만 [심연]에서 나온 존재들의 침식으로 눈앞에서 동료를 잃었고, [주도]에서 비난하는 방송을 보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몰려 있는 상황에서 죽음을 앞둔 족장의 마지막 부탁이자 권리를 거부할 수 있는 사비르는 아무도 없었다.
갈름이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흐려지는 시야에,
후우우우우우웅―!
[신앙] 스탯이 일제히 80을 초과하며 그 여파로 [성벽] 위를 타고 흐르는 선명한 신성력의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되었다. 되었어. 곧 만나겠구나. 나의 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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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안녕하세요.
심행입니다.
어제 안과를 다녀왔고 약을 받아왔는데.
뭐 금방 낫진 않겠지요.
휴재는 다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금요일에 반차를 사용해서 토요일 연재분을 시간을 두고 준비할 예정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이 퓌쉬스(Zoey Phўsis)
255. 조이 퓌쉬스(Zoey Phўsis)
검은 절망은 차원 공방전 동안 [심연]의 외곽만 사용할 수 있으며, 심연의 [심층]은 물론이고, [하층]과 [중층]에 [상층]까지 막아버리고 그 경계에 [소멸의 벽]을 두른다고 했을 때, 번거롭고 귀찮게 일하는 스타일이라고 투덜댔다.
그리고 막상 전쟁이 시작되니, 생활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었어. 그것도 문제가 맞는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거야.”
깊은 절망은 이 모든 불편함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공방전 방식의 변경.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야.”
이전까지 공방전과 달리 침략을 받은 차원에서 역으로 이쪽의 본진을 노릴 수 있도록 변경된 방식 때문에 이 모든 불편과 불리함이 생긴 것이다.
애초에 공격을 허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외곽이라고 해도 좁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았을 거다.
“아니지. 좁다는 느낌은 받았겠지.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공간 확보를 위해 전력을 낭비하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거기. 빨리빨리 이동해라!”
“아, 알겠다요?”
“그나마 나 정도 되니까 이런 방법을 떠올렸겠지.”
단순히 어비스 고블린, 어비스 코볼트, 어비스 오르크 같은 버러지들을 막무가내로 지구에 던지려던 깊은 절망은 [하층]에서 가져온 찌꺼기에 죽어가는 버러지들을 보면서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거기! 내가 지정한 영역을 통과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냐! 멍청한 새끼들아!!”
“죄, 죄송하다요?”
“너 일부러 그러는 거냐? 그거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존댓말이다요?”
“주기까? 응? 그냥 주기까?”
미노타우로스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덩치의 어비스 종족을 향해서 깊은 절망이 살기를 드러내는 이유는,
“찌꺼기를 잔뜩 뿌린 곳 위를 지나게 한 다음에 지구로 침공시키라고!! 이 빌어먹을 소대가리 새끼야아!!”
“히, 히익?! 아, 알았다요!”
함정 설치와 공간 확보를 위한 지구에 쓰레기 무단 투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의 권능으로 확인한 지구의 차원 종족이 등장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에 [심연]의 [하층]에서 가져온 찐득한 찌꺼기가 진하게 쌓여 있는 곳 위를 지구에 버리기로 한 어비스 고블린과 어비스 오르크가 걷는다.
당연히 그 위를 통과한 심연의 짐승은 악의적이고 진한 심연의 기운에 노출돼 골골거리지만,
“어차피 저런 쓰레기들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어. 그러니 이렇게 하면 [심연]에 침식이 발생하겠지. 특약에는 면역이 아니라, 저항력이라고 했으니까. 음음. 좋아.”
대신에 지구에 있는 적군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이 침식 당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거면 된 거지.”
혼자 자화자찬을 하며 속으로 ‘난 대단해!’를 중얼거리는 그의 앞에,
“깊은 절망. 하지만 저렇게 하면 전쟁에 참여하려는 놈들이 없을 거요.”
이족 보행 거대 염소라고 표현하면 딱 어울리는 거무튀튀한 존재가 나타났다. 염소 수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르쿠스와 산양 머리의 악마인 바포메트를 절반씩 섞어 놓고 피부를 탁한 검은색으로 물들인 것 같이 생긴 외형의 거대 염소는 척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창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뭐?”
“그래서라고 할 게 아니오. 우리가, [심연]이 차원 공방전에 참가한 이유가 무엇이오?”
“…….”
[심연]이 차원 공방전에 뛰어든 이유. 정확하게는 [심연]에서 태어난, 전 차원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 존재들이 차원 공방전에 참여한 이유.그린스킨이 차원 공방전에 참여하는 건 카르마 포인트와 수태를 위한 암컷 수집 때문이다.
언데드가 차원 공방전에 참여하는 건 시체 수급과 전투와 살육을 토대로 언데드의 성장을 위해서다.
그리고 [심연]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차원 공방전에 참여한 이유는,
“우리가 차원 공방전에 참여한 이유는 쾌락과 즐거움 때문이오.”
[심연]이 아닌 다른 차원에 ‘침공’하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도달할 만큼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고, 전투와 살육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생명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그래서 뭐? 어차피 공방전 하다 보면 초반에 참가한 쓰레기는 다 뒈지잖아.”
“그렇소. 초반에는 비루한 것들이 주로 전장에 참여해 차원의 분위기를 살피고, 언데드 같은 놈들과 영역을 구분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르오.”
“뭐? 왜? 전투 의욕이 떨어진다, 사기가 저하된다,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렇소.”
염소 얼굴의 거인에게서는 ‘어떻게 알았지? 혹시 생각을 읽는 건가?’ 같은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거 엄청 멍청한 소린 거 알고 있냐?”
“멍청하다고? 내가 말이오?”
거인 염소는 그나마 남아 있는 이들 중에서 가장 똑똑해서 깊은 절망이 부관으로 삼고 있는 존재였으니, 멍청하다는 말에 바로 튀어나온 의문이 일견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래. 어차피 초기에 보내는 버러지들은, 쓰레기들은 그냥 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용도야. 여기서 전장의 분위기라는 건 우리가 침략하는 차원의 분위기가 아니라, 그동안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그린스킨이나 언데드의 분위기라고.”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소.”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지?”
“음.”
“그린스킨은 멸족했어. 언데드는? 리치 군주가 소멸했다지? 그런데 무슨 분위기를 살펴?”
“…그렇긴 하겠지만.”
“그리고 나도 이 미친 짓을 계속할 생각은 없어.”
“정말이오?”
“당연하지. 이건 방어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지구라는 차원에 [심연]의 기운을 더 많이 뿌려 전장이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야. 쓸만한 놈들을 내보낼 때는 정상적으로 내보낼 거야.”
“확실히. 깊은 절망은 대단하군.”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러니까 가서 저것들 똑바로, 제대로 찌꺼기 위를 통과하라고 해.”
“알았소.”
깊은 절망은 멀어지는 거대 염소를 뒤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더 많은 함정과 더 많은 대비가 필요해. 어디 보자.’
그의 눈에 보이는 확률은 어느새 35%를 넘어서고 있었다.
* * *
엘라의 ‘가슴 만질래?’의 효과는 굉장했지만, 그것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준비’를 위해 [성소]로 향하던 발걸음은 곧 돌려야 했다.
“음. 그러니까 나오자마자 뒈지는 놈들이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심연]의 더러운 기운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로파이. 골렘 침식 정도는?”
[올 그린. 전혀 문제 없습니다.]“그래? 그렇다면 지의사나 가신들은 문제가 없고, 영지 각성자 중에는?”
[문제가 없습니다.]“응? 심하고 더럽고 지독한 기운이라며?”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도]에 있는 시민들은 모두 [신앙] 스탯이 최저 88이니까요.]“응? 그거랑 이거랑 상관이 있어?”
[살아 있는 신이신 주인님을 섬김으로서 얻는 종교 베네핏으로 발현한 신성력 속성 마력은 [심연] 침식에 엄청난 저항력을 가진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신앙] 스탯 80.1만 되어도 문제가 없으며, 85.1이면 저 피에서 목욕을 해도 괜찮습니다.]“어. 목욕은 그만두고. 그럼 문제가 없는 거 아니야?”
[네. 문제가 없습니다. [주도]에 한정한다면 말입니다.]그제야 로파이가 탑승형 골렘에서 나오지 않고 보고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도]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지]에는 문제가 있으며 그걸 알아보고 해결하기 위해서,
“[영지]에 파견 나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