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the only one in the apocalypse who thinks the genre is weird? RAW novel - chapter 258
『이요한이가 일을 참 잘해? 그치?』
[심연]의 포화도는 더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그건 지금 차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하면 이해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펠리타 왕국의 [주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 * *
[성벽] 밖의 대지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피를 흘렸다거나 [심연의 짐승]이 더러운 찌꺼기를 뿌렸다는 게 아니다.아직 진짜 전투는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렇다. 다시 말해 그렇게 보일 정도로 아득한 수의 [심연의 짐승]이 [주도]를 노린다는 뜻이었다.
[심연의 짐승]이 아니라, 단순한 인간 병사라도 수천만에 가까운 수라면 질릴 거다. 그런데 그게 창과 칼을 든 인간이 아니라, 닿는 것만으로도 해악을 끼치는 [심연의 짐승]이라니.그동안 차원 공방전이 일어났던 차원이라면,
“와아. 서방님은 진이이인짜 대단하시네요. 나였다면 진짜 바로 후퇴 명령부터 내렸을 건데.”
“너도요? 나도여요.”
조이와 요제프의 말처럼 진즉 도주나 후퇴를 먼저 머릿속에 그렸을 거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엘리아나는 시선을 [성벽] 바깥에 바글바글한 혐오스러운 것들에게 두지 않았다. [성벽] 안쪽, 벌써 자신이 살던 차원의 세계수보다 더 크게 자란 세계수 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지. 안 그러니?”
“맞아요. 서방님을 만나서 저는 초월자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어요. 서방님이 정신을 잃고 계신 이상 후퇴할 수도 없지만, 후퇴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죠? 본부인? 그렇죠?”
조이 퓌쉬스는 지금까지 가신 중, 가장 늦게 소환된 만큼 이요한의 가신이 된 혜택 중 하나인 경지가 상승함으로 얻게 된 힘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도 가장 ‘신이 난’ 상태였다.
“그래. 조이부터 시작해.”
“예에!! [황도 12궁].”
철컥―!
거대한 자물쇠의 틈이 서로 맞아들어가면서 날 법한 소리가 [성벽] 위를 넘어 [주도] 전체에 퍼졌다. 당연하게도 [주도]의 도민들은 소리가 들려온 하늘로 시선을 돌렸고,
“[보호의 거해궁(Cancer)].”
“우아! 게야! 엄마! 엄청 큰 게!”
“…게자리(Cancer).”
거기서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대낮에 모습을 드러낸 게 자리와 그 별자리로 구현된 거대한 게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란 게는 점점 몸을 크게 부풀리더니 반짝이는 별로 이뤄진 게가 [주도] 전체를 뒤덮었다.
다시 말해 [주도]의 [성벽]을 비롯한 모든 시설이 몸을 한껏 부풀린 게의 등딱지 안에 들어온 모양이 되었다.
“[고결한 처녀궁(Virgo)].”
거대한 게가 [주도]를 완벽하게 품자마자 조이 옆에 파란색 별빛으로 빛나는 존재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깃털 펜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쥐고 선 젊은 여인의 등 뒤에는 한쌍의 날개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Ανάλυση πεδίου μάχης.]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순간 [성벽] 밖의 바글바글한 [심연의 짐승]의 머리 위로 마력이 퍼졌다가 사라진다.
그것을 확인한 조이는 이어서,
“[꿰뚫는 인마궁(Sagittarius)].”
막대한 마력을 뿜어내며 다른 황도 12궁의 존재를 불러냈다. 인마궁. 사수 자리 혹은 궁수 자리라고 불리는 황도 12궁의 하나.
조이의 마력을 받아 현신한 인마궁은 하체는 말, 상체는 인간인 켄타우로스의 모습이었다. 다만 그 크기가 대형 버스 열 개를 이어놓은 것보다 길었고, 5층 빌라보다 더 높고 컸다.
당연히 그 손에 들린 활 역시 그 몸에 맞게 클 수밖에 없었고,
그그그긍―.
잔뜩 당겨진 활시위에는 로켓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크고 굵은 화살이 걸려 있었다.
“쓸어버려. 새쥐터리우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인마궁이 시위를 놓자,
파파파파팟―!
하늘 높이 솟은 화살이 어느 정도 높이 도달하기 무섭게 수천, 수만 개의 빛으로 쪼개진다. 높이 솟은 그것은 당연하게도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고 괴성을 지르며 [성벽]을 향해 내달리던 [심연의 짐승]의 머리 위로,
콰콰쾅―! 콰콰쾅! 쾅쾅!
별빛이 쏟아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처럼 파괴적인 별빛이.
[성벽] 근처까지 접근한 [심연의 짐승]들은 단순히 화살에 맞은 것처럼 머리나 신체 일부가 꿰뚫리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별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추앙받아온 만큼, 별빛이 닿는 것만으로 [심연의 짐승]을 녹이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이 죽으면서 남겨야 할 더러운 기운 역시 태운 것처럼 사라졌다.
“어땠어요? 본부인?”
“엄청난데? 소환 계열이라서 저것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마력이 그리 많지 않은 거지?”
엘리아나는 조이의 [황도 12궁]이라는 특이한 권능이 가진 가치를 바로 알아봤다.
“네네. 맞아요. 본부인.”
“대단해. 나중에 반려에게도 보여주자! 반려라면 엄청 놀라면서 신기해할 거야! 반려는 그런 모습은 엄청 귀엽거든.”
“오오! 좋아요! 좋습니다! 본부인! 서방님의 귀여운 모습이라니! 촬영해도 될까요?”
“흐응? 아마 안 될 걸? 반려도 이제 깨어나면 어비스 랭크시잖니? 바로 알아치리실 걸?”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마도구가 아니라, 현대의 이기인 소형 카메라와 꽃과 풀로 조작음을 감출 수 있어요! 본부인!”
“어머? 정말? 그럼 해 볼까?”
“헤헤.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본부인.”
엘리아나가 조이가 서로 환담을 나누고 있을 정도로 전황이 여유로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런데도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죽여! 죽여! 카르마 포인트 폭탄이다아!”
“파이어볼! 파이어볼! 파이어―!!”
마치 가신들이 끼어들 틈을 최소화하겠다는 듯이 [성벽] 위에서 발악하듯이 능력을 발휘하는 [주도] 소속 각성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히 힘으로 무식하게 때려 박는 방식이 아니라,
“조앤! 잠시 뒤로 빠져서 쉬었다가 합류해! 딜 로스 생기잖아!”
“빌어먹을! 벌써 팔에 경련이……!”
“내가 뭐랬어? 궁수는 힘케라고 했지?! 궁수는 힘부터 찍고 체력 찍은 다음에 민첩 찍어야 한다니까. 뭐? 디아블로로 악마사냥꾼을 오래 했다고? 민첩이라고? 어휴.”
[성벽] 위에서 각자 클래스에 맞게 구역을 분할하고 파티 시스템에 따라서 효율적으로 쓸어 담고 있었다.물론 그렇다고 [심연]의 [중층]에서 살아가던 존재들이 섞여 있었고, 그들은 ‘지휘 비슷한’ 것을 할 줄 알기에 구멍은 언제든 뚫리기 마련이었지만,
[χάσμα.]그건 [고결한 처녀궁]을 소환해 전장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파악하고 있는 조이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이안테. 저기.”
순간 속도라면 가신 중에서 엘리아나조차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안테에게,
“그래. [피의 부름], [사냥의 시간].”
정확한 목표와 위치가 정해진 곳을 뒤집어놓고 오는 것은 위기 비슷한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냥 몸을 움직인 정도에 불과했지.
“심심하다.”
이안테에게는 찔끔찔끔 움직이다가 마는 게 오히려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그럼 이안테. 저기 뒤에 보여? 멀리. 끝에.”
“응. 보인다. 주모(主母).”
“그러면 뒤에 있는 놈들부터 좀 쓸어버리고 와.”
“정말? 그래도 돼?”
“응. 뒤에서 팔을 이리저리 흔드는 걸 보니까 명령 비슷한 걸 하나 본데? 귀찮아 질 것 같아.”
“고마워. 주모.”
방금까지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안테의 모습이 [성벽]에서 흩어진 것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깜박이기도 전에 [심연의 짐승]의 가장 외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전력을 다하면 나도 놓치겠는데?’
엘리아나는 자신의 눈에도 잔상을 남기는 이안테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녀는 이요한 곁에 있는 가신은 물론이고 지의사들도 믿는다.
‘음. 음. 음.’
하지만 만에 하나, 천억에 하나라도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대응 방법을 모색하곤 했다. 모두 이요한을 위해서.
“실피드.”
[응? 나 날뛰어도 돼?]“융합.”
[아!] [성벽] 위에 소환된 밝은 녹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녹색 빛으로 흩어져 엘리아나의 몸에 흡수되었다.“음.”
[음.]“잘 보이네.”
[반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저것에서 더 빨라져도.]“그래? 반려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이안테는 태고의 짐승이라던데?”
[어? 설마 그거야? 그……거?]“응. 아마도? 최초의 반인반수가 아닐까? 아니면 그것의 핏줄?”
[음. 그래도 괜찮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그래. 그래.”
“맞아.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응? 그래?]“그래. 너도 그랬잖아? 우리가 공허, [심연]에서 나온 그것들과 전투에서 패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잖아?”
[아…….]가불기에 흑역사나 다름없는 일이 거론되자 실피드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엘리아나도 알고 있다. 자신도 반려와 만날 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동급인 차원 관리 시스템의 금제 아닌 금제가 전해졌으니까.
‘그래도 불안해.’
불안하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꿈만 같아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벅찬데, 또 그게 불안하다. 그렇게 떠오른 불안함을 애써 치워버리고,
“실피드. 정찰을 부탁해. 쓸데없는 짓을 하는 놈들이 있으면 썰어버리고.”
[그래!]어느새 융합을 해제한 바람의 정령왕을 내보냈다. 빠르게 멀어지는 실피드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겸사겸사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을 때,
[딸아. 걱정할 것 없단다.]“어머니.”
세계수의 목소리가 엘리아나에게 닿았다.
[그래. 정말로 하나도 걱정할 게 없어요.]“그럴까요?”
[그럼.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우리 사위한테 이르면 되잖니?]“어…머니?”
[능력 있는 사위에게 마음껏 의지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잖니. 우리 사위가 다 해결해줄 거란다?]“…….”
[우리 사위 최고!!]엘리아나는 하이 엘프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계수를 보며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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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바로 네 여자다!
261.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바로 네 여자다!
[심연]의 [중층]에서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이 전투와 생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생존 본능’이라는 촉이 엄청 날카롭게 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렇기에 가장 오래 중층에서 생존한 몇몇 존재들은 [주도]를 시야에 담기 무섭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맹목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해 달려드는 [심연의 짐승]과 다르게 말이다.
그런 움직임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층에서 오래 살아남은 [심연의 짐승]을 알고 있는 중층의 짐승들은 그 행동을 보고 생존 본능에 따라 자신들도 모르게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나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산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성벽과 그 성벽 위에 있는 괴물들을 모습을.
아니, 아니다. 괴물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꿰뚫는 인마궁.”
괴물들의 일부, 그것도 편린만 본 것이다. 그 진면목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이 [심연의 짐승]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돌아간다?”
“능력 없다? 우리는?”
“멀어진다?”
“그거다!”
누군가 한 말에 동의한 이들은 바로 멀어지려고 했지만,
“아직 안 된다?”
“왜 안 된다?”
“우리 도망? 눈에 띈다?”
“맞다.”
누군가의 생존 본능이 반론을 제기하며 [성벽]을 등지려고 했던 몸을 다시 돌려놓는다. [심연]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앙숙인 이들까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